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허슬” 출연진 만큼이나 음악이 빵빵한 영화

출연진의 빠방함으로 이미 판단할 수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아도 안 되는 영화는 안 되죠. 그런 면에서 <아메리칸 허슬>은 좋은 예상이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난 영화입니다. 미국서는 2013년 개봉이지만, 한국서는 2014년 개봉이니, 개인적으로 올해의 영화 후보 0순위로 올려놓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에이미 아담스를 그냥 이쁜 여배우로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최고의 여배우로 자신있게 꼽게 되었구요, 크리스천 베일의 변신과 연기도 환상이고, 정서 불안 역할에는 이제 여배우로 제니퍼 로렌스를 능가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집니다. 정서불안한 끝 간 데 없는 섹시함, 그리고 액션 히로인까지 … 안젤리나 졸리가 브란젤리카로 걍 셀러브리티가 되어 버린 지금 그 자리를 차근차근 다 차지하는 느낌입니다. 좀 측은하기도 한 또라이 역할의 끝장판입니다.

브래들리 쿠퍼, 제레미 레너, 깜짝 등장 로버트 드니로, 그 밖의 모든 배우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환상적인 연기를 펼쳐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197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1970년대의 정서가 진득하게 느껴지는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즐거움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거의 1970년대 미국 주류 팝계 총결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류 팝, 록, 디스코 장르를 널뛰며 환상적인 노래들이 영화 내내 흘러나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노래들이 그냥 좋아서 나온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나 느낌, 복선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음악감독은 대니 앨프먼입니다만, 대니 앨프먼이 각 등장인물들에게 부여한 테마보다 당대의 히트곡을 통해 생각하게 만드는 게 더 많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장면, 장면 삽입된 노래를 알면 두 배는 더 재밌는 작품이 됩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의 내용이나 약간의 스토리까지 알면 세 배는 더 재밌어 질 겁니다. 그래서 영화의 스포일러를 최소화 하면서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OST로 발매된 CD에는 15곡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데니 앨프먼이 작곡한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어빙의 테마 곡도 있습니다. 즉 현재 발매된 OST에는 영화 크레딧에 명기된 29곡 중에 절반 정도밖에 확인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의미를 알면 훨씬 더 영화의 재미가 확대될 곡들도 꽤 있습니다. 29곡 모두를 훑어볼 순 없고, 주요한 곡들만 살펴보겠습니다. OST 수록곡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곡도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노래들이 아주 진득합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을 엮어주는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Jeep’s Blues”는 영화의 오프닝, 만남 씬, 크레딧에 모두 등장하죠. 두 남녀가 듀크 엘링턴에 극찬을 보내는데, 사실 그것도 되게 웃기는 겁니다. 듀크 엘링턴은 한국에서도 재즈 팬이라면 다 아실테고, 미국서는 스티비 원더가 “Sir Duke”로 경의를 표할만큼 1930년대 아프리칸 아메리칸 아티스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재즈 아티스트 입니다.

거기에 1974년 사망과 함께 미국사회에서 재조명을 받았기에 1978년에 이미 사기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두 남녀가 만난 시점 즈음에 이 둘이 듀크의 이름을 들어보고 음반 한 두 장 아는 건 당연할 겁니다.

근데, amazing을 외치며, 어떻게 듀크는 이런 사운드를!를 외쳐대는 둘의 대화 자체가 두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걸 증명합니다. 이 곡이 분명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작품이지만 실은 오케스트라의 핵심 멤버였던 색소포니스트 자니 호지스의 곡이기 때문이죠. 제목부터 자니 호지스의 별명이고, 듀크와 자니의 공동 작곡이며, 자니의 플레이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 베일이 충격의 올챙이 배를 보여준 후, 더 큰 쓰나미를 머리로 보여주시는 인트로에 흐르는 음악은 영국밴드 America의 첫 히트곡 “A Horse with No Name”. 이름 없는, 심지어 이름을 남길 수 없는, 그러나 열심히 달리는 말의 이미지는 영화 내내 반복되는 것이죠. 거기에 크리스천 베일, 에이미 아담스, 브래들리 쿠퍼가 의기양양하게 걸어가며 자막이 흐르는 장면에는 OST에 수록되지 않은 스틸리 댄의 “Dirty Work”가 등장합니다. 제목과 가사 내용도 그렇고, 심지어 이 앨범이 수록된 스틸리 댄의 데뷔 음반 제목은 『Can’t Buy a Thrill』입니다. 앨범 제목에 곡명까지 영화 도입부에 영화가 하고픈 얘기가 다 드러나죠.

이 영화에는 ELO의 노래가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Electric Light Orchestra … 한때 한국의 FM에서도 이들의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B급 냄새를 풍겼죠. 핑크 플로이드, 퀸, YES, 탐 패티 등의 밴드가 개척한 새로운 사운드의 세계를 쉬운 멜로디로 우려먹는 듯한 느낌이었달까요.

신념 있는 정치인의 현실적 한계를 표현하는 제레미 레너의 시장 역할 소개 장면에 흐르는 곡이 있습니다. OST에는 수록되지 않았는데요. Frank Sinatra의 “The Coffee Song”입니다. 그런데, 이 곡의 부제가 “They’ve Got An Awful Lot of Coffee In Brazil”입니다. 브라질은 아니지만 이 시장이 자신의 신념과 정치적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도박도 역시 미국 밖 무엇이죠.

돈 많은 아랍 수장이 등장하는 파티 장면에서 저는 빵 떠질 수 밖에 없었는데요, Jefferson Airplane이 부른 사이키델릭 록의 명곡인 “White Rabbit”이 아랍어로 흘렀기 때문이지요. 최고의 킬러 출신 로버트 드 니로와 만난 힘 없는 하얀 토끼라니 … 거기에 아랍어라뇨. 물론 원작의 흰 토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 얘깁니다. 그러나 아랍어로 바꿨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그저 초특급 킬러 앞의 토끼만 알면 되죠. 물론 이 노래를 몰라도 그냥 아랍어로 된 긴장감 넘치는 곡이라고 넘겨도 되긴 합니다. 여튼, 레바논계 미국인 여가수 Mayssa Karaa에게 이 곡을 다시 부르게 한 건 거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크리스천 베일의 두 여인이 만났을 때 흐르는 비지스의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도 제목이 죽이죠. 비지스가 디스코의 제왕이 되기 전, 발라드 그룹으로 날리던 시절 곡이죠. 이 노래의 주인공인 에이미 아담스와 Paul McCartney & Wings의 “Live and Let Die”가 표상하는 제니퍼 로렌스의 대비가 환상이죠.

제니퍼 로렌스의 헤드 뱅잉이 돋보이는 이 “Live and Let Die”는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 해산 후, ‘존 레논 너만 마누라랑 음악 하는 줄 알아?’하면서 결성하신 윙즈의 노래죠.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의 수록곡이기도 하구요. 하드록/메탈 팬이라면 Guns & Roses의 버전으로도 유명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한 쪽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한 쪽은 죽거나 살거나 내꺼만 외치는 대비도 좋고, 두 곡 제목은 두 사람의 미래이기도 하죠. 스포일러가 될테니 그 이상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2시간 20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푹 빠져서 본 영화였는데, 일부에선 한 방 없이 자잘한 얘기를 주욱 늘어놔서 잔재미만 있었다고 평하는 분도 있더군요. 역시 취향은 다양한 겁니다. OST도 그렇겠죠. 1970년대인데 이 노래를 빼먹었다면 무효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정도면 최고의 곡들을 모아놓은 데다가 영화의 내용과 호흡이 딱이니 더 바랄게 없는 수준입니다. 연초부터 그 자체로도 좋고, 추억과 더해지면 금상첨화로 즐기실 수 있는 영화 한 편 만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어벤져스”, 너는 홀몸이 아니란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도 울었나 보다.”


 


 


근래 Made in 마블 코믹스 표 영화를 보던 내 마음을 표현해준 것은 이 시 한 구절이었다. 제아무리 매니아가 아니라면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영화라고 해도, “아이언 맨 2″부터 “토르”, “캡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마구잡이식 재고 대방출, 찍고보자식 영화 완성도의 꼬라지는 그야말로 암담한 수준이었다.


 


그건 매니아란 변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배트맨”과 “엑스맨”의 완성도는 원작을 보지 않은과연 영화 붐을 타고 미국산 코믹스들이 번역 되기 전에 그 원작을 본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이들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드디어 2012년 세계 종말이 오기 전에 등장한 어벤져스. 대체 어떤 세기의 대작을 만들었길래 앞의 작품들을 그렇게 분탕칠 해야 했는지, 수능 시험 성적표를 앞에 둔 수험생 아니 재수생 마냥 내 가슴이 다 설레었다.


 


그렇게 “어벤져스”는 마블이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났던 것이 이해가 갈 만큼 평일 관람료 8,000원을 후울~쩍 뛰어넘는 재미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앞서 마구 뱉아내던 작품들을 꾸역꾸역 보느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말초신경을 시원스레 경락 마사지해주었다.


 


그러나 “어벤져스”는 홀몸이 아니다. 앞서 3개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등장한 작품이 아니던가. 나 역시 울며 겨자 퍼먹는 심정으로 앞선 작품들을 다 보았기 때문에 어벤져스를 향한 나의 기대치는 평일 관람료 기준 아이언맨2(8,000)+토르(8,000)+캡틴 아메리카(8,000)이 포함된 32,000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느 한 작품 조조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과연 “어벤져스”가 나에게 32,000원 어치의 기대감을 만족시켜 주었냐고 한다면 글쎄다. 연애에서도 상대방과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보스급인 사슴머리의 존재감은 옥의 티가 아니었을까 한다. 기껏해야 헐크의 1회용 개그 소재 정도였으니 이렇게 폼 안나는 보스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주인공들이 워낙 넘사벽이라 적과의 싸움보다는 지들끼리 싸울 때 오히려 더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점수는 32,000원 만점에 24,000원까지다. B급도 아닌 C급 특촬물스러웠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생각해도 안주 없이 소주 한 병 까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전차로 니들이 진정 히어로라면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기 앞서 우리의 호주머니를 생각해서 앞으로 이 이상의 수준으로 3편 정도 더 나올 수 있게 혼신의 힘을 다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OK?!



영진공 self_fish


 


 


 


 


 


 


 


 


 


 


 


 


 


 


 


 


 


 


 


 


 


 


 


 


 


 


 


 


 


 


 


 


 


 

“타운”, 영화감독 벤 애플렉을 앞으로도 기대한다





벤 애플렉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첫번째 장편은 2007년작 <곤 베이비 곤>이었는데 아쉽게도 국내 개봉이 이루어지지 않았었죠. 벤 애플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맷 데이먼과 함께 각본을 쓰고 – 그리하여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 – 출연까지 했던 출세작 <굿 윌 헌팅>(1997)이 있겠고, 그외 출연작들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던 작품으로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2001)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무명 시절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케빈 스미스 감독과의 관계나 연인이었던 기네스 팰트로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요.

그 이후 제니퍼 로페즈와의 약혼을 갑작스럽게 발표했던 것이 2002년이었는데 –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맷 데이먼은 제 2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본 아이덴티티>에 출연했지요 – 이때부터 배우로서 벤 애플렉의 커리어는 완연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지요. 제니퍼 가너와의 결혼은 2005년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에 감독 데뷔작을 발표했으니 안정된 사생활을 기반으로 영화 연출에 도전할 수 있게 되고, 다시 영화 연출을 통해 배우로서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타운>을 통해 확인해본 영화 감독으로서 벤 애플렉의 재능은 아예 배우 그만 두고 영화감독으로 전업을 해도 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로 괜찮더군요. 오직 연출에만 전념했던 데뷔작과 달리 이번 두번째 작품에서는 벤 애플렉 본인이 직접 주연으로 출연까지 하면서, 그와 동일한방식으로 무척 오랜 기간 동안 영화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아니 뭐 고작 이런 정도를 가지고 감히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야 마땅할 대선배의 이름을 들먹이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어디까지나 밑져야 본전입니다 – 저는 벤 애플렉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만큼이나 훌륭한 배우 출신, 또는 겸업 영화 감독으로 자리를 잡게 되리라는 기대를 한번 가져보고 싶습니다. 연출 스타일 면에서 유난한 개성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 유일한 특이점은 씨퀀스에서 다음 씨퀀스로 넘어갈 때 일반적인 편집 속도 보다 0.5초 정도 빨리 끊어버린다는 정도 – 작품성과 대중적인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내고 있는 이런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지경이라 하겠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타운>은 보스턴의 젊은 무장 강도들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은행 강도 등의 강력범죄 발생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보스턴이고 – 유명한 대학 도시라고도 알려져 있긴 합니다만 – 그 범죄자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사는 지역이 찰스타운이라는 곳이라는군요. 그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가며 강도질을 하는 집안도 있는 모양인데요, 척 호건 원작의 <Prince of Thieves>를 각색한 <타운>에서 주인공 덕 맥레이(벤 애플렉)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 4인조 강도들의 수준이 꽤나 높은 편인지라 FBI가 애를 먹습니다.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전 범죄를 추구하며 신속하게 현금을 털어가기 때문이죠.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 사건 현장에 빠르게 출동해온 경찰들을 상대로 총기 액션과 추격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우발적인 성공이 아니라 꽤나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강도 행각을 보여주는 면모가 마이클 만 감독의 1995년작 <히트>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 <타운>이기도 한데요, <히트>가 완숙함의 경지에 접어든 중년의 강도와 경찰의 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면 <타운>은 그 중에서도 강도들의 세계에 깊숙히 침투하며 드라마를 끄집어 올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 드라마의 축이 되는 것은 강력 범죄를 대물림 해가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하는 찰스타운 출신들로서 그 세계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주인공과 그를 보내지 않겠다는 사람들 간의 갈등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로서 <타운>의 주제는 다름아닌 갱생입니다.








<타운>은 표면적으로 보면 주인공 일당이 잠시 인질로 잡아두었다가 풀어준 은행 부지점장 클레어(레베카 홀)와 덕 맥레이의 불안한 연애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클레어는 덕 맥레이가 은행 강도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크게 분노하고, 자신을 은행 강도의 협력자로 지목하는 FBI에게 협조까지 하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덕 맥레이에게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대사를 통해 암시를 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위안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타운>은 덕 맥레이의 가정사를 중심으로 그 보다 좀 더 심층적인 드라마를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술도 마시지 않고 있는 덕 맥레이는 복역 중인 아버지와의 면회를 통해 어린 시절에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냅니다. 덕 맥레이에게 클레어의 존재는 곧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가져보지 못했던 정상적인 가정 생활에 대한 열망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줄로만 알고 있었던 어머니가 사실은 찰스타운을 지배하는 범죄의 울타리 속에서 희생되었다는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알게 되면서 – 이 부분이 <타운>의 내면적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주인공은 완전히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어찌보면 아주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라고 볼 수 있겠고, 만약 각색과 연출, 주연을 아우르며 활약한 벤 애플렉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있다면 그저 봐줄 만한 정도의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 수 년간 줄기차게 메가폰을 잡아왔으면서도 그닥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들만 양산해내는 감독들이 즐비한 현실을 고려할 때 <타운>을 통해 드러나는 벤 애플렉의 영화적인 재능은 칭찬을 아끼기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타운>에는 주인공 덕 맥레이를 중심으로 적정한 수라고 생각되는 만큼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와 크리스 쿠퍼와 같은 노익장에서부터 존 햄, 제레미 레너, 레베카 홀, 블레이크 라이블리 등이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핏 쌈마이 액션 영화처럼 보이는 포스터에 비해 실제 영화는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이어져내려온 아메리칸 무비의 전통성에 근접해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진공 신어지




 

“허트 로커”, 전쟁과 인간만 달랑 남았구나






지난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6개 주요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죠.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에게는 첫번째 여성 감독상 수상자로서의 영예까지 안겨다주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 부인 – 들 중에 하나 – 으로도 알려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대표작은 역시 <폭풍 속으로>(1991)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이 아드레랄린 넘치는 범죄 액션물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코미디 <뜨거운 녀석들>(2007)에서 대놓고 찬미될 만큼 줄거리와 연출 스타일에 있어서 남성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어요.

그외 <블루 스틸>(1990)이나 <스트레인지 데이즈>(1995) 역시 여성 감독의 영화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는 선굵은 스토리라인과 액션 장면들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안겨준 이라크 전쟁 소재의 영화라고 하더니 과연 이제껏 보아온 이라크 전쟁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라크 전쟁 영화라고 하면 전쟁 반대파의 목소리를 담아 그 허구성이나 복잡한 미국 내 또는 국제 정치의 맥락 위에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그런데 아카데미의 지지를 얻은 이 <허트 로커>라는 영화는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으되 굳이 이라크 전쟁이어야만 했을 이유가 없는, 매우 일반적인 전쟁 영화 – 말하자면 전쟁과 그 안에 몸 담고 있는 인간에 관한 매우 미시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라크는 없고, 오직 전쟁과 인간만 남아있는 작품이랄까요.



물론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는 이라크 저항군의 폭탄 테러는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그 안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내의 현재 상황과 매우 밀접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라크 전쟁의 의미를 캐묻기 보다는 등장 인물들이 전쟁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하기는 하되, 이라크 전쟁의 정치적인 맥락을 배제함으로써 좀 더 전통적인 전쟁 영화로 비춰지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등장 인물들이 그 안에서 영웅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워들 하고 있으니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까지 볼 수도 있기는 하겠네요 – 그럼 안그런 전쟁 영화가 어디 있겠느냐고 하실런지 모르겠지만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2009)도 전쟁 영화이기는 하되 그런 느낌이 훨씬 덜 했던 작품이었던 거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허트 로커>는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우 사실적으로 전쟁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이 피어스와 랄프 파인스조차 영화 속에서 단명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을 만큼 감독은 어느 누구든 눈 깜빡 할 사이에 바로 죽어나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폭발물 제거반인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는 작품이니 서스펜스의 수준은 거의 공포 영화가 따로 없을 정도이지요. 그러다 임무를 잘 마치고 BOQ에 ‘살아’ 돌아온 주인공들이 노는 꼬락서니는 영락 없는 <폭풍 속으로>에서의 아드레랄린 과다 상태의 남성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 상사(제레미 레너)는 일종의 전쟁 중독증이 아닐까 싶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남들은 로테이션 근무가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남은 삶의 의미는 한 가지 밖에 없다며 처자식을 내버려두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기까지 합니다.




자연스럽게 전쟁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고, 배우들의 연기나 사실적인 연출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견을 달기 힘든 잘 만들어진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허트 로커>를 통해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건져낼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에서 명시적인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것 만큼 스스로 영화의 재미를 제한하는 어리석은 짓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적어도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더군다나 매년 그 결과에 주목하게 되는 유명 영화 시상식의 작품상과 주요 부분을 휩쓴 화제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전쟁에 관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허트 로커>에서 묘사된 전쟁이요? 당연히 참혹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참혹하지 않았던 전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폭발물 제거반이라서 특별한 영화가 된 것인가요, 아니면 이라크에 관한 직설 화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라크 전쟁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방법을 알려준 작품이라서 상을 받은 것인가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