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우스 스테노는 어디서 튀어나온 듣보잡일까? (1/2)


구글은 111일에 니콜라우스 스테노 탄생을 기념하는 로고를 대문에 달아 놓았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 생소했을 그의 이름을 보며 그냥 그 동네에서 유명한 사람인갑다 하며 넘겼을 것이다.

문제는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그가 누군지 클릭했다가, 무려
위대한 창조학자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서 이름도 생소한 이 형님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구글에서 올린 프로필을 보면
,


“니콜라스 스테노는 자신이 직접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론을 수립해 과학적 방법을 연구에 도입한 지질학자로 알려졌으며, 지층의 누적에 대한 이론을 발표해 층서학의 아버지로도 불립니다.”

라고 떡하니 쓰여 있다.

이 말 대로면
위대한 창조학자가 아니라 창조학을 깨부순 위대한 지질학자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던가. 도대체 이런 아이러니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는 이 형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형님의 이름은 라틴어로 니콜라우스 스테노
(Nicolaus Steno, 1638~1686)이며 코펜하겐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명 개천 출신의 용으로 거듭나며 우선은 천부적인 해부능력을 바탕으로 해부학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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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유럽은 갈릴레오가 뿌려놓은 과학의 씨앗들이 꽃을 피우며 과학혁명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데카르트는 세상 만물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인다는 기계론을 들고 나오며 시대 트렌드를 만들었다. 이러한 기계론 열풍은 당연히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우리 인체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특히 기계론의 아빠라 할 수 있는 데카르트는 자기 분야도 아니면서 아무데나 기계론의 잣대를 갖다 대며 똥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17 세기 초의 의학계에는 훌륭하신 하비형님이 나타나셔서 아직까지도 의학계의 수학의 정석 같은 구닥다리 갈레노스의 이론들 중 심장과 혈액순환에 관한 내용을 버전업시키고 있었다. 하비는 심장은 근육질이고 강력한 심장 근육의 수축에 의해 피가 동맥으로 뿜어져 나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심장이 근육 펌프라는 하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심장은 피가 증발할 때까지 피를 가열하는 수동적인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증발된 피는 심장을 부풀리면서 동맥에 압력을 가하며, 이 압력이 맥박의 원인라고 본 것이다.

기계론이 비록 시대적 트렌드이긴 했지만 이 이론은 교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 기계론 말마따나 세상 만물이 능동적인 자아를 가지고 알아서 움직인다면 신은 실업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계론에 관한 논쟁은 위에 적은 것처럼 데카르트가 심장을 가지고 떠드는 바람에 하비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데카르트의 심장에 대한 주장은 하비의 혈액순환 개념을 변용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하비가 정립한 개념을 제멋대로 바꾸어 써댔다.

하비의 이론은 데카르트와 달랐지만 그는 여러 가지 개인사정으로 데카르트와 말싸움할 시간이 없었고 결국 하비형님은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

이런 기계론 추종자들의 분야를 넘나드는 참견은 스테노 형님의 시대에 까지 계속되었다
. 뛰어난 해부학자인 스테노는 해부를 통해 심장이 신축성 있는 섬유들의 뭉치이며 누구들 말마따나 생기를 불어넣으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기계론이 사회, 과학 전반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심장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혈기 왕성한 한창 나이였던 스테노 형님은 하비 형님처럼 가만히 있지 않았다
. 그는 1665년 파리 강연을 통해 기계론자들에게 뻐큐 한방을 찰지게 날려 주신다.

파리 강연은 뇌에 관한 것이었다
. 뇌 조직은 연하고 부드러워 해부하기 무척 어려웠다. 따라서 뇌의 구조와 운동에 관한 추측이 난무했고 당연히 참견쟁이 데카르트 역시 일찌감치 한마디 거들었다. 데카르트는 영혼이 송과선 안에 들어앉아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직의 끈을 비틀고 돌리고 잡아당기면서 신체를 조절한다고 주장했다당연히 데카르트의 이런 주장은 해부학적 관찰이 아닌 송과선에 앉아있는 영혼의 연역적 추론을 통해서였다.





철이가 앉아있는 곳은 마징가의 송과선이다!


 



스테노는 해부를 통해 알게 된 뇌의 구조에 관해 발표하며 송과선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음을 밝혀내어 기계론자들의 뇌 이론에 냉수마찰을 해준다. 그러면서 스테노 형님은 과학은 자연을 관찰한 사실을 근거로 삼아야하며 제아무리 명쾌하다고 할지라도 순전한 추론을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카리스마 있게 경고하였다.


스테노 형님의 이런 뛰어난 해부학적 지식은 이후 지질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는데 귀중한 시발점을 만들어 준다.

2부에서 계속 ……

영진공 self_fish

다윈, 진화론이라는 세기의 떡밥을 던지다









2009년은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다윈의 해’다. 진화론이라는 세기의 떡밥을 만든 주인공의 해답게 올해 초 영국에서는 재밌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1896년에 창립한 BHA는 현재 약 6천 5백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주로 과학, 인문 계통의 지식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의회에도 


100명 이상의 의원이 지지그룹을 형성해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에서 무종교인들의 권익을 돕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가 부회장으로 있는 영국인본주의자협회(British Humanist Association, 줄여서 BHA)에서는 2008년 12월 말 영국 각지를 운행하는 버스에 도발적인 광고를 내었다. 회원과 일반인들에게서 기부를 받아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라는 광고를 한 것이다. 재밌게 보였는지 곧이어서 스페인의 무신론 단체에서도 유사한 버스 광고를 내보냈다.







사진 속 이는 그 유명한 리차드 도킨스.


리차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등의 


저자며 현재 옥스퍼드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다. 대표적인 진화론의 


지지자로서 유신론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단어들을 집어던지는 생물학계의 


진중권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10월 BBC와 인터뷰에서는 “종교는 세금감면, 


노력 없는 존경, 공격당하지 않을 권리, 어린이들을 세뇌할 권리 등에서 


무임승차하고 있다”라며 또한번 종교계를 향해 광속구를 내질렀다. 






그러자 발끈한 이가 나타났다. 그는 런던 소재의 러시아 전문 위성방송 ‘러시아 시간’의 사장 알렉산더 코로브코였다. 그는 BHA의 광고에 맞서 “신은 있다. 믿어라!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There is God. Believe! Don’t Worry. Enjoy your life!)”라고 적어서 런던을 운행하는 버스에 광고를 하였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네, 지구는 물론 우주의 시작과 끝도 밝혀버리겠네 하는 2009년에도 신의 유무를 둘러싼 과학과 종교의 맞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 논란의 중심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다윈의 해를 맞이하여 진화론으로 촉발된 신은 ‘있다! 없다?’의 시끄러운 떡밥의 역사를 한번 훑어보기로 하자.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그의 걸작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출판을 주저한 것은 흔히 알고있는 종교적 핍박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당시의 과학으론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16세기가 되자 과학사에는 그 유명한 코페르니쿠스가 짠하고 나타난다. 그는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태양이라는 지동설을 발표하면서 기독교가 그려놓은 세계관에 깽판을 놓기 시작한다. 17세기에는 과학의 본좌 갈릴레오가 다시한번 지동설로 쐐기를 박는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저 이론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지동설을 일반인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고 기독교 역시 심기가 불편한 정도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달랐다. 그의 주장은 관측을 토대로 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입 닥치고 버로우 타라는 협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양립할 수 없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은 이후 더욱 가열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편에서 둘은 동맹을 맺게 된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설계를 탐구함으로서 위대한 설계자와 그의 섭리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학과 종교의 허니문은 영국에서 더욱 튼튼한 기반을 확보한다. 





허니문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1802년 설계는 설계자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을 담은 윌리엄 팰리의 [자연신학, 혹은 자연 현상에서 모은 신의 존재와 속성에 관한 증거들 (Nature Theology, or Evidence of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the Deity Collected from the Appearances of Nature)]이 출간된다.




 







내용을 짧게 소개하자면.


“길 가다가 떨어진 시계를 보면 당연 시계공이 만들었겠구나 생각하는게 당연지사. 그렇다면 그런 시계보다 훨씬 복잡한 생물들을 보면 당연히 전능한 신이 만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느뇨~”




그렇다. 이 책은 현재 창조론의 버전업인 지적설계론의 토대로 쓰였으며 리차드 도킨스의 책 [눈먼 시계공]에서의 ‘시계공’은 바로 윌리엄 펠리의 그 시계공인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젊은 찰스 다윈은 물론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종교와 과학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상을 심어주었으며 현재 까지도 진화론을 공격하는 창조론자들의 대들보가 되고 있다. 
















영진공 self_fish













































피사의 사탑은 마(魔)의 지대일까?


 
 

굳이 과학에 관심이 있는 과학 꿈나무가 아니었더라도 어린 시절 한번쯤은 갈릴레이의 피사의 사탑 실험을 들어봤을 것이다.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무거운 물체일수록 속도가 빠르다고 설레발 친 것을 16세기에 갈릴레이가 ‘그게 아닐텐데!’ 하며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냅다 올라가 무거운 추와 가벼운 추(어떤 책에는 쇠공과 깃털이라고도 적혀있다!)를 동시에 놓자 지면에 동시에 떨어져 ‘모든 물체는 무게와 상관없이 동시에 떨어진다’라고 일갈하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뻑큐 한 방 먹였다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갈릴레이만 나오면 볶음밥에 딸려 나오는 계란 후라이 마냥 어김없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쥐똥만큼의 호기심이라도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주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피사의 사탑이 무슨 버뮤다 삼각지대도 아니고 어떤 어둠의 힘이 깃들여 있길래 무겁든 가볍든 동시에 떨어진단 말인가! 궁금증으로 삼일 밤낮을 고민하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피사의 사탑으로 날아가봤자 그 동네라고 우리 동네랑 다르지 않다. 우리의 생각대로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실험해 본들 동시에 떨어지지 않는다. 당 이야기는 갈릴레이의 제자이자 전기작가인 비비아니가 구라친 이야기가 지금까지 내려오며 정설이 된 것이다. 서로 다른 무게의 물체가 동시에 떨어지는 것은 진공 상태에서만 가능한 실험이다. 대기 중에서는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질량이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지게 된다.




그럼 왜 이런 거짓부렁이 아직도 버젓이 책에 실려 호기심 충만한 아이들의 원형탈모를 유발시고 가뜩이나 관광수지 적자인 나라에 부담을 주는 것일까? 진정 관광산업을 노린 이탈리아 정부의 음모일까?!




사실 단지 갈릴레이가 낙하 실험만 하지 않았을 뿐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체의 낙하 운동’에 대한 갈릴레이의 반박은 실제 있었고 과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쓰여진, 팔다리 다 잘라내고 몸통만 갖다 붙여 놓은, ‘동시에 떨어진다’로 끝나는 피사의 사탑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도 아니고 수박밭 거름 씹어먹으며 수박 먹었다고 기지개 하는 꼴이라 볼 수 있다. 그럼 제대로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의 내막을 알아보자.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 잘나가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색과 관찰을 통해 수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그가 제시한 대표적 이론 중에는 세상은 물, 불, 흙, 공기 이렇게 4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설이 있다. 원소들은 적당한 성질을 더하거나 빼면 다른 것으로 전환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물질은 이 4가지 원소의 비율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에서 보면 굉장히 환타지한 이론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명성에 힘입어 4원소설은 연금술과 플로지스톤론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며 오래도록 과학계의 발목을 제대로 잡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4원소설을 바탕으로 물체의 낙하운동에 대해서도 썰을 풀어놓는다. 


1. 물체의 자연적 운동은 그 내부에 존재하는 네 가지의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흙으로 구성된 물체는 불의 원소의 비율이 큰 물체보다 더 큰 자유낙하 속력을 갖으며 흙 본연의 장소인 지구와 우주의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더 빠르게 움직인다.




2.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 


 

낙하속도는 매질의 두께나 저항에 반비례한다. 진공은 저항이 0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의 물체의 낙하속도는 무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고 우기는 바람에 명성에서 후달렸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원자가 빈 공간에서 영구적 운동을 한다)은 물먹게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의 전제는 물체의 낙하속도를 무게의 측정값으로 생각했다는 거다. 즉 A, B의 물체 중 B의 낙하속도가 더 빠르다면 이는 B의 무게가 A의 무게보다 무겁다라는 뜻이다. 또한 그가 말하는 낙하 속도는 평균 속도에 가까운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이론은 이후 계속적으로 문제들이 제기되긴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값 앞에서 무시되었고 오래도록 보편적 진리로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6세기에 이르자 새로운 생각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기계주의 철학이라 일컫는 이 패밀리들은 아르키메데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과학적 유추와 실험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 패밀리의 대표 타자 중 한 명이 바로 갈릴레오이다.




그는 과학적 유추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운동을 반박한다.




① A는 v의 속도로 B는 v’의 속도로 떨어지려고 하기 때문에 A는 B를 더빨리 떨어지게 하려하고 B는 A를 더 늦게 떨어지게 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A+B)는 A보다 낙하속도가 느리다. v’ < V < v 

② (A+B)는 A와 B의 무게가 합쳐졌기 때문에 A보다 더 빨리 떨어져야 한다. v’ < v < V


==> 모순된 결과가 나오게 된다.

결국 v = v’ = V 이 되어야만 이 모순을 없앨 수 있다. 즉 모든 물체는 같은 비율로 낙하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갈릴레오의 가정의 전제는 물체는 모양과 속력에 독립적이며 오로지 무게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즉 100g의 물체가 100m에서 떨어지는 시간은 10g의 물체가 10m에서 떨어지는 시간과 같다처럼 말이다.)


이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서로 다른 물체는 서로 다른 (일정한) 값의 속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뿐이지 모든 물체가 같은 (일정한) 속력으로 떨어진다는 말과 같지 않다.




이와 같이 과학적 추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 ‘낙하실험’ 에피소드에서 추론과정은 엿 바꿔먹고 결론만(그마저도 틀린) 이야기 하는건 뭐 웃기지도 않고 남는 것도 없는 기껏해야 피사의 사탑 관광지 소개만 해주는 꼴인 거다. 

그러니 이제 없는 돈에 기껏 피사의 사탑에 놀러가서 저기가 모든 물체들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마의 지대인가 라며 증명사진이나 찍지말고 주위를 둘러보고 갈릴레이 낙하실험 운운하는 외국인들이 있으면 그 중에 참한 이를 골라 가까운 까페에 가서 차분히 위와 같이 이야기 해줘라. 바로 이때가 비로소 영어가 빛을 발하며(?) 진정한 글로벌 작업..아니 인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진정한 글로벌한 작업질의 일 순위는 지식이지 영어가 아니다. (이거 결론이 왜이래..)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