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로 보는 광우병 논쟁

 

아래 동영상은 인기 미국 드라마 “보스턴 리걸”의 에피소드 하나를 편집한 자료인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축약한 것과 같군요.

그리고 이걸 보면 다우너 소가 반드시 광우병 소가 아니라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서운 사실이라는 걸 알게됩니다.
이미 보신 분들은 복습하는 기분으로 한 번 더 보시면 될 듯 …

모든 다우너가 광우병도 아니지만 다우너가 아니어도 광우병일 수 있다는 거죠.
다우너만 광우병이라면 오히려 발견하기도 쉬울텐데 그게 아니니 …
미국 워싱턴 주에서 발견된 광우병 소의 경우가 그랬다고요.

 
그렇다면 결국 지금 검찰은 광우병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병인지를 밝히기 위해서
PD수첩과 싸우고 있는 거군효..

아 그러쿠나 ….. -.-

덧붙여, 이제 이슈는 광우병 자체를 넘어섰습니다.

이 정부의 알량한 거짓말이 진짜 문제죠.

추가협상이라는게 사실은 그저 “논의”에 불과했고,
그나마 그 모든 것 조차 미국수출업자들의 일시적인 양해일 뿐이라는 점.
(게다가 그 양해는 안해줘도 뭐라 따질 수 없는 그런 것이고…)

공기업 민영화 안한다고 했지만 안하는게 아니고

영어몰입교육 안한다고 했다지만 역시 안하는 게 아니었고

심지어 운하관련 주식들이 뛴다는 걸 보면
이제 시장에서도 명박이가 안한다는게 안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정부, 그런 정부를 용납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뭐 지난 번 집회후에 탄 택시 기사는 그러더군요.

“아무리 우리가 불리해도 이미 저지른 협상이니 그건 물릴 수 없지 않느냐.
미국이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데…-_-;;; (이 놀라운 복종의 정신)
우리가 하는 계약도 한번 하면 도로 물리지 못하지 않더냐.
아니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하고…”

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엔 최소한 다음 두 조치 중 하나를 해야 정상입니다.

당사자가 계약을 책임지고 물리던가.
그걸 못하겠으면 그 계약한 담당자를 짜르던가.

지금은 그 둘 다를 거부하고 있다는 게 문제죠.

그 잘난 계약의 논리도 지 좋은대로만 주장하는
찌질이 중에서도 상찌질이인 그런 인간들이
자칭 보수라는 인간들입니다.


영진공 짱가

<엘리자베스타운>,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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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 크로우의 영화는 언제나 청춘들의 성장 드라마다.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또 연출도 하고, 아내인 낸시 윌슨(락그룹 “Heart”의 기타리스트 라능~)과 함께 배경 음악을 골라 넣는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재미있고 잘 만들어졌으며 생각해 볼만한 꺼리를 남겨준다. 감독 데뷔작인 <금지된 사랑>(Say Anything, 1989)을 시작으로 <클럽 싱글즈>(1992), <제리 맥과이어>(1996), <올모스트 훼이모스>(2000)까지 느긋한 호흡으로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바닐라 스카이>(2001)는 카메론 크로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정말 예외로 남게된 영화다. 자전적 영화였던 <올모스트 훼이모스>가 흥행에서 참패한 뒤, 1년만에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를 거의 번역하는 수준에서 급하게 리메이크한 영화로, 탐 크루즈가 페넬로페 크루즈와 염문을 뿌리는 동안 카메론 크로우는 옆에서 그야말로 연출만 했던 작품이다. 아마도 <제리 맥과이어>에서 좋은 팀을 이루었던 두 사람이 상부상조의 차원에서 기획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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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시 본 궤도로 돌아온 <엘리자베스타운>에서 카메론 크로우의 새 주인공 드류(올랜도 블룸)는 글로벌 스포츠 의류 메이커인 머큐리사의 8년차 디자이너로, 자신이 만든 신발이 시장에서 참패를 하고 그로 인해 회사에 10억 달러의 손해를 입히며 해고를 당한다. <올모스트 훼이모스>가 10대 시절부터 음악 평론가로 활동했던 카메론 크로우 자신의 사춘기 시절 이야기였다고 한다면 <엘리자베스타운>은 바로 <클럽 싱글즈> 이후 8년 만에 영화 작가로서의 경력에 있어 바닥까지 나뒹굴었던 또 하나의 자기 체험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클럽 싱글즈>에서 캠벨 스코트도, <제리 맥과이어>에서의 톰 크루즈도 모두들 한번씩 크게 망가진다. 그런 이후에 사랑을 찾고 성장을 한다. <엘리자베스타운>의 올랜도 블룸도 마찬가지다. 전작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아버지의 죽음과 그 이후 며칠 간의 과정을 통해 삶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성찰에까지 도달한다는 점이다. 호텔에서 마주친 새 신랑의 말처럼, 삶과 죽음은 정말 종이 한장 차이다. <엘리자베스타운>은 죽음을 통해 발견하는 삶의 가치와 살아가는 방법들에 관한 영화다.


<영화 중 “Free Bird” 장면>

영진공 신어지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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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金九) 호 백범, (1876년 8월 29일 ~ 1949년 6월 26일)

“1949년 6월 26일, 서울의 자택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
안두희가 한국전쟁 이후 사면을 받고 군납업체를 운영했기 때문에 권력층의 보호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만 될 뿐, 그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해 7월 5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손가락질], 이외수

 인류의 역사 속에는
 백성이 자기를 손가락질한다고
 백성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왕들이 있었다
 지구를 통틀어
 지금은 그런 왕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백성이 자기를 손가락질한다고
 백성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왕이 있다면
 백성들은
 백성들 모두의 팔다리가 모조리 잘라져
 절구통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왕에 대한 항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외수, 2008. 5. 25.  http://oisoo.co.kr/ oisoo’s talk 게시판 381번>
 

인터넷 문체 열전

 

1. 우선 ‘~능’체.

능체는 ‘~하다는’이라는 인용 형식을 자주 쓰는 일본어 번역체에서 나온 거라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라는.

‘철구쿤은 지금 배가 고프다는’
‘예슬짱은 너무 큐티하다는’

일본 만화를 많이 보고 자란 세대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 일본어 번역체에 길들어져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SBS 방송자막에서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다는.

네티즌들은 이런 문체를 일본 문화 오타쿠들이 쓴다고 해서 ‘오덕후체’ 혹은 ‘덕후체’라고 부르며 이들을 놀려먹기 위해 따라 했다는. 그게 어느새 ‘~능’으로 바뀌었다능. ‘~는’이 ‘~능’으로 바뀌면서 과도하게 ‘하앍’대는 느낌이 있다능.

예를 들면 츠보미짱이 ‘철구쿤 나 너무 외롭다는’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철구쿤 나 너무 외롭다능’이라고 말하는 게 더 교태롭고 하앍이라능. ‘~능’은 그런 느낌이라능. 그래서 처음에는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오덕후들 놀리는 거였다능. 정리하자면 오덕후들이 일본 번역체 쓰는 걸 놀리는 차원에서 쓰던 게 지금 정착한 거라능.

2. 다음 ‘~ㅇ미’체.

‘~ㅇ미’체는 원래 명사형으로 문장을 끝내는 ‘~임’체에서 나온 거임. 이 ‘~임’체는 특히 온라인 게임 채팅에서 유래한 거임.

게임이란 특징상 문장을 제대로 타자할 시간이 부족함. 또 채팅상대가 손위인지 아래인지를 확인할 방법도 묘연함. 곧 상대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붙여 ‘~습니다’ ‘~습니까’ 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상대의 연령도 알 수 없다는 거임.

그래서 게임 유저들은 문장을 짧게 해 타자시간을 줄이고, 존대인지 하대인지 불분명한 명사형으로 문장을 끝내기 시작함. 예를 들면

“지금 아이템 뭐 나옴?”
“도끼 나옴”
“밥 먹음?”
“ㅇㅇ 밥 먹음”

이런 식임. 따라서 굉장히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문체였음.

그런데 여기서 ‘뭥미?’라는 희대의 크리티칼이 나옴.

‘뭥미?’는 ‘뭐임?’의 오타로, 빨리 치려고 할 때 아주 자주 나옴. 따라서 유저들은 오타 ‘뭥미?’를 보고도 ‘뭐임?’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은 ‘뭐임?’ 대신 ‘뭥미?’를 사용하기에 이름.

이게 재미있어서 유행하다보니 급기야 ‘뭐임’은 ‘뭥미’로 ‘거임’은 ‘겅미’로 일부러 바꿔서 쓰는 ‘~ㅇ미’체가 번지기 시작한 겅미.

‘~ㅇ미’체의 유래는 이런 겅미.

3. ‘~스빈다’체.

‘~스빈다’체도 ‘~ㅇ미’체의 유래랑 똑같스빈다. ‘했습니다’를 빨리 치려다 보면 매우 자주 ‘했스빈다’로 오타를 치게 되고 이 오타가 자리잡게 된 문체가 ‘~스빈다’체이빈다.

존대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발랄한 맛이 있어서 저는 매우 자주 이용하빈다.

4. 기타 ‘나영’체, ‘근영’체 등등등

이나영 갤러리에서 쓰는 ‘밥 먹었나영’ ‘우리 나영 언니 너무 이쁘지 않나영’ 등등 나영체가 있고, 문근영 갤러리에서 쓰는 ‘근영이 이쁘근영’과 같은 근영체가 있근영.

기타 소수 듣보잡들은 ‘정신줄 놓았는갑제?’처럼 전 월간조선 사장 조갑제를 연상시키는 ‘갑제체’를 쓰기도 하지만 아마 정신 분빠이 상태인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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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언어는 의식을 구성하고, 의식은 언어를 통해 필터링되빈다. 높은 수준의 문명을 만들어내지 못한 인류 원시부족들은 사용하는 언어의 고도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빈다. 언어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빈다.

예전에 가칭 ‘논객체’라는 게 있었스빈다. 2002년 대선 당시 서프라이즈, 진보누리, 한토마 등에서 활약하는 인터넷 논객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인터넷 글쓰기의 문체이빈다. 서로 다른 내용일진대 형식은 매우 흡사하빈다.

기본적으로 신문 사설 형식을 빌어왔지만 그보다는 어떤 비장감이나 사명감이 강조됐고, 특정 단어들이 굉장히 많이 사용됐스빈다. 예를 들면 ‘공화국’, ‘살롱좌파’ 등등등.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이런 논객체가 사용되던 2002년 당시 인터넷의 의식은 일정 부분 그 문체 안에서 표출되고 있었다고 생각되빈다. 그리고 역으로 그것은 다시 그 문체 안에 의식을 가둬두는 결과도 만들어내빈다. 개인적으로 이 논객체를 굉장히 고루하게 생각하는데 여러 블로거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스빈다.

정조 시대에 문체반정이라는 게 있었스빈다. 패관잡기나 소설 따위는 바른 문체가 아니니 쓰지도 읽지도 말라는 것이었스빈다. 정조가 직접 이 문제를 지휘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스빈다. 단순히 문장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빈다. 오랑캐 이민족인 청나라의 소설이나 글들 혹은 천주교인 서학의 글들이 들어오면서 소중화라는 주류의 사상이 위협받을 수 있었던 거빈다. 고로 문체는 생각을, 의식을 담는 그릇이었스빈다.

지금도 마찬가지빈다. 꼴보수 싸이트에 들어가서 글들을 읽으면 그들이 사용하는 문장과 단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스빈다. 이는 개혁이나 진보 세력에서도 마찬가지빈다. 또 최근에는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장이나 구성 형식이 흡사한 글들이 많스빈다. 예전에 딴지일보가 욕과 구어를 그대로 사용하며 유행시켰던 ‘딴지체’도 같은 맥락일 거빈다.

그런데 논객체를 비롯 지금까지의 여러 문체들은 기본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문제제기할 수 없는 바른 한국말이빈다. 하지만  ‘뭥미?’ ‘겅미’ ‘하냐능’ 등은 바른 한국말이 아니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문체들이 더 사랑스럽스빈다.

논객체가 기존 질서의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다치면, ‘뭥미’ ‘겅미’ ‘하냐능’은 아예 기존 질서 자체에 신경쓰지 않스빈다. 새로 한글 맞춤법 규칙을 만들며 자기들끼리 낄낄대고 있는 거빈다. 그렇다면 이런 문체만큼 자유롭고 즐거운 문체가 어디 있겠스빈까?

문체는 의식을 반영하빈다. 한 시대에 유행하는 문체는 또 그 시대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일 게빈다. 고종석 씨는 말했스빈다.

“모국어는 내 감옥이다”

그의 말마따나 자기가 쓰는 언어는 자기 의식의 한계이빈다. 젊은 네티즌들은 지금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새 규칙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빈다. 그들은 단지 문체가 아니라 문학, 영화, 법, 정치, 역사, 음악 등등 다른 곳에서도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새 규칙을 만드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학벌로, 생계로 그들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사회가 오히려 우리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지 모르겠스빈다.

인터넷 문체 정리하다가 완전 삼천포 스테이지 안착이빈다.
끗이라능.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