“왕좌의 게임”, 너희들은 주인공이 아니야!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또는 “불과 얼음의 노래(A Song of Ice Fire)” 저자인 조지 쌍알(R. R.) 마틴을 소개하자면 이 할배는 1948년 미국 뉴저지주 베이욘의 빈민가 출신으로 어머니는 아일랜드인, 아버지는 이탈리아 혼혈이었답니다. 처음 만든 이야기가 자기가 기르는 거북이들이 자꾸 죽는 걸 보고 거북이들 사이에 흉흉한 음모와 모략이 펼쳐지는 이야기였다니 참으로 꾸준한 양반입니다. 마블코믹스 광팬으로 출판사에 독자투고로 시작해서 미국버전 동인지 작가로 글쓰기를 시작하여 이후 SF 단편소설로 등단했고 휴고상, 네뷸러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범상치 않았는데 주로 판타지와 호러를 섞은 SF를 썻고, <환상특급> <맥스 헤드룸>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왕좌의 게임>에도 거대 장벽과 그 장벽에서 작동하는 기계들 같은 SF적 요소가 많이 나오죠.

<왕좌의 게임>을 요약하자면 “복잡한 스토리라인 속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놓고 이들이 멋진 대사를 치게 하고는 죽여 버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쌍알 마틴 옹이 “나한테 잘해. 안 그러면 다음은 티리온 차례가 될거야. (Be Nice To Me Or Tyrion Is Next)” 라는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었는데, 정말 그러고도 남을 인간입니다. “나한테 다음 권이 언제 나오냐고 누가 물어볼 때마다 스타크家 애 하나씩 죽일거야”라고 협박하는 사진도 있고요.

“이번엔 내 차례인가?”

왕좌의 게임이 인기 있는 이유도 사실 그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늘 긴장해야 하죠, 누가 어느 순간 갑자기 죽을지 모르니까요. 원래 주인공은 안죽고, 죽더라도 뭔가 의미있게 죽는 게 대부분의 소설들의 불문율인데 여기선 안 그럽니다. 그냥 갑자기 그냥 막 뜬금없이 죽어요. 즉,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처참히 박살내는데, 그럼으로써 그 어떤 판타지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현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개x끼들이 권력을 잡고 다 질 것 같던 전쟁에서도 이기고 약자들은 죽고 배신자들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판의 현실이 떠오르기도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판타지물의 전형은 톨킨 옹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J.R.R. 톨킨이 북유럽의 옛 설화들을 수집하고 조립해서 새로 만들어낸 유럽설화의 집대성판인데요, 이 양반은 189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살다가 73년에 사망했으므로 19세기부터 20세기를 산 사람입니다. 1925년부터 1959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헌학과 언어학 교수로 재직한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그가 만들어낸 호빗과 휴먼과 엘프와 드워프와 마법사, 그리고 드래곤과 오크와 기타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세계가 이후 모든 서양판타지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게 SF쪽으로 전환되어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기본 틀이 되었고, 게임으로 전환되면서는 테이블 보드 게임에서 시작해서 “디아블로”나 “울티마 온라인”, “워크래프트”, 우리나라의 “리니지”의 바탕이 되었고요. <무협소설>이 중국문화권 사람들이 꿈꾸는 신화의 표현이라면, 이 반지의 제왕 속 판타지 세계는 영국미국 문화권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화입니다.

“마이 프레셔어스으리~“

사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의 옛 설화들과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장력으로 장식된 1, 2차 세계대전의 판타지적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영국은 인간들과 엘프, 드워프로 구성된 반지원정대를, 사우론은 히틀러를, 사루만은 그 꼬붕인 무솔리니쯤을 상징하는 셈이고요, 인간 같지 않은 오크들은 식민지 주민들이나 일본사람들 쯤을 상징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겐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선포된 계기라서 꽤 그럴듯한 전쟁 같지만, 사실 따져보면 양쪽편 다 식민지들 더 많이 차지하려는 싸움질이었고요. 이건 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식민지를 많이 갖고 있거나 더 이상 가질 필요 없는 나라(미국과 영국, 뒤늦게 소련) vs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해서 식민지를 마구마구 필요로 했던 나라들(독일, 일본, 이태리)간의 싸움이었던 거죠. 물론 2차 세계대전에서는 그놈의 히틀러와 나치가 인종청소라는 엽기적인 짓을 저지른 덕분에 선과 악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국이나 영국이 히틀러가 나쁜 놈이라서 전쟁을 한 건 아니었고, 히틀러를 죽였다고 해서 악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2차 대전 덕분에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 나면 1차 대전은 약 1천만 명이 죽었고, 2차 대전은 약 5천 만명이 죽어나간 비극일 뿐입니다. 사실 2차 대전 정리과정에서 지금의 중동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지금 테러가 난무하는 세상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반지의 제왕”은 신화이지만, 동시에 역사에 대한 거대한 왜곡물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모든 신화들은 다 이런 속성이 있죠. 우리는 어떤 큰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려합니다. 그 사건을 이야기 구조로 바꾸어서 기억하게되고 그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말하는 어떤 의미나 교훈은 그런 과정에서 추출되는데, 예를 들자면 “사필귀정”, “역사는 정의의 편이다.” 뭐 이런 거 말이죠.

허나 “왕좌의 게임”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왕좌의 게임은 지금까지 판타지에 대해서 기대하던 것들을 하나씩 배반하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도 배반이 마구 벌어지지만 이야기 전체에서 의미나 교훈을 찾으려는 독자와 시청자들의 노력에 대한 배반은 그보다 더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 정의, 원칙, 명예, 용기, 신의/성실, 심지어 지략이나 돈, 권력 조차도 소용이 없는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이 드라마의 모토는 “가차없는 세상”이지요.

원래 판타지 영화의 원칙대로라면 스타크 가문이 주인공일테지요. 위에 언급한 가치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들이니까요. 하지만 이들이 작살나는 건 모두 바로 그 가치들 때문입니다. 네드 스타크가 죽은 건 명예와 정의,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죠. 케이틀린 스타크가 티리온을 체포할 때 역시 명예와 신의성실에 따라 협력했던 사람들도 다 잦되고요. “피의 결혼식”도 결국 불문율은 안 깨겠지 라는 순진한 기대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원작에서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오류 때문이었다던데 제이미 라니스터가 볼튼한테 스타크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한 말을 볼튼이 오해하면서 … 그렇다면 더 황당한 전개이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다고 지략과 돈과 권력까지 갖춘 라니스터 가문이 계속 떵떵거리고 잘 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더 놀라운 건 아직 본편인 얼음과 불의 전쟁은 시작도 안했는데 정작 그 본편에서는 인간이 주인공이 아닐 거 같다는 점입니다. 불의 마녀가 말했듯이 지금까지 다섯 왕의 전쟁은 그냥 몽매한 인간들이 벌이는 왕좌의 게임이었을 뿐, 진짜 전쟁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얼음괴물들과의 전쟁이고, 여기에는 남쪽에서 올라온 불뿜는 용들이 주인공이 될 듯합니다. 이 용들은 용 엄마 말도 잘 안듣는 애들인가 봐요.

Margaret Mahler 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우리의 자아가 발달하는 과정은 결국 나와 내가 아닌 것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봤습니다. 이걸 대상관계 이론이라고 하는데요, 말러에 따르면 우리는 처음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세상과 나의 구분이 없는 상태로부터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걸 정상적 자폐단계라고 하는데, 이때는 내 마음과 현실이 구분이 안되고요, 꿈꾸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꿈에서의 모든 사건들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인 것 처럼, 이때는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곧 나입니다. 그러다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면서 드디어 자아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죠.

내가 아닌 것은 뭐냐하면 결국 내 맘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들인데, 다시 말해서 세상이 내 맘과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사실, 즉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우리에게는 자아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자아가 생기면 우리는 자아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게 됩니다. 자아의 영역을 넓힌다는 건 결국 내 자유를 늘리는 것인데, 3살 때쯤 이런 개념이 생기는데 그래서 그때 미운 세 살이 되는 것이랍니다. “싫어!” “안 해!”라는 말이 최초의 자유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다음에야 우리에게 지능이라는 것이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지능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세상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구석을 찾고 조작하는 능력입니다.

이 드라마도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이런 성장과정을 경험하게 합니다. 정의가 이기고 불의가 패퇴하는 사건이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때는 우리는 소설을 진짜 세계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과 구분하지 못하는 자폐 단계인 것입니다. 이러면 소설 속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게되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기대한 대로 소설이 전개되지 않을 때,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 애가 속절없이 댕강댕강 대가리가 잘려나갈 때, 이 세계가 나와 상관없이 내 외부에 존재하는 나와 독립적인 세계라는 걸 깨닫고 그제서야 이 세상의 작동에 대해서 진심으로 알려고 합니다. 물론 이 단계에서 자기 기대대로 드라마가 전개되지 않는다고 화내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발달을 거부하는 것인데요, 소설을 자기 소망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죠. 마치 여자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연애를 포기하고 2D에 만족하는 오덕과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요.

나는야 내 의지로 발달을 거부하지

사실 이 드라마를 제대로 즐기면 그런 깨달음을 경험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네드 스타크가 죽은 건 그가 단지 명예와 정의와 원칙을 따라서만이 아닙니다. 힘이 생존을 위해서 작동하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고요. 바리스 경이 네드에게 “도대체 어쩌자는 생각으로 당신이 알게된 사실을 세르세이에게 말한 거요?” 라고 질문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롭도 마찬가지죠. 원칙을 따르다가 비극에 처합니다.

그런데 원칙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구현해냈을 때 의미가 생기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걸 통해 그 사람의 능력이 증명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걸 구현한 인간을 따르는 것이고요. 그러다 보면 그게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는 것인데 그러기 전까지 원칙이나 정의는 그저 누군가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정의가 이겨야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세상이 불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에 포기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정의는 언젠가 이길꺼야 따위 기대만 하며 손가락만 빨고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정의가 못이긴 건 그만큼 준비와 노력을 안했고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니 뭐가 어쨌든 일단 이겨놔야 정의든 뭐든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 가차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그저 겸손일 뿐이었습니다. 티리온 라니스터가 오래 사는 이유도 그것인 듯 보입니다. 그는 오만할 수 없는 존재죠. 제이미 라니스터도 겸손을 배우면서 오히려 쓸만한 인물이 되는 건지, 아닌 건지 …

<문라이트>와 뱀파이어물의 진화 [1부]

 

 


 


 


 



 


 


 



2009년에 우연히 접했던 뱀파이어 로맨틱 탐정물 <문라이트>의 리뷰로 시작했다가, 곧 뱀파이어물 이것저것을 언급하면서 본격적인 ‘뱀파이어물에 대한 메타적인 분석글’을 지향하며 야심차게 전개하…다 흐지부지된 글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시간적 한계가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럭저럭 재미있습니다. 제 글이 재미있다기보다는(뭐 저는 그렇다고도 생각합니다만 -.-), 뱀파이어물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 때문이겠죠. 한편으로는, 2000년대 초반과 중반의 획기적인 ‘뱀파이어물의 진화’의 양상은 다소 주춤한 대신, 그 진화를 시리즈물을 통해 ‘유지’하는 데에 더 주력하는 분위기인 듯도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일부분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뒤늦게나마 공개합니다.


 


장르물에 지식이 일천한지라 곳곳에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선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지적해 주시면 감사히 받고 수정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1. <문라이트 Moonlight>는 어떤 시리즈인가


 


<트와일라잇>이 ‘새로운 뱀파이어’ 얘기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현대 도시 안의 뱀파이어를 좀더 매력적이고 시크하게 표현한 걸로 미국 TV 시리즈 <문라이트>가 있다. 비록 쇼 러너가 넷이나 되는 바람에 그리 나쁘지 않은 시청율에도 시즌 1로 끝나버린 비운의 드라마긴 하지만.


 


호주 출신의 알렉스 오로클린(그러나 국내 인터넷에서는 ‘알렉스 오로린’으로 통용되는)과 영국 출신의 주목할 만한 젊은 연기파 배우 소피아 마일즈, 거기에 <기사 윌리엄>이나 <40 데이즈 40 나잇> 등에 나왔던 독특한 매력의 섀니언 소서몬이 주연을 맡았다.


 


사립탐정과 인터넷 기자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명목상 탐정물. 그러나 실질적으론 간질간질하지만 지나치게 손발이 오그라들지는 않은, 꽤 괜찮은 로맨틱 뱀파이어물이다.


 


알렉스 오로클린과 소피아 마일즈가 워낙 괜찮은 배우들인데다 둘 사이 케미스트리도 매우 좋았다. 여직도 시즌 2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여성팬들이 전세계에 많은데, 알렉스 오로클린은 <하와이 5-0>의 주연으로 자리를 잡아 버렸으니 <문라이트>의 2시즌 제작은 당분간 물 건너간 셈이다.


 


 


 



Moonlight

<문라이트>의 두 주인공, 알렉스 오로클린(오른쪽)과 소피아 마일즈


 


 


 


<문라이트> 시리즈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뱀파이어물에 그 분장이 꽤 요란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설정들은 제법 쿨하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역시 뱀파이어 탐정물인 <블러드 타이즈>가 각종 악마와 저주와 주문 등등을 요란하게 다루는 것과 달리, <문라이트>에서는 초현실적 존재로 오직 뱀파이어만이 등장하고, 뱀파이어도 감각 예민하고 일반 인간들 기준으로는 괴력과 초능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도시 정도라면 햇볕 아래에서도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뱀파이어를 죽이는 전통적인 방법 중 하나로 알려진 ‘심장에 말뚝박기’도 이 시리즈에서는 ‘뱀파이어를 마비만 시킬 뿐 죽일 수는 없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2. 넘쳐나는 새로운 뱀파이어물


 


그러고 보면 박찬욱 감독이 <박쥐>를 만들었다는 게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요 몇 년간 서양은 확실히 이런 새로운 뱀파이어 바람이 꽤 심하게 불고 있는 중이다.


 


<트루 블러드>는 골든글로브에서 안나 파퀸에게 TV시리즈 여우주연상을 안겼고 CBS에서는 <뱀파이어 일기>라는 새로운 시리즈가 론칭되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던 <문라이트>도, 캐나다에서 제작된 <블러드타이즈>도 모두 국내에서 케이블을 통해 소개되었다. 영화 쪽으로 가면 물론 <트와일라잇>이 있고, 이것의 속편 <뉴문>과 <렛미인>이 뒤를 이었다.


 


15년 전 <버피와 뱀파이어> 시리즈가 뱀파이어를 처단할 존재로 전제하고 영혼을 가진 뱀파이어 ‘엔젤’을 저주에 걸린 예외의 타자로 상정했던 것과 달리, 근간의 뱀파이어물은 보다 적극적으로 뱀파이어를 매력적인 이존재로, 도시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자’로 그린다.


 


 


 



 


 


 


또한 전통적으로 알려진 뱀파이어에 관한 여러 가지 신화들을 오히려 ‘뱀파이어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퍼뜨린 루머’로 역이용하는 재치도 보인다. 단적으로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십자가를 무서워한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최근의 여러 뱀파이어물은 공통적으로, 이것들이 뱀파이어들이 일반사람인 척하기 위해 일부러 뿌린 잘못된 루머라고 주장한다. 마늘도 취향의 문제로 치부한다.


 


그러나 다른 신화들에 대해서는 시리즈마다 이견이 있다. <문라이트>에서 뱀파이어들이 햇빛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치명적이진 않은 걸로 표현하고 있지만 <트루 블러드>나 <블러드 타이즈>는 여전히 햇빛이 뱀파이어에 치명적이라 주장한다. 다만 <트루 블러드>의 경우 과거만큼 심하지는 않아서, 스티브 모이어가 연기하는 주인공 뱀파이어 빌 콤튼은 1시즌 마지막회에서 연인인 수키(안나 파퀸)를 구하기 위해 대낮에 나왔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 쓰러지기는 하지만 목숨은 부지한다.


 


뱀파이어물이 이토록 급증하고 더욱이 과거와 달리 뱀파이어를 매혹적인 이방인 정도로 그려내며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마도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일반화되면서 그로 인한 사회적,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과거 뱀파이어물이 시골에서 폐쇄적 생활을 하는 지주, 유지로 설정되며 근대 이전의 귀족을 상징했다면, 이후 불야성의 메트로폴리스를 배경으로 도시물이 활기를 띄었다가 지금은 도시물과 시골물이 공존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현대의 뱀파이어물은 아무래도 도시가 어울린다. 도시야말로 바로 옆동네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르는 데다가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 올빼미족들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시골물은 과거 시골에 은둔하는 지주나 지방 유지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골에 새로이 보금자리를 틀러 온 타지 출신 정도로 묘사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깡촌, 그러니까 촌스러운 시골 백인들을 가리키는 ‘힐빌리’ 혹은 ‘레드넥’들만 살던 동네에도 이젠 유색인종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 게다.


 


 


 



 


 


<트와일라잇>만 해도 배경은 분명 워싱턴 주의 시골 깡촌인데 인종 분포는 LA의 웬만한 동네 못지 않을 정도로 다채롭다. 전형적인 북구 미남들부터 네이티브 어메리칸은 물론, 심지어 동양인들까지. <트루 블러드>의 배경도 루이지애나 주의 깡촌 시골이다.


 


그러니까 봉건시대의 잔재에 대한 더없이 적절한 비유였던 뱀파이어가 21세기 현대 자본주의에 와서는 도시의 여피를 상징하거나, 시골로 낙향한 부유한 도시 출신 백인, 혹은 미국 정착에 성공한 흑인 외 다종다양한 유색인종들의 비유로 그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저 할리퀸 로맨스 수준이었던 원작소설과 달리 <아메리칸 뷰티>의 작가 앨런 볼의 손을 거친 <트루 블러드>가 종교적 광기와 이종존재간 문화충돌, 카트리나 이후의 미국 남부의 트라우마를 다루며 6, 70년대 반문화적 성격까지 차용해와 복잡한 문화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상징적이다. [자본론]에 등장하는 마르크스의 훌륭한 통찰과 비유도 이제는 시대적 효력을 살짝 상실했다는 얘기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 *


 


 


 


영진공 노바리


 


 


 


 


 


 


 


 


 


 


 


 


 


 


 


 


 


 


 


 


 


 


 


 


 


 


 


 


 


 


 


 

[그 영화 그 노래] 엑스파일 시즌 5 에피소드 5

 

 


 


  




 


 


요즘은 미국 드라마를 거의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저 공중파에서 더빙으로 방영하는 걸 보는 게 다였다.


 


그래도 간간히 대박에 가까운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가 나오곤 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


 


“전투” (Combat), “달라스” (Dallas), “초원의 집” (Little House on the Prairie),


“코스비 가족” (The Cosby Show), “아들과 딸들” (Eight Is Enough),


“CSI: 과학수사대”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


 


… 등이 떠오른다.


 


 



드라마 “전투” (Combat)의 오프닝

 


 


 



“코스비 가족” 중에서 …

 


 


흠, 그러고보니 나름 많은 히트작들이 있었구나 싶다.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봤던 미드 “알프” (Alf) … 알프는 고양이를 좋아라!하는데 … 

 


 


이렇듯 예전에도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가 꽤나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독특한 경우가 바로 “엑스파일” (X-files)이 아닌가 싶다.


 


엑스파일은 쟝르부터가 SF 수사물이라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즐길만한 소재도 아니었고, 그 내용도 외계인에 뮤테이션에 음모론에, 여튼 소위 덕후가 즐길만한 요소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 시리즈는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에서도 크게 히트했고, 1993년 첫 방영 이후 2002년 까지 무려 9 시즌을 이어갔다. 그리고 영화로 두 편이 제작되기도 했다. 


 


 


 




언제 누가 들어도 익히 아는 바로 그 “엑스파일” 테마음악

 


 


“엑스파일”은 지금까지도 어쩌면 우리 문화의 필요요소 중 하나로 기능하기도 하는데,


그 테마음악은 뭐 좀 미스테리한 효과를 내고 싶다거나 할 때 거의 무조건 쓰이며,


어떤 이슈가 뭔가 폭로성이 있다 싶으면 죄다 “엑스파일”이라 부르곤 한다.


 


그리고 등장인물 “멀더 요원”과 “스컬리 요원”은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고,


“진실은 저 너머에” (The Truth Is Out There) 라는 표현은 상용구화 되었으며,


이들을 더빙했던 이규화 씨와 서혜정 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TV에서 그 역할 톤 그대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자면 “롤러 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 등)


 


개인적으로 “엑스파일”의 모든 에피소드를 좋아라 했지만, 그 중 독특한 재미를 선사해준 건 5시즌의 에피소드 5 이다. (참고: “The Post-Modern Prometheus“)


 


왜 그런고하니, 이 에피소드는 기존의 “엑스파일”과는 좀 벗어난, 그러니까 좀 쉬어가는 에피소드이어서 가볍게 즐길 수 있었고 코믹한 터치에 … 셰어(Cher)의 노래로 가득차 있어서이다. 


 


 


 



 


 


 


위의 동영상은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매우 친절하게도 엔딩 신의 Cher 노래가 우리말로 번역까지 돼있다.


 


만드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리는 바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노래 “Walking In Memphis”는 원래 Mark Cohn이 1991년에 발표하여 그래미 신인상까지 수상하게 해 준 노래이다.


 


이 노래를 Cher가 리메이크한 건 1995년이고 큰 히트를 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엑스파일”에 삽입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그런 노래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Cher의 뮤직비디오 중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무척 좋아하는데, 한 번 보시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갈 정도로 Cher의 매력이 듬뿍 묻어 나온다.


 


 


 



 


 


 


1946년 생인 Cher는 가수로서 대성공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1985년에 칸느에서, 1988년에 아카데미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성공한 배우이기도 하다.


 


사실 Cher는 그래미, 아카데미, 에미, 골든그로브, 칸느 등 내노라하는 주요 문화 수상식에서 다 수상을 한 바 있는 유례를 찾기 힘든 엔터테이너이며 데뷔후 최근까지 줄곧 빌보드 넘버 1 싱글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녀가 열연한 영화 중에는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여럿 있는데,


“실크우드” (Silkwood), “마스크” (Mask), “이스트윅의 마녀들” (The Witches of Eastwick), “문스트럭” (Moonstruck), “귀여운 바람둥이” (Mermaids), “티 위드 무쏠리니” (Tea with Mussolini) 등이 그것이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하나씩 찾아서 감상해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그녀의 영화 중 하나와 관련된 뮤직비디오를 소개하고자 하는데, “귀여운 바람둥이” 원제로 인어들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The Shoop Shoop Song이다.


 


이 영화에는 어린 시절 위노나 라이더와 크리스티나 리치가 함께 공연하고 있고 뮤비에는 그녀들의 싱그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럼 즐감~ ^^



 



영진공 이규훈


 


 


 


 


 


 


 


 


 


 


 


 


 


 


 


 


 


 


 


 


 


 


 


 



 

이 … 이 노래가 그 … 그 노래라니!

 

 


 


 


“글리(Glee)”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2009년에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미국내 특히 10대 시청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며 현재 4시즌이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이다.


 


고등학교 합창 동아리 이야기인 이 드라마는 국내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데,


4시즌 에피소드 11, “Sadie Hawkins”편에는 다음 노래가 삽입되어 있다.


 


일단 들어보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 한 노랫말인데 멜로디가 많이 다르다.


 


사실 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바로 Sir Mix-A-Lot의 …


국내에서는 예전 “유남생” 드립으로 인기를 끌었던 “나몰라 패밀리”의 테마송으로 쓰여져 더 큰 인기를 끌었던 …


“Baby Got Back” 되시겠다.


 


 


 





 


 


 


제목을 번역하자면 “엉덩이가 예쁜 여자” 쯤 되겠고 내용은 그냥 그대로 “난 궁뎅이가 대빵 큰 여자가 좋아” 정도 되시겠다.


 


멜로디와 편곡이 전혀 달라서 같은 노래라고 생각하기 힘들지만, 원곡의 노랫말을 그대로 살렸고 제목도 그대로 같다 썼기 때문에 Glee 버전은 “커버”가 맞다.


 


그리고 오리지널에서는 흑형들이 나와 흥겨운 랩으로 “궁뎅이”를 외쳐대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Glee 버전에서는 주로 얌전하게 생긴 백인들이 나와서 포크풍으로 노래를 불러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Glee 버전이 실은 2005년도에 이미 누군가가 만들었던 멜로디와 편곡을 아무 동의없이 그대로 갖다 썼다는 것이다.


[ 관련기사를 보시려면 여길 누르세요. ]


 


 


 




 


 


 


그 누군가는 Jonathan Coulton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뮤지션인데,


이 친구가 2005년에 만들어서 위 그림에 나오는 앨범에 실었던 그 곡을 Glee 측에서 그냥 가져다가 쓴 것이다.


 


그닥 인기도 없는 뮤지션의 곡을 슬쩍 가져다 쓴 Glee 측은 정작 방송 이후에 죠나단이 항의를 하자,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전달했는데 …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니가 만든 노래를 출연자들로 하여금 다시 부르게 한 건 아무런 법적 위배 사항이 아님 … 그러므로 너님은 너님 버전의 노래가 인기 드라마에 나왔다는 걸로 만족하면 될 거임. 끝.”


이었다.


 


사실 Glee의 이런 슬쩍 갖다 쓰기는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는데,


R. Kelly의 “I believe I can fly”, DJ Earworm 편곡 버전을 그대로 썼다든가,


Cyndi Lauper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 Greg Larswell 편곡 버전을 그대로 갖다 쓴 등의 전례가 있었다.  


 


그러자 이에 뿔이 난 죠나단은 나름의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러니까 오리지널을 커버한 자기 곡을 베낀 Glee 버전을 다시 커버한 것이다.


 


 


 





 


 


 


결국 자신의 곡을 다시 자신이 커버한 꼴인데,


어쨌든 그렇게 해서 그걸 싱글로 발매하여 현재 iTunes 등에서 판매 중에 있다.


그리고 2013년 2월까지의 이 곡 판매 수익금을 Glee와 연관된 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둘 사이에 별다른 일이 없는 듯 한데,


 


최근에 우리도 크라잉넛과 관련한 립싱크 건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 표절, 베끼기, 슬쩍 끼워넣기, 훔치기 등 저작권과 관련한 여러 꼼수와 침해행위는 사실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행해지는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걸 가르는 경계와 기준이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고 법에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서, 남의 노력의 산물을 마구 가져다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법이나 제도 이전에 스스로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래방이 그렇듯 저작물을 사용하고 싶으면 정당한 사용료를 지불하면 될 터인데 왜 자꾸 그걸 굳이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뻗대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영진공 이규훈


 


 


 


 


 


 


 


 


 


  


 


 


 


 


 


 


 


 


 


 


 


 


 


 


 


 


 


 


 


 


 


 


 


“뉴스룸”,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



















뉴스룸(The Newsroom): 미국 HBO 방영 TV 시리즈




“어퓨굿맨(A Few Good Men)”의 원작/각본을 시작으로 “웨스트윙(West Wing)” 제작, “소셜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와 “머니볼(Moneyball)”의 각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아아론 소킨이 제작하는 신작 TV 시리즈.


 


1 시즌은 2012년 6월 24일 시작하여 8월 26일 에피소드 10으로 마무리하였고, 2013년에 시즌 2가 시작될 예정이다.






주인공 윌 맥커보이는 제이레노쇼 같은 뉴스를 만든다고 조롱받기도 하는 진행자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후보에게 밉보이지 않고 광고 떨어지지 않게 적절히 가십을 섞어가며 그럭저럭 2등정도 하는 MB* 뉴스데스크 진행자 같은 인물.




어느날 패널들과 토론회에 참석한 그에게 대학교 2학년 여학생이 질문을 한다.


“왜 미국은 위대한 나라인가요?”




한 패널은 ‘다양성과 기회가 있는 나라이니까’라고 답했고, 다른 패널은 ‘자유’라고 말한다. 윌은 미식축구팀 뉴욕제트가 있기 때문이라고 농으로 답하지만, 진행자가 다그치자 그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가 아니에요.




(민주당 패널을 보며) 왜 사람들이 민주당을 싫어하는 지 알아요? 지니까 싫어하는 거에요. 똑똑하다고 잘난체 하는 놈들이 맨날 지기만 하니까!




(공화당 패널을 보며)그리고 당신, 당신도 뻔뻔하게 이 학생들에게 국기 휘날리면서 우리만 자유국가다라고 말할 수 있어? 캐나다도 자유국가야, 일본도, 영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이탈리아도, 스페인도, 호주도! 심지어 벨기에도 자유국가야. 세계 207개국중에 180개 나라가 자유국가라고. 자 아까 ‘미국이 왜 위대하냐’고 물어봤던 친구!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라는 증거 따위는 없어.




비문맹률7위


수학 27위


과학 22위


기대수명 49위


유아 사망률 178위


중산층 수입 3위


노동력, 수출 4위




우리가 잘하는 건 딱 3가지 뿐이야


인구당 감옥가는 비율


천사가 진짜라고 믿는 성인 비율


그리고, 국방비, 2위부터 27위 방위비를 합쳐도 우리가 많아. 그중 25개국은 우방국이고




이게, 20살에 여대생이 책임질 일은 아니야. 하지만 당신들은 지금 최악의 세대에 속한 일원이야. 그런 당신이 우리나라가 왜 위대하냐고 묻고 있다니 난 도대체 왜 니가 그런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요세미티 국립 공원 때문에 위대한가?




위대했던 적이 있었지.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섰고 도덕을 위해서 투쟁했지.


도덕적 이유로 법을 만들거나 폐기도 했어.


가난을 없애려고 했지, 가난한 사람들이랑 싸우진 않았어.


희생도 하고 이웃 걱정도 했었지.


신념을 위해 돈을 모았지만 그런걸로 자랑하지는 않았어.




위대한 것들을 이뤘지.


엄청난 과학발전도 이뤘고 우주를 탐사했고, 질병도 치료했어.


세계적인 예술가들도 탄생했고 최고의 경제도 이루어냈어.


우린 별을 향해 전진했지. 인간답게 행동했고 지성을 열망했어.


그걸 우습게 여기지도 않았어. 그렇다고 열등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잖아.


지난 선거에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그런걸로 평가하지 않았어. 쉽게 겁을 먹지도 않았단 말이야.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지. 위대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의 지식.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거야.




“미국은 더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 








위 대사는 어찌보면 대한민국 정치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 대입해보자.









한국은 자랑할만한 나라가 아니에요.




왜 사람들이 통합민주당을 싫어하는 지 알아요? 지니까 싫어하는 거에요. 민주당 똑똑하다고 잘난체 하는 놈들이 맨날 지기만 하니까!




그리고 당신, 당신도 뻔뻔하게 이 학생들에게 국기 휘날리면서 박통 시대가 민주주의 시대였다라고 말할 수 있어? 그런 식이라면 조국의 선량한 여학생들을 수없이 강간한 리비아의 카다피도 민주주의 지도자였고 독일의 경제부흥을 이끌어낸 히틀러도 민족주의자이면서 민주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어! 자유당 적통을 이어받은 새누리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따위를 할 증거같은 건 없어.




생계곤란비중 15위


영아 사망률 21위


타인에 대한 신뢰 25위


부패지수 21위


국가기관 신뢰지수 32위


소수집단에 대한 관용성 28위


여성 고용율 27위


 


우리가 1등인건 겨우 이런거야


OECD 최저출산률 


평균 노동시간


국가예산중 최저보건지출


인구당 자살률


성별 인구격차




그리고, 국방비, 우리나라 국방비는 2010년 기준으로 280억 달라야, 30조원이라고.




그에 비해 북한은 총 GDP가 280억 달라고 그 중 국방비는 끽해봐야 2009년 기준으로 5200억밖에 안돼. 근데 그런 최빈곤국을 조롱하는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게 신사적이고 당연한 거야? 북한은 이미 20년전부터 게임이 안되는 상대야.




이게 현실이야. 그런 위협과 공포를 우리 2~30대, 88만원세대에게 전가하면 안돼. 하지만 당신들은 지금 최악의 세대에 속한 일원이야. 그런 당신이 투표 따위는, 정치는 관심없다고 말하니 왜 그런 개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다.




한국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었지.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섰고 도덕을 위해서 투쟁했지.


독재에 항거했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어.


가난을 없애려고 했지, 가난한 사람이랑 싸우진 않았어.


희생도 하고 이웃 걱정도 했었지.




집값을 담합해 3억 이하에는 팔지 말자고 부녀회에서 문구를 붙인다거나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고 데모하거나 장애인이랑 놀면 같이 놀림받는다고 놀지말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어.




신념을 위해 돈을 모았고 그런 걸로 자랑하지는 않았어.


6.25후 짧은 시간에 위대한 것들을 이뤘지. 엄청난 과학발전도 이뤘고 가전제품은 1등을 하고 휴대폰도 잘 만들어.세계적인 예술가들도 탄생했고 최고의 경제도 이루어냈어.




우린 성공을 향해 전진했지. 인간답게 행동했고 지성을 열망했어. 그걸 우습게 여기지도 않았어. 그렇다고 열등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잖아.




지난 선거에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그런걸로 평가하지 않았어. 쉽게 겁을 먹지도 않았단 말이야.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지. 위대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의 지식.


지금처럼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거나 강제하지도 않았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거야.




복지 포퓰리즘 떠들지마. 우리가 OECD 꼴등이야.


그리스가 복지 때문에 망했어? 그리스 GDP대비 복지비율보고 다시 말해봐.


대한민국이 이렇게 자유롭게 투표하게 된게 언젠줄 알아? 겨우 25년 전이야.


1987년 그 수많은 학생들이 죽어나가고 나서야 간신히 민주주의의 기본이랄 수있는 투표권이 생긴거야.




대기업이 먹여살려? 대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을 모독하지마.


차관 받아 준 걸로 국내 땅투기, 사채놀이하면서 불린 돈으로 정경유착해가면서 배불린 돈이 노동자에게 제대로 돌아온 적은 없었어. 우린 훨씬 더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지 알 길은 없다.


내가 그저 부러운 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 줄 알고 그걸 방송으로 낼 용기와, 능력과,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다.




오해다, 그게 아니다, 나와는 상관없다, 잘 알아서 할 거다, 법대로 하면 된다, 내가 아니라면 그만이다 ……




적어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런 말 안 듣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진공 그럴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