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때는 모든 것이 반짝였다네”

 이문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때는 모든 것이 반짝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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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쿨 러닝 Cool Runnings>이란 영화가 막 시작했다. 이미 몇 번 봤지만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한 번 더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기로 했다. <쿨 러닝>은 서울올림픽 100m 달리기 부문에 출전하려던 자메이카의 ‘데리스’란 육상선수가, 대표 선수 선발전에서 동료 선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어이없이 탈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낙담하고 있던 데리스가 우연히 단거리 선수가 동계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상 유래없던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을 구성, 같은 해 겨울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

영화 도입부의 배경이 된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일. 인생에서 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원짜리 아이스크림보다 적었던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개막식 안 보고 어디 가니” 란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으로 향했다. 이슬람 성원 앞뜰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적 서울 한남동에 살았던 나는 그렇게 종종 인근 이태원에 자리한 이슬람 성원에 놀러 가곤 했다. 종교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때였지만, 이슬람 성원의 분위기는 인근 교회 놀이터와는 오묘하게 달랐다.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엄숙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외감보다는 놀고싶은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슬금슬금 고무줄놀이를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 외치며 키득거리곤 했다. 검은 피부의 이슬람 신도들은 그곳이 그들에게 무척 성스러운 곳이었을 텐데도 까부는 우리 옆을 말없이 지나치곤 했다. 나는 어쩐지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태원과 한남동엔 온갖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척 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와 거리에 돌아다니는 외국인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 더 신기할 정도였다. 부모님은 가끔 이런 대화를 하셨다.

 “공사 중인 옆집엔 미국인들이 들어온다네. 그런데 지금 달아 놓은 대문 말이야. 그게 한 짝에 삼백만 원 짜리라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끼어들었다.

 “왜 그렇게 비싼데요?”

 “주석으로 만든 대문이거든. 그게 비싼 재료라 그렇지. 저 사람들은 돈이 많아. 하지만 집은 저 사람들 것이 아니야. 세를 들어 살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집을 안 사요?”

 “외국인은 우리나라 땅을 살 수가 없거든. 법이 그래.”

부모님과 대화하며 참 이상한 법이라고 대꾸하면서도, 나는 삼백만 원 짜리 대문을 달 수 있는 이들 수십 명이 모이면 우리 나라를 통째로 사 버릴 수도 있어서 그런 것이려니 짐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침에 눈을 뜨면 밤사이 누가 대문을 훔쳐 갔다고 법석을 떠는 미국인 가족을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결국 동네를 떠날 때까지 그런 광경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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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단 대문의 가격 차이만큼 거리가 느껴졌던 미국인들. 뒷집에 살던 내 또래 백인 아이들은 가든 파티할 때마다 왁자지껄 떠들었고, 고기 냄새와 함께 우리 집 담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동네의 또 다른 백인 아이들은 골목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듣는 영어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게 욕이라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그 아이들이 괘씸해 눈을 부라리며 다가서면, 지나가던 모르는 아이들까지 말리곤 했다.

 “쟤네들 잘못 건드리면 미군들이 총 들고 달려온대.”

이런 말을 들으면 별 수 없이 분을 삭이며 돌아서야 했다. 너무 어려 몇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 언젠가 나는 주한미군 부대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골목대장을 도맡던 ‘선민’이란 남자아이의 지휘 아래 꼬맹이 네다섯 명이 일행이었다. 일제히 수풀을 헤치며 포복자세로 기어가던 우리는 “여기부턴 미군 부대야. 걸리면 모두 총에 맞으니까 조심해”라는 선민이의 말에 얼마나 숨을 죽였던지. 미군의 눈에 띄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벌벌 떨며 기어다녔던 그때는, 내가 기억하는 한 죽는 것이 최초로 두려웠던 순간이다.

학교 근처에서 ‘뽑기’와 쥐포를 팔며 아이들에게 트램플린
(넓은 천 가장자리에 용수철을 달아 고정하여 뛰어노는 놀이기구. 일명 ‘덤블링’, ‘방방’)을 태워주던 아줌마는, 줄 선 아이들이 많을 때는 한 사람이 십 분 이상 못 타게 했지만 백인 아이들이 삼십 분을 타는 것은 내버려 두셨다. 항의하면 아줌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네 말리면… 말도 마라. 저번엔 떼로 몰려와서 두들기고 난리였다.”

아이들은 거들었다.

 “그래. 그러다 미군들이 오면 어떡해.”

그러면서 매년 할로윈데이가 오면, 아이들은 외국인 아파트를 돌며 사탕을 받아왔다. 동네 가게에서 파는 스카치캔디나 자두맛사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희한하고 맛있는 사탕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눠 주는 그 사탕을 한두 개씩 받아먹긴 하면서도, 내 손으로 직접 사탕을 달라고 손 내미는 짓은 죽어도 안 해, 다짐했다.

살고 있는 인종만큼이나 인간 유형도 다양했다. 저녁 무렵 엄마 손을 잡고 동네 미용실에 가면 다 큰 여자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있었다.

 “엄마, 저 언니들 여기서 빨가벗는다.”
 “언니가 아니라 남자들이야.”

그들은 이태원 어느 가게의 쇼에 나갈 준비를 하는 트랜스젠더들이었다.

한옥형인 우리집 별채에 세 들어 살던 아줌마는 진한 화장에 미스코리아 파마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 아줌마가 양색시라고 했다. 미군의 색시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불행히도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해 몸을 버려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줌마가 휴지통에 버린 작은 가위를 학교에 들고 가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가위를 가져왔다”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몇 년이 더 지나서야 그게 손톱을 다듬는 가위라는 것을 알았다. 아줌마는 나중에 미군이 아줌마를 버리고 한국을 떠난 후 일본인의 처가 되어 일본으로 날아가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몇 번 보내왔다.


*

내가 중학생이 되어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며 한남동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막연한 호감을 가졌던 아랍인들의 말 대신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사를 갔지만 전학을 하지는 않았기에,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출발해 한남동과 이태원을 거치는 버스 코스를 걸어 집으로 오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이태원의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무성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도, 오래된 상점 간판도, 노점상의 물건들도, 사람들의 머리카락도…. 나는 그 광경이 무척 마음에 들어, 마침내 이태원을 벗어나 삼각지 국방부 앞 너른 길을 지날 때면 들뜬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란 노래는 어쩜 이렇게 이 상황과 잘 어울리는 걸까 감탄하면서.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여위어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 월간 <논> 2006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작곡가 故 이영훈님의 명복을 빕니다.

영진공 도대체

<화려한 휴가>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진실과 사실의 차이

<화려한 휴가>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실화가 특기할만한 역사적 소재임에도 영화속에서 그 역사적 소재는 단지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래서 역사는 우리네 평범한 보통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철학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한 그 철학적 근거 때문인지, 한두명의 주연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다양한 인간군상들에 의해-비록 만족스러울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하지만- 영화가 완성되어지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나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화려한 휴가>를 보는 내내 나는 연신 불편한 자리를 고쳐 앉고 지루하고 따분한 나머지 잠시 딴생각에 빠져드는가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의 생뚱맞은 대사에 어이없음의 실소를 픽픽거리고 마침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시민군과 공수부대의 도청전투씬에 이르러서는 깜박 졸기까지 한 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면서 나는 유쾌하게 박장대소하다가 불현듯 솟구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는가 하면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하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가슴속에서 공명하는 감동의 여운을 남김없이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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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의 가장 큰 패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5.18 광주를, 비록 제작진은 정반대로 의도하였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어디 먼나라 과거의 가슴아픈 비극쯤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여졌다는 점이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5.18 광주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속이 뻔히 들여다 뵈는 짓거리이긴 하지만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5.18묘역을 방문하고, 사람들은 5.18 광주가 독재에 의해 짓밟힌 민주화의 정신이며 우리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5.18 광주의 진실은 아직도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음에도 그 희생과 고통은 온전히 피해자들이 짐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때의 가해자들이 그 희생과 고통을 똑같이 짊어지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행위에 책임을 지고 그에 따르는 진심어린 사죄와 경우에 따라서는 응당 치러야 할 법적, 사회적, 도덕적 처분을 달게 받음으로써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해방 직후부터 시작된 수많은 피해자들의 눈물과 한숨 생까기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듯, 우리는 5.18 광주의 진실을 여전히 모른다. 그래서 5.18 광주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5.18 광주를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의 진실에 어떤 시각으로든 접근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는 5.18 광주의 ‘진실’을 말하려 하기 보다는 5.18 광주의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진실’이 실종된 영화는, 사람의 두피를 도끼로 벗겨내는 게 취미인 절대악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표현이 더 올바르겠지만-들과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 수 밖에 없는 절대선 백인들 간의 서부 활극처럼, 명백한 선악의 대립구도속에서 액숑과 써수펜수와 총격전이 난무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차라리 액숑영화의 본분을 지켜 살떨리는 써수펜수를 쭈-욱 유지시켰으면 그나마 봐줄만 하련만, 어줍잖은 유머와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최루성 신파멜로까지 우걱우걱 낑궈놓았으니 어느새 영화는 황량하고 거친 산 위에 올라 종잡을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린다.


“감동적이지?”


거금 8천원이 아까와서 무거워진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치켜뜨며 저항했지만, 어느새 깜박 졸고 말았던 나는 퍼뜩 놀라 얼결에 대답한다.


“딸꾹-“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감동적인 건 삶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은 감독 임순례가 자신의 전작들에서 끊임없이 천착했던 것 처럼, 삶이란 피폐하고 남루하며 고역스럽고 불가항력적으로 악순환되는 것이고, 감당키 힘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우리는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침묵하다가도 바락바락 악도 쓰며 아무래도 헤어날 길이 없을 것 같은 수렁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그 삶의 어딘가에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희망이, 지금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도록 우리를 지탱해 주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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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는 그 ‘진실’을 전작들에서 보다는 훨씬 더 경쾌하고 알기 쉬운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비록 상업성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후퇴했을 것이라 의심되는 부분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지만, 듣자니 경제적으로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도-비흥행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은 그였으니 오죽하겠는가- 자신의 색깔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라 짐작되는 부분 역시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역전에 동점, 재역전에 다시 동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2차 연장전까지 치렀으나 결국 승부 던지기로 은메달에 머물렀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이라는 드라마틱한 소재로 재구성되었기에 스포츠영화가 빠지기 쉬운 함정인 승리만이 감동을 준다는 승리지상주의를 교묘하게 벗어나면서도, 중요한 것은 승부나 그 승부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승부에 임하기까지의 역경과 고난, 그리고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는 자세라는 전형적이지만 감동적인 메시지를 준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전형적이지만 감동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건, 고단하고 짜증스러우며 도대체가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삶 속에서 휘청거리며 걷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영진공 백운수

[가사 검열] Oops, I Did It Again

요즘 대통령 당선자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래서 오늘의 가사 검열로 준비해 보았는데,

애초 Britney Spears가 불렀던 “Oops, I Did It Again”을,
Max Raabe가 다시 부른 버전으로 들어보시라.

그럼 모두들 즐감~ ^.^

Oops, I Did It Again
By Max Raabe & Palast Orchester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I think I did it again
I made you believe we’re more than just friends
Oh baby
It might seem like a crush
But it doesn’t mean that I’m serious
‘Cause to lose all my senses
That is just so typically me
Oh baby, baby

내가 또 그런 거야?
우리 사이가,
뭔가 특별하다고 믿게 한 거야?
이런, 이런,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그냥 그래 보이는 거야,
뭘 하나 하면 확 미쳐버리는 게,
내 성격이라서 그래,
쯧, 쯧, 쯧,

OOPS I did it again
I played with your heart
And got lost in the game(oh baby baby)
OOPS you think i’m in love,
That i’m sent from above
I’m not that innocent

웁스, 내가 또 그랬나봐,
당신의 마음을 놀렸나봐,
괜히 헛수고 하게 만들었어 (쯧쯧 …)
웁스, 당신이 날 좋아하게 만들었어,
날 하늘이 내려 준 사람이라 믿겠지만,
난 그렇게 순결한 사람이 아니야,

You see my problem is this
I’m dreaming away
Wishing that heroes, they truly exist
I cry, watching the days
Can’t you see I’m a fool in so many ways
But to lose all my senses
That is just so typically me
Baby, oh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항상 꿈 속에 살지,
히어로가 있다고 믿는단 말야,
속절없이 지나는 날들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난 정말 여러가지로 부족한 사람이란 걸 모르겠니?
어떤 일에 꽂히면 정신을 놓아 버리는 게,
그냥 내 성격이야,
풋, 미안,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yeah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아싸,

OOPS I did it again
I played with your heart
And got lost in the game(oh baby baby)
OOPS you think i’m in love,
That i’m sent from above
I’m not that innocent

웁스, 내가 또 그랬나봐,
당신의 마음을 놀렸나봐,
괜히 헛수고 하게 만들었어 (쯧쯧 …)
웁스, 당신이 날 좋아하게 만들었어,
하늘이 내려 준 사람이라 믿겠지만,
난 그렇게 순결한 사람이 아니야,


영진공 이규훈

[문화와 총] – 2장: 울증형의 일본, 조증형의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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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히데키라는 일본 정신과의사가 쓴 <튀는 신세대 숨는 신세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1995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구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사람들을 조증형과 울증형으로 구분합니다. 조증과 울증은 원래 정신질환의 진단명이지만, 히데키가 사용했을 때는 정신과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구분하는 틀입니다. 즉,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울증형으로 해결하고, 어떤 사람은 조증 형으로 대한다는 거죠. 사실 이런 구분방식의 기원을 따지자면 칼 구스타프 융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 아저씨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원형(archetype)에 집착한 사람인데, 그 원형 이론이 MBTI 같은 검사의 기초가 됩니다. 그렇다면, 울증형과 조증형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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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신세대 숨는 신세대의 도서정보. 이미 품절..

숨는 신세대에 해당하는 울증형 인간은 타인보다는 자신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깊이 파고듭니다. 얼핏 보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향성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성격은 외향적인데 라이프스타일은 울증형인 사람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현대적인 사람들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든요(이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자기 것이랄 것이 분명치 않음에도 그 자기에게 의지하려다 보니 규칙에 의존합니다. 한번 어떤 것을 배우면 절대로 그것을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큽니다. 이렇게 스스로만 주어진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소극적이나마 단죄하려는 스타일로 나갑니다.

그렇다면 조증형 인간은요? 네, 이들이 튀는 신세대에 해당합니다. 이 사람들은 울증형 사람들과는 정 반대로 자기가 아니라 남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들에 맞춰 자기의 태도를 바꾸는 것을 매우 쉽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유행에 따라가는 변화. 바로 이 유형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변화를 통해 발전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얼핏 보면 계속 변화하는 것 같지만, 유행이 돌고 돌듯이 결국 그 변화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순환됩니다. 발전이라기보다는 그냥 변화 자체일 뿐이죠. 게다가 언제나 남들에 맞춰간다는 기본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 유형은 또한 외향성과도 다릅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표현을 잘 하는데, 이 조증형 사람들은 그저 따라할 뿐입니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에서도 조증이나 울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울증과 조증의 특성을 쉽게 보여주는 이야기로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들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들은 울증형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직면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필요한 것을 모아 내부에 축적하고는 외부와 자기들을 차단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부의 자원만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죠. 이렇게 “외부와의 교류는 최소화 하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가 울증형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특히 베짱이처럼 지금 현재 순간을 즐기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베짱이는 반면에 조증형입니다. 이 친구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충실합니다. 그저 지금은 놀 때니까 놀 뿐이고, 미래는 나중 이야기일 뿐이죠. 그러다가 겨울이 닥칩니다. 갈 곳 없어 개미네 집으로 찾아온 베짱이에게 개미는 냉정하게 문을 닫아겁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거죠. 역시 전형적인 울증형 선택입니다.

히데키는 일본은 기본적으로 울증형 인간들의 문화라고 정의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문화는 기본적으로 스탠드 얼론 플레이어(Stand Alone Player)의 문화입니다. 전통적인 일본 밥상은 모두 1인용입니다. 식탁에서 누구와 같이 음식을 나눠먹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각자의 테이블에 각자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각자 먹을 뿐이죠. 스탠드 얼론 플레이 게임이 가장 발달한 곳도 일본이고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이 무서워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죠. 혼자 놀기는 울증형의 특성입니다. 이런 혼자 문화에 대해서는 윤서인님의 조이라이드 블로그에서도 묘사한 바 있습니다.
내용 보시려면 여기로 http://kr.blog.yahoo.com/siyoon00/1365571

울증형의 또 다른 특성은 쉽게 변치 않는다는 겁니다. 즉, 신뢰성과 지속성이 보장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번 배운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한번 맛있는 집은 수십 년이 지나도 계속 그 맛을 유지합니다. 공산품들도 마찬가지죠. 일본의 제품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요. 몇 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유지하는 장인의 전통은 바로 울증형 문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일본은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남들보다 더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엄청난 혁신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개선의 결과죠. 이렇듯 끊임없는 개선을 통한 기술적 성취는 산업사회 시대의 일본을 최강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호환성에 대한 의식이 매우 약하다는 점입니다. 울증형 문화는 자체완결성을 중시합니다. 내가 배운 원칙에 따라 완벽하게 돌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뭐 하러 남에게 맞추냐는 거죠. 그 결과 일본은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통신혁명이 가장 늦게 일어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일단 일본자체가 20세기 동안 지나치게 성공한 산업사회의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호환성에 대한 개념의 부족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휴대전화 기술은 그 자체로는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로 나가질 못하고 일본 안에서만 통용됩니다. 최근 <뉴스위크>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했더군요. 아래는 그 기사가 담긴 2007년 12월 12일자 뉴스위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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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산업화 과정에서는 가장 성공한 국가였는데, 어째서 정보화 과정에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결국은 호환성의 문제입니다. 카메라나 기타 정보통신기기에 사용하는 플래시 메모리 분야만 예를 들어보죠. 이 분야는 일본이 주도한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그 결과, 10개가 넘는 메모리 표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SD카드, MMC, 메모리스틱, 컴팩트 플래시… 기능이 많이 다르냐? 천만에요. 모두 그냥 메모리일 뿐입니다. 내부 부품도 결국 같아요. 그런데 그 똑같은 기능을 하는 부품 하나를 통일하지 못해서 디지털카메라를 살 때마다 다른 메모리를 사게 만들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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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짓?

이 메모리 규격들을 보자면 저는 앞서 보여드린 2차 대전당시 일본 제식탄약들이 떠오릅니다. 결국 그때와 똑같은 짓을 반복한 거죠. 2차 대전 때와는 달리 이제는 기술적인 제약도 없는데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이건 미국이나 유럽에서 USB 같은 단일표준을 먼저 만들어놓는 것과는 정반대 패턴입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각자 자기네 카메라에는 이런 모양의 메모리가 더 적절하다고 우기거든요. (물론 메모리 표준을 자꾸바꾸면 메모리 장사도 해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만…) 결국 자체완결성의 집착입니다. 소니가 자기들 제품에서만 통용되는 커넥터 규격을 만들거나, 자기네 제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파일압축 포맷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자체완결성, 제품 자체의 품질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자체완결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남들의 것과 얼마나 잘 호환되느냐도 무지무지 중요합니다. 애플이 시장주도권을 놓친 가장 큰 이유는 자체완결성이 높은 매킨토시를 만들고 벽을 둘러쳤기 때문이죠. 그동안 IBM이 PC 표준을 만들어놓고 그 틀 안에서 모든 업체를 포괄하며 기술적으로 훨씬 우월한 애플을 이겨버렸습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호환성을 무시하고 자체완결성에 집착하는 건 결국 스스로를 왕따 시켜버리는 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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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 신뢰성, 나머지 모든 성능은 우수한 맥이 IBM의 호환성 동맹에 포위되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어차피 2차 대전 이전에 일본 식민지가 되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미국의 표준을 그대로 사용했기에 총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한일합방 이전에 고종 황제께서 삽질을 하느라 온갖 표준의 총기를 사들인 것에 대해서야 워낙 기술도 개념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치고요.

그 이후의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조증형 문화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적어도 표준 문제는 일본보다 우월합니다. 정보화시대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의 보급속도는 아마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랐을 겁니다. 어디서도 쓰지 않던 CDMA를 냉큼 들여와 표준으로 삼아서 나름 국제 표준화에 성공한 나라가 우리나라죠. 인터넷에서만 사용하던 MP3를 들여와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를 만든 것도 우리나라이고, 지금도 뭐든 유행이다 싶으면 정말 전 국민이 그 유행을 따르는 나라가 우리나라죠. 호환성의 극대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어요. 일단 수십 년간 같은 모습으로 같은 품질을 보장하는 장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신촌거리도 매년 새 식당이 생깁니다. 한때는 찜닭이 유행이다가, 어느 순간 불닭으로, 뭐 이런 식으로 계속 바뀌어대죠. 그러다 보니 전통이란건 정말 박물관에나 있게 됩니다. 어떤 한 분야에 천착하는 사람들이 적으니까 전문적인 컨텐츠의 생산도 적습니다. 컨텐츠 유통은 활발한데, 정작 그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적으니 웹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60-80%가 전부 카피본이라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모두 같은 유행에 휩쓸리니 다양성도 부족합니다. 유행 상품만 많고, 유행에서 벗어난 물건은 없죠.

물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적절한 조증과 적절한 울증의 혼합이겠죠.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울증형 문화가 존재하고, 일본에도 조증형 문화가 존재합니다. 괜히 히데키가 튀는 신세대 이야기를 한 게 아니거든요. 일본의 미래를 그 조증형 문화에서 찾은 셈이죠. 어쨌거나, 결론은 이겁니다. 어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나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남들에 맞춰서 변형하고(혹은 타협하고) 유통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너무 당연한 결론이라고나 할까요.

영진공 짱가

<나스>, 광속으로 달리는 뜨거운 사나이들의 이야기

<나스>는 자전거 로드 레이스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스포츠 이야기가 그렇듯 자전거 레이스 선수들의 꿈, 열정, 팀웍 등의 이야기가 다뤄지긴 하지만 짜내기식 유치한 감동이나 과장된 모습이 아닌 선수들의 진솔한 모습을 담기위해 노력한 작품입니다.
 






 
1편 ‘안달루시아의 여름’은 3대 스테이지 레이스
(
Tour De France, Giro De Italia, Verda et Espana) 
중 하나인 ‘Verda et Espana’를 배경으로 주인공 페페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전거 로드 레이스라는 스포츠는 우리에게 생소하기도 생소하거니와 일일이 손으로 그려야 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상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자전거라는 그리기 까다로운 괴물같은 놈 위에 타고 있으니 멋진 원작이 있었음에도 누구도 선뜻 애니메이션화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작화와 원화를 담당하며 내공을 쌓고 있던 코사카 키타로는 ‘나스’의 애니메이션화에 뛰어들게 됩니다.


코사카 키타로 감독은 2008년 개봉 예정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언덕 위의 포뇨’의 작화감독으로도 참여했다.
그의 실력으로 보아 앞으로 지브리 스튜디오를 이끌
인물로 보여진다.


본인도 정기적으로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는 자전거 광으로 입상 경험까지 있을 정도로 자전거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그가 이 작품을 그냥 넘겼을 리 만무했을 겁니다. 그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는 ‘나스’의 제작이 힘들다고 하자 매드 하우스(야와라, 마스터 키튼을 비롯 최근 작으로 파프리카,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을 제작한 회사입니다.)와 함께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스-안달루시아의 여름’은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출품되고 OVA 정도로만 발매 될거라 생각했던 작품은 2003년 극장에서 상영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7년 가을에는 2편 ‘나스-슈트케이스의 철새들’이 OVA로 발매됩니다.




 2편 ‘슈트케이스의 철새들’은  ‘Japan cup 자전거 전용
로드 레이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Japan cup 자전거
전용 로드 레이스’도 실제 존재하는 대회로 우츠노미야에서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2007년에 16번째를 맞이하였다.

 


당 작품은 코사카 키타로의 실력에 자전거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까지 더해져서 작화 한 장 한 장에서 가히 장인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밑에서 수련했으니 작화 퀄리티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밖에 자전거 레이스에 대한 소소한 부분들 (효과음이나 경기 모습, 실존 인물들의 패러디 등등) 등 자전거 로드 레이스 경기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많은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로드 레이스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라도 충분히 뜨거워 질 수 있는 작품입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1편만이 DVD로 발매 되었고 2편은 아쉽게도 아직 발매되지 않았는데 부디 2편도 정식으로 발매되기를 희망합니다.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