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치게 하는 메시지, ‘이중구속(Double Bind)’

Double Bind (“이중구속” 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는 1956년에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G.Bateson)이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발표한 이론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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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ory Bateson 1904-1990

Double bind(이후부터는 이중구속)는 간단히 말해서 상반되는 메시지(대부분은 요구)가 동시에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모나 가족이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똥씹은 표정을 짓는다거나, 직장 동료가 말로는 “편하게 대하라”고 하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교수가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발언하라” 고 하면서 정작 질문을 하면 씹어버린다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면서 정작 그런 아이디어를 내면 더 많은 업무로 처벌을 내리는 회사의 회의실 장면이 그런 상황이다.

이중구속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늘 여러개의 정보채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때 언제나 하나 이상의 채널을 사용한다. 문자로도 변환될 수 있는 언어메시지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언어에도 어조가 있고 뉘앙스가 있으며 악센트나 기타 등등의 방법으로도 텍스트로 전달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게다가 얼굴을 보고 의사소통하는 경우에는 표정, 자세, 행동과 같은 더 뚜렷한 다른 채널들도 같이 사용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자면 이 채널들이 온전히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할 때만이 바로 그렇게 이구동성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내적인 갈등을 느끼고 있거나,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거나, 인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위와 같은 이중구속 적인 메시지가 발생한다.

내 경우도 늘 말로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더 많은 질문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그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과연 내 말과 온전히 일치하는 태도를 보여주는지 의심을 하게 된다. 가끔은 질문이 너무 멍청해보여서,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심지어는 그냥 대답하기 귀찮아 할 때도 있고, 그럴 때면 분명히 내 몸의 어딘가에서는 “질문 자꾸 할래?” 라는 메시지를 흘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중구속은 메시지 자체의 모순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순수해져라” 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이중구속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순수는 순수해지려는 의도조차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순수해지기 위해서(혹은 순수해지라는 말을 듣고) 순수해진 것은 결코 순수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순수해지라”는 말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요구이며 이중구속이 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해”라는 말도 이중구속이다. 사랑은 자발적인 행동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명령이 되니까. 마찬가지로 “니가 알아서 좀 해” 라는 말도 굳이 따지자면 이중구속이다. 알아서 하라는 명령에 따라서 하는 것은 더이상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니까.

아이들이 이런 이중구속 상황에 민감하고 그래서 더 타격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는 아이를 지극히 이중구속적인 상황에 꼴아박는 질문이다. 애가 어느 쪽을 선택하란 말인가. 친척이나 손님을 불러다 놓고 아이에게 “너 평소에 하던 것 좀 해 봐라”라고 말하는 것도 지극히 이중구속적이다. 손님 앞이면 이미 “평소”가 아니거든.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들은 말 그대로 몸이 꼬이고 마음이 꼬여서 미칠려고 한다.

베이트슨은 실제로 어쩌면 정신분열증이 이 이중구속적인 상황에서 유발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신 주변에 말과 행동이 늘 어긋나는 인간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그 인간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치자. 어떻게 하면 될까? 그 인간을 안보고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면 된다. 하지만 만약에 그와 매일같이 마주쳐야 한다면? 그 믿을 수 없는 인간을 믿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그 인간이 당신이 생존하기 위해 의존해야 하는 부모라거나, 당신이 믿어야 하는 친구 혹은 연인이거나,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상사이거나, 혹은 당신이 몸담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인간을 믿어야 할 때, 모순되는 말과 행동에 나 자신을 맞춰야 할 때, 믿을 수 없는 자를 믿지 않으면 안될 때, 우리는 미치고 팔짝뛰게 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몇 개월, 몇 년, 혹은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고 할 때 정신줄을 놓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최근에 누군가가 남에게 “세뇌되었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어떤 면에서 이중구속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어떻게 해도 자신이 세뇌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의 논리가 딱 그런 이중구속이었다. 마녀를 감별하는 법은 마녀를 묶어서 강물에 던지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꽁꽁 묶인 채로도 물위에 뜬다면 그녀는 마녀이므로 죽여야 한다. 인간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녀가 물에 빠져 죽어버린다면, 그제서야 그녀는 마녀가 아니다. 어쨌든 일단 마녀로 찍히면 죽어야 끝났다.


 
누군가는 바로 그런 이중구속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그래도 여전히 그에 대해서는 이중구속 메시지를 보내는 인간도 있다. 죽지 않았을 때는 그렇게 살면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삿대질을 하다가, 그가 죽으니까 죽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삿대질이다. 어쩌란 말인가.

또 누군가는 “침묵하는 다수는 정부를 지지한다” 란다. 집회에 참석하면 방패로 찍고 삼단봉으로 패면서, 심지어는 그 근처에서 멀쩡히 걸어가는 사람을 두들겨패서 갈빗대 나가게 만들면서 집회에 안 나오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거란다. 말 그대로 이중구속이다. 어쩔까? 집회 나가서 매맞아주면 믿을까? 아니 그때는 세뇌되었거나 좌파이거나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았다고 할텐데 …

뭐 그런 이중구속은 워낙 많이 경험해봐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면 다행이다.
둔감화. 그거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다.
하지만 둔감화에 큰 함정이 있다.
지금 이중구속을 저지르고 다니는 이들은 모두 이미 둔감화 된 자들이라는 점이다.
둔감화는 이중구속자가 되는 첫번째 발걸음이다.
그러고 보면 이 자체도 이중구속이구나 …

* Double Bind와 종종 혼동되는 개념이 Double Blind(이중맹목) 이다. Double Blind는 실험을 할 때 실험을 하는 사람이나 실험대상자 모두 그 실험의 정확한 목적이나 처치의 내용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실험자와 피험자 둘 다 모르기 때문에 더블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 하면, 그 사람들의 주관적 기대가 실험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대에서 약의 효과를 실험할 때도 (환자 뿐만 아니라) 약을 주는 의사도 지금 자기 환자에게 주는 약이 가짜약인지 진짜약인지 몰라야 제대로 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가 플라시보 효과를 보일 수 있다면, 의사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진공 짱가

노래로 감상하는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



1.
Zombie
By Cranberries

“It’s not me, It’s not my family … In your head, In your head … What is in your head?”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이다.>

뭔가에 눈이 먼다는 것 … 좀비가 되는 것과 같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좀비는 용서가 불가한 그리고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지만,
눈이 먼 사람은 그게 불분명하다는 것.

善인지, 惡인지, 害인지, 상처받은 영혼인 건지 알기 힘들고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도 없다.
눈먼 이들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대개는 그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눈먼 채로 각자 자기를 눈멀게 하는 것에 묶여서 살아갈 뿐 …

2.
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s
By Zucchero, Sharon Corr, Brian May, Roger Taylor

“Change your hear, look around you … I need your loving like the sunshine …”


<2004년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Beck의 노래로 삽입되어 잘 알려진 곡 …
영국 밴드 Korgis의 1980년 곡이 오리지널이다.>


<이 곡이 오리지널>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이다.

눈먼 이들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게 다라고 믿는다.
더 배울 수 없다 생각하고 그리 행동한다.

그들에겐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다.
다만 현재, 아니 현실만이 … 그리고 욕구만이 있다.

3.
It’s A Man’s Man’s Man’s World
By Christina Aguilera


“Man made the trains to carry heavy loads,
Man made electric light to take us out of the dark,
Man made the boat for the water, like Noah made the ark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2007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오리지널은, 소울의 대부 James Brown>

눈먼 자들의 도시 역시 남자들의 세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4.
American Witch
By Rob Zombie

“Do you want to know where their dreams come from? … The end, The end of the American witch …”

억압받는 이들의 가장 큰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바로 내부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약한 이를 괴롭히며 기생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기생충은 제가 마치 숙주인 듯 행세한다.
게다가 숙주들은 그런 기생충에게 조아린다.

미친 세상이다.
아니, 미친 건 세상이 아니다.

5.
Mad World
By Tears For Fears


“I find it kind of funny, I find it kind of sad … The dreams in which I’m dying are the best I’ve ever had …”


<Gary Jules의 노래로 잘 알려진 곡이지만 오리지널은 Tears For Fears이다.>


<“Kiwi”!의 에피소드에 Gary Jules의 버전을 입힌 작품>

미친 세상

희망은 없는가?

6.
Stand By Me
By Playing For Change

“The land is dark …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ll see … No I won’t be afraid … Just as long as you stand by me …”


<도큐멘터리 영화 “Playing For Change: Peace Through Music”의 한 장면이다.  부르는 노래는 Ben E. King의 “Stand By Me”.  세계의 거리 뮤지션들이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을 통해 세계의 평화와 변화를 기원하는 것이 이 영화의 제작의도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playingforchange.com 을 참고하시길.>

어느 세상에서나,
어느 때에나,
주어진 희망의 크기는 같다.

눈 떠 그걸 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다른 이들과 함께 보고자 애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보기 위해 눈 뜨려 노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따라 희망의 크기는 변하는 것이다.

샬라나미~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