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순정 마초, 양아치 마초, 찌질이 마초 이야기

 

 


 


 



 


 


류승완 영화의 메인 키워드는 딱 두개다,


마초와 쌈마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래 그의 영화들은 대개 저 태그를 달고 움직인다.


그리고 그 특질은 최근 개봉작 “베를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독일의 베를린이라는 공간에서 남과 북이 벌이는 첩보활극 영화에,


역시 세 명의 마초가 등장하고 쌈마이 쌈박질이 가득하다.


 


순정 마초 하정우,


양아치 마초 류승범,


찌질이 마초 한석규,


 


 



 


 


사실 이 영화에서 플롯이나 스토리는 그닥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셋의 역할과 관계를 그대로 한국 어느 도시 골목 조직폭력배의 나와바리 싸움으로 옮겨놓아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형사와 범죄자는 같은 인물의 다른 면일 뿐이다”라는 법칙에 따르자면,


이런 현상에 그닥 거슬려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게다가 권력과 돈에 집착하는 건 오히려 권력자들이 더 악랄하니까, 조직폭력배든 첩보원이든 어차피 꼬붕으로 소모되는 건 어느 쪽이라고 해서 더 멋지거나 할게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에는 다 그렇듯 마초와 대비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냉철하고 계산 철저한 이경영,


똑똑하지만 순종적인 전지현,


저런 사람이 있었나 싶은 김서형,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저들이 가장 크게 피해를 보거나,


그저 관심 밖에 놓여지게 된다.


 


 



 


 


이 영화,


각본 괜찮고 … 액숀 좋고 … 총격전 계산 잘돼있다.


 


그런데,


재미 좀 있어질라 치면 …… 지루해진다.



쌈박질이 쫄깃해질라 치면 …… 지루해진다.


내용에 몰입할라치면 …… 역시 지루해진다.


 



왜인고하니 각 Scene과 Take가 너무들 길게 늘어져서 집중력이 확 떨어진다.


그리고 사건의 배경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히 너무 자상해서 마치 DVD 부록에 있는 감독 해설판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본 시리즈가 가장 잘 한 게,


“어, 어” 하는 순간에 후딱 일 치르고,


상황에 대한 설명을 장면에 맞게 급박하게 툭 던져놓고,


다시 번쩍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는 거 였고,


 


이런 접근법이 요즘 첩보활극의 트렌드일텐데 … “베를린”에는 이런게 없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관객 각자의 느낌이겠지만.


 


 




 


 


그리고 배우들이 너무 유명한 분들인 것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하정우는 우리가 늘상 보아온 하정우인지라 그가 뭘 할지 다 알아채게 되고,


류승범도 우리가 늘상 보아온 그 캐릭터이고 … 한석규는 … 그냥 넘버 3다.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차라리 하정우랑 류승범이 역할을 바꾸어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똑똑하고 잘생기고 돈많은 훈남인데,


입고 다니는 명품 옷에는 온통 그 상표가 찍혀있고,


여친과 주변 사람에게는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는 그런 느낌,


한 줄로 요약하자면 ‘국제첩보활극 버전 짝패’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영진공 이규훈


 


 


 


 


 


 


 


 


 


 


 


 


 


 


 


 


 


 


 


 


 

“야생종 (Wild Seed, 1980)”, 4천년된 마초 길들이기 프로젝트


 

저자: 옥타비아 버틀러
역자: 이수영
펴냄: 오멜라스

웅진의 SF전문 임프린트인 오멜라스에서 이번에 출간한 책은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흑인 여성작가의 작품이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에선 상업적,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가로 네뷸러상, 휴고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SF계의 그랜드 데임 grande dame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번에 국내에 출간된 ‘야생종’은 그녀의 네 권의 도안가Patternist시리즈의 프리퀄 격인 작품이다.

작품은 1690년부터 1840년 간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람의 몸을 옮겨다니며 4천년을 살아온 ‘도로’라는 남자는 노예무역 등을 통해 범상찮은 능력을 가진 이들을 모아 멘델이 완두콩으로 실험하듯 교배를 시키며 더 뛰어난 초능력을 가진 인류를 만들어내려 하는 인물이다.

이런 도로의 레이더에 잡힌 ‘아얀우’는 3백년을 살아온 아프리카의 흑인 여성으로 도로와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인물로 그려진다. 도로가 원조마초스럽고 폭력적이며 파괴적인 반면 아얀우는 반항적이고 진취적이며 사람을 치유시키는, 도로와는 정 반대의 인물로 작품 전반에 걸쳐 도로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다.



말이 나온김에 … 이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 재밌다!



이야기의 큰 그림은 마치 엑스맨을 떠올리게 한다. 기이한 능력을 가졌지만 마녀나 정신병자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그래서 생의 위협을 느껴 능력을 숨기고 살아야만 하는 돌연변이들의 억울한 사정은 엑스맨에서나 이 작품에서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엑스맨은 돌연변들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휘황찬란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주력하였다면 야생종은 도로와 아얀우라는 두 인물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돌연변이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어떤 기묘한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언급이나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초능력을 이용한 화끈한 액션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청소년기에서 완두콩을 악몽으로 만들어버린 멘델.

도로는 멘델이 완두콩에게 저질렀던(?) 것처럼 돌연변이들을 이용, 
선택교배시켜 슈퍼 돌연변이를 만들려고 한다.

도로가 초능력자들을 이용한 선택교배와 유전자 조작의 윤리적 문제, 폭력적인 문명사회와 잔인했던 미국 노예무역의 실상을 이야기할 때 작품의 인문학적 무게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핵심은 두 인물 도로와 아얀우다. 도로를 바꾸기 위해 사랑과 대립을 반복하는 아얀우의 모습을 흥미롭고 긴장감있게 서술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17세기 미국 노예무역의 역사를 초능력자들의 아메리카 이주의 역사로 바꿔버렸다는 역자의 말처럼 노예무역과 초능력자란 소재를 생물학과 인류학을 가미해 훌륭한 SF로 탄생시킨, 올 여름에 만난 독특한 작품이다.

덧붙여 ……


당시 노예무역은 비참하다는 말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잔혹했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흑인들을 잡아 줄줄이 엮어 묶은 채 수 일 혹은 한 달이 넘게 걸어서 배를 정착해 놓은 해안까지 끌고갔다. 이동 중에 병에 걸리거나 다쳐서 이동이 불가능한 이들은 나무에 묶어놓고 갔다. 즉 동물의 밥으로 던져놓은 것이다.

노예선에는 흑인들을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 배의 갑판아래 겹쳐 뉘였고 흑인들은 그 안에서 똥오줌을 해결해야 했다.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까지 자기의 배설물에서 뒹굴며 기아와 전염병, 폭력에 시달렸고 그래서 많은 수의 흑인들이 육지에 도착하기 전에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후 미국에서 노예무역을 금 지하고 해군을 동원해 노예선을 나포하자 노예선들은 해군에게 발각되면 증거를 없애기 위해 흑인들을 바다에 던지기도 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을 짐짝 실듯 차곡차곡 쑤셔 넣어 운반한 끔찍했던 노예선.
그들의 많은 수가  배 안에서 비참하고 괴롭게 죽어갔다.
 


영진공 self_fish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 노인네에서 할아버지로


감독_ 마초 노인네


출연_ 마초 노인네, 아시아 이민자들

노인이란 참 피곤한 존재다. 이미 수십 년에 걸친 자신의 가치관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이제 그 누구의 조언이나 가르침도 스며들어갈 틈이 없는 옹고집 외골수다. 게다가 예의마저 닳고 닳아버려 흔적마저 찾기 어렵다면 진정한 민폐가 아닐 수 없다. 당 영화의 주인공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란 노인네가 딱 이짝이다. 게다가 젊은 시절 한국전까지 치뤘다니 … 아찔하다. 이거 우리나라로 치자면 희끗희끗한 머리로 군복입고 다니며 젊은 시절의 베트남 전 무용담을 말하던 해병대 마초 노인네 다름 아닌거다.
 




어린 노무 쉐이들이. 뭘 안다고~!


이런 마초 노인네 ‘코왈스키’는 모든 게 불만이다. 손녀딸의 배꼽티도 불만이고 아들놈이 일본 자동차 회사 다니는 것도 불만이고 옆집의 미개한 아시아 이민족들도 불만이다. 그에게는 이제 집과 강아지와 포드사의 72년산 그랜 토리노 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요 지켜야 할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남은 거라곤 욕심뿐인 그의 마음을 열어준 것은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아시아 이민자들이었다. 조금씩 마음을 여는 코왈스키는 아직 인생이 서투른 ‘타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자신의 그랜 토리노가 아닌 그들을 위해 총을 들기도 한다. 코왈스키는 ‘노인네’에서 ‘할아버지’가 되어간다.

 




내가 니 나이 땐 나한테 삽 한자루만 쥐어주면 빌딩을 하나 세웠어!
노인의 허풍은 조심하자 …


이 넘이 72년산 그랜 토리노 되게따 ...

젊은 시절 한국전에 참전했던 마초 노인네의 오픈 유어 마인드를 그리고 있는 당 영화는 공화당을 지지하며 젊은 시절 잦은 이혼과 동거를 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코왈스키’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옹고집쟁이 노인네의 심술맞은 표정연기가 인상깊었던 그가, 어쩌면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연기를 그만둔다고 하니 매우 아쉽다. 무려 79세라는 허리가 휘청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주연을 맏아 그의 오랜 인생의 깊이를 담아낸 당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이요 이미 여러 상을 수상했고 또한 수상할 예정이다.
 




진정한 부친남(부인친구 남편) … 아니 할친할(할멈친구 할아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노인이란 오랜 삶을 통해 체득한 지혜가 가득 담겨있는 오래된 책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수십 년의 값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처럼 노인은 그의 아이들, 가족, 사회에 그가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를 나눠준다.

곱게 늙는 다는 것은 오만과 편견으로 굳어진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오래된 책과 같이 늙어가는 걸 말하는 것일게다. 자신의 그랜 토리노를 지키기 위해 총을 빼어드는 코왈스키가 아닌 ‘타오’를 지키기 위해 총을 내던지고 분노에 이성을 잃은 그를 옳게 이끌어준 코왈스키와 같은 ‘할아버지’의 지혜를 대한민국의 자칭 원로(?)라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기를 빌어본다.

 




제발 곱게 늙으시길.

영진공 self_f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