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감 유형의 차이, 세상의 차이: “친구”와 “말죽거리 잔혹사”


우리에게는 누구나 정체감(Identity)이 있다. 정체감이란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남들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가? 내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가? 같은 질문도 역시 이 정체감에 관한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보통 내 이름은 누구이고, 나는 남자이고, 심리학자이며, 사람 구경하는 것과 만화와 게임과 영화를 좋아하고, 이기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을 싫어한다는 식으로 답한다. 이게 바로 내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 정체성을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James Marcia라는 심리학자는 1969년과 1980년에 미국대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면담을 한 결과, 자기 정체성을 찾는 방법에는 크게 네가지가 있다고 분류했다.

첫 번째 방법은 사회나 주변 사람이 자기에게 부여한 역할이나 가치관을 그냥 그대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어릴적부터 부모가 가라는 학교로 진학하고, 부모가 사귀라는 친구를 사귀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부모가 지정하는 직업을 택하고, 부모가 골라주거나 부모의 심사를 통과한 배우자와 사는 사람이다. 물론 그렇게 살면서도 아무런 의심이나 후회가 없어야 한다. 이런 경우를 정체감 유실(Identity forecloser)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정체감을 형성하기 전에 이미 다 만들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회나 주변에서 원하는 대로 아무 의심이나 후회없이 열심히 살지도 않는 방법이다.

주변에서 바라는 대로 살기에는 자기 생각이 너무 많지만, 그렇다고 주변의 기대를 뒤집어 엎고 자기 원하는대로 살기엔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에는 꿈이 있었으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결국 꿈을 접고 하찮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람들은 모두 이 유형이다. 이런 경우를 정체감 확산(Identity difused)이라고 부른다. 정체감이 한군데에 정리되어 있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다는 뜻이다. 즉 자기의 꿈과 실제 삶이 다른 사람들이다.

세 번째 방법은 결정하거나 어디에 속하기를 미루고 이것저것 탐색을 하는 방법이다.

학교를 휴학하고 여행을 간다거나, 여기저기에 파트타임으로만 일을 하고(단 자기가 원해서) 정규직을 갖기를 피한다거나, 연애는 여러번 하는데 누구와 정착하기는 미룬다거나 하는 사람들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것도 정체감 유형중의 하나로 정체감 유예(Moratorium)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건 결국 뭐든 일단 미루고 보겠다는 방식이다.

마지막 방법은 사회나 주변사람의 기대를 배신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버리고 스스로 인생의 가치를 찾고 갈 길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이런 유형을 정체감 성취(Identity Achieved)라고 부른다. 가장 이상적인 유형 같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남들 하지 않는 짓을 하는 모난 돌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을 많이 맞는다. 즉 고난이 많다는 거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고, 알콜중독도 많고 속버리고 심장이 고장난 사람도 많다. 물론 용기와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 중 어떤 방법이 정체감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
그 대답은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사회의 질서와 가치체계가 한동안 계속 유지된다면, 정체감 유실이 최선이다. 부모가 살았던 시대와 내가 살았던 시대가 같은 규칙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이미 한번 살아본 부모의 말을 듣는게 최선이란 말이다.

뭐, 꼴에 사춘기라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시키는대로 하기엔 마음이 따라주지 못하는 사람은 최소한 정체감 유실이라도 해주는게 편하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더라도 몸은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의 정체감 성취가 제일 좋을 것 같지만 그건 이론적으로나 그럴 뿐이다.

하지만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서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전혀 다른 식으로 사는 사람이 더 성공한다면, 정체감 유실이나 확산은 최악의 선택이다. 왜냐하면 부모나 선배들의 생각은 가장 현실성이 떨어지게 되니까.

오락실에서만 게임을 할 수 있던 시절을 경험한 부모가 프로게이머 같은 삶을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제작비 1억원 시대의 영화판 만을 경험한 사람들이 평균 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영화판의 룰에 적응할 수 있겟는가. 이전과는 다른 룰이 지배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쨌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남이 하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이 그나마 성공할 확률이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구에겐가 의지해서 남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고 싶어한다. 나 스스로 독립해서 험난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건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영화 『친구』에서 상택이가 선택한 것도 결국 정체감 확산의 삶이었다.

이 영화에서 신기한 건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은 결국 상택(서태화) 이지만, 그 이야기 속에 상택이 자신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준석(유오성)이와 동수(장동건)다.

언제나 준석이가 뭘 했고, 동수가 뭘 했는지에 대해서만 말한다. 상택이 본인의 이야기는 그 인생을 갈라놓은 극장 사건 빼놓고는 거의 없다. 심지어 자기가 무슨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가는지 돌아와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조차도 말하지 않는다.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상택이는 자신의 삶이 아니라 준석이와 동수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범생이 이야기꾼은 오직 마음 속에만 그런 꿈을 담아두고 몸은 부모와 주변에서 기대하는 학삐리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사실, 1960-70년대 당시를 살았던 세대는 거의다 이런 선택을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저기 먼 곳에 파랑새가 날아다녀도 결국 꿀꿀하고 칙칙한 현실과 살아야 했다.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다른 삶을 살기는 두려웠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상택이의 선택이 가장 옳았다. 준석이도 동수도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걸 생각해보라.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가업인 장의사도 버리고 부모도 외면하고 자기의 길을 찾아갔던, 정체감 성취에 제일 가까웠던 동수는 수십방의 칼침을 맞고 죽어버린다. “좋건 싫건 시키는 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크게 고생한다.” 그게 당시의 규칙이었다.

자아감 성취를 향하던 동수

그런데 한 10년 후를 배경으로 한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다른 정체감 유형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주인공인 현수(권상우)는 상택이처럼 우식(이정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부러워할 뿐이다. 현수는 반에서 우식이의 위치는 별로 원치 않지만 은주(한가인)를 차지하는 모습만은 뼈저리게 원한다. “내가 아주 힘들게 이루려 했던 걸, 녀석은 너무 쉽게 얻었다.” 라는 말은 현수의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한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다음에 현수는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변신을 한다. 존재감 없는 범생이에서 학교 사상 최고의 폭력사건의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 변신이 너무 극적이라 설득력이 없다는 평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어쨌건 현수는 운동신경도 좋았고 집요한 열성파였기 때문이다. 그 집요함을 싸움 준비로 방향만 조금 바꾸면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현수의 정체감은 최소한 유실이나 확산의 유형을 벗어나 버렸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정체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반항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지금까지 본 한국영화의 주인공 중에서 범생이 출신으로 정체감 성취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녀석이 현수다. 나중에 정말 그가 정체감 성취를 이루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근데 현수의 이 반항은 『친구』에서처럼 처절한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저 퇴학을 당하고 재수를 하는 삶이 주어졌을 뿐이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인 세상에서 그 정도라면 처벌도 아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그 이유는 결국 시대의 차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세상이 『친구』 시절보다는 조금 느슨해지고, 이전의 룰이 먹히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에 현수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삶인지도 모른다. 무조건 편안히 기댈 대상이나 가치관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삶 말이다. 그건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주 고달픈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대에도 자유가 무조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자유의 무게를 짊어지고 스스로 노력할 용기가 있는 자들에게만, 그것도 아주 가끔씩만 행복이 찾아올 뿐이다.



영진공 짱가

 

“크레이지 하트”, 음악은 드라마의 디테일을 채워준다


제프 브리지스에게 올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석권하게 해준 작품. 그간의 연기와 비교할 때 특별히 <크레이지 하트>에서의 연기가 아주 각별했다기 보다는 연기자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연기자의 삶을 살아온 공로상의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기존의 작품들에서와 달리 제프 브리지스가 직접 컨트리 음악을 노래하고 기타 연주까지 해내고 있는 부분은 그간에 보여준 연기의 지평을 한 단계 넘어선 것이 맞긴 하다. <사랑의 행로>(1989)에 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등장해 음악적 재능을 보여준 일이 있긴 하지만 이번 <크레이지 하트>는 영화 시작부터 거의 깜놀 수준의 연주 실력을 자랑한다. 후배 가수로 출연하는 콜린 파렐 만큼은 립싱크겠거니 했는데 확인해보니 브리지스와 마찬가지로 직접 부른 노래란다.

듣던대로 <더 레슬러>(2008)와 비슷한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프로 레슬러와 컨트리 가수라는 차이가 있을 뿐, 인생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중에 마지막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거의 판박이에 가깝다. 하지만 <더 레슬러>가 그 전환점에서 자기 존재 증명을 위해 몸을 날리며 마무리되었던 것과 달리 – 전환점이라기 보다는 막다른 길로 묘사된 쪽에 가깝긴 하지만 – <크레이지 하트>는 좀 더 현실적인 계기를 통해 갱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실 드라마의 극적인 구성이나 확장 해석을 가능케 하는 상징성을 따지자면 <더 레슬러>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 에 비해 밋밋한 편이지만 그 대신 <크레이지 하트>는 드라마의 디테일을 상당 부분 음악으로 대신 채워넣으며 명실공히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음악 영화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 첫 장면에서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너부대대해진 몸집으로 볼링장에 들어서는 제프 브리지스는 <위대한 레보스키>(1998)에서의 “더 듀드”를 연상케 한다. 코엔 형제의 필모에서나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 이력에서 모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 화려하진 못해도 오직 음악만으로도 그럭저럭 생계 유지가 가능한 미국은 역시 부러운 나라다. 물론 극중의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는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진 뮤지션으로 나온다.

– 매기 질렌할은 이제껏 본 중에 가장 풍성한 매력을 과시한다. 질렌할에게는 까칠한 성격의 히피 말고도 얼마든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

영진공 신어지

이창동과 윤정희, 거장의 필체와 선택

이창동 감독과 윤정희 그리고 ‘시’ .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창동감독 작품에 대한
무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웬일인지 1960년대 대활약 한, 이제는 노인이 된 배우 윤정희에게도 깊은 호감이 간다.

윤정희는 배우로서의 자긍심과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지적이고 성실한 배우의 지위를 구축했다.
<안개> <분례기> <석화촌> 등 작품 선정에도 워낙 신중하여 그녀의 출연작은 한국영화의 맥을
잇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을 유지하던 윤정희는 1973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영화사
‘196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중에)

여배우의 삶을 쉽사리 논할 순 없겠다. 다만 여성으로서 자신의 분야에 자긍심을 갖고 한결 몰입하는 것이 특히 이 땅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 대충 가늠해 본다.

대중의 인기(인정)를 한 몸에 받는 위치에서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는데 또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녀 스스로
어떤 그릇이 되고자 큰 줄기의 빛이 반짝였을 그때에 감히 유학길에 올랐을까. 그리고 <시>로 다시 펼쳐 보이는 연기는
어떤 색일까.

나는 윤정희라는 배우가 실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내가 알 수 있는 건 <시>를 통해 볼 그녀의
연기, 눈빛, 어쩌면 연륜까지가 전부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내 미래를 비춰보고자 함은 <시>의 기회가 비단
거저 온 것은 아닐 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누구보다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비우고 채우는 삶이 있진 않았을까. 자신의 분야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숨은 노력을
깃들이진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노년에 더욱 빛나는 여성의 모습을 <시>를 통해 입증해 주진 않을까.

<시>의 정갈한 타이틀 로고는 이창동감독의 필체다. 아직 못 봤지만 웬일인지 영화와 꼭 맞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해 주인공 윤정희의 캐스팅 또한 이창동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기를 바라본다.

영진공 애플

지능검사의 역사 (3), 지능검사를 인종차별의 수단으로 전용한 헨리 고다드



비네와 사이먼은 프랑스 사람이다. 그러니 비네 검사의 문항과 해석방법 그리고 관련 자료는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이 지능검사가 영어권에 이식되기 위해서는 영어로 번역될 필요가 있었다. 이 작업을 한 사람은 영국이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클라크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헨리 고다드 H.Goddard (1866-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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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학에서 배운 것이 바로 유전심리학이다. 지금도 행동유전학이라는 심리에 있어 유전인자의 역할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지만 그가 배운 1900년초의 유전심리학은 거의 우생학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바보의 자식은 바보가 되고 천재의 자식은 천재가 된다는 식의 이론으로 앞서 프랜시스 갈톤이 그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고다드는 박사학위를 받고는 정신박약아들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개발 중이었는데 이 정신박약아들 조차도 그 능력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럽에 가서 이 아이들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비네의 지능검사를 발견한 것이다. 시험삼아 이 검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아이들에게 실시해보니 오, 놀라워라! 그 전에 사용한 그 어떤 검사보다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비네 검사의 신봉자가 된다. 그리고 비네 검사체계를 미국에 소개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다드는 비네가 정신 수준(Mental level)이라고 했던 지능을 정신 연령(Mental age)라는 개념으로 바꿔치기 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연령’이라는 개념이 애매모호한 ‘수준’이라는 말 보다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네의 검사결과 지능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경우에 해당하는 용어도 새로 발명했는데, 그 중에는 ‘저능아’(moron)라는 단어가 있다. 당시에는 학술적인 용어였지만, 지금은 함부로 ‘모론’ 이라는 단어를 쓰면 차별주의자로 취급받거나 총맞기 딱 좋다.

고다드는 비네 검사를 단지 정신박약아들을 위해서만 사용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의 꿈은 더 원대했다. 유전심리학자로서, 그리고 미국의 미래를 염려하는 우생학자로서 그는 미국에 유입되는 이민자들의 질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인간의 품성에 대해서, 고다드는 히틀러와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

그가 보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북유럽과 서유럽 출신의 전통적인 이민자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위스나 핀란드 같은 나라 출신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앵글로 색슨족이었고, 청교도이며, 교육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반면 두 번째 유형의 이민자들은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인데, 국가로 치자면 폴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출신으로서 인종적으로는 유태인이나 집시이고 종교는 카톨릭이나 유태교, 교육수준은 낮은 사람들이었다.

1800년대에는 주로 첫 번째 유형의 앵글로 색슨 이민자들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자 두 번째 유형의 비 앵글로색슨 이민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앵글로 색슨 이민자들은 이 신참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다드도 그런 앵글로 색슨 이민자 중의 한명이었다.


앨리스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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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앨리스섬 이민국의 풍경

그래서 그는 비네-사이먼 검사를 이용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지적으로 검열하고자 했다. 당시 자유의 여신상에 세워져있던 앨리스 섬은 이민국 사무소가 설치되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민자들을 심사하고 이민/추방 여부를 결정하는 곳이었다. 1912년에 고다드는 몸소 여기를 방문해서 비네 검사가 이민자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 그런데 그의 실험방식은 지금 기준으로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는 모든 이민자들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한 것이 아니라, 겉보기에 좀 떨어져 보이는 듯한 어린 소년을 하나 골라서 어려운 문제를 낸 것이다. 통역담당자가 “이건 나도 못 풀어!” 라고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검사결과를 기초로 고다드는 비네 검사가 실제로 저능한 이민자를 가려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년 후의 2차 방문시에는 좀 더 준비를 많이 해서 165명의 동남유럽 출신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비네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그 165명 중에서 40% 정도는 저능아라는 쇼킹한 결과를 얻었다. 이민국 사람들은 고다드의 연구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결국 비네 사이먼 검사는 이민국의 표준검사 절차중 하나가 되었다.

모든 이민자에게 실시한 것이 아니라 조금 지적능력이 의심되는 이민자들만에게만 실시하는 검사 중의 하나가 된 것이었다. 사실 그 전에는 이민자들을 추방하고 싶어도 뚜렷한 명분이 없었으나 고다드가 과학의 이름으로 추방의 빌미거리를 하나 제공한 것이다.

그 결과 고다드가 방문하기 전에 이민국에서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본국으로 추방한 이민자는 전체의 2% 정도였지만, 비네 사이먼 검사를 채용한 이후에는 그 추방율이 10% 정도까지 높아졌다. 지능검사를 서북유럽 출신 이민자들에게도 실시했다면 고다드가 확신한 것처럼 지능검사가 이민자들의 질을 평가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랜 항해를 마치고 신대륙이라는 낯선 곳에 막 도착한 데다가 수많은 사람과 관리와 서류들로 가득찬 곳에서 생판 처음 접하는 검사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나. 동남유럽 출신이든, 서북유럽출신이든 상관없이 대부분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다드가 실시한 지능검사는 과학적으로 이민자들을 선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다드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조국 미국 주민들이 “우둔한” 이민자의 피로 오염될까봐 두려워했던 고다드의 노력 덕분에, 한동안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앨리스 섬은 과학의 이름으로 위장된 인종차별이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무서운 곳이 되어버렸다.


지능검사에 통과해야 아메리칸 드림도 꿔볼 수 있단다 …

영진공 짱가

“어웨이 위 고”, 삼십대 애어른 커플의 성장기

데뷔작이었던 <아메리칸 뷰티>(1999) 때문인지 샘 멘데스 감독은 막연히 미국인처럼 여겨지곤 하는데 실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연극 연출가로서 명성을 쌓았던 인물이더군요 –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케이트 윈슬렛과의 2003년에 결혼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하나 추가되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래서인지 샘 멘데스 감독의 작품들은 헐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를 통해 만들어지면서도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대중적인 성향과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메리칸 뷰티>를 시작으로 <로드 투 퍼디션>(2002), <자헤드>(2005),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까지 정확히 3년에 한 편 꼴로 작품을 내놓던 샘 멘데스 감독은 왠일인지 1년 만에 <어웨이 위 고>를 완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선보였던 작품들과는 여러모로 달라보입니다. 샘 멘데스 감독의 2009년작 <어웨이 위 고>는 국제적인 스타 배우 한 명 없이, 영화 연출가로서의 야심을 훌훌 벗어던진 듯한 선댄스 풍의 소품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어웨이 위 고>는 30대 중반의 커플이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하게 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를 새 보금자리를 찾아 다닌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로드 무비이자 성장 영화입니다.

손주를 떠맡으려 하지 않는 얄미운 시부모를 시작으로 주인공 커플은 형제, 자매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북미 전역을 차례로 방문해보지만 어느 한 곳도 마음에 드는 곳이 – 바꿔서 얘기하자면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 하나도 없습니다. 뻔한 결론이긴 하지만 마치 어린 왕자와 그의 ‘임신한’ 공주처럼 떠돌던 두 사람은 여자쪽의 버려진 생가를 찾게 되고, 아름다운 호수가의 그곳에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닥친 새로운 삶의 변화와 도전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을테고요.

국제적인 스타 배우가 한 명도 없다고는 했지만 사실 <어웨이 위 고>는 좋은 배우들이 참 많이 참여한 작품입니다. 베로나 역의 마야 루돌프는 SNL의 코미디언으로 낯이 익은데 그간 크고 작은 배역으로 꾸준히 노크를 해온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는지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어차고 안정된 정극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버트 역의 존 크래신스키는 <자헤드>를 통해 샘 멘데스 감독과 한번 인연이 있었던 배우더군요.

두 사람의 로드 무비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것은 이들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조연들입니다. 캐서린 오하라와 제프 다니엘스가 버트의 부모로 출연해 오랜만에 코믹 연기의 진수를 선보이고 그외 매기 길렌할, 앨리슨 제니, 크리스 메시나, 멜라니 린스키, 폴 슈나이더 등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어린 왕자가 방문하는 각 행성들의 주인들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눈에 띄는 극적인 갈등과 해소의 과정이 없이 에피소드들이 단순 나열식으로 배치되고 있긴 하지만 워낙 재미있는 진상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는 작품입니다. 억지스러운 소동극이 되기 보다 담담하게 매듭짓는 마무리 방식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오히려 이 영화를 ‘완소’의 단계로 이끌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지 않나 싶네요.

감독 샘 멘데스 (왼쪽 남자)

장소를 옮길 때마다 근사한 배경 음악이 나오는데 엔딩 크레딧을 확인해보니 알렉시 머독(Alexi Murdoch)라는 이름의 가수더군요. 최근에 좋은 음악을 사용한 영화들을 많이 봤지만 이 작품 만큼 확실하게 귀를 사로 잡는 영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OST 앨범에는 알렉시 머독의 곡들과 함께 조지 해리슨, 밥 딜런, 스트랭글러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곡들도 수록되어 있네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