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 드럭스”, 골치 아픈 문제는 침대 밑으로





<러브 & 드럭스>를 통해 처음으로 제이크 질렌할이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 우디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 검색을 해보면 두 캐릭터를 비교해놓은 이미지 컷이 꽤 나오는 걸 보아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게 확실하다 – 그 이유는 아마도 제이크 질렌할이 성인 연기자로서 처음으로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이 배우의 면모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제이크 질렌할 역시 그간 자신에게 주어졌던 온통 심각하기만 했던 배역들과 그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훨씬 쾌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실제 제이크 질렌할의 캐릭터와 가장 유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앤 헤서웨이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앤 헤서웨이의 최근 몇 년 간의 출연작 선정과 연기하는 방식은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통해 형성된 공주님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에 집중된 것처럼 보이고 이번 <러브 & 드럭스> 역시 그런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해서 진짜 좋은 배우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싫을 리는 없지만, <러브 & 드럭스>에 앤 헤서웨이가 아닌 다른 배우가 제이크 질렌할과 호흡을 맞추었더라면 어땠을까, 말하자면 작품이 좀 더 나아보일 수 있었을 법한 다른 캐스팅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러브 & 드럭스>는 첫째도 둘째도 제이크 질렌할과 앤 헤서웨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앤 헤서웨이와 같이 비현실적인 미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인 거다.

이 두 명의 배우는 사실 다른 어느 누구와 짝을 지어놓아도 충분히 제 몫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좋은 배우들이다. 그런데 이 환상의 커플이 작정을 한 듯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동반 출연을 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러브 & 드럭스>는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보장 받은 상태에서 시작한 기획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러브 & 드럭스>의 세번째 쯤에는 미국의 의료 업계에 관한 내부 고발이 있다. 실제로 제약업체 화이자의 영업사원이었던 제이미 라이디의 2005년 원작 <Hard Sell: The Evolution of a Viagra Salesman>은 본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멜러 소설이 아니라 업계에서의 자전적 경험을 기록한 논픽션이었다.

이것을 에드워드 즈윅 감독과 두 명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각색해서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시킨 작품이 <러브 & 드럭스>인데, 덕분에 작품의 메인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곳곳에서 미국 내 의료 현장의 뒷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공개되고 있다.


 

제약업체의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된 제이미(제이크 질렌할)에게 그 일은 “복잡한 의학적 결정을 충동구매로 바꿔놓는 짓”이라며 말리는 가족들의 대사도 그렇고, 매기가 노인들을 버스에 잔뜩 태우고 캐나다에 다녀오곤 하는 장면 등은 모두 닉슨 대통령이 1970년대에 일찌감치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말아먹은 미국에서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러브 & 드럭스>를 보면서 함께 권해주고 싶은 영화는 또 다른 멜러물이 아닌 마이클 무어 감독의 프로파겐다 <식코>(2007)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러브 & 드럭스>는 코미디이고 멜러물이다. 여자가 불치병에 걸린 사실로 인해 원치않는 생이별을 하고 있는 모습은 설 연휴 동안 TV에서 본 <내 사랑 내 곁에>(2009)를 떠올리게 하고, 여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눈길을 헤치면서 돌아다니는 남자의 헌신적인 모습에서는 <러브 스토리>(1970)의 간절함 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역시 <러브 & 드럭스>의 첫째와 두번째는 모두 제이크 질렌할과 앤 헤서웨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인 것이다.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구조적인 이슈를 젊은 두 남녀의 멜러물로 치환해버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울 따름이지만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나 멜러 영화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러브 & 드럭스>가 크게 처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싶다. 단지 그 멜러가 판에 박힌 듯 하여 더 이상 가슴에 와닿지 않는 내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영진공 신어지

 

“타운”, 영화감독 벤 애플렉을 앞으로도 기대한다





벤 애플렉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첫번째 장편은 2007년작 <곤 베이비 곤>이었는데 아쉽게도 국내 개봉이 이루어지지 않았었죠. 벤 애플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맷 데이먼과 함께 각본을 쓰고 – 그리하여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 – 출연까지 했던 출세작 <굿 윌 헌팅>(1997)이 있겠고, 그외 출연작들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던 작품으로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2001)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무명 시절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케빈 스미스 감독과의 관계나 연인이었던 기네스 팰트로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요.

그 이후 제니퍼 로페즈와의 약혼을 갑작스럽게 발표했던 것이 2002년이었는데 –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맷 데이먼은 제 2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본 아이덴티티>에 출연했지요 – 이때부터 배우로서 벤 애플렉의 커리어는 완연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지요. 제니퍼 가너와의 결혼은 2005년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에 감독 데뷔작을 발표했으니 안정된 사생활을 기반으로 영화 연출에 도전할 수 있게 되고, 다시 영화 연출을 통해 배우로서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타운>을 통해 확인해본 영화 감독으로서 벤 애플렉의 재능은 아예 배우 그만 두고 영화감독으로 전업을 해도 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로 괜찮더군요. 오직 연출에만 전념했던 데뷔작과 달리 이번 두번째 작품에서는 벤 애플렉 본인이 직접 주연으로 출연까지 하면서, 그와 동일한방식으로 무척 오랜 기간 동안 영화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아니 뭐 고작 이런 정도를 가지고 감히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야 마땅할 대선배의 이름을 들먹이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어디까지나 밑져야 본전입니다 – 저는 벤 애플렉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만큼이나 훌륭한 배우 출신, 또는 겸업 영화 감독으로 자리를 잡게 되리라는 기대를 한번 가져보고 싶습니다. 연출 스타일 면에서 유난한 개성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 유일한 특이점은 씨퀀스에서 다음 씨퀀스로 넘어갈 때 일반적인 편집 속도 보다 0.5초 정도 빨리 끊어버린다는 정도 – 작품성과 대중적인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내고 있는 이런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지경이라 하겠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타운>은 보스턴의 젊은 무장 강도들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은행 강도 등의 강력범죄 발생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보스턴이고 – 유명한 대학 도시라고도 알려져 있긴 합니다만 – 그 범죄자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사는 지역이 찰스타운이라는 곳이라는군요. 그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가며 강도질을 하는 집안도 있는 모양인데요, 척 호건 원작의 <Prince of Thieves>를 각색한 <타운>에서 주인공 덕 맥레이(벤 애플렉)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 4인조 강도들의 수준이 꽤나 높은 편인지라 FBI가 애를 먹습니다.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전 범죄를 추구하며 신속하게 현금을 털어가기 때문이죠.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 사건 현장에 빠르게 출동해온 경찰들을 상대로 총기 액션과 추격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우발적인 성공이 아니라 꽤나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강도 행각을 보여주는 면모가 마이클 만 감독의 1995년작 <히트>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 <타운>이기도 한데요, <히트>가 완숙함의 경지에 접어든 중년의 강도와 경찰의 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면 <타운>은 그 중에서도 강도들의 세계에 깊숙히 침투하며 드라마를 끄집어 올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 드라마의 축이 되는 것은 강력 범죄를 대물림 해가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하는 찰스타운 출신들로서 그 세계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주인공과 그를 보내지 않겠다는 사람들 간의 갈등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로서 <타운>의 주제는 다름아닌 갱생입니다.








<타운>은 표면적으로 보면 주인공 일당이 잠시 인질로 잡아두었다가 풀어준 은행 부지점장 클레어(레베카 홀)와 덕 맥레이의 불안한 연애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클레어는 덕 맥레이가 은행 강도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크게 분노하고, 자신을 은행 강도의 협력자로 지목하는 FBI에게 협조까지 하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덕 맥레이에게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대사를 통해 암시를 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위안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타운>은 덕 맥레이의 가정사를 중심으로 그 보다 좀 더 심층적인 드라마를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술도 마시지 않고 있는 덕 맥레이는 복역 중인 아버지와의 면회를 통해 어린 시절에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냅니다. 덕 맥레이에게 클레어의 존재는 곧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가져보지 못했던 정상적인 가정 생활에 대한 열망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줄로만 알고 있었던 어머니가 사실은 찰스타운을 지배하는 범죄의 울타리 속에서 희생되었다는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알게 되면서 – 이 부분이 <타운>의 내면적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주인공은 완전히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어찌보면 아주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라고 볼 수 있겠고, 만약 각색과 연출, 주연을 아우르며 활약한 벤 애플렉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있다면 그저 봐줄 만한 정도의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 수 년간 줄기차게 메가폰을 잡아왔으면서도 그닥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들만 양산해내는 감독들이 즐비한 현실을 고려할 때 <타운>을 통해 드러나는 벤 애플렉의 영화적인 재능은 칭찬을 아끼기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타운>에는 주인공 덕 맥레이를 중심으로 적정한 수라고 생각되는 만큼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와 크리스 쿠퍼와 같은 노익장에서부터 존 햄, 제레미 레너, 레베카 홀, 블레이크 라이블리 등이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핏 쌈마이 액션 영화처럼 보이는 포스터에 비해 실제 영화는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이어져내려온 아메리칸 무비의 전통성에 근접해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