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창, [GP506] – “사회적 메시지를 위해 호러의 공식을 이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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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아버지와 죽음의 위기에 몰린 아이들.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경계초소인 GP 506에 전 소대 몰살사건이 벌어진다. 진상을 조사할 노수사관(천호진)을 위시해 수색대가 들어가서 목격한 것은 내무반 내에 널부러진 피투성이 시체들과,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광기의 눈을 번득이며 도끼를 들고있는 강진원 상병(이영훈)의 모습. 노수사관은 곧 수사를 시작하고 총 20구여야 할 시체가 19구밖에 되지 않음을 알아채는데, 수색대원들은 뜻밖에 패닉 상태에 빠진 채 생존해있는 GP장 유중위(조현재)를 발견한다. 계속해서 초소 밖을 나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유중위는 도무지 입을 열 생각을 안 하고, 용의자인 강상병은 의식불명 상태다. 폭우 때문에 길이 막혀 수색대원들마저 경계초소 안에 고립된 와중 이들은 괴이한 사건들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군대 안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미스터리 형식으로 시작해 호러영화의 문법을 차용한다는 점뿐 아니라, 영화 안에서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영화가 위치하고 있는 외적 맥락 때문에 결국 사회적,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는 메시지를 담고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GP 506>은 <알포인트>보다 호러의 외양은 더 많이 내되(피와 시체들의 향연!) 호러로서의 구성은 느슨하며, 그렇다고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꽉 짜인 플롯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대신 이 영화는 ‘군대’를 둘러싼 보다 비극적인 정조를 강화한다.


대체로 평가가 높았던 <알포인트>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있는데, <GP 506>을 통해 조금 더 확인한 부분이 있다면 공수창 감독이 호러장르의 문법을 사용하는 방식은 호러 본연의 코드를 익숙하게 사용한다기보다 저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비유의 차원에서 호러의 공식을 이식해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호러영화들이 그 어떤 다른 장르의 영화들보다 당대 대중들의 무의식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통찰해볼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지만, 장르영화 안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회적 의미를 담는 것과 특정한 사회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장르의 공식을 가져가는 건 영화제작의 방향이 정반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알포인트> 역시 분명 후자였음에도 미스터리 – 호러의 측면에서 구조가 탄탄했기에 전자로 오인되었다. 그러나 <GP 506>은 명백히 후자이고, 감독은 굳이 호러의 장르문법에 그렇게 얽매여있지도 않다. 호러영화의 팬들에서 이 영화에 대해 악평이 나오는 건 당연한 것이, 감독이 ‘그 설정’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야기를 위해 억지로 끌어온 듯한, 낭비되고 있는 듯한 측면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른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굳이 호러영화의 틀에서 이 영화를 형편없다고 평하는 것 역시 핀트가 살짝 어긋났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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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호진 님이 주인공으로 나오셨어!!!! 꺄악!!!!


굳이 GP 506 초소가 아니더라도, ‘군대’라는 것이 한창 호르몬 왕성하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야 할 청춘들을 세상과 고립시킨 채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군대라는 집단의 그 폐쇄성과 배타성은 굳이 GP 506 초소가 아니더라도 외박과 휴가가 자주 보장되는 부대라 해도 지워지지 않는 특성이다. 이것을 좀더 강조하고자 선택된 공간이 GP 506이라는 초소인 셈인데, 이곳에서 비록 군 장성의 아들로 어릴 적부터 군인의 정서로 자라왔다고는 하나 여전히 어린 청춘에 불과한 유중위의 손에 다른 20명의 운명이 맡겨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인지, 어른들이 지고 어른들이 해결해야 할 짐이 어린 청년의 어깨에 얼마나 과도한 무게로 억지로 지어져 있는 것인지가 영화 속에 명확히 드러난다. 아울러 이 모든 사태를 결국 자기희생이라는 방식을 통해 해결하려 한 강진원 상병의 해법 역시 아이가 지고가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자 너무나 안쓰러운 결단이다. 잘못된 역사를 끊어내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기에 강진원 상병은 너무 젊고 앳되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사건을 수사하러 온 노수사관이 결국 그런 식의 엔딩을 내는 것을, 나는 어른 세대가 자신들 세대에서 발생한 비극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읽었다. 그가 이미 죽어 나자빠진 아이들, 지금은 살아있으나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할 아이들, 그리고 그 무거운 짐을 혼자 감당하려 한 강진원 상병에게 느꼈을 슬픔과 고통과 죄책감이 어떤 것이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기자시사 후 간담회에서 천호진 씨가 ‘웃음소리’가 나는 객석을 향해 왜 그리 날카롭게 반응했는지도.) 지나간 역사에 대해 자기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책임을 지려는 어른이 등장하는 흔치 않은 한국영화가 또 한 편 추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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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긴 하지만 어딘가 좀 뻣뻣한.


그럼에도 이 영화의 엔딩은 석연치 않은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괴질은 손쉽게 전염되고 이곳은 외따로 고립된 곳이지만 과연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병의 전염만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 책임을 지려는 어른이 등장한 것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과연 그런 ‘자폭’만이 유일한 해결방식이었는가에 대해선 의문의 소지가 있다. 내게는 이 엔딩이 한편으로는 책임을 지는 것인 반면, 또 한편으로는 지독한 자포자기와 패배주의의 방식으로 읽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 다 죽어버리자”라는 건 오히려 가장 손쉬운 해법이기도 하지 않는가. 강진원의 입장에선 젊은 혈기에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게 어쩌면 당연했겠지만, 노수사관의 입장에서 그런 결론을 내리는 건 군당국과 고위 장성들, 나아가 그들이 속한 이 사회 시스템 전체에 대한 처절한 불신이 먼저 읽히고, 어쩌면 바깥세상에서 괴질의 연구에 뒤따른 치료의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던 다른 아이들에 대해 애초부터 기회를 차단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읽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으로 굴었던 의무병이나 다른 수색대원들의 행동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기적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할 수 없고, 당해서도 안 된다.


또한 이 영화가 요구하는 ‘어른이 책임을 지고 과거의, 역사의 과오를 끊어내야 한다’는 명제의 그 ‘어른’이, 공수창 감독이 속한 세대가 아닌 그 윗세대라는 점도 찜찜한 맛을 더한다. 이 사회에서 일반적인 386 세대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태도 중 하나가 자신의 윗세대에겐 책임을 요구하고 불평하며 아랫세대에겐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니었던가. 바로 이 한계가, 영화를 보고 한편으로 젊은 아이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가는 것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물의 뒷맛이 그닥 개운치 않았던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고 있는 에너지, 그리고 이 영화가 어쨌든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억지로 청춘시기에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아이들의 비극의 묘사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홀대받거나 함부로 폄훼당할 만한 영화는 분명 아니다. 전작인 <알포인트>에서보다 더 직설적이어서 재미없어진 면과 장르영화의 공식이 잘못 사용된 면이 분명 있지만, <GP 506>은 <알포인트>보다 전반적으로 세련되었으며 또 한편으로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사람들이 입밖에 내기 꺼려하는 문제를 과감하게 지적하고 비판한 용기, 나아가 이를 ‘그림’의 측면에서 꽤 인상적으로 펼쳐놓은 미학적 성취가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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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에 이어 메이저 영화로도 진출한 이영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영진공 노바리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때는 모든 것이 반짝였다네”

 이문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때는 모든 것이 반짝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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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쿨 러닝 Cool Runnings>이란 영화가 막 시작했다. 이미 몇 번 봤지만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한 번 더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기로 했다. <쿨 러닝>은 서울올림픽 100m 달리기 부문에 출전하려던 자메이카의 ‘데리스’란 육상선수가, 대표 선수 선발전에서 동료 선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어이없이 탈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담하고 있던 데리스가 우연히 단거리 선수가 동계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상 유래없던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을 구성, 같은 해 겨울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

영화 도입부의 배경이 된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일. 인생에서 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원짜리 아이스크림보다 적었던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개막식 안 보고 어디 가니” 란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슬람 성원 앞뜰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적 서울 한남동에 살았던 나는 그렇게 종종 인근 이태원에 자리한 이슬람 성원에 놀러 가곤 했다. 종교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때였지만, 이슬람 성원의 분위기는 인근 교회 놀이터와는 오묘하게 달랐다.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엄숙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외감보다는 놀고싶은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슬금슬금 고무줄놀이를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 외치며 키득거리곤 했다. 검은 피부의 이슬람 신도들은 그곳이 그들에게 무척 성스러운 곳이었을 텐데도 까부는 우리 옆을 말없이 지나치곤 했다. 나는 어쩐지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태원과 한남동엔 온갖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척 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와 거리에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 더 신기할 정도였다. 부모님은 가끔 이런 대화를 하셨다.

 “공사 중인 옆집엔 미국인들이 들어온다네. 그런데 지금 달아 놓은 대문 말이야. 그게 한 짝에 삼백만 원 짜리라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끼어들었다.

 “왜 그렇게 비싼데요?”

 “주석으로 만든 대문이거든. 그게 비싼 재료라 그렇지. 저 사람들은 돈이 많아. 하지만 집은 저 사람들 것이 아니야. 세를 들어 살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집을 안 사요?”

 “외국인은 우리나라 땅을 살 수가 없거든. 법이 그래.”

부모님과 대화하며 참 이상한 법이라고 대꾸하면서도, 나는 삼백만 원 짜리 대문을 달 수 있는 이들 수십 명이 모이면 우리 나라를 통째로 사 버릴 수도 있어서 그런 것이려니 짐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침에 눈을 뜨면 밤사이 누가 대문을 훔쳐 갔다고 법석을 떠는 미국인 가족을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결국 동네를 떠날 때까지 그런 광경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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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단 대문의 가격 차이만큼 거리가 느껴졌던 미국인들. 뒷집에 살던 내 또래 백인 아이들은 가든 파티할 때마다 왁자지껄 떠들었고, 고기 냄새와 함께 우리 집 담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동네의 또 다른 백인 아이들은 골목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듣는 영어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게 욕이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그 아이들이 괘씸해 눈을 부라리며 다가서면, 지나가던 모르는 아이들까지 말리곤 했다.

 “쟤네들 잘못 건드리면 미군들이 총 들고 달려온대.”

이런 말을 들으면 별 수 없이 분을 삭이며 돌아서야 했다. 너무 어려 몇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 언젠가 나는 주한미군 부대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골목대장을 도맡던 ‘선민’이란 남자아이의 지휘 아래 꼬맹이 네다섯 명이 일행이었다. 일제히 수풀을 헤치며 포복자세로 기어가던 우리는 “여기부턴 미군 부대야. 걸리면 모두 총에 맞으니까 조심해”라는 선민이의 말에 얼마나 숨을 죽였던지. 미군의 눈에 띄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벌벌 떨며 기어다녔던 그때는, 내가 기억하는 한 죽는 것이 최초로 두려웠던 순간이다.

학교 근처에서 ‘뽑기’와 쥐포를 팔며 아이들에게 트램플린
(넓은 천 가장자리에 용수철을 달아 고정하여 뛰어노는 놀이기구. 일명 ‘덤블링’, ‘방방’)을 태워주던 아줌마는, 줄 선 아이들이 많을 때는 한 사람이 십 분 이상 못 타게 했지만 백인 아이들이 삼십 분을 타는 것은 내버려 두셨다. 항의하면 아줌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네 말리면… 말도 마라. 저번엔 떼로 몰려와서 두들기고 난리였다.”

아이들은 거들었다.

 “그래. 그러다 미군들이 오면 어떡해.”

그러면서 매년 할로윈데이가 오면, 아이들은 외국인 아파트를 돌며 사탕을 받아왔다. 동네 가게에서 파는 스카치캔디나 자두맛사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희한하고 맛있는 사탕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눠 주는 그 사탕을 한두 개씩 받아먹긴 하면서도, 내 손으로 직접 사탕을 달라고 손 내미는 짓은 죽어도 안 해, 다짐했다.

살고 있는 인종만큼이나 인간 유형도 다양했다. 저녁 무렵 엄마 손을 잡고 동네 미용실에 가면 다 큰 여자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있었다.

 “엄마, 저 언니들 여기서 빨가벗는다.”
 “언니가 아니라 남자들이야.”

그들은 이태원 어느 가게의 쇼에 나갈 준비를 하는 트랜스젠더들이었다.

한옥형인 우리집 별채에 세 들어 살던 아줌마는 진한 화장에 미스코리아 파마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 아줌마가 양색시라고 했다. 미군의 색시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불행히도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해 몸을 버려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줌마가 휴지통에 버린 작은 가위를 학교에 들고 가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가위를 가져왔다”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몇 년이 더 지나서야 그게 손톱을 다듬는 가위라는 것을 알았다. 아줌마는 나중에 미군이 아줌마를 버리고 한국을 떠난 후 일본인의 처가 되어 일본으로 날아가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몇 번 보내왔다.


*

내가 중학생이 되어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며 한남동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막연한 호감을 가졌던 아랍인들의 말 대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사를 갔지만 전학을 하지는 않았기에,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출발해 한남동과 이태원을 거치는 버스 코스를 걸어 집으로 오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이태원의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무성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도, 오래된 상점 간판도, 노점상의 물건들도, 사람들의 머리카락도…. 나는 그 광경이 무척 마음에 들어, 마침내 이태원을 벗어나 삼각지 국방부 앞 너른 길을 지날 때면 들뜬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란 노래는 어쩜 이렇게 이 상황과 잘 어울리는 걸까 감탄하면서.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 월간 <논> 2006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작곡가 故 이영훈님의 명복을 빕니다.

영진공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