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외화내빈의 글로벌 프로젝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외화내빈의 영화다.
못만든 영화가 분명 아닌데 다른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다행히 제작비는 불과 5천만 달러 수준으로, 세계의 미래가 될 도시 상하이의 1941년을 배경으로 찍는 이 글로벌 프로젝트에 유명 배우들께서 적은 개런티를 감수하며 흔쾌히 출연해주셨던 덕분인 것 같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적은 편이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단순히 총액 규모가 작기 때문만은 아니고, 영화 속에 당시 상하이의 모습이 꽤 충실하게 재현되어 세트 비용이 상당했을 거라는 짐작을 하기 때문이다.

가끔 영화 속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옛 도시의 모습을 보곤 하는데 <상하이>에서 재현된 당시의 모습은 그 보다 훨씬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듯 하다. 상하이에서 촬영을 하지 못하게 되자 방콕에서 로케이션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시의 상하이를 재현한 광경 전체가 거대한 세트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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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을 통해 소개가 되듯이 1941년의 상하이는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일본이 강점하지 못하고 있던 도시였고, 그 이유는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세계 열강들이 상하이에서 만큼은 쉽게 물러나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미국의 스파이 한 명이 암살을 당하게 되고,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폴 솜즈(존 쿠삭)가 사건의 경위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본군에게 붙들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험악한 상황을 기본 배경으로 영화는 점차 모든 미스테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 일본인 이중 스파이 스미코(키쿠치 린코)를 신변을 확보하는 일에 집중된다.정확히 왜 스미코가 중요한 인물인 것인지를 파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건만 설상가상으로 스미코는 찾자마자 이내 죽어버리고, 그 앞에서 일본 군부의 대표선수 다나카(와타나베 켄)는 스미코와의 삼각관계 때문에 주인공의 친구를 죽였던 것이라고 고백을 한다 – 이쯤 되면 <황해>에 이은 난감함과 허무함 시리즈의 훌륭한 속편이 될 자격을 갖춘 셈이다.


1941년에 이루어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의 막후 배경이 상하이를 배경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발견에 대한 기대와 달리, <상하이>에서 1941년의 사건이란 등장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의 입을 통해 전혀지는 놀라운 소식에 불과하다.

상하이 내에서 만큼은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고 있었던 국제 관계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영화의 후반부는 상하이에서 급히 철수하는 미국인들 틈바구니에 끼는 데에 성공하는 주인공들을 비출 따름이다. 주인공의 친구가 죽지 않았다면 스미코가 다나카를 통해 빼돌린 정보가 미국에 알려져서 진주만 공습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길 하고 싶었던 걸까? 본래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관객들에게 그런 식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미국과 일본, 중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스타들은 자신들의 유명세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모자라지 않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스웨덴 출신의 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의 연출 역시 우려했던 것에 비해 훨씬 안정된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맥락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산만하기만 하다는 데에 있다.

누구나 한번쯤 알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루는 것도 아니오, 숨막히는 첨보 액션이거나 그 안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멜로물을 제대로 피워보는 것도 아닌 <상하이>를 도대체 왜 만든 거냐고 물어보고 싶은 안타까운 심정, 그것 하나만 확실하다.



영진공 신어지





 

“22 블렛”, 좋은 건 혼자 다 해먹는 대부들의 속성





<22 블렛>은 22발의 총탄에 맞고도 살아나 ‘불사신'(L’immortel)라고 불리웠던 마르세이유 마피아의 대부, 찰리 마테이(장 르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전기 영화라고까지 보기 어려운 것은 찰리 마테이의 성장 과정를 포함하여 인생 전반에 관해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프란츠-올리비에 지스베르의 원작부터가 객관적인 전기물이 아닌 소설이었고 이것이 다시 영화화를 위해 각색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은퇴한 마피아 보스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라는 기본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조무래기들을 해치우고 중간 보스를 꺾은 다음, 마지막에는 최종 보스와 대결을 하는 식인 거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거나 아예 무감한 편인 일부 관객을 제외하고는 국내용 제목인 <22 블렛>이 주인공의 몸에 박히게 될 총탄의 숫자를 의미한다는 것과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나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자들과 대결을 펼치게 되리라는 것을 사전에 인지를 하게 될 터인데, 그런 점에서도 이 영화는 장르 영화로서의 예상된 결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다소 실망스러운 내러티브를 선보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가족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작품에 설득력을 가져다주기 보다는 대중적인 액션물로서 필요로 하는 꽃장식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작품들에게서 기대해 봄직한 서늘한 감동은 얻기 힘들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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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이 많은 등장 인물들의 대사와 약간씩 건너뛰고 있는 듯한 씨퀀스 간의 편집이 과연 달라도 뭔가 다른 ‘유럽 영화’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 때문에 관객에 따라서는 영화 초반에 약간의 부적응을 경험할 수도 있겠으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일단 복수극의 궤도에 올라탄 이후로는 찰리 마테이의 활약에 악당들이 하나씩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물론 찰리 마테이의 복수란 약자가 절치부심 끝에 자신 보다 훨씬 강한 자들에게 재도전하는 고전적인 느낌의 그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께서 감히 제 주제를 모르고 도전해온 조무래기들을 하나씩 응징해주는 그런 느낌이라 영화 전반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그나마 <22 블렛>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꼽으라면 납치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철조망의 숲을 맨몸으로 뚫고 나가며 그 간절한 심정을 전달하려는 장면이라 하겠는데, 문제는 우리의 불사신께서 그 정도의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뛰어든 상황 그 자체에 납득이 잘 안되는 데다가 – 그러다 보니 철조망에 연이어 찢기는 모습이 안타깝기 보다는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질 따름 – 그로 인해 차 트렁크에 갖혀 있던 아들이 찰리 마테이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 더 놀라지나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관객에 따라서는 그 수가 너무 뻔히 보이는 플롯 구성이 문제라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아 의외로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편이라 하겠다.




영화가 내세울 수 있는 주제라는 측면에서는 마지막 최종 보스 – 한번 우정은 영원한 우정이라며 함께 맹세했던 친구 자키아(카 므라) – 와의 대화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데 이는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깔리는 찰리 마테이의 나레이션과 어우러져 한번 발을 들이면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의 세계를 묘사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관한 메시지가 단지 피상적인 수준이 아닌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장 르노가 연기한 찰리 마테이라는 인물이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될 필요가 있었다.

<22 블렛>은 현역 시절 그 누구 보다 냉혹한 마피아 보스였던 찰리 마테이의 과거에 대한 묘사를 생략한 채 비교적 합리적이고 가정적이며 심지어 정의롭게 보이기까지 해서 관객들이 감정 이입을 하기에 좋은 모습만을 다루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인상적인 느와르 영화로서는 완전히 실패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고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 크게 지루한 감은 없었던 영화다. 찰리 마테이의 딸 에바 역으로 출연한 조세핀 베리는 감독 리샤르 베리의 딸인데, 어린 시절의 샤를롯 갱스부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눈에 띄더라. 조만간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기를.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