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바라보며




타고난 이기주의자이다 보니 대학생이 됐다고 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나마 사회과학 모임에 나가게 된 것도 호감 가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접하게 된 한국의 현대사는 충격이었다. 그곳에는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는 전혀 새로웠다. 찬탁은 소련이 한 것이 아니었고, 여순 반란사건은 반란이 아니었고, 4.3은 빨갱이 폭동이 아니었으며, 이승만은 국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허풍이 심한 편이지만 들은대로라면 이랬다. 4.3 당시 현 제주시 관덕정 자리인 제주 도청 앞으로 어른들은 마음 놓고 지나다니지 못했다. 아이들만 용케 지나다녔고, 제주도청을 가로막은 철조망에는 사람 가죽이 널려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4.3은 그런 기억이었다. 하지만 4.3에 대해 집안 어른 누구도 내놓고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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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4.3은 이랬다. 돈 번다고 제주도 전지역을 싸돌아 다닐 때. 4월과 5월 제주 조천이나 세화 등지로 가면 같은 날, 조그만 마을이 모두 제사다. 그날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비극의 날이었던 것이다.

고삐리 때부터 친구였던 여자애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후에 아버지가 물었다.

“가이 아방은 뭐 햄시?”
“경찰 공무원마쉬.”

남녀 사이에 친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뭔가 아쉽다는 듯 혼자 되뇌었다.

“게난 순사 딸이여?”

4.3을 겪은 제주 사람들에게 경찰이란 그런 존재였다. 이 사람들에게 지난 50년간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참여정부 때 노무현이 제주도를 찾아와 4.3에 대한 국가의 잘못을 최초로 인정했다. 같은 날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 아버지와 사촌형의 제삿밥을 먹으러 돌아 다니는 사람들, 경찰은 순사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역사가 사실이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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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도 4.3위원회가 폐지될 위기에 놓이는가 하면, 여당 의원은 ‘4.3은 좌익세력에 의한 폭동’ ‘제주도는 반란이 일어났던 곳’이라고 말한다.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에 결국 출판사가 굴복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역사를 떠올린다. 권력과 자본의 지난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로 ‘좌편향’ ‘왜곡’이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들. 

4.3을 겪은 아버지는 ‘경찰’을 보며 일제시대 조선인을 잡아다 고문하는 ‘순사’를 떠올린다. ‘경찰’과 ‘순사’라는 단어 사이, 서로 닿을 수 없는 그 거리는 역설적이게도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의 깊이와 닿아 있다. 그 역사들이 다시 교과서 밖으로 묻혀버리는 광경 앞에서 씁쓸한 이유는 ‘역사의 진실’이니 ‘권력의 오만’이니 ‘우경화’니 하는 거창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버텨 온 사람들, 그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견뎌 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 바로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진공 철구

수구 우파의 고민, 반청복명이냐 현실주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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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좌파나 우파에 대한 정의는 그냥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중고등학교 사회시간만 제대로 공부했어도 이런 난장판은 아닐겁니다.

심지어 “좌파는 먹고사는 문제엔 별 관심이 없고 이상이나 정의를 추구하는 집단”이란 오해도 있더군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어디서 왜 시작되었는지를 안다면 그런 오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좌파의 시작은 바로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좌파가 말하는 정의란 “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굶어야 하느냐?” 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고요.
덧붙여 좌파는 의외로 상황형적 인간관을 가집니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니까요.
사회경제시스템을 바꾸면 인간도 바뀝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시스템이죠.

그럼 우파의 핵심정신은? “불안을 먹고사는 차별주의“입니다.
극우라 할 수 있는 파시즘의 기본논리는 차별입니다.
왜 차별을 하냐면, 누군가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거든요.
그들을 차별하고 몰아내고 심지어는 이 세상에서 죽여없애지 않으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우리가 위험해지거든요.
(반대로, 세상이 변하고 질서가 바뀌는 이유는 누군가의 모략과 책동 때문이고요)
그럼 누가 그 위협적인 존재인가요? 겉으로봐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이 무서운거죠. 그들의 본색을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뒤지고 출생신분을 봐야 합니다. 지역을 따지고 인종을 따지고 과거를 따지고 심지어 사돈에 팔촌까지 뒤집니다. 즉, 우파가 보는 인간은 유전형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들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혈통이 운명을 결정하고 어떤 인간은 꼭 죽여야하죠.

그런 의미에서 스탈린이나 모택동은(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도) 제가 보기엔 극우 파시스트랑 똑같은 인간입니다. 무지막지한 숙청을 정치라 착각했으니까요. 뭐 사실 매카시즘도 막상막하. 다 똑같은 넘들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을 볼 때 그의 좌우이념(그런게 제대로 있는 인간도 드물고..)보다는
그가 저 망상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더 따집니다.
문제인간들을 싹쓸이 청소하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망상…
그것이 인간을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망상이니까요.

이미 생태학자들이 이 망상이 틀렸음을 증명했습니다.
개미들 중에도 탱자탱자 노는 개미들이 있는데 그 개미들을 싹 제거하면
열심히 일하던 개미들 중에서 역시 똑같은 비율로 탱자탱자 개미들이 생겨나죠.
세상이 간단하지가 않다고요. “A이면 B다” 라는 식의 논리는 책상위에서나 가능합니다.

어쨌거나, 냉전시대에는 사실 좌파란 존재 불가능이었습니다.
동서 체제는 각자의 극우로 달려가고 있었고 거기에 반대하면 모두 각자의 좌파로 지목되어 척결대상이었죠.

이제 세상은 새로운 시대가 되었으나
이 나라 사람들의 뇌속은 여전히 냉전이 진행중입니다.
여기저기서 광대 헛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 이유고요.

그나저나, 이제 우리나라 자칭 우파들은 어떻게 함?
그들이 숭상하는 미국의 대빵이 된 분이 저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지금 상황은 마치 청나라에게 명나라가 잡아먹힌 이후의 조선 사대부들이 처한 상황과 비슷할겁니다. 중국을 숭상하며 유교를 받아들이던 이 나라의 지배계층이 지금은 미국을 숭상하며 기독교를 받들어 모시고 있는데 갑자기 그 미국이 오랑캐!!! 에게 점령당해버린 것이죠.

지금 그들의 고민도 청나라시대 사대부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 반청복명을 외칠 것인가… 아니면 현실론을 주창할 것인가…

말도 안된다고요?

이 나라의 도성을 옮기지 못한 이유가 6백년 전의 관습헌법 때문이었음을 잊지 마시길…  (참고:  [수도이전] 그래도 변한 것은 없다. )


영진공 짱가

다크나이트 =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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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크나이트>에 대해 특별히 더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향한 수많은 칭찬들에 대해 대부분 동의하기 때문이죠. 특히 이 영화에서 히스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만화 속의 인물을 “실사화” 한다는 말의 의미를 한 수준 높여놓았습니다. 앞으로 만화원작 영화 주인공을 맡는 배우들, 모두 고민 좀 할 겁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히스 레저가 조커로 이루어낸 것은 대단합니다.

여기서는 히스레저의 연기를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조커가 차지하는 의미를 한번 살펴볼 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조커가 지나친 능력자라고 비판을 합니다. 그렇죠. 조커는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이 어떤 수를 내 놓을지 예측하고 거기에 한방 뒤통수를 때리는 멋진 수를 준비해놓습니다. 조커의 예상대로 되지 않은 일은 그 2척의 페리보트 건 정도에 불과하죠. 게다가 조커의 부하들조차 모두 대단해서 조커의 의도를 언제나 100% 실현합니다. 그러니 이거 비판할 만하지 않습니까?


리모콘이 잠깐 작동 안되기도 …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은, 비록 <다크나이트>가 상당한 사실성을 추구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로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조커만 실수가 없나요? 배트맨도 그렇죠. 아무리 돈과 첨단기술로 처발랐다고 해도 매일같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데 무고한 희생자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혼자서 뛰 댕기다가 한번이라도 범죄자나 경찰들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비덴트는 또 어떻습니까? 얼굴반쪽이 그 꼴이 되어서도 돌아다닌다는 건 말이 되나요? 그렇게 피부가 없으면 금새 감염되어 골로 갈텐데 말이죠. 이 영화가 사실적이라는 건 이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 각각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일 뿐입니다. 이 영화도 역시 수퍼히어로물 맞습니다.

이 영화에는 애초부터 실수란 없어요. 즉 영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의외성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누군가의 의도와 계획이 깔려 있어요. 원래 모든 게 계획대로 되는 이야기는 그게 현실이든 영화든 재미가 없기 마련입니다. 의외성이 없으면 긴장도 없고, 긴장이 없으면 재미도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미와 긴장으로 가득하죠. 도대체 어떻게? 한 캐릭터가 의외성의 역할을 해주고 있거든요. 그게 바로 조커입니다.


그래, 바로 나!!!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조커야 말로 진정 ‘조커’의 존재의미에 충실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커는 애초부터 의외성의 화신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의외성은 트럼프 게임에서 조커 카드가 맡은 역할이기도 하죠. 조커 카드가 등장하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트럼프 게임의 규칙이 일시적으로 뒤흔들립니다. 즉 조커로 인해 게임의 규칙에 의외성이 추가되는거죠. 게다가 이 의외성은 재미와도 직결됩니다. 어떤 이야기가 관객의 기대대로만 흘러갈 때 그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가 됩니다만, 관객의 기대와는 다른 의외의 결말일 때 관객들은 놀라고 비로소 재미를 느낄 준비가 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게 조커죠. 그렇게 보면 이 영화의 조커는 <마스크>의 짐캐리가 맡은 역할과 결국 같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마스크>에서 악당들에게 마스크를 쓴 짐캐리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자기들이 공들여 준비한 은행털이를 순식간에 파토 내버리고, 총을 아무리 쏴도 안 죽는 괴물 아닙니까. 단지 차이가 있다면, <마스크>에서는 악당이 당하니까 관객들은 편하게 웃으며 그걸 즐겼지만,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관객들이 감정이입해놓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대상으로 그 짓을 하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기지 못하고 관객들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내가 바로 조커라고 …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일은, 이 영화속 세계관이 현실과는 엄청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이 누군가의 계획이나 의도로 이루어지는 이 영화에서는 덕분에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은 전부 조커 탓이 되어버립니다. 네, 이 영화에서는 이게 다 조커 때문입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배트맨은 마침내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애꿎은 희생자들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하비덴트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조커만 없었더라면 배트맨은 정의의 수호자로 계속 남아있었을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아닙니까?

누군가 그러더군요. 순수한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들이 오염시킨다고요. 원래 촛불집회는 순수했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서 배후조종하는 좌파 탓에 결국 과격해졌다고요. 지금 이 나라가 이 꼴이 된 것도 결국 10년간 곳곳에 뿌리내린 좌파들 탓이고 말이죠.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이 좌파 탓”이라는 주장.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며칠 전에는 심지어 5개 공중파 방송국이 모두 이와 같은 내용을 방송 하던데,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 나라가 정말 빨갱이 나라인 줄 알았을 겁니다. 그 사람들의 논리는 <다크나이트>의 세계관과 딱 맞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조커는 바로 좌파이고 빨갱이들입니다.

이 세계관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런 세계관은 현실을 왜곡하고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배트맨이 진정한 현실세계에서 비슷한 짓을 했다면, 조커가 없었더라도 결국 사고를 쳤을 겁니다. 그 무식한 텀블러로 길거리를 폭주하거나, 심지어는 기관포로 주차된 차들을 박살내며 달리는데 사람이 안 다칠 수 있겠어요? 하비덴트도 그래요. 아무리 청렴 강직한 검사도 고담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권력에 심취하다 보면 언젠가는 타락했을 겁니다. 현실의 ‘모래시계 검사’가 그런 것 처럼요. 꽤나 경력을 쌓은 형사라도 병원에 입원한 자기 어머니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의 복지시스템 밖에 없는 동네라면 경찰이 타락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요. 무엇보다도 범죄조직이라는 게 그렇게 발본색원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죠. 팔코니 조직을 죽이면 다른 조직이 등장했겠죠. 결국 배트맨의 전쟁은 끝없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그 와중에 배트맨은 민폐를 끼치다가 공적이 되는 건 거의 당연한 수순이겠죠. 다시 말해 의외성은 조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의 특성이라고요. 즉, 현실에서는 이 세상 그 자체가 바로 조커입니다.


미안해, 하비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세계관을 믿는 자들에게는 공포와 억압에의 욕구가 생겨난다는 겁니다. <다크나이트>의 세상에서는 배트맨은 바로 자기 곁에 있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경찰청장(청수?), 자기 형제와도 같은 집사(똥과니? 아니면 상드기?), 그리고 경제와 기술 시스템을 담당하는 또 다른 집사(만수? 이거 써놓고 보니 정말 비슷하다는…) 이렇게 믿을 놈이 적다 보니 배트맨의 일들은 애초에 밀실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요소요소에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어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연히 가능하다면 모든 인사는 낙하산 시스템이 되겠죠. 배트맨은 시민을 위해 노력하지만 절대 고독에 빠져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민들 속에 바로 그가 싸워야 하는 조커의 하수인들이 암약하고 있거든요. 온순한 시민들은 믿어도 됩니다. 하지만 그 시민이 나에게 반항하는 순간, 배트맨은 의심에 빠집니다. 저 인간이 진정 자기의지로 나를 공격하는 거냐, 아니면 조커의 부하라 나를 공격하는 거냐… 의심스러우면 일단 때려잡고 볼 일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을 보호하고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모두의 뒷조사를 아주 철저하게 해야 하고 사상검증까지 해야겠죠. 이러다 보면 ‘5호 담당제’ 같은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시스템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권력자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와 불신이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마지막 선은 … 차마 .. 그을 수 없었다능 …

그나마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은 선을 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부르스 웨인 뿐만 아니라 그 동료들도 모두 원칙과 상식의 선이 뚜렷하기 때문에 서로를 규제하고 선을 지키죠. 하지만, 스크린 밖의 세상에서는 그런 이상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이 더욱 다크해지는 것이고요.


영진공 짱가

“다크 나이트”, 변두리 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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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람은 누구나 칭찬하고 저도 손가락 아프게 칭찬을 해서 더 덧붙일 게 없는 <다크나이트>, 그러나 이 영화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레이첼이 별로 예쁘지 않다’는 둥의 시비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약간 아슬아슬하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전편부터 좀 지나치게 사실성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전체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의 괴상함이 갈수록 눈에 띄게 되지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지극히 만화적인 주인공 배트맨과 전혀 만화 같지 않은 상황설정 사이의 긴장이 흐릅니다. 지금까지는 놀란 감독의 놀란 연출력으로 그 부조화가 적절히 통제되어 왔지만 앞으로 영화가 사실적이 되면 될수록 배트맨은 더욱 더 이 세계에 안 어울리게 될 겁니다.

요즘 웹에서는 배트맨의 그 낮게 깔아대는 목소리를 풍자한 동영상이 인기던데, 이것도 그 어색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보시려면 여기로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88538620080812161322&skinNum=1)

이번 영화에서도 초반부 배트맨의 등장과 액션을 돌이켜보면 “도대체 쟤는 왜 사서 저런 고생을 한다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혼자서 그 잔챙이 마약범죄자들과 자경단까지 상대하면서 투닥거려야 할까요. 아무리 힘이 세고 무술을 잘 하고 돈과 기술로 처발랐을지라도 결국 개인에 불과한 배트맨이 그 넓디넓은 고담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잔챙이 악당들도 “고담에서 배트맨을 만날 확률은 로또 당첨확률 수준”이라지 않습니까. 하지만 웨인 군은 굴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들을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해결하려고 매달리죠. 홍콩에서의 액션은 그 백미입니다. 웨인 군은 자신의 놀라운 헹글라이딩 기술 + 최첨단 EMP 공격기술 + 냉전시대에 CIA가 개발했던 ‘스카이후크’ 까지 써가며 마피아의 돈세탁 업자를 홍콩에서 납치해 옵니다. 멋지긴 합니다만,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죠. 그 스카이후크 수송기 복원 및 운용비용이라면 아마 고담시의 마피아 조직 한 두개를 사 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부르스 웨인의 재력이라면 팔코니 조직 전체를 사 버릴 수도 있겠고, 사회보장제도와 인프라를 확충해서 그런 범죄자들의 이익을 빼앗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마 그런 식으로 마피아를 잡아먹는 것이 도시의 정의 구현에는 오히려 훨씬 효과적이겠죠. 하지만 배트맨은 늘 일인 자경단으로 나서는 고생을 사서 합니다. 왜? 그래야 하니까…


원래 내가 좀 그래…

게다가 이 배트맨의 돈지랄은 마음이 가난한 악당 조커의 등장으로 더욱 더 그 삽질스러움을 노출하고 맙니다. 배트맨과 조커는 말 그대로 대척점에 있습니다. 배트맨에게는 지킬 것만 잔뜩 있는데, 조커는 바로 그것을 모두 파괴하려고 하죠. 배트맨이 믿음에 매달린다면 조커는 불신을 키우려 헌신합니다. 그리고 배트맨이 결국은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하이테크 무기로 전쟁을 벌일 때, 조커는 돈을 불태우며 지극히 로우테크 무기로 달려듭니다.


자~알 놀고 계십니다 …

이 하이테크 돈지랄 vs 로우테크 막장정신 대결의 대표적인 장면이 호송차량을 둘러싼 액션이죠. 배트맨의 수천만 달러짜리 배트모빌 텀블러에 대결하기 위해 조커가 내놓은 무기는 자그마치 RPG입니다. 2차 대전 막판에 막장까지 몰린 독일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전차무기, ‘판저파우스트’에 크게 데었던 소련이 이걸 충실히 계승, 발전시켜 만든 로켓발사기죠. 막장무기의 후예답게 값도 싸고, 만들기도 쉽기 때문에 이 RPG는 베트남에서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의 거의 모든 전쟁터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늘 기대이상의 활약을 했습니다. 멀리는 1970년대 4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 전차부대를 괴멸시켰고, 근래 들어와서는 아프간에서 러시아 기갑부대를 괴롭혔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블랙호크 헬기를 2대나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렸으며, 지금도 이라크 전쟁터에서 미국과 영국이 자랑하는 신형전차 M1A2 나 챌린저2 들에게 뜻밖의 일격을 가하고 있죠.


제 3세계 게릴라들의 2대 필수요소, RPG와 AK47


이것이 나의 무기라능 …

바로 그 RPG7과 텀블러, 이 대결의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최신형 복합장갑으로 무장한 전차에게도 타격을 입히는 RPG7인데 경장갑 장갑차에 불과한 텀블러가 뭐 어쩌겠습니까. 물론 텀블러 쪽이 좀 더 적극적인 공격을 했다면 승부는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만, 배트맨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는 지키는 쪽이고 조커는 공격하는 쪽이거든요.

변두리 산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플래툰이라는 잡지에서 읽은 건데 직접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싸구려 구식 라이플이나 구식 권총도 최신식 소총과 마찬가지로 당신을 확실히 쓰러뜨릴 수 있다.”
아무리 구식이고 낡은 총이라도 발사만 될 수 있다면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 상대가 수백만원짜리 무기로 무장했다고 할지라도 결국 총에 맞으면 누구나 죽거든요.
로우테크면 어떻습니까? 장갑차를 부실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데요.


작동 불량인 리모컨이라도 결국 폭탄 터트리면 되는 거 아니냐능 …

이 영화에서 조커와 배트맨의 대결은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변두리 산술 + 막장 정신으로 무장한 조커가 장비나 기술이나 정보력 모두 우위에 서 있는 배트맨을 계속 골탕 먹입니다. 조커는 더 이상 빼앗길 것도 망가질 것도 없는 존재이고 배트맨은 모든 것이 손실의 대상이거든요. 세상이 원래 그렇습니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빼앗길 것이 많아 약점이 늘어나고, 가진 것이 없을수록 더 잃을 것도 없기에 오히려 약점이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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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패라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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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테면 쳐봐!!!


참고로 이때 들고 나온 총은 S&W에서 만든 M76이라는 싸구려 기관총인듯 …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도 결국 조커와 배트맨의 대결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배트맨처럼)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미군들이 (조커의 드럼통 폭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격조종폭발물에 끊임없이 죽거나 불구가 되고 있습니다. 침략자를 죽이기 위해 내가 죽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은(오히려 그렇게 죽으면 저승에 가서 신이 내리는 큰 상을 얻는다고 믿는) 그들 앞에 미군은 약점투성이의 배트맨일 뿐입니다. 작금의 사태를 유발한 911 테러부터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 경악스런 테러를 실현하기 위해 테러범들에게 필요했던 장비는 커터칼 몇 자루 뿐이었죠. 나머지 테러 장비는 미국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로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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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와 원격조종급조폭발물에 당한 미군의 비싼 탱크와 장갑차들 …


이건 아무래도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 …

우석훈 박사의 <88만원 세대>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럽의 그 선진적인 사회보장제도나 소수자를 배려한 정치제도가 완성된 시기가 대부분 우파 정부 시절이었다는 겁니다. 사실 우파정부는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들이 왜 좌파 정부가 할 법한 일을 했을까요. 그게 바로 부자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가진 것이 많을수록 약점이 늘어나고, 인생 막장에 몰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자신들이 위험해지거든요. 그래서 부자들이, 권력자들이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겁니다.


니 랑보르기니나, 내가 탈취해 타는 경찰차나 산쾌하기는 마찬가지고 …
속은 내가 더 편하다능 …


영진공 짱가

추신: 요즘 꼴을 보아하니 우리나라 부자들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더군요.
자기들이 먼저 막장테크를 타거나 아예 우리나라를 떠버리는 쪽을 선택하데요.
참 잘 하는 짓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커 패러디 광고 … 근데 나는 버거킹이 더 좋다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