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나이츠”, 허허실실 농담 속에 숨기고 있는 의외로 만만찮은 공력


『상하이 나이츠』가 『상하이 눈』과 눈에 띄게 다른 것은 일단 두 편의 장르가 다르다는 점(첫편이 액션이라면 속편은 코미디다)과 『러시 아워』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성룡”의 비중이 확연하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상하이 나이츠』는 유치하고 불쾌한 수준의 오리엔털리즘과 백인우월주의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은 없다는 통설이 이미 여러 차례 뒤집힌 바 있지만, 『상하이 나이츠』 역시 당당히 이 반열에 올려야 할 영화다.

사실 <상하이> 시리즈는 단순히 액션 혹은 코미디로 분류하기가 힘든데, 이 시리즈가 서부영화의 틀에 많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 중 『상하이 눈』은 확실히 서부영화의 장르문법을 변형한 액션이었고, 『상하이 나이츠』는 서부영화의 특성을 거의 지워버리고 공간적 배경도 과감하게 옮겨버리긴 했지만, 전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여전히 불려나오는 특성이 있는데다 몇몇 장면은 배경이 서부가 아님에도 서부영화의 장면을 새로이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나이츠』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가 내지르는 뻔뻔스러운 패러디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지극히 유쾌한 유머감각 때문이다. 영화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성룡”의 연기에 잘 어울리게 패러디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주는 씬 구성하며,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밝힐 수는 없지만 몇몇 영국 / 미국의 문화영웅의 기원을 제멋대로 설명해버린다.

우리의 두 친구가 만나게 되는 약간 꺼벙한 경사와 거리의 부랑아 소년이 영화 내내 애칭으로 혹은 퍼스트네임으로만 불리다가 마침내 풀 네임이 언급되는 영화 막판이 되면, 관객의 입장에선 순간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그 문화영웅들의 기원이 실은 작고 나이든 동양인(“샹하이 키드”)이라니. 게다가 이것이 이 영화가 자행해버린 각종 고전 걸작 씬들의 패러디와 결합해 버리면 세계 영화사가 조작돼 버린다. 헐리웃 영화의 모든 특성이 실은 “샹하이 키드”와 “뺀질이 블러퍼”가 겪은 모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말이다.

속편을 먼저 봐서인지 “오웬 윌슨”의 ‘뺀질뺀질한 블러핑의 대가’로서의 코믹한 캐릭터와 “성룡”의 ‘진중하고 현명한’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대조되는 『상하이 나이츠』쪽이 내겐 더 익숙해서 『상하이 눈』은 다소 인물들이 흐리멍덩한 데다 “성룡”은 “오웬 윌슨”을 보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신기한 몸언어를 구사하는’ 구경거리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느낌. 하지만 『상하이 나이츠』에서 “성룡”은 오롯이 씬 전체를 이끌고 가며 “오웬 윌슨”과 찰떡궁합을 과시한다. 액션도 훨씬 아기자기하고, 이것이 ‘걸작씬 패러디’와 만들어내는 상승효과는 더욱 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상하이 나이츠』의 모든 즐거운 유머는 실은 『상하이 눈』에서 이미 씨앗이 뿌려진 것들이다. 예컨대 (밝힐 수 없다고 했던 문화영웅 중 한 명을 밝히는 결과가 되겠지만) 영화 속에서 “성룡”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은 ‘천왕’인데, 중국어 발음이 낯선 미국인들은 그를 처음부터 ‘”존 웨인”‘이라고 부른다. 위기에 처한 두 남자를 번번이 멋지게 구해주는 건 “성룡”이 어쩌다 결혼하게 된 인디언 부족의 여성이다. 문제는 『상하이 눈』이 이러한 재치를 씨앗만 뿌린 채 싹도 제대로 내지 못한 반면, 『상하이 나이츠』는 싹뿐 아니라 줄기를 키우고 열매까지 맺게 했다는 점. 게다가 대거 응용까지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백인’인 “오웬 윌슨”은 능글능글한 속물 약탈꾼에 사고뭉치의 자리로 확실히 이동하고, 전편에서 거의 바보 취급을 당했던 “성룡”의 캐릭터는 더없이 현명하면서도 깊은 문화적 유산을 가진 든든한 주인공의 자리를 꿰찬다.

강인한 여성이라는 설정을 그저 주인공들을 위기에서 빼내주는 기능적인 역할(그리고 시나리오의 난점 전담 해결사의 역할)로만 한정시켰던 『상하이 눈』과 달리, 『상하이 나이츠』는 맹활약을 펼치도록 든든한 무대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변화들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태생적 한계와 그러한 땅의 백인 미국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오만함에 대한 애교스러운 자조를 슬쩍 드러내면서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든다. 동양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깊고 풍부한 전통들에 대한 열린마음의 존중도 살짝. 이것들을, 정치적 공정함에 강박을 느끼는 영화들이 의례 갖게 되는 구색맞추기적 어거지나 훈계적 경직성을 거의 갖지 않은 채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상하이 나이츠』가 정말로 칭찬받아야 할 부분은, 이것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이니까 가장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 보자면, 미장센을 구성하는 방식에 있다. 아다시피 “성룡” 액션의 주안점은 “주변 소품 이용하기”와 “아슬아슬 곡예”이다. 악당을 멋지게 제압해버리는 “이소룡”과 달리 “성룡”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악당의 칼질이나 주먹을 피하며 애처로울 정도로 몸을 혹사한다.

『상하이 나이츠』의 액션씬은, “성룡” 액션의 핵심을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룡” 액션의 특징이 20년대 미국 무성영화, 특히 “버스터 키튼” 영화의 특징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훌륭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것을 최대한 드러내도록 구성하고 있다. 카메라는 “성룡” 액션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면서도 매끈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편집의 리듬 역시 적재적소에서 끊고 잇는 노련한 솜씨를 과시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 무수한 고전들과 다른 유명한 영화들(심지어 <상하이> 시리즈와 비교하기 좋은 『러시 아워』 포함하여)에서 따온 씬들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 나이츠』가 인용하고 있는 영화들은 사실 imdb.com에도 30편 가량이 올라와 있는데, 영화광이 아닌 일반관객들이라도 이 영화가 <싱잉 인 더 레인(『사랑은 비를 타고』)>을 시침 뚝 떼고 패러디하는 장면 같은 걸 보다보면 그야말로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노골적이건 은근하건 이러한 인용을 영화 전체 분위기에서 튀지 않고 매끈하게, 너무나 잘 어울리게 변형해가며 수행하고 있는 이 영화는, 『리쎌 웨폰』 시리즈 이후 사라진 것 같았던 버디영화의 낡은 공식, 즉 까불이 사고뭉치와 뒷수습 전담반 커플이라는 설정이 여전히 강력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종래의 영화들의 온갖 장르와 장르문법을 뒤섞고 패러디하는 하이브리드(‘잡종’이라고 쓰면 왠지 비하의 느낌이…;;)이면서도 가장 고전적인 영화전통들을 한 편의 영화속에서 아름답고 통일성있게 되살려내는 괴상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 엔딩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웃겨주시는 섬세한 감독의 센스는, “성룡” 주연의 영화에 언제나 따라붙는 ‘NG모음 보너스’를 더욱 즐겁게 보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며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평할 때, 우리는 이 잡종 패러디 코믹 액션 영화가 실은 대단히 흥미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앞에서도 얘기했듯 그 어느 미국 감독들보다도 “성룡” 액션의 핵심을 잘 꿰뚫고 있고, 게다가 수많은 ‘다른 영화 인용’을 통해 “성룡”액션과 고전영화의 유명한 씬들을 접합함으로써, 영화 내적으로는 모든 영화적 중요한 기법과 전통이 실은 ‘상하이 키드’의 모험과 활약에서 기원하였다고 구라를 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영화 바깥으로 오면 거꾸로 “성룡”액션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어떤 영화적 전통과 기법에서 유래하였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며 분석하는 아주 훌륭한 텍스트가 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로 쓴 장르분석이자 배우론이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의 의도가 ‘거짓말 한번 거하게 쳐보자’는 아주 단순한 것에 불과했을지라도, 그 결과는 그들이 의도했든 안 했든 이 영화는 또 한 편의 “성룡”액션 텍스트이자 한편의 매끈한 메타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영진공 노바리

 

“사랑은 비를 타고”, 고전 뮤지컬이자 멋진 메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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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 차림의 세 남녀, 신나게 춤을 추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해프닝을 배우인 세 남녀의 갈등과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고전 뮤지컬이다. 또한 한편으로, 그 전환기에 있어 이전 영화에서는 결코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사운드’가 어떻게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는가, 그럼에도 그 ‘사운드’ 역시 영화의 다른 요소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기만적인가(즉 트릭으로 관객을 속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메타-영화, 즉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은 당대 최고의 스타 커플인 돈 록우드(진 켈리)와 리나 라먼(진 헤이건) 주연의 새로운 영화 시사회장이다. 돈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최고급 교육을 받았고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는 공연을 해왔으며, 덕분에 어딜 가나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고 급기야 영화사에서도 그를 ‘모셔갔다’고 소회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때 스크린에 흐르는 화면은 돈의 발언과는 정반대되는 광경들이다. 그는 단짝친구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코스모(도널드 오코너)와 어른들의 담배연기가 뿌옇게 날리는 당구장에서 공연을 시작해 그리고 각종 시골의 가난한 무대를 떠돌았던 싸구려 댄서였고, 그가 스타가 된 기회를 잡은 것 역시 기절해서 실려나간 스턴트맨 대신 땜빵 스턴트맨 역할을 처절할 정도로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돌은 일차적으로 관객들에게 아이러니에 기반한 웃음을 안겨주기 위한 코믹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앞으로 다루게 될 내용, 즉 이미지 중심이었던 무성영화에서 사운드가 결합하는 유성영화로 넘어가면서 영화란 것이 어떤 의미를 새로이 갖게 되는가, 아울러 영화 안에서 이미지와 사운드가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는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이미지와 사운드 간 모순은 이후 다시 한번 반복된다. 새 (무성)영화를 촬영하는 촬영장에서 돈 록우드는 캐시(데비 레이놀즈)가 해고당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리나 라먼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돈 록우드와 리나 라먼은 카메라 앞에서 다정한 연인 연기를 펼치면서 실제로는 격렬한 말다툼을 벌인다.

바야흐로 워너사의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가 개봉돼 큰 성공을 거두고, 돈 록우드와 리나 라먼의 새 영화도 급작스럽게 유성영화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목소리가 워낙 깨는 하이톤인 데다 발음도 후지고 상스러운 리나 라먼의 목소리 연기가 문제가 된다. 강력하게 스타파워를 행사하고 있는 데다 안하무인 공주병인 리나 라먼은 돈 록우드와 사랑하는 사이게 된 캐시를 구박하고 쫓아내는 한편, 형편없고 성의없는 목소리 연기로 스튜디오에 막대한 고민을 안겨주면서도 그 해결에 있어서는 별다른 대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완성된 영화의 첫 시사회에서 영화가 그토록 혹평을 받았던 것은 리나 라먼의 형편없는 목소리와 영화 전체의 어설픈 사운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의 스타일이 유성영화에 걸맞지 않은, 사운드만 있을 뿐 무성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즉 사운드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 그에 걸맞는 새로운 영화문법을 선보이지 못하면서 이미지와 사운드 간 어마어마한 괴리를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사운드 사고가 나면서 영화는 더욱 엉망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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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게 되는 세 사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들은 이미 찍어놓은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하는 한편 리나 라먼의 목소리 대역으로 캐시를 투입하는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 그러니까 무수한 영화의 장르에 있어 코미디든 드라마든 액션 어드벤처든 호러든 시대극이든, 모든 장르들이 무성영화 시절에도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춤과 함께 음악을 기본으로 하는 이 뮤지컬이란 장르만큼은 유성영화의 발명에 힘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실 영화사상 첫 유성영화라 일컬어지는 <재즈싱어>가 음악영화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무성영화 시절에 음악은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스크린 바깥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수적 도구에 불과했지만, 유성영화가 도래하면서야 음악은 비로소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사운드의 일부로서 비로소 영화의 스토리와 플롯 및 캐릭터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영화의 주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캐시가 리나의 목소리를 대신하게 되는 과정에서 또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운드의 제작의 기술 중 ‘동시녹음’, ‘더빙’과 ‘후시녹음’ 기술의 발전상이다. 지금이야 많은 영화들이 커다란 붐마이크를 대동한 붐맨의 활약과 함께 동시녹음으로 영화를 촬영하기 마련이고, 한국의 영화인들은 대체로 동시녹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제대로 만드는 것이란 편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헐리웃에서는 (의외로) 지금도 후시녹음이 적지 않은 비율로 채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뮤지컬을 기본으로 하는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들은 연기하는 배우와 노래 더빙을 해주는 가수-배우의 분리가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한국은 물론 헐리웃에서도 다른 가수에 의한 노래 더빙은 그렇게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부른 것이 여전히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고.) 무성영화 시절, 카메라가 이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마자 카메라 이동과 동선에 관한 무수한 영화기술들이 단기간에 쏟아졌듯, 사운드 역시 일단 유성영화라는 게 가능하다라는 사실이 발견되자마자 다양한 사운드 제작 기술이 우후죽순 발명되며 영화에 적용되었던 것. <사랑은 비를 타고>는 이것을 영화에서 내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마침내 완성된 영화의 시사회 파티날 리나의 목소리가 실은 다른 배우에 의해 더빙된 것이라는 사실이 대중 앞에서 폭로될 때, 이 장면은 파렴치한 리나의 악행을 고발하는 장면일 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을 관객 대중에게 영화 사운드의 기술 트릭이 공개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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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빙 및 후시녹음의 기술이 대중에게 소개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첫 유성영화가 나온지 25년만에 만들어진 <사랑은 비를 타고>는 그 25년간 영화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존재 스스로가 증명하며 사운드의 도래를 예찬하는 영화다. 사실 유성영화의 도래는 수많은 영화감독과 영화배우를 실업자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본질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일부 영화감독들의 격렬한 저항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버스터 키튼 역시 유성영화의 도래와 함께 완전히 퇴출돼버린 감독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랑은 비를 타고>가 보여주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뮤지컬의 세계는, 마치 “거봐, 유성영화는 이런 즐거움을 주잖아.”라며 으시대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사운드와 영화의 힘을 최대한 살리며 아주 아름답게 연출된 이 영화는, 실제로는 노래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노래에 맞춰 스토리가 만들어졌을 만큼 음악과 춤이 먼저였던 영화다. 유성영화 시대에 기득권을 잃고 밀려날 수밖에 없는 목소리 나쁜 스타의 비애가 아주 조금은 드러날 법도 하건만, 리나가 그저 제멋대로의 성격으로 악당 노릇을 하며 희화화만 되는 것도 이 영화가 ‘유성영화 예찬’의 입장을 강하게 견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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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史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즉 비가 오는 거리에서 진 켈리가 우산을 든 채 춤을 추는 장면은 단 4컷으로 씬이 구성되는 동안 유려하고 완숙한 카메라 동선과 앵글을 선보이며 더없이 아름다운 비주얼을 선사한다. 블리치바이패스 같은 기술이 발명되기 훨씬 전인 이 시절, 빗물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스탠리 도넌이 사용한 방법은 (imdb의 trivia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의하면) 무려 물에 우유를 섞는 것이었다고도 하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에 새로 추가된 사운드라는 기술을 예찬하고는 있지만, 그 유성영화라는 것이 그저 사운드가 이미지와 병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변증법적 투쟁을 통해 합으로 나아감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나온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의 모순 장면도 실은 이 ‘합’의 힘을 강조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진공 노바리

ps. 탭댄스 배우고 싶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