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 류승완의 성공적인 자기 고백극






영화를 보는 내내 들던, 그 익숙한 느낌. 익숙한 장면. 자신의 정체성을 액션키드로 상정했던 류승완 감독답게, 『짝패』는 그가 이제껏 보면서 좋아하고 열광했을 영화들의 흔적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정필호(이범수)를 호위하는 네 명은 보스를 호위하는 주먹이 아니라 주군을 호위하는 검객이며, (아마도 『킬빌』을 보고 시도할 용기를 냈을) 정필호가 자주 접대하던 공간이자 마지막에서 액션이 벌어지는 장소는 바로 그냥 룸싸롱이나 그저 비싸기만 한 고급식당이 아니라, 호화 ‘객잔’이다.온성 시내 한복판에서 인라인 패거리 – 힙합 패거리 – 야구부 – 하키부 – 여고생 무리 등등 온갖 잡것들과 뒤엉켜 싸우던 씬의 이석환(류승완)과 정태수(정두홍)의 버디액션은, 특히 간판과 철골구조물, 옆건물 내 소화기 등 온갖 주변 소품들을 이용한다.

손기술은 별로 없이 발차기, 그 중에서도 특히 돌려차기와 돌려서 내려찍기로 주로 구성된 액션씬의 동작은, “이소룡”이 “장철” 영화들을 보며 “발을 쓰란 말야, 발을!”이라고 외쳤다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지방이라 해도, 아니 지방이기에 더욱 카지노 및 관광특구 개발과 이에 연관된 지방 조폭조직이라면 밀매한 러시아제 권총 같은 게 나올 법도 한데, 이 영화는 우직하게도 복고적인 액션영화 스타일을 밀어부친다. 고작해야 사시미 칼이 나오나. 그러나 핵심적인 액션씬들은 모두 전통적인 액션영화의 동작과 무기를 구사한다.

연회장에 쳐들어가는 두 사람이 준비한 무기는 고작해야 각목인데, 각목의 모양새부터 이들이 이 각목을 사용하는 동작은, 현대물에선 아무래도 자주 등장시키기 어려웠을(그래도 결국 막판에 결정적으로 등장한다, 아마도 이때를 위해 일부러 아껴둔 것이리라.) 장검 무술의 동작과 비슷하다. 연회장에서 저 이범수의 호위 무사들은 심지어, 차이나 칼라의 중국식 옷을 입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을 돌이켜 보노라면 그는 사실 스타일에 대한 욕심이 대단히 크고, 공들인 양식적 아름다움과 자신만의 영화적 스타일 확립을 위한 시도를 영화마다 해왔다. 『짝패』에선 유독 그러한 시도가 눈에 확 띄는데, 카메라가 상당히 느린 속도로 인물들을 따라가 사운드와 그림자만으로 난투극을 ‘들려주’는 오프닝부터가 꽤 인상깊다.

영화 중반까지 장면전환에 쓰이는 각종 기법들, 예컨대 팬을 이용한 시간대 전환과 심지어 화면 분할을 이용한 장면 전환 등은 영화의 흐름을 대단히 긴박하고 빠르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각 액션씬들의 그 각각의 특징들이란. 많은 액션씬들이 주로 발차기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각 액션씬들은 저마다 성격을 다르게 놓고 그 각자 다른 분위기를 훌륭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가령 위에서도 언급한 사거리에서 집단 싸움씬은 주위의 도구들과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는 성룡영화의 영향을 보는 것같은 반면, 연회장에 두 사람이 쳐들어가서 싸우는 시퀀스의 경우 마당에서는 전통적인 무협영화의 야외 검투씬을 보는 듯하다. 좁고 긴 골목방에서는 무협영화보다는 짧은 칼과 주먹으로 싸우는 장철영화를 보는 듯하고, 마침내 도달한 연회장 홀에서의 장면은 권법영화를 보는 듯.


사실 액션씬은 공간을 한정시켜 놓고 그 안에서 카메라를 싸우는 인물들 가까이에서 잡는 게 거의 정석이긴 하지만, 그가 묘사하는 액션씬들은 유독 협소하고 제한된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그것이 투견장이었건, 무도장이었건, 사각의 링 안이었건. 『짝패』에서의 액션씬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사거리 액션씬은 야외씬이긴 해도 좁디좁은 사거리이며, 마지막 연회장은 마당에서 시작하여 마치 문으로 파티션이 된 듯한, 길고 좁은 골목과도 같은 방들을 통과해야 한다. 미장센과 양식적 아름다움에서 스타일을 찾고자 하는 류승완의 야심은 확실히 이 씬들에서 시도만큼이나 빛을 발한다. 문이 촤라락 열리는, 이 씬 초반에서 그 깊은 공간감은 영화 문외한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고. 사실 ‘양복 입고 사시미 든’ 조폭 이미지를 싫어하는 편인데, 이 장면에서 사시미를 든 사내들 및 이들과 싸우는 두 사람의 씬은 굉장히 공들여 연출된 액션의 양식미가 느껴져 좋았다.

이건 사실, 위에서 “장철”영화를 보는 듯하다고는 했지만, 권법영화와 주먹싸움과 장검을 쓰는 무협영화의 영향 모두가 마구 짬뽕되어 있다. 적의 손목을 잡고 적의 칼을 이용해 다른 적을 베는 것도 그러하며, 반면 이들의 칼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인물과 인물간 사이 공간도 더 가깝다. 싸움의 시작에서 이들은 상을 이용해 칼을 막기도 하고.

어느 평론가는 “짝패”를 ‘류승완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라고 평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싸구려고 예술이고 온갖 액션, 무협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해온 영화광 출신의 감독이 만드는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온갖 갈래의 액션 및 무협영화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한데 모여 있는 이런 영화는, 사실 타란티노라 해도 만들 수 없다.

단순히 공간의 소품 배치와 카메라 앵글뿐만 아니라, 인물의 움직임까지 모두 포함하여, 간만에 시각적 즐거움을 한껏 안겨준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전의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류승완’은 누구인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진공 노바리

표절이든 애매하든 아무튼 하지마라!

표절(剽竊)
남의 창작물(創作物)(문학(文學)ㆍ음악(音樂)ㆍ미술(美術)ㆍ논문(論文) 등)을 그 내용(內容)의 일부(一部)를 취(取)하여 자기(自己) 창작물(創作物)에 제 것으로 삼아 이용(利用)하는 것  [다음 한자사전에서 인용]

표절의 정의는 확실하다. 그래서 이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대부분의 경우에 범죄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모방이나 오마쥬 또는 패로디 등 여러 형태의 유사행위가 있지만 표절과는 달리 이런 행위는 직간접적으로 원작자를 인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권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이 놈의 표절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소위 지도층입네 대표자입네 학자입네 하는 이들이 앞다퉈 다른 이의 글과 말과 아이디어를 베끼거나 살짝 변형하여 원래 제 것이라 하고 있고, 설령 들통이 나도 그렇지 않다는 궤변을 지나 뭐 어쩌라는 말이냐며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우리의 대중음악계에서도 이런 사정은 다를 바가 없어서, 표절에 관한 논란은 쉬지 않고 터져나오고 그러다가는 이내 사그라든다. 물론 유독 거기만 그러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이 그 모양이나 자꾸 얘기해서 뭐하겠냐만 그래도 한 번 씩 짚어는 봐야 할 터이다.

1. 아가씨

90년대 후반에 유럽에서 커다란 인기를 얻은 노래 ‘엘렝의 춤 (La danse d’Hélène by Méli-Mélo feat. Miss Hélène)’ … 일단 들어보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노래일텐데, 요즘도 노래방 등에서 흥겹게 불리고는 하는 ’97년도에 나온 ‘아가씨’의 원곡이다. 노래를 들어보나 악보를 보나 두 노래는 같은 노래다.

헌데 이것도 처음에는 국내 작곡자의 작사, 작곡으로 등록이 되어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내 표절 논란이 벌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작사는 장본인이 작곡은 외국곡, 즉 번안곡으로 수정을 하였다. 그랬음에도 웹을 뒤져보면 여전히 이 곡의 작곡자는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인 그 분의 이름으로 명기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는 표절을 넘어서서 아예 통째로 베꼈는데도 그냥 버젓이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사실 냉정히 말해 원곡이 희대의 명곡도 아니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곡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냥 처음부터 번안곡, 요즘 말로 리메이크라고 했으면 누구 하나 뭐라 안 하고 즐겨 들었을 터인데.

2. 조영남

Tom Jones의 대표곡 ‘Delilah’ [작사곡: Barry Mason, Les Reed] (딜라일라, 삼손과 데릴라의 그 데릴라) … 로 당시 그야말로 충격적인 데뷰를 한 가수 조영남.

그가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기 이전에 대표곡으로는 ‘제비’와 ‘고향의 푸른 잔디’ 그리고 좀 지나서 ‘내 고향 충청도’가 있다. 그는 이 곡들로 장장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텼다. 헌데 ‘제비’는 멕시코 민요 ‘La Golondrina’가 원곡이고 ‘고향의 푸른 잔디’는 ‘Green Green Grass Of Home’, 그리고 ‘내 고향 충청도’는 미국 민요 ‘Banks Of The Ohio’가 원곡이다.

그는 처음부터 모두 번안곡이라 밝혔고 이에 누구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으며 모두 즐겨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만약 그가 이 중 한 곡이라도 자기 작품이라고 했다면 안 그래도 곡절 많고 안티 많은 그의 가수생활은 진작에 끝났을 것이다.

3. 슬퍼지려 하기 전에 …

노래 한 곡 더 들어보자.


 
  
굳이 설명 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 노래는 쿨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의 원곡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곡이 좋으면 원작자에게 곡을 받아서 당당하게 불러라.
요새는 친분이 없다고 해도 원작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작권협회에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거의 모든 곡을 사용할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같은 곡으로도 얼마든지 색다르고 좋은 느낌을 전해 줄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니까 대박나고 좋잖냐 …

4. Creep

’90년대 팝계를 대표하는 명곡 중의 명곡, Radiohead의 ‘Creep’.
이 노래도 ‘The Air That I
Breathe’와 코드 전개와 멜로디가 유사한 부분이 일부 있어서 처음에는 표절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실은 Radiohead가 앨범 노트에 이 곡의 작사곡자인 Albert Hammond와 Mike Hazlewood에 대해 언급을 해 놓았었다. 그리고 표절 논란이 나온 이후에는 위 두 사람이 공동 작곡자로 등록이 되었다.

처음부터 저작권에 등록을 안 한게 그냥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약간 비슷하다고 느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후에라도 그걸 바로 잡았기에 이 노래는 명곡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5. 찜찜하기만 해도 하지마라! 

표절 논란이 있을 때마다 대부분의 해당 작곡자는 변명하기에 바쁘다.

‘그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우연의 일치다’
‘스타일이 비슷할 뿐 전혀 다른 노래다’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거다’
‘일부 소절이 닮았지만 표절은 아니다’ 등등 …

그러나 대중음악은 어떤 경우에는 스타일이나 느낌이 전부일 경우가 있다. 그럴때 몰랐다느니, 반음이 낮고 높다느니, 전개가 차이가 난다느니 등의 과학적(?) 해명은 별로 납득이 되질 않는다.

혹시라도 정말 우연의 일치로 매우 닮은 곡이 이전에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면 그냥 쿨하게 인정해라. 몰랐지만 이제 알았으니 원작자의 양해를 구하겠다고. 영감을 얻은 거라면 그랬다고 표시하고 오마쥬라면 오마쥬라고 얘기하고 패로디라면 확실히 비틀고 그랬게 해라. 그래도 원작자는 언제나 밝히고 인정하고 말이다.

어떤 경우든 남의 곡에서 몇 구절을 슬쩍 가져오거나 아예 통째로 베낀 거는 사실 그냥 범죄다. 그러나 이 범죄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 권리를 포기하면 그닥 큰 처벌 없이 용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걸리기 전에 애초부터 하지를 말고 어리석은 마음에 일을 저질렀다가 걸렸으면 머리 조아려 사과해라.

대중은 느낌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런 대중들을 향해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 작곡기법을 강의하려들고, 당신들이 음악을 잘 몰라서 그런다고 따져드는 이들은 이제 좀 그만 보았으면 하는게 작은 소망이다.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