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농무성의 광우병 관련 미친 짓 [LA 타임즈 사설 전문]

<편집자 註: 아래 사설은 미국 LA Times 2008년 6월 19일자 사설 전문과 번역본입니다.  이번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및 추가협상 논란과 관련하여 참고할 사항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이 사설은 일본과 한국(원문에서는 남한)의 고객들이 더 철저한 검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정부가 미국의 기준과 자체 검사를 “신뢰”한다고 합의하고 추가협의한 상황입니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나 오류에 대해서 지적이 있으면 검토하여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미농무성의 광우병 관련 미친 짓

민간기업의 자체질병검사를 거부한 건 소비자 안전망을 거부한 것과 동일

2008년 6월 19일

광우병을 검사하는 테스트가 쓸모없을 때는 언제일까?  미국 농무성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그 테스트를 할 때라고 한다.

적어도 이는 미농무성이 개별 육류생산자가 자체 소도축물에 대한 검사를 행하는 걸 막고있는 근거이다.  연방기관은 현재 고위험도 축우에 대해서 속성 심사에만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크릭스톤 팜즈라는 육류생산자가 하려는 전수검사를 “무용지물”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 특히 일본과 남한같은 외국 소비자들이 미농무성의 랜덤 검사 프로그램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걸 잘 아는 캔사스의 식육회사는 자신들이 보유한 최고 수준의 검사실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미농무성과 4 년째 투쟁 중에 있다.  현재 미농무성은 100% 정확성이 담보되기 어려운 속성검사를 채용하고 있기에, 크릭스톤은 여전히 자체 도축물에 대해 광우병(기술용어로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보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이 업체의 고객들은 별도의 추가 검사가 가치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미농무성은 민간의 검사는 불필요하며 그들의 자체 프로그램, 즉 1% 미만의 소에 대해 행해지는 검사가 대중들을 광우병으로부터 적절히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현재까지 미국 쇠고기가 인간변종질병의 원인이 되었다고 알려진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선도적인 기업이 동물이나 인간의 건강에 害가 되지 않는 검사를 시행하여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왜 못하게 하는가?  미농무성은 크릭스톤의 방식에 반대하는 [미국]소고기 산업의 입장을 더 중시하는 듯 하다.  이러한 검사가 시행되면 다른 기업들도 동일한 검사를 하라고 소비자들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크릭스톤은 첫 소송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미농무성은 항소를 하였고, 판결이 곧 나올 예정이다.  그러는 와중에 미합중국은 크릭스톤 같은 기업들이 사업을 확장하는 걸 거들지 않고, 대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쇠고기 기준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거나 강압하여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다.  최근에 남한의 대통령 이명박과 맺은 거래는 엄청난 거리 항의로 이어졌다.  우리[미국]의 삥뜯기식 쇠고기 외교가 고객 대신 적개심만 벌어들이고 있는 사이에 호주는 시장 점유율을 증가시키고 있는 중이다.

미농무성은 최근 몇 년간 육류기업들이 농무성 안전기준을 충족토록 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일부터 제대로 마무리 해야 할 것이며 개별 생산자가 고객들이 원하는, 농무성 기준보다 더 상향되고 우수한 안전 기준을 제공하려 하는 걸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http://www.latimes.com/news/opinion/la-ed-madcow19-2008jun19,0,3257268.story ]



USDA mad cow madness


The agency’s refusal to let firms test for the disease denies consumers a safety net.

June 19, 2008

When is a worthwhile test for mad cow disease not worthwhile? According to the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it’s when a private company uses the test.

At least, that’s part of the argument the USDA has been using to keep a beef producer from screening the carcasses of all its cattle, saying that although the federal agency relies on the rapid-screen test for high-risk cattle, the test would be “worthless” in the hands of Creekstone Farms.

Knowing that customers, especially foreign ones such as Japan and South Korea, remain wary of the USDA’s spotty screening program, the Kansas meat company has been fighting the agency for four years for the right to use the state-of-the-art testing lab it built. The rapid-screen test is not completely accurate, but it has been useful enough for the USDA to employ. Creekstone still would not be able to legitimately label its products as free of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the technical term for mad cow disease, but its customers should have the choice of deciding whether the extra screening is worth paying for.

The USDA contends that private testing is unnecessary and that its own program, which tests fewer than 1% of cattle, adequately protects the public from mad cow. This might well be true. There is no known instance of U.S. beef causing a case of the human variant of the disease. But as long as the test presents no threat to animal or human health, why shouldn’t an innovative company give customers what they want? The USDA’s motivation probably has more to do with the beef industry’s opposition to Creekstone: Testing might put consumer pressure on other companies to do the same.

Creekstone won its first battle in court, but the USDA appealed; a ruling is expected soon. Meanwhile, instead of letting farms like Creekstone grow their businesses, the United States has been trying to persuade or strong-arm foreign countries into accepting U.S. beef standards, with limited success. Its recent deal with South Korean President Lee Myung-bak led to massive street protests. And while our bullying beef diplomacy reaps enmity instead of customers, Australia is increasing its market share.

The USDA has had enough problems in recent years making sure that companies meet its safety requirements. It ought to get that job done, and not interfere with producers that are going above and beyond to provide the safety standards some consumers want.


영진공 이규훈

[가사 검열] 거리의 전사들, 포기는 없다

 

Street Fighting Man (거리의 전사들)
By Rolling Stones(1968)

Everywhere I hear the sound of marching, charging feet, boy
’cause summer’s here and the time is right for fighting in the street, boy
But what can a poor boy do
Except to sing for a rock ’n’ roll band
’cause in sleepy london town
There’s just no place for a street fighting man
No

여기저기에서 힘차게 행진하는 군중의 발소리가 들려,
다가 온 태양의 계절은 거리에서 투쟁하기 딱 좋은 때야,
하지만 나 같이 힘 없는 소년은,
록앤롤 밴드에서 노래를 부를 수 밖에,
힘 없이 축 늘어진 런던 타운에는,
거리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갈 곳이 없거든,
씨바,

Hey! think the time is right for a palace revolution
But where I live the game to play is compromise solution
Well, then what can a poor boy do
Except to sing for a rock ’n’ roll band
’cause in sleepy london town
There’s no place for a street fighting man
No

이봐, 지금이야 말로 왕정을 뒤엎을 혁명을 시작해야 할 때,
하지만 내가 사는 이 곳에선 온통 야합이 판치고 있어,
그렇다면 나 같이 힘 없는 소년은,
록앤롤 밴드에서 노래를 부를 수 밖에,
힘 없이 축 늘어진 런던 타운에는,
거리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갈 곳이 없거든,
씨바,

Hey! said my name is called disturbance
I’ll shout and scream, I’ll kill the king, I’ll rail at all his servants
Well, what can a poor boy do
Except to sing for a rock ’n’ roll band
’cause in sleepy london town
There’s no place for a street fighting man
No

이봐, 저들은 날 보고 혼란이라고 말하지,
난 목소리 높여 소리 지르리, 난 왕을 죽일거라고, 난 그의 시종들을 농락할 거라고,
하지만 나 같이 힘 없는 소년은,
록앤롤 밴드에서 노래를 부를 수 밖에,
힘 없이 축 늘어진 런던 타운에는,
거리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갈 곳이 없거든,
씨바,

No Surrender (포기는 없다)
By Bruce Springsteen (1984)

We busted out of class had to get away from those fools
We learned more from a three-minute record than we ever learned in school
Tonight I heard the neighborhood drummer sound
I can feel my heart begin to pound
You say you’re tired and you just want to close your eyes and follow your dreams down

우린 학교에서 쫓겨나 거기에 있는 바보들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지,
우린 학교에서 보다 3분 짜리 노래를 통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지,
오늘 밤 나는 옆 집에서 누군가가 두들기는 드럼 소리를 들었지,
내 가슴은 쿵쾅거렸지,
넌 이제 지쳤다 하지,
피곤한 눈을 감고 네 꿈을 접겠다 하지,

We made a promise we swore we’d always remember
No retreat, believe me, no surrender
Like soldiers in the winter’s night with a vow to defend
No retreat, baby, no surrender

우린 약속 했었어, 맹세 했었어,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
퇴각은 없어, 분명히 말하지만, 항복은 없어,
추운 겨울 밤 고지 사수의 결의를 다지는 병사들 처럼,
퇴각은 없어, 잘 들어, 항복은 없어,

Now young faces grow sad and old and hearts of fire grow cold
We swore blood brothers against the wind
I’m ready to grow young again
And hear your sister’s voice calling us home across the open yards
Believin’ we could cut someplace of our own
With these drums and these guitars

젊은이들은 슬픔에 젖어 늙어가고, 타오르던 가슴은 차갑게 식었어,
하지만 우린 피로써 맹세하고 삭풍에 맞섰었어,
난 이제 다시 젊어질 준비가 돼 있어,
우리를 돌아오라 부르는 네 여동생의 목소리가 벌판을 가로질러 들려 와,
하지만 우린 우리들의 자리를 만들 수 있어,
드럼과 기타로 말이야,

We made a promise we swore we’d always remember
No retreat, baby, no surrender
Blood brothers in the stormy night with a vow to defend
No retreat, baby, no surrender

우린 약속 했었어, 맹세 했었어,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
퇴각은 없어, 잘 들어, 항복은 없어,
폭풍우 치는 밤 사수의 결의를 다지는 피의 형제 처럼,
퇴각은 없어, 잘 들어, 항복은 없어,

Now on the street tonight the lights grow dim
The walls of my room are closing in
There’s a war outside still raging
you say it ain’t ours anymore to win
I want to sleep beneath peaceful skies in my lover’s bed
with a wide open country in my eyes
and these romantic dreams in my head

오늘 밤 거리의 불빛은 잦아들고,
사방의 벽이 조여들어와,
바깥은 여전히 격렬한 전쟁 중이야,
승리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너는 말하지,
하지만 나는 평화로운 하늘 아래 내 연인의 침대에서 잠들고 싶어,
넓게 트인 들판을 가슴에 담으면서,
달콤한 꿈을 꾸면서,

We made a promise we swore we’d always remember
No retreat, baby, no surrender
Blood brothers in the stormy night with a vow to defend
No retreat, baby, no surrender

우린 약속 했었어, 맹세 했었어,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
퇴각은 없어, 잘 들어, 항복은 없어,
폭풍우 치는 밤 사수의 결의를 다지는 피의 형제 처럼,
퇴각은 없어, 잘 들어, 항복은 없어,


영진공 이규훈

NCIS와 마크 하몬: 너무 잘 생겨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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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NCIS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의 약자로, 미해군 수사기관을 배경으로 범죄수사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죠.
‘D.P.Bellisario’ 라는, 어째서인지 미군 수사물을 많이 만드는 제작자가 그보다 전에 만들어서 진행 중이던 (이것 역시 미군수사기관)라는 드라마에서 파생되어(이런 경우를 ‘스핀 오프’라고 부르죠) 2003년 부터 시작된 시리즈인데 지금은 JAG보다 훨씬 잘나가고 있죠. 보통 해군판 CSI라고들 하지만, 사실 CSI와는 분위기부터 많이 다릅니다. CSI가 뭔가 참신한 비쥬얼과 냉정하고 이성적인 추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면, NCIS는 그냥 전통적인 미국 탐정드라마의 분위기를 따라갑니다. 등장인물들이 좀 만화스럽고 경박하다고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 드라마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게, 미국 내에서 시청율이 상위 10위 안에 늘 들고, 가끔은 CSI 보다도 높을 때도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꽤나 좋다고 하더군요. 2007-2008 시즌의 공식 시청율 순위에 따르면 NCIS는 6위 였습니다. 참고로 1위는 <위기의 주부들>, 2위는 (이상하네요. 요즘은 마이애미 쪽이 더 인기라던데), 3위는 <하우스>…

이쯤 하고 NCIS의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케이트, 이 드라마의 1회이자 이게 시청자들에게 먹힐지 안 먹힐지 찔러보는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주연으로 등장했던 케이트 여사. 원래 대통령 경호대(국세청 소속의 시크릿 서비스죠) 요원이었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NCIS요원으로 전직합니다. 보통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여성캐릭터와는 달리 매우 주도적인 역할이었으나 빡쎈 NCIS의 촬영일정에 질려서 2시즌 이후로 이 시리즈를 떠났습니다. 지금은 소피아 로렌의 며느리가 되어있다고 하더군요.



앤서니 디노조, NCIS의 고참요원으로 바람둥이이지만 능력도 꽤나 좋다는 설정. 많은 푼수짓을 하고 다닙니다. 이 양반은 <다크엔젤>에서 제시카 알바의 상대역이자, 실제 연인이기도 했죠. 그때는 꽤나 고뇌에 찬 진지한 인물이었으나 여기선 가장 가벼운 캐릭터에 해당합니다. 그래도 시즌이 거듭될수록 점점 무게잡아가죠.


애비, CSI에서 하루나 이틀 걸릴 증거자료 분석을 여기서는 이 아가씨 혼자서 보통 한두시간에 해냅니다. 좀 많이 말이 안 되지만 원래 MIT를 조기졸업한 천재라는 설정. 게다가 고스족이라 화장이나 복장도 특이하고 귀여움을 떨기도 합니다.


맥기, 시즌 중반에 합류한 신참입니다. 애비를 능가할 만큼의 컴퓨터 기크 인데다 천재라서 애비와 잘 통하고, 나중에는 NCIS에서의 경험을 소재로 탐정소설을 써서 돈도 엄청 버는 캐릭터. 4시즌부터인가, 포르쉐를 몰고 다니고, 인기 소설가라는 설정이 에피소드의 몇 번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지바, 케이트가 퇴장한 자리를 차지한 이스라엘 모사드 출신의 암살자 요원. 모사드에서 파견 근무한다는 설정입니다. 5개 국어 이상을 하고, 운전이 더럽게 험악하고, 살인도 꽤나 많이 했고, 수사관이라기 보다는 스파이에 가까운 캐릭터인데 미국 문화나 영어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서 종종 헛소리를 함으로써 코미디의 소재가 되어줍니다.


제니퍼 세퍼드 국장. <덤 앤 더머>에서 짐 캐리의 연인으로 등장, 한때 결혼하고 잘 살기도 했던 로렌 홀리씨입니다. 여기서는 평소에 아주 냉철하고 현명하다가도 자기 아버지 문제만 나오면 물불 안가려서 사고치는 국장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 이야기의 본론은 아니고(서론 절라 길군요) 본론은 바로 이 사람.


NCIS의 자타공인 주역 르로이 제스로 깁스 요원입니다. 드라마에서의 설정에 따르면 그는 91년인가 있었던 걸프전 이후 NCIS에 들어왔고, 심지어 국장을 가르치기도 했던 최고참 요원입니다. 이혼을 세 번, 사별을 한번 했고, 옷은 양판점의 싸구려, 매일같이 진한 커피를 위장에 채우고 다니며, 혹여 누가 자기 커피를 엎으면 분위기 살벌해지는 캐릭터. 혼자서 자기 집 지하실에서 거대한 보트를 자작하는 게 취미인데, 그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걸 어떻게 밖으로 가져나가는지 궁금해 하죠. 어째서인지 취조를 할 때 놀라운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누구보다도 직감이 정확하며, 요원들의 뒤통수를 치는(말 그대로) 한 수 위의 인물이죠. 이 드라마의 진정한 기둥입니다. 근데 이 아저씨의 과거 사진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핸섬가이…


그 옆에는 누구?

버터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참으로 화사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뭐랄까. 만화스러울 정도의 이목구비, 아마 일본사람들이 이상적인 서양인으로 생각하는 어떤 얼굴이 이 마크 하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잘 생긴 걸로 미국에서도 인정받아 피플지가 선정하는 현존하는 최고 섹시남으로 뽑힌 적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 커리어는 외모만큼 잘 풀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아저씨를 처음 본 것이 아마 브루스 윌리스와 시빌 쉐퍼드 주연의 80년대 드라마 <블루문 특급>이었습니다. 거기서 한 4-5회 정도 시빌 쉐퍼드의 남친으로 등장했었죠. 거기서도 배경 좋고, 능력 좋고, 잘생기고…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 브루스 윌리스를 열폭(열등감 폭발)하게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배알이 꼴린 윌리스가 찌질찌질 시비 걸다가 오히려 된통 당하기만 하던(싸움까지 잘해요)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뭔 일이 있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100% 반듯한 청년. 그게 마크 하몬이었습니다.


아, 블루문 특급… 정작 몇회 본 거는 없다는…

그리고 그것이 마크 하몬의 한계이기도 했지요.
뭐 연기력이 그닥 좋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는 너무 반듯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마크 하몬은 무슨 배역을 맡든지 자기 자신을 연기했던 것 같습니다.
송강호 같으면 그게 장점이 될 수 있겠으나, 이런 예쁘기만 하고 개성은 뚜렷하지 않은 남자가 그런 식으로 연기하면 그건 그야 말로 밋밋하고 재미없는 퍼포먼스가 되겠죠.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잘 생기긴 했는데, 뭔가 2% 부족한…

그 결과 마크 하몬의 커리어는 늘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 연예계에서 마크 하몬과 브루스 윌리스는 완전히 다른 세계 사람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잘 생기기로 치자면 마크 하몬이 훨씬 더 나았을지 몰라도, 그게 배우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거였죠.

아마도 영화계에서 마크 하몬의 최대 역작은 1988년작 <프리시디오>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그마치 숀 코너리와 맥 라이언이라는 배우와 공연한 작품이니까요. 물론 맥 라이언은 그 다음 해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세계의 연인으로 등극하기 전이었습니다만. 전작 <이너스페이스>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숀 코너리야 예나 지금이나 숀 코너리였으니 말입니다. 이 영화, 대학 시절에 비디오로 봤는데 마크 하몬과 맥 라이언의 베드신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그냥 그랬다는… 흥행성적도 그냥 그랬고… 하지만 이때 마크 하몬이 맡은 수사관 역할은 이후 NCIS에서 그의 캐릭터와 많이 통합니다.


프리시디오, 당시엔 맥라이언은 그저 조연급이라 포스터에도 없죠. 1년 후 급상승하지만…

어쨌든, 젊을 때는 너무 화사한 외모와 애매한 개성으로 별로 잘 나가지 못했던 마크하몬 이지만..
(*”잘 나가지 못했다”의 기준은 외모에 비해서 입니다. TV쪽으로는 꾸준히 활동했고 인정도 꽤 받았다는…)
나이가 들어 외모의 광채가 줄어들자 나름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나이가 나름의 중량감도 만들어주었고, 그 밋밋한 연기도 NCIS에서라면 냉정한 수사관 역할에 어울리고요.

5번째 시즌에서 뜻밖의 결말을 맞이한 마크 하몬. 과연 6번째 시즌에서 어떻게 등장하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멤버들은 여기까진가?

그리고 이 NCIS에는 뜻밖의 전력을 가진 중견배우가 한명 더 있는데, 그 양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바로 이 양반…

영진공 짱가

<기담>, 한국의 코엔 형제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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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 보면 참 대단들하시죠. 멜러나 액션 장르만을 따로 놓고 동호회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지만 공포 영화는 어딜가나 별도의 동호회가 있고, 그야말로 B 무비의 수호성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열성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십니다. 저는 예전부터 판타지 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내용의 영화들을 선호해온 터라 공포 영화들을 그다지 많이 접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공포 영화냐 아니냐 하는 구분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관객에게는 재미있느냐 아니냐, 잘 만들었냐 아니냐, 그리고 만족스럽냐 아니냐의 구분이 있을 뿐이죠. 더군다나 요즘처럼 장르 간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절에는 공포 영화 아닌줄 알았는데 슬래셔 무비에서나 볼 법한 끔찍한 장면이 튀어나와 보던 사람 간 떨어지게 하는 경우나 공포 영화인줄 알았느데 좀 다른 부분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됩니다.

<기담>은 말하자면, 보는 사람 간도 떨어지게 만들면서 공포 영화 이상의 성취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링> 보다는 <주온>에 가까울의 노골적인 비주얼을 서슴치 않기 때문에 ‘우아한 공포’라는 말에 너무 안심하고 계셨다가는 큰 코 다치는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저는 아직도 코가 얼얼하군요…) 기본적으로 <기묘한 이야기>와 같은 에피소드 구성이라는 점도 제가 예상했던 바와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담>을 구성하는 3개의 에피소드는 모두 1942년 개화기의 안생병원이라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이야기들로, 서로 간의 인과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비교적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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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이 공포 영화 이상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많은 한국형 공포물들이 잡으려다가 놓치곤 하는 두 마리 토끼, 즉 서스펜스와 멜러를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 편의 에피소드가 모두 초현실적인 현상를 기초로 하는 무서운 이야기들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하나 같이 남녀 간의 사랑과 운명을 기본 정서로 깔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김태우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김보경은 늦깍이 신인의 발견이라 할 만큼 무척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고 <기담>이 공포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김보경은 <친구>에서 여고 밴드 레인보우의 보컬이었던 그녀로군요)

두번째는 평론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형식미에서의 성취입니다. <기담>은 음향 효과와 끔찍한 비주얼로 끝장을 보는 전형적인 공포물이 아니라 미술이나 편집, 심지어 배우들의 대사 톤까지 일관된 연출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영화 초반에 특히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준 전무송씨의 대사가 좀 어색하다고 느꼈었는데요 이건 영화를 보는 동안 거의 모든 배우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었습니다. 약간 비현실적인 대사 방식은 어쩌면 판타지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형식 요소의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관건은 색다른 대사 전달에 관객을 적응시키느냐 아니면 끝까지 어색하게 들리도록 하느냐인데 <기담>의 경우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자에 가까운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배우들의 기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어색한 부분들을 비주얼과 플롯 전개 방식으로 충분히 만회하고 있는 영화가 <기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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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 크리딧에서 “감독 정가형제”라는 글자가 유난히 크게 들어오더군요. 그 전까지는 단순히 형제 감독의 공동 연출작이라서 그렇게 붙였나보다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크리딧을 보는 순간 코엔 형제가 떠올랐습니다. 아, 이 사람들이 코엔 형제를 목표로 하는구나 싶었죠. 그리고 영화 속에서 코엔 형제의 흔적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사실 에피소드 구성의 공포물인 <기담>을 놓고 ‘한국의 코엔 형제가 등장했다’라고까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데뷔작이 성공을 하고 어느 정도 여건이 된다면 충분히 그 정도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선보였다는 정도는 말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전개되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에서는 <위대한 레보스키>를 떠올리며 와, 멋지구나 했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포물의 결말은 <혈의 누>에서 군중들의 죄악이 드러나고 하늘에서 말도 안되게 핏물이 떨어지던 장면입니다. <혈의 누>는 멜러 전문인 김대승 감독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걸작이 되었을 시나리오였는데 전반적으로 허술한 만듬새 때문에 제 개인적으로 높게 쳐주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그 마지막 장면 만큼은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기담>이 2% 부족하다고 느꼈던 건 아마도 그런 정도의 마지막 방점을 원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자칫 <어메이징 스토리>식으로 늘어놓기만 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완성된 구조로 엮어내는 정가형제의 솜씨는 벌써부터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영진공 신어지

머슴이 주인을 가리고 끼리끼리 편짜서 뭘 어쩌자는 건지 …

 

포탈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국회의원인 주성영 의원이 지난 17일에 올린 글이 이슈가 되었다하여 그 글을 읽어보았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촛불시위가 시작과 달리 이렇게 정치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좌파 386과, 그런 부모들에게 이끌리는 초ㆍ중ㆍ고생,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진 620만 명의 일부가 주도하고 있는 ‘賤民민주주의’ 때문이다. 그 외 대부분의 국민들은 문제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지만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것은 듣기 좋은 ‘생명’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이념을 팔아먹는 ‘생명 상업주의자’들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촛불시위는 ‘국민건강’ 수호라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천민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생명 상업주의자’들로 인해 ‘반미’와 ‘정권타도’ 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선량한 의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좌파들이 내세우는 정치적인 구호에 선동되어 정권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은 ‘賤民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피해자다. 이제 나라를 걱정하는 진정한 민주시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이성을 갖고 진지하게 행동해야 할 때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 이룩한 ‘정권교체’를, 거짓된 ‘생명 상업주의자’들의 거짓 선전선동에 속아 빼앗길 수야 없지 않겠는가.”

이 글의 전문은 아래 링크에 있다.
http://www.frontiertimes.co.kr/news_view.html?s=FR06&no=28573&s_id=194&ss_id=0


우선 주성영 의원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자.

이 분은 한나라당 대구 동구갑 17, 18대 국회의원으로,
다음과 같은 구설수와 윤리심사 등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2004총선연대 낙선대상자
◎ 도덕성/자질
  • 91년 5월 춘천지검 재직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
    – 소명: 술자리에 동석했던 손님을 바래다 주어야 할 입장이었음. 깊이 반성하고 있음.
  • 98년 9월 쌍방 피해 후 당시 유종근 전라북도지사 비서실장의 이마를 술병으로 내리쳐 눈썹 주위을 찢기게 함. 이 사건으로 전주지검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전보 발령됨.
    – 소명 : 술자리에서 지역감정에 대해 논의하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임.

    윤리특위


  • 2005년 9월22일 국정감사 기간 중 대구모호텔 내 술집에서 피감기관 인사들로부터 향응접대를 받고 술자리를 같이하고 폭탄주를 마시는 등 국감에 임하는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 (2005-10-05, 이상민 의원 등 5인 요구)
    – 윤리특위의 법적 윤리심사 기한인 3개월을 넘겨 안건 자동 폐기 [국회법 157조 3항] (2006-02-27)
  • 2005년 9월22일 국정감사 기간 중 대구지검 국감이 끝난 뒤인 밤 11시30분쯤 대구 모호텔 지하 L칵테일바에서 칵테일바 사장 및 여성종업원 2명에게 심한 욕설을 하며 추태를 부리는 등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 (2005-10-05, 이상민 의원 등 5인 요구)
    – 윤리특위의 법적 윤리심사 기한인 3개월을 넘겨 안건 자동 폐기 [국회법 157조 3항] (2006-02-27)
  • 정치공작의 배후가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손상 등의 이유로 윤리심사대상자로 윤리심사요구서 접수 (2005-09-30, 김부겸 의원 등 29인 요구)
    – 윤리특위의 법적 윤리심사 기한인 3개월을 넘겨 안건 자동 폐기 [국회법 157조 3항] (2006-02-27)
  • 제17대 첫 정기국회 제13차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하던 중 허위 언론보도를 인용하여 ‘이철우의원이 1992년 북한노동당원으로 현지 입당하여 현재까지 계속하여 암약하고 있다’고 주장 등의 이유로 국회 윤리특위에 징계대상자로 요구서 접수 (2004-12-10, 유선호의원 외 150인 요구)
    – 윤리특위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의결 (2005-06-28)
    – 본회의 미처리


    <열려라 국회> 사이트에서 인용.
    http://watch.peoplepower21.org/member2008/congressman.php?mseq=459&sub=04

  • 각설하고,
    나는 이 분이 나름대로 촛불집회에 대해 내린 평가와 해석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도 않고, 이 분의 주장에 대해 가타부타할 생각도 없다.
    이 분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이 그 글에 국회의원임을 명시하였고, 또한 그 글에서 심각한 오류와 편협성이 보이기에 이를 적시해보고자 한다.

    1.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동등한 대접을 받으며 법 앞에 평등한 것이다.

    물론 주성영의원도 글에 썼듯이 초기 민주주의에는 많은 부작용이 있었고,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소위 선진국이라는 서구사회에서 동등한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주의 사회이며 국민에 대해 어떤 형태의 차별이나 계급구분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민이라니?
    주성영 의원은 글에서 “천민민주주의”라는 말이 마치 사회학 등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인 듯 장황하게 설명을 붙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우리 사회의 일부 인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조어수준의 용어이다.
    사례 1. http://blog.naver.com/liberalian?Redirect=Log&logNo=80012374006
    사례 2. http://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82531&section=section1

    만약 주성영 의원이, 목소리 큰 사람들이 모여 힘으로 몰아부치는 상황을 우려하여 이런 글을 썼다면 중우정치나 포퓰리즘 또는 협상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서로 모순되고 어긋나는 두 단어를 억지로 꿰어 맞춰 “천민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쓴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여 주성영 의원은 촛불을 드는 사람들은 천민들과 그 추종자무리이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선민이라 생각하여 그런 표현을 쓴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좌파 386과, 그런 부모들에게 이끌리는 초ㆍ중ㆍ고생,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진 620만 명의 일부”,
    “좌파가 주도하는 거리의 비이성적 굿판”,
    “나라를 걱정하는 진정한 민주시민들”,

    행정부의 실책과 위정자들의 직무유기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러운 이때에, 국회의원이나 되시는 분이 맡은바 직분에 충실하지는 않고 왜 굳이 이런 글과 표현으로 국민들의 편을 가르고 국론을 분열시키고자 하는지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2. 국회의원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자로 선출되어 국민이 살기 편하도록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선거때마다 후보들이 쓰는 표현에 따르면 국민들의”종”이자 “머슴”이다.

    그런데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대다수는 촛불집회를 지지하고 있으며 정부의 실책을 가혹하게 꾸짖고 있다.

    그리고 현재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권퇴진을 요구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해 온라인과 현장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국민들은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 것인지 쉬임없이 토론하고 행동하며 또 수정하고 실천에 옮길 것이다.

    국민들은 주성영 의원이 글에서 단정지었듯이 촛불집회가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들에 의해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 반정부 투쟁 성격의 정치성을 띤 불법집회로” 가야 할 것인지 아직 결론 내리지도 않았으며,
    촛불집회의 방향이 “‘국민건강’ 수호라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천민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생명 상업주의자’들로 인해 ‘반미’와 ‘정권타도’ 운동으로 변질되”는 흐름으로 전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와중에서 정보기관의 종사자나 사법부의 일원도 아니고 관변 단체의 간부도 아닌,
    국민의 대리자인 국회의원이 굳이 먼저 나서서 예단과 오류로 점철된 글을 써 정권문제와 편가르기를 이슈화시키는 건 무슨 의도인가?

    게다가,
    “이제 나라를 걱정하는 진정한 민주시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이성을 갖고 진지하게 행동해야 할 때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 이룩한 ‘정권교체’를, 거짓된 ‘생명 상업주의자’들의 거짓 선전선동에 속아 빼앗길 수야 없지 않겠는가.” 라는 결론은 이 글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들을 “우리”와 우리 아닌 “천민”으로 갈라놓고, “천민”에게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고하는 주장이 국회의원이라는 분이 쓰신 글의 결론이라면 참으로 난감하다.

    글의 서두에도 밝혔듯이, 촛불집회에 대한 주성영 의원 개인의 소회와 평가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또 그걸 통해서 국민과 “소통”하겠다면 나름대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이 글은 개인의 차원이 아닌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씌여진 것인데다,
    소회의 차원에서 벗어나 잘못된 정보와 오류에 근거하여 훈계와 선동을 의도하는 듯 보이기에 몇 가지 따져보게 되었다.

    국민의 “종”이자 “머슴”인 이가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많은 국민들을 “천민”이라 부르고, 또한 자신의 소속정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천민”아닌 이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하는 게 제 할 일인가,

    마치 일 잘하라고 고용한 머슴이 주인과 맞먹다 못해,
    주인을 제 입맛에 따라 구분하고,
    기어코는 제 편을 모아 대드는 모습이 떠올려 지는 건 나의 지나친 “오해”인가 …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