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골라 보기] 스튜디오 60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

 

“미드” (미국 드라마의 줄임말)는 어느새 우리 문화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구해 보던 미국 드라마가 이제는 케이블 TV의 주요 편성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고, 열혈시청자들은 심지어 미국의 일부 지역 시청자들보다 먼저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게 될 정도다.

사실 요즘처럼 미국 드라마가 다양하고 빈번하게 우리 주변에 자리잡기 이전에도 “미드”는 우리의 문화생활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어왔다.  주변의 어른이나 선배들에게 다음의 미국 드라마들에 대해 여쭤보시라.  필시 어느 하나 정도는 그 분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초원의 집>, <컴뱃>, <래시>, <달라스>, <기동순찰대>, <에어울프>,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브이>, <전격 제트작전>, <A 특공대>, <코스비 가족>, <아들과 딸들>, <알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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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드라마들과 요즘의 “미드” 열풍 사이에는, 스컬리와 멀더 요원의 <The X-Files>가 있었으며, 이어서 인터넷 강국 코리아는 <프렌즈>와 <CSI>가 PC 모니터에서 분주히 상영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2005년 석호필의 <프리즌 브레이크>를 필두로 “미드”는 일부 매니아들의 기호품이라는 자리에 벗어나게 되었고, <로스트> <24> <섹스 앤 더 시티> <그레이스 아나토미> <하우스> <위기의 주부들> 등 미국의 인기 드라마는 곧 바로 한국의 공중파와 케이블에서 방영되고있다.

“미드”의 매력은 뭘까?
예전에는 “호기심”과 일종의 “부러움”이 주로 작용하였다.  요즘 동남아 국가 등지에서 “한류 드라마”가 커다란 인기몰이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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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의 그것은 단지 호기심 차원이 아닌 소재의 다양성과 상대적으로 신선한 표현형식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트콤, 정치 풍자, 사회 풍자, 사는 이야기,  법정, 수사, 외계, 범죄, 희극, 비극, 곤조, 애니메이션, 퍼핏, 실사혼합 등등 우리 미디어나 문화현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많은 소재, 쟝르와 형태의 드라마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 중에서 도대체 무얼 보아야 할까.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지만 많아도 너무 많으니 골라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영진공>에서 [미드 골라 보기] 코너를 마련하였다.

이 코너의 목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미드”를 울궈먹자는 게 아니라,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 드라마 중 취향이 분명하고 소구하는 시청자 층이 뚜렷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에 있다.


 


[ 미드 골라 보기 1.]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

* 내용: TV 코미디 쇼의 제작과 진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
* 방영 기간: 2006. 9. 18. ~ 2007. 6. 28 (총 22편, NBC TV)
* 시즌: 1시즌으로 종영
* 제작자: 아론 솔킨 (Aaron Sorkin)
* 주요 등장 인물
   – 매튜 페리 (매트 알비 역): 바로 그 “Friends”의 챈들러 빙!
   – 브래들리 위트포드 (대니 트맆 역): “웨스트 윙”에서 대통령 보좌관으로 나옴.
   – 아만다 피트 (조단 맥디어 역): “나인 야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시리아나” 등의 영화에 출연.
   – 새라 폴슨 (해리엇 해이즈 역): “왓 위민 원트” “다운 위드 러브” 등의 영화에 출연.
   –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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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히트 작가이자 제작자인 아론 솔킨이 작가로 참여하고 직접 제작한 시리즈이다.

아론 솔킨은 “어퓨굿맨 (A Few Good Men)” “대통령의 연인 (The American President)” “찰리 윌슨의 전쟁 (Charlie Wilson’s War)” 등 히트 영화의 각본을 쓰고, “웨스트 윙 (The West Wing)”, “Sports Night (국내 미방영)” 등의 히트 드라마를 직접 쓰고 제작한 유명 작가이다.

이런 아론 솔킨의 명성과 화려한 캐스팅 덕분에 미국의 TV社들은 앞다투어 이 드라마의 방영권을 따내려 하였고, 방영 전부터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시리즈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첫 방영 이후 미국내 시청율이 급전직하로 하락하였고 급기야는 중도 폐방까지 거론되는 우여곡절을 거쳐 22편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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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가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NBC가 자체 발표한 시청율 분석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Studio 60 has consistently delivered some of the highest audience concentrations among all primetime network series in such key upscale categories as adults 18-49 living in homes with $75,000-plus and $100,000-plus incomes and in homes where the head of household has four or more years of college.”
(스튜디오60은 황금시간대 드라마 중 다음과 같은 계층에서 가장 높은 시청집중율을 꾸준히 유지했다.  칠천만원 ~ 일억원 이상의 수입이 있는 18세~49세 성인가정과 4년제 대학 졸 이상의 가장이 있는 가정.)

즉, 한정된 범위의 시청자층(중산층 고학력자)에게는 강하게 어필하였지만 여타의 시청자층에게는 별로 흥미를 주지 못하였다는 얘기다.

아론 솔킨의 전작인 “웨스트 윙”에서는 그의 정치에 대한 입장과 식견이 탁월히 드러나며 많은 시청자를 끌어 모았고, “Sports Night”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풍자와 유머가 잘 어우러진 반면, “스튜디오 60″에서는 위 두 드라마가 뒤섞인 듯한 분위기에서 정치, 종교, 인종에 대한 문제가 비교적 심각한 톤으로 전달되다보니 이 드라마를 보며 웃어야 하는 건지 심각해져야 하는 건지 시청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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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의 정치지형과 그들의 정서,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의 사고방식, 미국 TV 제작 시스템 등에 관심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당신으로 하여금 끝까지 달리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Sting, Sheryl Crow, Natalie Cole, Macy Gray, Corinne Bailey Rae 등의 가수들이 출연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기도 한다.  

다만, 시리즈 후반부로 가면서 시청율을 의식해서인지 러브스토리가 많이 나오고 분위기가 조금씩 늘어진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

* 베스트 에피소드
11편. “Christmas Show”

* 베스트 뮤직 게스트
Sting – 5편. “The Long Lead Story”


영진공 이규훈

<빨간 풍선>,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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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 샤오시엔 감독께서 어인 일로 프랑스까지 가서 영화를 만드셨는가 의아했는데 오르세 미술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에 초빙되어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군요. 영화 속에도 직접 언급되는 알베르 라모리세 감독의 단편 <빨간 풍선>(1956)과 똑같이 생긴 빨간 풍선이 등장합니다. <쓰리 타임즈>(2005) 까지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온 주천문 작가가 이번에는 빠진 대신 제작자인 프랑소와 마골랭이 공동 각본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미리 같이 썼다기 보다는 현장에서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얘기 나누고 프랑스어 대사를 프랑소와 마골랭이 적어서 배우들에게 나눠주고, 뭐 그렇게 작업하셨겠지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같은 파리에서 새 영화를 찍은 홍상수 감독도 그렇게 작업하셨을테고요.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2007) 의 리뷰에서 “전체적인 내러티브가 후련하지 않다”고 했던 불만은 사실 이번 <빨간 풍선>을 비롯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대부분 작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렇다할 스토리가 없는 영화입니다. 파리에 살고 있는 배우이자 이혼녀 수잔(줄리엣 비노쉬)에게 어린 아들이 하나 있고(다른 나라에 딸이 하나 더 있죠), 이들은 영화를 전공한 중국인 유학생 송 팡을 새로운 베이비시터로 맞아들입니다. 아래 층에는 전 남편의 친구가 세들어 사는데 1년치 방세를 내지 않고 있어 결국 쫓아내기로 한다, 이게 전부입니다. 영화를 통해 일반적으로 얻고자 하는 서사적인 재미라는 관점에서는 완전 빵점인 영화인 겁니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애초에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그런 재미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어떤 형태로든 ‘판타지’를 구현한다면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특히 대만이 아닌 해외에서 만들어진 두 작품 <카페 뤼미에르>(2004)와 <빨간 풍선>이 그렇습니다. 평범한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일에 열중하다가 때로는 추억에 잠기기도 하는 모습들을 담담히 관찰하는 이런 영화를 보는 동안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문득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다름아닌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하는 영화라 부르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판타지를 경험하기 위해 찾는 곳이 영화관이라 하지만 막상 일상 속에서 그 자체를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극장 안에서 잠시 아주 일상적인 것들을 찬찬히 바라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의외로 각별한 경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들이 거장이라고 부르는 감독의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일년에 수십 편의 판타지를 경험하는 와중에 나 자신의 모습을 잠시 돌아보게 해주는 영화라면 한 두 번쯤은 값지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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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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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텔레비전은 Goldstar였다. 텔레비전을 처음 집에 들이던 당시로는 비디오 데크가 장착돼 있고, 덩치가 큰 나름 고급형이었다. 그건 우리 돈으로 산 것이랄 수도 있고, 아니랄 수도 있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 대신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LG 가전제품 팬인 엄마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LG 제품을 좋아한다. 엄마의 애정이 오랜 경험에서 얻은 신뢰라면, 내 애정은 어딘지 막연한 애정일 뿐이지만은. 여하간 나는 우리집 텔레비전도 좋았다. 화면 아래 박힌 Goldstar 마크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그 텔레비전을 오랜 시간 사용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그 사실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모두가 Goldstar 제품을 쓰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일어났던 거라. 심지어 Goldstar가 LG로 바뀌고, 그러면서 지금의 빨간 심볼-사람 얼굴을 닮은-을 알리는 신문 전면광고를 흥미롭게 살펴보던 순간까지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그 텔레비전을 떠나보냈다. 온가족이 휴일이라 모처럼 다함께 집에 있던 오후, 새 TV를 들고 온 기사님이 가져가셨다.

“리모컨도 드릴까요?”
“아뇨, 어차피 폐기처분 하니까요.”

알고야 있었지만 막상 ‘폐기처분’이란 말을 실제로 들으니 그렇게 서운할 수가. 보내면 안 될 곳으로 떠나보내는 심정이여.

이윽고 기사님이 낑낑거리며 덩치 큰 텔레비전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건 추억의 리모컨이 됐구나.”

아쉬운 건 마찬가지인 엄마가, 리모컨을 버리지 않고 서랍장에 넣어두셨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새 디지털 TV 앞에 모여 “으악, 모공이 보여”, “으악, 편성표가 나와”, “으악, 이걸로 보니까 저 남자 꽃미남이었어!” 하며 법석을 떠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갑자기 지출하게 된 TV 값에 대해 아쉬워 하셨는데, 마침내 묘안을 떠올리고 흡족해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  이제부터 시청료를 내거라.”
컥.

이 글을 쓰고 있자니 훗날 언젠가- 저 새 TV를 교체할 때엔 어제같은 서운함은 없을 것이다, 덩치부터 든든하던 예전 놈과 달리 저 새낀 얍실해서 정이 갈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그만큼의 추억을 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라던 생각이 흔들리네. 그때는 또 어제 우리 가족의 모습부터 떠올리게 되려나.

여하간 아, 어제 보낸 것들에게 잠시 인사해야겠다. 안녕 텔레비전, 안녕 아날로그 시절, 안녕 Goldstar…!
 


영진공 도대체

줄리앙 슈나벨, <잠수종과 나비>

잠수종과


이런 류의 인간승리 드라마가 지치지도 않고 만들어지고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확인하는 데에서 안도와 자극을 받으려는, 분명 음험하고 고약한 이기적 심리가 큰 몫을 하기 때문일 거다. 물론 그건 별로 우아하지도 기품있지도 않지만, 어쩌랴, 그게 인간의 본능이기도 한 것을.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유,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힘을 추스르는 데에, 나보다 더 불행한 상황에 빠져있는 사람(물론 이건 철저히 보는 사람 입장 기준이다)이 그럼에도 생을 낙관하고 끝까지 삶에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한 방도 없다. 물론 이 약효는 매우 단기적 처방이지만, 어차피 이 한 방을 원하는 사람들 역시 다른 식의 기쁘고 좋은 일을 맞아 어둡고 씁씁한 기억 따위 금방 지워버릴 수 있는, 단지 그 짧은 기간동안 약효가 지속될 만한 한 방을 원해서 이런 얘기를 탐하는 거니까.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들은 반드시 ‘실화’여만 한다. 이런 식의 글이 매우 냉소적으로 보일 것이라는 건 잘 알고있지만, 나는 여기에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는 것도, 그걸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장-도 보비의 유족들이 그의 책이 영화화되는 것을 허락했을 때도 바로 그런 식으로 그의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꿔 말하면, 자기 인생에 대략적으로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이런 이야기 한 방으로 도저히 구제되지 않을 장기적인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이런 식의 이야기가 그닥 약효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부류인데(‘대체로 만족’과 ‘장기우울증’ 중 어느 쪽인지는 묻지 말 것), 대신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한쪽 눈꺼풀을 제외하고 온몸의 신경이 마비된 장-도가 세상을 보고 느꼈던 방식을 어떻게든 함께 경험해보고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다른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카메라였다. 사람의 눈과 마음은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은 법이라, 아마도 깐느영화제가 이 영화에게 다른 상이 아닌 감독상과 기술상(촬영을 맡은 야누스 카민스키가 수상했다)을 주었던 것도, 아카데미상이 외국어영화인 이 영화를 촬영상 후보에 올려놓은 것도, 그래놓고 다른 데에서 외면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챙겨준답시고 냉큼 촬영상을 줘버렸을 때 많은 이들이 불평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좋은 영화인 것은, 사지가 마비된 채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장-도를 그저 감독 마음대로 대상화하고 착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장-도를 최대한 이해하고 그의 눈이 보는 방식대로 세상을 보고자 했던 노력,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그 노력이 화면에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잠수종과

잠수복 안에 갇힌 나비.


이는 단순히 한쪽 눈을 꼬매버릴 때 카메라가 취한 트릭이나 영화의 전반부 반을 흐릿한 초점과 카메라의 상후좌우 화각을 제한해버린 트릭, 혹은 단순히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가 들고 있었던 물리적 의미의 그 카메라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런 영화를 찾는 사람들의 기대를 정면에서 배신한다. 불행한 상황에 빠진 인간의 실화를 보러 눈물을 흘릴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뜻밖에 이 영화가 그 장르 영화들이 흔히 취하는 방식의 대상화가 아닌, 영화라는 2차원 그림 매체가 취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최대한 장-도와의 동일시를 시도하는 영화의 방식에 일단 당황하게 된다. 또한 한없이 불쌍하고 연민이 가는 초라한 사내가 아닌, 자신의 사고를 놓고도 농담따먹기를 하며 잔뜩 긴장해 있는 의사나 다른 간호사를 놀려먹는 낙천적인 유머쟁이 남자에게 또다시 당황하고 만다.



잠수종과

굳은 몸 안에 갇힌 보비에게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쓰인 내레이션들이다. 대체로 내레이션은 영화가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요소들 중 가장 비-영화적인 것(혹자들에겐 반-영화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은 주인공의 외모와 심리를 정면으로 충돌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게 영화적인 역할을 한다. 화면 안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아무 말도, 표정도 제스추어도 취할 수 없는, 그저 한쪽 눈꺼풀만 꿈뻑대는 한 사내의 모습이다. 그나마도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동안은 그가 보는 세상만 따라가는 카메라 덕에 우리는 그의 모습을 영화가 시작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확인할 수 있다. 잠수복 안에 갇힌 꼼짝 못하는 몸과 사람 사이를, 병원 곳곳을 가볍게 날아다니는 영혼(나비)의 대조는 이렇게 화면과 사운드의 대조로 형상화된다. 장-도가 갑자기 뇌졸중을 일으키는 장면은 영화의 처음이 아니라 맨 마지막에 배치됨으로써, 우리는 실상 잠수복 속의 몸보다는 그의 가벼운 영혼을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신파의 감동에 눈물 흘리는 대신 그 자유로움에 대한 경외, 그럼에도 그 자유로움을 붙잡는 육체의 한계를 함께 느끼며 답답해하는 것. 그럼에도 잡지 편집장답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려 하고, 이를 위해 마지막 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 아마도 줄리앙 슈나벨 감독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잠수종과

보비의 아버지로 출연한 막스 폰 시도우. 나이가 드셔도 섹시하시다… ㅠ.


영진공 노바리

ps. 프랑스 원제의 ‘잠수복’이 어쩌다가 영어제목, 한글제목에서 ‘잠수종’이 된 것일까.


ps2. 큐피트의 부인인 프시케(psyche, 영어권에서는 사이키라 발음하기도)의 이름은 ‘영혼’을 뜻하기도 하지만 ‘나비’의 어원이기도 하다. 나비가 영혼을 상징하는 건 아주 오래된 얘기. 참고로 심리학과 관련된 무수한 용어들(psycho-로 시작하는) 역시 모두 프시케에서 유래한 것.


ps3. 요즘 내가 보는 프랑스 영화에는 거의 마티유 아말릭이 나오는 듯. 그만큼 국내에 프랑스 영화가 안 들어온다는 얘기…? 엠마뉘엘 세이녀, 오랜만에 보니 반갑구려.


ps4. 줄리앙 슈나벨도 그러고보면 엄청 과작 감독이라는. 대체 <바스키아>가 언제적 영화인데… <비포 나잇 폴스>도 2000년작 아닌가. (이 영화는 결국 놓쳤다. 조니 뎁이! 여장을 하고 나오는데!!)

ps5. 위에서도 썼듯 장-도 보비의 아버지로 나오는 배우는 막스 폰 시도우, 그리고 루시앙 신부로 나오는 잘 생긴 할아버지는 바로 작년에 타계한 장-피에르 카셀이다. 뱅상 카셀의 아버지이자, 내게는 1969년작인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그림자 군단>에서 한눈에 꽃미남 포스로 넉다운을 안겨주신 분. 정확히 말하자면 ‘뱅상 카셀이 장-피에르 카셀의 아들’이라고 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