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eux Noel, 메리 크리스마스

식스센스류의 반전이 아닌, 전쟁을 반대한다는 의미의 반전영화라면 으레 잔인한 장면이 나와야 하는 줄 알았다. 피가 튀고, 믿었던 전우가 전사하고, 아들의 시체를 안고 어머니가 울고, 뭐 대충 이런 장면들 말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평화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메리 크리스마스>는 반전영화 중 최고의 반열에 오를만하다.

때는 1914년, 1차세계대전이 열리던 중 전선에서 조우한 스코틀랜드, 프랑스, 독일 병사들은 잠시 휴전을 한 채 꿈결과도 같은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낸다. 막상 그런 일이 있고나자 “파티는 끝났다. 다시 총을 들어라”는 사령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가 없다. 사실을 알고 달려온 고위층에게 프랑스 중위는 항변한다.
“당신들은 우리와 같은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일까? 중위의 다음 말에 답이 나온다.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후방에서 칠면조나 뜯으면서 명령만 내리는 당신들보다는 저기 있는 독일인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그 병사들은 평화로울 때 만났다면 즐겁게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되었을 사람들, 그네들로서는 도대체 왜 자기네들이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 제일의 미녀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여인이 바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헬렌이다. <트로이>에서 헬렌 역을 맡았던 독일의 미녀 다이앤 크루거가 클래식 가수로 나오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결코 그녀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각자의 참호에서 나와 먹을 것과 이야기를 교환하는 병사들의 얼굴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저그런 로맨틱 코메디만 개봉하는 연말에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건 더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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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서민

죽다 살아난 김경재氏 1, 2 話

1.
삼 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쌀쌀하기만 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김경재씨는 출근길에 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상 속으로 들어온 지 10년.  세상 물정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 경재씨에게 10년 전의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하다.


그때 경재씨네 집은 잘 나가는 편이었다. 마당 넓은 집에 자가용도 있었고 사업하는 아버지는 매일 저녁 룸살롱에 살다시피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외환위기라는 것이 터지자 집안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란 것이 실속보다는 빚 얻어다 메우던 식인데다가 여기저기서 벌려대는 손에 몰래 돈푼 쥐어주기 바빴으니, 오히려 빚쟁이들이 그때까지 사업을 해 온 게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였었다.


이후 아버지는 집 안에 틀어박혀 세상한탄만 늘어놓았고, 보다 못한 어머니가 돈을 벌러 나섰지만 밥벌이도 빠듯할 지경이어서 김경재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김경재씨는 요즘 세상살이가 참 재미없다.


10년간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보았고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기껏 통장의 잔고라는 게 집 한 채는 언감생심이고 중형차 하나 사기에도 빠듯하다.
대학 안 나온 게 뭔 잘못이라고 번듯한 직장에는 원서도 못 넣는다.
결혼할 여자를 사귀어보려고 해도, 선을 보러 나가도 번번이 퇴짜이다.
옆 집 누구는 일도 안 하고 딴 짓만 실컷 하더니 어느 날엔가는 대박 맞았다며 이사를 가고 건너 집 누구는 좋은 동네 사는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자랑이 입에 달려있다.
어딘가는 집 값이 얼마고 친구네 친척 형은 주식이 얼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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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죽겠다.”
그 날 출근길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또 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 버스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발을 놀리던 경재씨는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기만 하던 집 앞 시장통의 풍경에 그날따라 왠지 눈이 끌리고 있었다.


‘에휴, 시장이 살아야 하는데 … 김씨 아줌마, 박씨 아저씨도 집 안에 돈이 말랐다고 걱정이 태산이던데 … IMF보다 더해, 진짜 … … 참, 집에 쌀 떨어졌는데, 퇴근길에 2마트에 들러야겠다.”
“그리고 컴퓨터 메모리도 업그레이드 해야지 … 기억용량이 너무 떨어져 … 남들은 기가쓰는데 내건 용량이 그게 뭐야 … 51              2MB …”


그런 생각을 하며 경재씨가 정류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경재씨의 앞에 하얀색 봉고차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다.


“뭐야 … 이런 씨X … 운전 똑바로 안 해!” 놀란 경재씨가 소리를 지르며 운전석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사이, 웬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경재씨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새 보건소장입니다.”

2.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멀쩡한 사람보고 죽었다니.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히 출근을 해요?”
“이것 보세요.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뭔가 잘못 아신 거예요. 난 지금 입원이 아니라 출근을 해야 한다고요.”



새 보건소장은 거칠게 항변하는 경재씨를 물끄러미 쳐다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보는 사람을 몹시 불안하게 만드는 눈빛을 날리며 서있던 새 보건소장이 갑자기 소리를 냅다 질렀다.


“젊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쓰나. 우리집 가훈이 ‘정직하게 살자’란 말일세!”
“… 예? …”


문제는 경재씨의 말버릇이었다. ‘아프다’ ‘힘들다’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던 경재씨의 눈치를 줄곧 살피던 아버지가 몇 달 전 쉬는 날에 경재씨를 억지로 동네 보건소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 애가 다 죽어가는데 보건소는 뭐하는 집단이냐’며 워낙 요란하게 떠들어서 보건소장이 직접 경재씨를 보았는데, 결과는 만성피로와 몇 군데의 타박상 그리고 무좀 등의 진단이었다.


그러면서 보건소장이 했던 말이, ‘이 정도면 투약이 필요치 않고 자꾸 약을 먹어 버릇하면 내성만 생기고 자생력을 해칠 뿐이다.’라는 투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애가 죽을 지경인데 약도 안 주는 무책임한 보건소’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건소를 나왔고, 이후 ‘애가 이 꼴이 된 건 다 보건소장 책임’이라며 온 동네에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다니곤 하였는데,



얼마 전 새 보건소장이 부임하자마자 아버지는 얼른 전화를 걸어 우리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나선 거야.  너에게 맞춤진료를 해 주려고.  한 마디로 너를 살려주겠다는 거지.”
“당신이 저를 … 살린다고요?”
“나는 내가라고 하진 않았네 …”
” … “

.
.
.
.
.

“흠, 역시 상태가 심각하군 … 간호사 님, 여기 암부하고 삽관하세요 …”
경재씨가 뭐라 대꾸해야할지 몰라 얼마간을 가만히 서있자, 새 보건소장이 차에서 내리는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잠깐만요 … 무슨 상태가, 뭐가 심각해요 …”
“방금 전 자네는 실신상태이지 않았나.”
“예? 아뇨!”
“예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이것 봐, 정신 없잖아 … 간호사, 빨리 기도 확보 해!”


새 보건소장의 지시를 재차 받은 간호사는 얼른 무릎을 끓고 앉으며 나지막이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 …”
“이것 봐, 이것 봐, 간호사. 뭐하는 거야?”
“선생님이 기도 한 번 하라고 하셨잖아요.”
“… …”
“… …”

“내가 그랬나?”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경재씨는 더욱 어이가 없어져서 고함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이건 …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


그러자 새 보건소장과 간호사는 동시에 경재씨를 향해 눈을 흘겼고, 보건소장이 쏘아붙였다. “이것 봐, 자네. 자네 지금 나의 전문지식을 의심하는 건가?”
“이래 보여도 난 길게 늙고 싶은 소망이 있는 사람이야!”
“… …”

.
.
.

“또 실신했군. 암부하고 삽관하세요.”
“예, 소장님 … 그런데요, 소장님 저도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권면하고 싶은 소망이 있답니다.”
“아, 그렇군요 … 암부는?”
“갑자기 안부는 왜?”
“… …”
 
.
.
.
.
.

(계속)


영진공 이규훈

장-피에르 멜빌,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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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 쯤이면 ...
이 영화를 보면서 틀림없이 원작소설이 있고 그걸 각색한 작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imdb를 찾아보니 자크 드발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나옵니다.. 조금 놀랍군요. 뭔가 ‘문학적인’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고, 아주 살짝은 실망을 했고, 그럼에도 마지막 여운은 짠했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림자 군단>을 보고 그 간결하면서 건조한 화면에 쇼크를 받으며 열광을 했더랬는데, 뭐랄까, 역시 인간의 심리를 복잡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내야 하는 영화는 멜빌과 안 어울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멜빌전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이미 거진 다 보았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역시 최고는 <암흑가의 세 사람>이고, 섬세하고 서정적이어야 할 <바다의 침묵>(원작소설이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은 다소 당황스러웠다고 하니까요. 만약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면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는 꽤나 억장을 무너지게 할 슬픈 멜러영화가 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그렇게 됐다면 이 영화가 더 좋은 영화가 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멜빌 버전은, 묘하게 사람 애잔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긴 해요.


수녀원에서 정식 수녀로 서원하기 일주일 전, 테레즈는 부모님의 급사 소식을 듣고 어린 여동생 드니즈를 보살피기 위해 수녀원을 나와 집으로 옵니다. 그녀는 부모님이 하시던 문구점을 드니즈와 함께 이어받고, 자신에게 대단히 의지하는 드니즈를 엄격한 규율과 따스한 애정으로 돌봅니다. 한편 천하의 몹쓸 바람둥이 막스는 이혼을 앞둔 부유한 여성인 이렌 포게레를 꼬셔 그녀에게 얹혀살다가 우연히 드니즈를 알게 되고, 마침 포게레 부인을 찾아온 드니즈를 호텔방에서 강간합니다. 드니즈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테레즈는 막스를 협박해 드니즈와 결혼을 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막스는 테레즈에게 한눈에 반했다며 그녀에게 구애를 합니다.


어느 해안가 장면 위에 오프닝 타이틀이 지나간 후, 영화의 본격적인 첫 장면은 수녀원을 찾아온 테레즈의 조부와 수녀원장의 씬입니다. 저는 조부가 수녀원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수녀원장이  테레즈를 불러오고, 조부가 전하는 소식에 충격을 받는 테레즈의 장면을 정말로 그렇게 다 보여줄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여기서 어? 하면서 살짝 실망을 했더랍니다. 물론 이 씬은 테레즈라는 인물과 그녀의 배경을 설명하는 씬입니다만, 필요이상으로 길어요. 심지어 수녀원장의 명을 받은 다른 수녀가 정원에서 일을 하고 있던 테레즈를 불러세우고, 이들이 수녀원장실로 향하는 장면까지 나오니까요. 수녀복을 입은 쥘리엣 그레코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고 멋지긴 하지만,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불리는 멜빌 치고는 첫 시작부터 쓸데없이 늘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테레즈와 드니즈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테레즈가 전반적으로 매우 검소하고 엄격한, 수녀원 출신다운 외모를 보여준다면, 드니즈는 훨씬 발랄하고 아름답습니다. 사실 외모부터도, 테레즈 역의 쥘리엣 그레코는 조금 딱딱하면서도 날카로운 외모에 거의 표정이 없는 얼굴이 하고 있습니다. 반면 드니즈는 대단히 풍성하게 아름답지요. 그렇기에 이 아가씨가 강간을 당한 뒤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매우 애처롭고 마음이 아픕니다. 다시 옷을 단정하게 입긴 하였으나(심지어 스타킹까지!) 머리는 살짝 흐트러져 있고, 완전히 멍한 상태로 길을 나서 배로 향합니다. 그녀의 자살은 그리 ‘충동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배의 갑판 문을 확인해 보고, 배를 타기 전 카페에서 작성한 유서를 가방에 놓는 침착하고도 주도면밀한 면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이 일어나는 게 거의 영화의 반이 지나서입니다. 사실 막스와 드니즈가 처음 만나는 장면 자체가 영화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점일 거예요. 앞부분이 좀, 많이 길죠. 왜 이렇게 느끼냐하면, 이 영화가 빛나는 지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드니즈가 자신에게 청혼한 막스가 잘해준다며 그저 좋아하고, 막스는 드니즈에게 친절하게 굴면서 공공연히 테레즈를 유혹하며 작업을 걸고, 이에 대해 테레즈는 무표정한 얼굴로 – 그러나 그 뒤로 어딘가 흔들림이 느껴지는 얼굴로 – 단호한 자세를 취하는 일련의 대립과 비밀의 장면들이거든요. 발랄하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드니즈는 막스가 테레즈에게 던지고 있는 그 무수한 낚시와 추파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워낙 여자를 후리며 돈을 빼먹는 막스의 사기짓거리를 (멜빌이 영화 초장부터 자세히 보여준 덕에) 잘 알고 있기에 그가 테레즈에게 하는 고백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막스 트리베 역을 맡은 필립 르메르의 얼굴은 뺀질하고 비열해 보이면서도 매끈한 부분이 있어서, 그 고백들을 100% 거짓이라 단정하기도 힘이 듭니다. 저 노련한 뱀같은 말을 듣는 테레즈의 얼굴은 또 대단히 무표정해서, 그러나 그 얼굴이 한편으로는 어딘가 흔들리고 있는 듯해서, 여기에서 바로 긴장과 스릴이 발생합니다. 사실 저렇게까지 열렬하게 사랑 고백을 하면 믿고싶은 게 당연한 사람의 마음이잖아요. 적어도 저는, 테레즈가 결코 막스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기를, 그러나 저 고백 자체는 사실이기를 바랐답니다. 막스의 진심이 뭔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요.


드니즈의 금을 훔친 막스가, 테레즈가 자신을 뒤따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저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막스가 정말 진심인 건지, 아니면 바람둥이로서 너무 용의주도한 것인지 헷갈렸어요. 물론 막스는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아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설마, 저게 진심이란 말이야? 싶었지만, 그가 워낙 악당이기에 쉽사리 그 마음을 믿을 순 없어요. 그리고 아마 테레즈의 마음도 딱 그랬을 겁니다. 사실 테레즈는 꽤 현명해서, 설사 막스가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남자와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녀는 끝까지 막스에게 단호하게 구니까요. 하지만 해변가에서 막스가 다시한번 구애를 하고 테레즈가 단호하게 구는 장면에서는, 테레즈의 차가운 말들과 달리 테레즈의 모습이 다소 흐트러져 있습니다. 영화 내내 그토록 단정하게 빗어올렸던 테레즈의 풍성한 머리가 풀려 바람에 마구 휘날리는 것도 이 장면이고,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하게 행동하던 그녀가 허둥대며 뛰어다니는 단 한 씬도 바로 이 장면입니다. 테레즈의 마음이 단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다소 느리게 느리게, 흘러가던 장면들은 드니즈-막스-테레즈의 삼각 구도 이후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하고, 거침없이 엔딩을 향해 질주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은… 꽤 애잔함을 줍니다. 우리는 테레즈가 정말로 수녀원으로 가려고 했을 거라 믿을 수밖에 없지만(이후 그녀의 기도에서도 확인되기는 합니다), 그가 막스에게 갈까, 흔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합니다. 테레즈가 막스를 만나기로 한 곳은, 막스가 죽음을 맞이한 레자크 역이 아니라 마르세이유 역이었고, 영화는 마르세이유 역에 도착한 그녀가 곧바로 수녀원으로 향하는지 아니면 막스를 찾아 두리번거리는지는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아마 그녀 역시, 막스의 열렬한 구애에 조금은 마음이 흔들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철저히 ‘비밀’로 묻혔고, 오직 죽은 막스와 테레즈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완전히 묻혀버린 기억이 됩니다. 드니즈는 평생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약혼자가 뜻밖의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에만 슬퍼할 것이고요.


영화의 엔딩은 오프닝 타이틀 때처럼 다시 해안가를 비추면서 끝납니다. 처음과 끝이 동일한 이 장면은, 결국 모두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살아갈 것이고, 오로지 테레즈의 가슴 속에서만 폭풍이 몰아치고, 테레즈의 기억 속에서만 막스가 잠시쯤은 어떤 열정을 보여줬던, 그러나 그 열정도 실은 믿을 수 없는 그런 남자로 기억되겠죠.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진심의 사랑을 느꼈던 여인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남자란 굉장히 불쌍한 존재이긴 한데, 이 친구는 사실 워낙 저지른 죄가 많아서 그래도 싸다, 싶고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음에도, 그 마지막의 시체를 보니 연민이 눈곱만큼은 생기더군요. 사실 막스가 처음으로 사람다워 보이는 게 그가 시체가 됐을 때입니다. 도대체 이 인간은, 그 사랑이 나름 진심이긴 했구나 확인되는 순간에도 밉살스럽게 구니까요. 다만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드니즈와 막스를 위한 연민의 기도를 올리는 마지막의 ‘수녀’ 테레즈의 모습은, 영화의 전반적인 건조한 느낌 때문인지 더욱 짠합니다.


영화의 제목,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 쯤이면…”은, 모두 편지를 쓴 이가 ‘미래’를 가정하고 쓰는 구절입니다. 영화에서 세 번이 나오는데, 한 번은 드니즈의 유서의 첫 시작 내용이고, 두 번째는 막스가 비케에게 보낸 편지지요. 드니즈의 구절이 결국 ‘삶’으로 연결됐다면, 막스의 구절은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연결됐다는 점이 또한 아이러니한 매력이겠죠. 이 구절은 원래 막스 오퓔스 감독의 영화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의 그 편지 첫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라 합니다.




영진공 노바리

ps. 쥘리엣 그레코는 우리에게 이브 몽탕과 함께 부른 ‘고엽’으로 너무나 유명한 샹송가수죠. 그녀가 부른 ‘La Mer’ 같은 곡들을 어렸을 적 꽤 자주 들었구나 싶기도 한데… (불과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만 해도 라디오에서 샹송이 심심찮게 나왔답니다..) 재미있게도 그녀는 무대에서 검은 옷을 즐겨 입었죠. 이 영화에서 계속 검은 원피스를 입고 나오는 그녀의 모습과 겹칩니다. 참, 그녀는 파리에서 활동할 당시의 마일스 데이비스와 연인 사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지난 제천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유로피안 재즈의 모든 것>에 모습을 잠깐 드러내는 것 같군요.

ps2. 이 영화는 멜빌 감독이 처음으로 자신의 각본이 아닌 남의 시나리오로 연출한 영화입니다. 아마도 스토리와 스타일이 서로 어긋나는 듯한, 좀 안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장르도 장르지만 그 이유가 큰 걸까요? 멜빌의 다른 영화들을 보지 못해서, 다른 영화들 중에도 이런 어긋남이 보이는 게 있는지 모르겠네요. 멜빌전이 다 끝나기 전에 확인해 봐야 할텐데… 멜빌 전은 벌써 중반을 달리고 있고, 전 이제 이 영화 한 편만 본 상태랍니다. 제발, 다음 주엔 영화들을 볼 시간이 나야 할 텐데 말이죠.

[가사 검열] Shape Of My Heart

Sting의 1993년 앨범 <Ten Summoner’s Tales>에 처음 수록되었고,
영화 <레옹>에도 삽입되어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노래 “Shape Of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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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의 공동 작곡자는 Dominic Miller인데,
그가 재즈 기타리스트 Pat Metheny와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공연 실황과,
Sting과 함께 기타 반주만으로 노래하는 동영상을 준비해 보았다.

그럼 모두들 즐감~ ^.^  

Shape Of My Heart
By Sting & Dominic Miller
By Dominic Miller & Pat Matheny





He deals the cards as a meditation
And those he plays never suspect
He doesn’t play for the money he wins
He doesn’t play for the respect
He deals the cards to find the answer
The sacred geometry of chance
The hidden law of probable outcome
The numbers lead a dance

그는 명상을 위해 카드를 돌리지,
그는 상대방을 전혀 의심하지 않지,
그는 돈을 따기 위해 게임을 하지는 않아,
그는 명성을 얻기 위해 게임을 하지는 않아,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카드를 돌리지,
이길 수 있는 기회의 신성한 기하학,
나올 수 있는 결과의 숨겨진 법칙,
숫자들이 춤을 추네,

I know that the spades are the swords of a soldier
I know that the clubs are weapons of war
I know that diamonds mean money for this art
Bu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스페이드는 병사의 칼을 의미하지,
클로버는 전쟁 병기를 의미하지,
다이아몬드는 이 게임에서 돈을 의미하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마음(하트)의 모양은 아니야,

He may play the jack of diamonds
He may lay the queen of spades
He may conceal a king in his hand
While the memory of it fades

그는 다이아몬드 잭으로 플레이하기도 하지,
그는 스페이드 퀸을 내놓기도 하지,
그는 손 안에 킹을 들고있기도 한다네,
그 기억들이 점점 멀어져 가네,

I know that the spades are the swords of a soldier
I know that the clubs are weapons of war
I know that diamonds mean money for this art
Bu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That’s not the shape, the shape of my heart

스페이드는 병사의 칼을 의미하지,
클로버는 전쟁 병기를 의미하지,
다이아몬드는 이 게임에서 돈을 의미하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마음(하트)의 모양은 아니야,
그건 내 마음의 모양이 아니야,

And if I told you that I loved you
You’d maybe think there’s something wrong
I’m not a man of too many faces
The mask I wear is one
Those who speak know nothing
And find out to their cost
Like those who curse their luck in too many places
And those who smile are lost

내가 그대를 사랑한다 말하면,
그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겠지,
난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난 단 하나의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은,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되지,
너무 많은 곳에서 자신의 행운을 바라는 이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 이들,

I know that the spades are the swords of a soldier
I know that the clubs are weapons of war
I know that diamonds mean money for this art
Bu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스페이드는 병사의 칼을 의미하지,
클로버는 전쟁 병기를 의미하지,
다이아몬드는 이 게임에서 돈을 의미하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마음(하트)의 모양은 아니야,
그건 내 마음의 모양이 아니야,


영진공 이규훈

<나는 전설이다>, “구원은 전설이 아닙니다.”

구원이 전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원맨쇼에 종치기를 기대합니다




흥미진진하게 기대하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하지만 세번째로 리메이크된 이 영화 시간이 지나 그래픽의 발달로 영화는 완벽한 공간을 재현하였지만 해피엔딩의 강박감에 시달리는 헐리우드는 40년전 오메가맨에 이어 또 한번 최악의 결말을 만들어 냈다.

마치 최고의 반전 SF라고 불리는 조 홀드만의 영원한 전쟁의 스토리를 가져다가 군국주의의 찬양이라고 불리우는 스타쉽투르퍼스를 만들어 버린 상황이다. 영화의 스토리를 이렇게 바꾸어 버릴거면 차라리 제목을 70년대 영화 오메가맨으로 바꾸어 버리던지, 나는 전설이다란 원제를 그대로 쓰면서 화려한 그래픽과 윌스미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졸작으로 만들어 버렸다.

원작소설을 단순하게 이야기 하자면 두눈을 가진 인간이 외꾸눈 왕국에서는 일반인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이 영화는 헐리우드 해피엔딩의 의지로 외꾸눈 왕국의 모든 인간들에게 새 눈을 달아주자는 것이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있는 인간이 모든 지구의 생물들에게 우선한다는 지극히 일상적으로 삐뚤어진 이기주의적 발상이 느껴지며, 미국의 정의가 세계모두의 정의라고 굳굳히 믿고사는 지극히 미국적인 결말이 보이는 듯 하여 그리고 그래픽은 화려하지만 돌연변이 인종들은 치유되어야 할 장애인들로 인식되는 줄거리가 미국과 제삼세계의 시각을 보는 듯해서 좀 우울해지는 느낌으로 극장문을 나섰다.

왜 헐리우드 = 주관적 해피엔딩이란 공식은 미국에서 정의로 인식 되는 걸까.

사족 하나: 인간은 어차피 고독한 존재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 쌓여 있어도 우리는 늘 고독하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생존의 문제가 다르고 그나마 가족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 안에서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세월이 흘러가면서 문득 문득 고독해진다. 원래 원작소설은 어찌보면 2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발전된 대량 생산 산업 사회에서의 인간에 대한 고독을 이야기 하려 했는지 모른다. 본 영화에서의 고독은 어찌보면 부러워 보인다. 몇해전 캐스트 어웨이의 톰행크스의 고독에 못 미쳐 보이는 점도 유감이다.


영진공 클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