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사이드”, 삶의 사각지대를 채워넣는 방법






산드라 블록은 헐리웃의 주연급 여자 배우들 가운데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피드>(1994)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몇 년 반짝 인기를 끌다가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잊혀진 여배우’들 가운데 하나쯤으로 기억될런지 모르겠지만 북미권에서 산드라 블록은 남성들 보다 여성 영화팬들을 중심으로 상당히 탄탄한 인기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갖고 보러도 가고 빌려도 보는 일군의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배우가 산드라 블록이다. 화려함이나 섹시함 등 소위 한창 잘 나가는 여배우들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들과는 거리가 먼 대신 중산층들의 동료 의식과 친근함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그간 꾸준하게 구축해온 덕이 아닌가 싶다.

남성 관객의 시각에서 봤을 때 산드라 블록은 역시나 졸리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쪽은 처음부터 아니었지만 옆에 있어서 격려가 되고 남자들로 하여금 다시 일어설 수 있게끔 용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청량제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 국내 미개봉작이긴 하지만 <건 샤이>(2000)에서 우울한 주인공 남자들의 대장내시경 치료사로 등장하는 산드라 블록은 그 캐릭터 자체가 산드라 블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린다.

한번도 코미디언으로 분류된 적이 없으면서도 이처럼 코믹한 연기를 잘 소화해내는 주연급 여배우는 그리 흔치가 않다. 비교할 만한 상대로는 리즈 위더스푼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블라인드 사이드>는 그런 산드라 블록에게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 자체가 워낙 성공적인 덕을 본 것도 있지만 <크레이지 하트>(2009)의 제프 브리지스와 마찬가지로 그간의 공로에 대한 표창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다시 말해 그간의 출연작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혼신의 연기를 눈에 띄게 펼쳐보였다기 보다는 ‘저는 그저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새삼스럽게 상까지 주시니’ 정도로 보인다는 뜻이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인생의 ‘사각 지대’에서 버림 받은 삶을 살다 갈 수 밖에 없었던 거구의 흑인 소년이 어떻게 세상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었는지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더군다나 이것이 현재진행형의 실화라고 하니 그 감동은 왠만한 인간 극장류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이 그랬듯이 <블라인드 사이드> 역시 영화 마지막에서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대중적인 감동의 소구 포인트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온가족은 물론이고 단체 관람용으로도 적합한 좋은 영화다.











창작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들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가 영화화된 것을 보았을 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투오이 가족이 너무 부자이고 마이클(퀸튼 아론)의 성공을 위해 그 부의 위력을 아낌없이 행사하더라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돕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물질적으로 여건이 되지 못하면 그와 같은 인생의 기적은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까 노파심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가진 자들의 – 어떤 방식으로든 – 사회 환원이 불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이클과 같은 사각 지대의 아이들이 만들어지는 사회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눈치여서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런 구조적인 원인을 짚어서 뭐 어쩔 거냐고 물으면 나 역시 답은 없다. 그런 점에서는 투오이 가족이 마이클의 인생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준 사례를 한 편의 영화로 담아 다른 누군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답안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영화의 실제 인물들인 투오이 가족과 마이클 오어

부디 이 영화 보시는 분들은 괜한 복잡한 생각없이 재미있게 보고 감동도 받고 그러시길.

이 영화는 누구나 갖고 있는 삶의 사각 지대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진공 신어지

 

“아저씨”, 먼치킨은 멋진 것



 

액션 영화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멜로드라마와 비슷하다.


멜로드라마에 필요한 건 기승전결이 있고 앞뒤가 꽉꽉 맞아 떨어지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눈물을 솟구치게 만들고 가슴을 쥐어짜게 만드는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잘 만들어진 액션 영화에 필요한 건 기승전결이 있고 앞뒤가 꽉꽉 맞아 떨어지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고 심장이 고동치는 속도를 150% 상승시킬 수 있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숨쉴틈없이 이어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원빈 주연의 [아저씨]는 시나리오 자체는 별 볼 일 없다. [크리시] + [코만도] + [테이큰] = [아저씨] 라고 해도 될 정도로 대충 짜집기해서 만든 티가 영롱하다. 아마 이게 스릴러 영화나 서스펜스 영화였다면 이미 욕을 한바가지 먹고 동해 앞바다에 침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액션 영화다. 그까짓(?) 줄거리야 짜깁기를 했건 베낀 티가 나든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 멋진 액션이 연출되기만 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아저씨]는 훌륭한 액션 영화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러스트레이션: DJ Han]



그동안 주로 찌질한 역만 맡았던 원빈이 과연 얼마나 액션을 잘 소화할지가 걱정이었는데, 예상외로 멋진 먼치킨 액션을 보여줘 감탄했다.

게다가 감독의 액션 연출도 대단했다. 단순히 꺾고 찌르고 베는 것을 떠나, 벤 데 또 베고 찌른 데 또 찌르는, 굉장히 리얼하고 굉장히 시크하면서도 굉장히 통쾌한 액션을 선보였다.

조연들도 엄청났다. 최고 악당 역을 맡은 김희원의 연기는 훌륭하기 그지 없었고, 외국인 킬러 역을 맡은 태국의 타나용은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로 무장하고 있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마지막 10분간을 장식하는 액션 신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한국 액션 영화의 고전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전체적인 평가는 5점 만점에 3점. 그러나 액션 영화로서의 가치만 놓고 보면 5점 만점에 4점도 아깝지 않다.

액션 영화 팬이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영진공 DJ Han


 

인간의 앉은 자세에 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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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저 사람들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우리는 사적인 관계가 있는 회사의 제품 발표회장에 와 있었다.
나로서는 이런 모임은 매우 낯선지라 그저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내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맞은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슬쩍 가리키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생경한 장소가 주는 당혹스러움을 곁에 있는 동료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질문으로 배출하려 하다니… 참으로 비틀린 인성이다
억지로 여유를 부리며 대답해주었다.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 아마 저 친구들은 우리들보다는 이런 곳에 자주 온 것 같구만.
우리 처럼 허둥거리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니 말일세.”

그러나 그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진지한 척 썰을 풀어대기 시작한다.

“앉는 자세는 의외로 많은 것을 알려준다네, 예를 들어 깊숙이 의자에 앉은 사람은 마음도 편하게 앉아 있는 셈이지. 하지만 의자의 앞쪽에 엉덩이를 걸치고 조마조마하게 앉은 사람은 마음도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네.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걸세.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계속 움직인다는 것은 역시 그 자리에서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네. 그러니까 엉거주춤 앉아서 다리를 꼼지락거리고 있는 자세는 뭔가 급하게 할 다른 일이 있거나,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라네.
지금 자네처럼 말이지”

그 말을 듣자마자 꼬았다풀었다 하던 내 다리를 중지시켰다. 생각지 못한 역습이다.
하지만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

“그렇다면 저 네 남자는 어떤 마음 상태라는 건가?”

또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2,3,4 번이라고 치세.

일단 1 번 남자는 이런 자리가 익숙하네. 저 친구의 엉덩이는 의자의 뒤까지 깊숙이 들어가 자리잡았쟎은가. 게다가 나머지 세 남자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바지(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도 특별히 위축되어 있지 않거든. 여기가 내 자리야! 라는 메시지를 겉으로 드러내려는 것일세.

게다가 저 친구는 한쪽 손을 턱에 괴면서 지금 이 자리의 목적에 보다 집중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즉, 그는 나머지 어중이 떠중이들과는 달리, 자신이야 말로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며 남들 신경쓰지 않고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중일세.

하지만 그의 꼰 다리는 심리적인 방어를 의미할 수도 있다네. 그렇다면 그 내면은 꼭 편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지. 바디랭귀지 연구자들은 꼰 다리의 방향을 보고 그 사람이 방어하려는 상대를 알아본다네.  그들의 이론이 맞다면, 1번 남자는 오른쪽 허벅지를 빗장 삼아 나머지 세 남자와 자기 사이에 벽을 세운 상태라 할 수 있네. 즉, 그는 무의식적으로 나머지 남자들과 자기는 다른 존재임을 드러내려고 하는 거지.”

“그럼 2 번은 어떤가?”

“2 번은 가장 평범한 자세일세. 안 그래도 비좁은 자리인데다 뻔뻔한 3번의 양반자세로 인해 더 불편해진 상태인데, 그럼에도 여유 있게 다리를 꼬고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네. 그러나 힘이 들어간 손가락, 살짝 맞잡은 두 손은 역시 꼬인 다리와 함께 전체적으로 편하지 않은 심정을 드러내네.

아마 그가 불편한 이유는 이 자리 탓이라기 보다는 3번 탓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네.
물론 익숙한 사람이라면 저런 자리 자체를 피했을 것이니 이런 자리에 자주 오는 사람은 아닐 것 같구만.”

“옆자리 인간때문에 불편하다는 건 나랑 비슷하군. 그럼 3 번은?”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빙긋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3 번은 가장 전형적인 한국남자의 자세를 보여준다네.
저 친구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크게 걸치면서 2 번의 사적 영역(personal space)를 침범하고 있네. 물론 뻔뻔한 심리와는 무관하게 허벅지가 굵어 1 번이나 2 번과 같은 자세가 불편한 남자들도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지.

하지만 그의 허벅지 굵기는 나머지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 고로 저건 그냥 오냐오냐 하며 키워낸 한국남자 심리의 발로일세. 저렇게 남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자기 양손은 편안하게 걸친 다리 위에 걸쳐져 있으며 손가락에도 대충 힘이 빠져 있네.

즉, 저 친구는 자신이 남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 자체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일세.”

이건 좀 너무하다 싶어 제지했다.

“저 친구가 꼭 뻔뻔해서 저러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 않은가?
만약 옆자리에 친구가 앉아있어서 저렇게 편한 자세를 취한 거라면 어떤가?”

그러나 이 인간의 난도질은 멈추지 않는다.

“2 번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3 번의 저 방만함은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감 탓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2 번은 3 번과는 달리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3 번은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하기 때문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 자기애성 성격이거나, 남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잘 모르는 자기중심적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네.

그러면 저 인간은 과연 이 자리에 어울리는 존재냐 하면 그건 확실하지 않네.
저 친구의 여유가 익숙함의 결과인지 아니면 근거없는 자신감의 결과인지 알 수 없으니까. 저런 인간들 치고 자기 주제파악 제대로 하는 인간은 거의 없거든”

괜히 3 번에게 미안해진다.
우리가 이런 험담을 하고 있다는 걸 저 친구가 알고 있을까?
빨리 다음 친구로 넘어가기로 했다.

“4 번은 가장 진지하네. 저 친구 자세의 각도를 보게나.
몸은 전체적으로 앞으로 기울어져있으며 두 다리도 방어에 신경쓰고 있지 않지.
게다가 저 친구는 의자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앞에 치우쳐 앉았는데,
아마도 이 행사 후에 가야 할 다른 곳이 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네.

저 친구의 자세는 불안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네.
빨리 이 자리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마 이런 자리에 자주 와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찾아온 것도 아닌 것 같네.
다시 말해서 저 친구는 초청되거나 업무상의 이유로 여기에 온 거지.
이 자리는 어쩌면 바로 저 친구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준비된 곳이라는 얘길세.”

나는 이 허접한 대화를 기억해 두었다가
어떤 잡지 기자가 질문할 때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문제는 그 잡지가 뭐였는지, 그리고 그 기사가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글을 읽으신 독자가 계신다면
그 기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영진공 짱가

DSLR 촬영의 새 역사 2편, Then Why?

* 1편에서 계속 * 


Then Why?
그런데 대체 왜, 전문촬영장비로는 수많은 단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하우스 제작진은 5DmkII를 사용했을까요.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큰 사이즈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듯 5DmkII는 영화필름기준으로는 오버사이즈의 거대한 센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가지 특징을 가져다 주는데 훨씬 얕은 피사계심도와 빛에 대한 뛰어난 감응성입니다. 저조도 촬영능력은 사실 1DmkIV가 더 뛰어나지만 더 큰 센서의 5DmkII가 제공하는 심도의 잇점이 하우스의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어두운밤, 무너진 건물 잔해 속 좁은공간은 자연스런 조명이 거의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하우스가 처음 생존자를 찾으러 플래시라이트 하나만 가지고 잔해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DSLR의 능력을 발휘하기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장면은 실제로 플래시라이트의 간접조명이외에 약간의 전체조명만을 더해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촬영에서도 DSLR의 향상된 감광력은 같은 화면을 위해 동원되어야할 조명의 양을 훨씬 줄일수 있습니다. 


5DmkII의 대형센서가 제공하는 얕은 심도가 도드라지는 장면이 많은 에피소드였습니다.
하우스 에피소드를 몇개 못봤지만 대부분 캐릭터들과 객관적이고 쿨한 거리를 두는듯한 접근이 많았던데 반해 이번화는 인물의 감정에 깊게 들어가는 장면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도 평소보다 더 인물에 밀착된 심도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번 화의 주요공간은 아니었지만 하우스의 배경이 되는 병원씬들도,
 전혀 이질감없이 잘 묘사되었습니다.
 

2. 작은 사이즈

영화필름 사이즈의 이미지 센서를 가진 카메라들이 DSLR뿐만은 아니지만 그들중 DSLR이 가장 작은 사이즈입니다. 사이즈가 작다는것은 휴대가 간편하다는 의미뿐 아니라 촬영에 동원되는 모든 부가장비와 인원도 줄일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사이즈가 작아진 촬영 및 조명팀의 기동력과 적응력이 대단히 증가하게 되지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배경으로 한 하우스의 이번 에피소드에는 작은 카메라와 장비의 기동력이 대단히 유효했습니다.
 


어차피 제작비용은 별 문제가 안되는 프라임타임 유명드라마인데 충분히 어떤 카메라로도 촬영가능한 상황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만 제임스 카메론이라 하더라도 제작비용을 무한대로 쓸수는 없는 법이고 누구든 비용을 절감하는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작아진 촬영장비로 얻어질수 있는 유연성과 비용절감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히 크고, 이번 경우에 특히 유효했습니다. 영화제작 스토리중 이와 비슷한 유명한 경우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 죽음의 사원(Temple of Doom) 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던 제 손에 땀을 쥐게하고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던 ,
탄광차 추격장면.  대놓고 롤러코스터 액션을 선보인 명시퀀스이죠.
 

오스카 시각효과상 8개(9 개인가?)를 받은 시각효과계의 전설 데니스 뮤런옹 입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거쳐 어비스의 CG 물 생명체, T2의 액체금속 터미네이터, 쥬라기공원의 CG공룡까지 영화역사상 시각효과의 이정표가 되는 영화는 거의 모조리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인디아나 존스 2편 죽음의 사원의 메이킹영상을 보다 보면 데니스 뮤런이 탄광차 추격신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말이 ‘우리는 예산이 빡빡했어요’ 입니다. -_-;

’80년대 최고 블럭버스터 프랜차이즈중 하나인 인디아나 존스도 빠듯한 예산내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는것이죠. 가장 비싼 시퀀스가 될 탄광차추격신은 배우들이 탄 실물 탄광차와 미니어쳐 시각효과가 함께 쓰여져야했는데 (CG 시대 한참 전이라서) 시각효과의 방법론을 정해야하는 뮤런은 결국 카메라의 크기가 전체 비용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의 크기에 따라 미니어쳐 터널의 크기가 맞춰져야하고, 미니어쳐 제작비용이 그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변할수 있다는걸 간파한 것이죠. 

 
그래서 그는 거대한 기존 영화필름 카메라 대신 니콘 필름카메라를 개조해서 사용하기로 합니다. 카메라의 뒷면을 뜯어내서 영화필름의 셔터와 필름메커니즘을 장착한 미니 영화카메라를 만들어낸 것이죠.

스틸 카메라 사이즈로 작아진 덕분에 미니어쳐 터널의 크기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수 있었고, 같은 비용으로 훨씬 길고 다양한 터널과 열차 트랙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필름 사이즈는 그대로인데 미니어쳐는 실물크기에서 많이 줄었기때문에 같이 얕아진 피사계심도를 보상하기 위해 조리개를 최대한 닫고, 다시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셔터스티드를 아주 늘려야 했기 때문에 실제 탄광차는 아주 천천히 와이어로 움직이며 촬영되었습니다.

완성장면의 속도감은 완전히 구라인것이죠.

이 제작기의 압권은 터널의 제작 방법입니다. 크기가 줄었기 때문에 스치로폼같은 재료로 암석터널을 조각해서 만드는 대신 알루미눔 포일을 구긴뒤 적당히 색칠해서 터널을 만들수 있었답니다.

뮤런은 $1.98 어치 호일을 구입해서 썼다고 농담처럼 말하는데 작아진 카메라 – 작아진 미니어쳐 의 사이즈가 제작비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최소비용으로 낸 최대효과라 할수 있죠. 

 

미니어쳐 쇼트, 윌리, 인디아나 인형.
탄광차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좀비가 되어버렸네요.
스톱모션으로 조금씩 움직임을 줬습니다.


완성된 장면의 하나.
용암강 위로 지나가는 탄광차 궤도는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지만 ,
정말 스릴 넘치는 액션이었습니다.
ILM과 데니스 뮤런은 이 영화로 오스카 시각효과상을 탔습니다. 

삼천포로 빠진 감이 있는데 인디아나존스의 예는 카메라 사이즈 이야기 뿐 아니라 제한된 리소스만을 가지고 원하는 영상을 얻어내기 위해 시각효과디자이너들이 가져야하는 창의성의 좋은 예이며, 이러한 창의성과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벗어난 참신한 시도는 비단 시각효과뿐 아니라 제한된 리소스로 가장 그럴싸한 영상을 얻어내야하는 영상제작자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기도 합니다.

5DmkII의 사용은 바로 그러한 참신한 시도의 좋은 예입니다.  스토리와 장소가 요구하는 최적의 솔루션에 마침 캐논의 프로 스틸카메라가 조건을 만족해 준것입니다. 


촬영에 사용된 5DmkII A카메라.
B와 C까지 모두 세대가 사용되었으며,
A와 B는 포커싱을 위한 부가장비와 모니터등이 갖춰진 형태,
그리고 ‘닌자캠’이라고 불렸다는 C카메라는 뷰파인더외의 부가장비 거의 없이,
 손으로 들고 찍는 카메라였다고 합니다.
 

 
임팩트 있는 시즌 마지막화를 위해 거대한 세트와 대단한 물량이 동원된 에피소드 촬영에 ,
저예산 프로덕션에나 어울릴법한 DSLR만 사용되었다는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촬영감독 Gale Tattersall의 인터뷰에 따르면 5D의 선택은 이번 화의 스토리와 배경에 가장 적합했기때문이며 지금으로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5D로만 촬영할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작은 사이즈의 카메라가 유용한 촬영에는 계속 사용할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구요. 

한 레드카메라 유저의 불평

[ http://reduser.net/forum/showthread.php?t=43987 ]


RED카메라의 유저포럼에 위와같은 글타래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우스가 5D로 촬영된다는 소식에 짜증난다며 올린 글이죠.

그의 요지는 ‘DSLR 영상촬영은 뭘 모르는 사람들이 흥분해서 생긴 인터넷의 유행일뿐이고 하우스의 촬영감독은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무식한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처음 열거한 DSLR의 단점을 생각하면 프로페셔널한 상황에서 사용한다는건 아주 용감무식한 일일뿐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하우스가 방영되어 캐논카메라 사용이 화제가 되면 DSLR로 그 어떤것도 촬영가능하다는 미신이 더 퍼질 것이라는 걱정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2만불을 주고 구입한 레드카메라로 영상촬영일을 하는 그 유저는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2500짜리 캐논 DSLR로도 충분히 훌륭한 영상을 찍을수 있다는데 그걸로 쓰지그래?’하며 사정 모르는 소리를 하는 통에 이미 신경질이 나있는 참이었습니다. 예상가능하듯 그후 글타래는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목소리와 반대의견이 치고 박다가 모더레이터에 의해 잠겨져버렸습니다.

5D의 사용을 불평하는 의견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제가 열거한 단점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하자가 될수 있는 심각한 제약들이고, 그런 디테일을 잘 모른체 제작비용절감만 관심있는 투자자나 프로듀서들이 Red 대신 5D로 촬영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버리는것도 창작자들에겐 아주 골치아픈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우스를 보고난 후 ‘하우스도 5D를 쓰는데 고작 우리 회사 홍보영상에 왠 RED카메라냐’며 회사벽돌건물배경으로 인터뷰영상 찍자고 우기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가능성이 커질테니까요.

그러나 이번 하우스 에피소드의 사용이 유행에 편승한다는 유치한 이유로 무리수를 둔것이라는 비난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특히 시청한 후의 감상은 촬영감독의 말대로 아주 적절하고 뛰어난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작은 바디에 큰 센서라는 새로운 영상카메라의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지금 DSLR이 독보적인 존재이지만 시장의 반응을 본 이상 좀더 비디오제작에 최적화된 새로운 카메라들이 속속 등장할테고 DSLR의 사용은 금방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세에 뒤질세라 아직 한창 개발중인 컨셉을 급공개한 소니. APS-C센서와 소니 E마운트렌즈를 사용하는 캠코더입니다. 아마도 DSLR의 단점을 대부분 커버할테구요.

캐논과 니콘 등 각 렌즈 마운트에 맞춘 캠코더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영상촬영에는 DSLR을 금방 대체할테고 특히 5D의 대형센서를 가진 캠코더가 나오면 정말 대히트 할겁니다.

그러나 그 잠깐의 틈새기간에는 DSLR로 제작된 프로페셔널 영상들이 계속 화제를 만들어내길 기대해봅니다. 

 
5DmkII로 촬영되어 칸느에서 공개된 장편영화 ‘Road to Nowhere’.
그 레드카메라 사용자 더 신경질 나게 생겼습니다. 

심심한데 하우스나 한 편 찍어볼까나 …

당연한 소리지만 아쉽게도 5DmkII가 있다고 하우스 시즌피날레를 만들수는 없습니다.

훌륭한 각본과 연출, 연기와 세트디자인, 조명 등 모든 요소들이 일단 훌륭하게 갖춰진다면 정말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도 어느 이상의 퀄리티는 나올만큼 이들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 기반위에 능숙한 촬영팀의 손으로 다뤄진 5DmkII는 DSLR의 동영상 기능이 가진  단점을 부드럽게 우회하여 평소 사용하는 몇십배, 몇백배 가격대의 촬영장비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하우스 시즌피날레는 DSLR 영상촬영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좋은 스토리를 비롯한 영상제작의 기본요소가 얼마나 중요하고 힘이 있는지를 다시 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영진공 노타입

 

“싱글맨”,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외로움


 





톰 포드라는 인물 하나가 <싱글맨>이라는 영화에 관해서 참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였고 게이로서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실만 알아도 영화의 외양과 내용 모두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얻게되는 셈이다.

<싱글맨>은 톰 포드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1964년 원작을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지만 원작에서 조지라는 이름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주인공에게 톰 포드 자신의 미들네임인 칼라일과 첫 연인이었던 이안 팔코너의 이름을 따라 ‘조지 칼라일 팔코너’라고 불리우게 한 것을 보면 단순한 영화 연출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확실하다. 여기에 톰 포드는 <싱글맨>의 제작비 전액을 자비로 충당하기까지 했다.




톰 포드의 영화 데뷔작이라서 화제가 되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비전문가의 아마추어적인 시도 쯤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톰 포드라는 인물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싱글맨>을 보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겠냐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그 내용과 주제에 부합하는 시청각적 스타일을 선택한 것이라 봐야 하겠지만 – 앞으로 몇 편을 더 만들런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이런 연출 스타일만을 고집하기는 어려울 듯 – <싱글맨>은 누가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 만든 영화 아니랄까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남다른 미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근사하게 그림이 나오는 몇 장면 찍어서 어설프게 넣어준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 한 순간까지, 프레임 안에 담기는 미세한 어느 한 조각이라도 놓칠세라 아주 꼼꼼한 미장셴의 연속이다.

기존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우 낯선 독창적인 이미지나 내러티브 구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서투르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과, 시점을 달리하는 씨퀀스들을 교차 편집하면서 조금씩 색감을 달리함으로써 관객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점 또한 <싱글맨>의 외양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톰 포드 영화의 ‘이토록 우아한 세계’가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면 그야말로 취향의 문제일 따름이니 누구를 탓할 이유는 없다.

대학 교수님치고는 지나치게 수트빨이 좋은 조지(콜린 퍼스)를 비롯해서 등장 인물들의 차림새와 살림살이가 비현실적으로 좋아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인양 몽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구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었다는 소식에 미국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였던 냉전 시대의 LA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배경을 명시하고 있는 작품이 <싱글맨>이기도 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의 내용은 14년 간 완벽한 사랑의 파트너였던 짐(매튜 굿)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이후 결국 자살을 결심한 중년의 대학교수 조지의 마지막 며칠 간의 – 정확히는 아마도 단 하루 동안의 – 이야기로 핵전쟁에 관한 시대적인 공포감과는 무관하게 진행이 되는 편이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그게 또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의 직업이 대학교수이거나 특히 대학생인 경우 영화 속 주제와 밀접한 내용의 강의 장면이 들어가곤 하는데 <싱글맨>에 나오는 조지의 유일한 강의 장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강의는 과제로 내주었던 올더스 헉슬리의 책으로 시작하지만 학생들과 질문과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실재하지 않는 이유, 공포감’과 그것이 ‘사회적 소수’를 괴롭히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는 조지가 짐의 부재로 인해 겪고 있는 절망감을 설명해주는 단서가 되어준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느껴진 점은 조지가 강의에서 이야기하는 ‘공포감의 매커니즘’이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롬바인>(2002)에서 다뤄졌던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는 점이었는데, 만약 이 대목이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원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면 마이클 무어의 분석도 결국 어디에선가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에 불과했던 것 아니었냐는 생각을 – <볼링 포 콜롬바인>을 봤을 때 나는 진심으로 탁월한 분석이라 생각했다 –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콜롬바인 고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공포감의 매커니즘을 그토록 알기 쉽게 설명해준 공로까지 무색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싱글맨>은 진실로 사랑했던 자인 동시에 홀로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외로움에 관한 영화다.

사회적 소수자로서 사랑했던 이의 장례식에조차 초대받지 못했던 깊은 절망감 역시 주인공의 자살 결심의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지가 자살하고자 했던 이유를 아마도 본인이 강의 중에 이야기했던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감’으로 설명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 불현듯이 그 공포감에서 벗어나게 되자 조지는 자살하기로 했던 결심을 철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아이러니는 조지가 다시 살기로 마음 먹었던 그 순간에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선물하고야 만다. 자기 삶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건 간에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애써 재촉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외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싱글맨>이 비전문가의 아마추어적인 시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