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 작업의 정석은 여기에 다 있다!

2012년 개봉작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심리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영화이면서 매우 “쓸만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처음 이 영화 포스터를 보시고 저와 같은 의문을 품은 분들 아주 많으실 겁니다.

‘아니, 카사노바 역을 왜 저런 사람이 하고있어?’

별로 잘생기지도 않은 얼굴에 더럽게 수염은 왜 저렇게 길렀으며, 별로 키도 안크고 배 퉁퉁하고 완전 아저씨같은 배우가 나와서 전설의 카사노바 역을 하고 있잖아! 이게 완전 영화 말아먹겠다고 작정하고 만드는 거지.

현실에서 류승룡은 별로 호감이 가는 외모가 아니지요. 영화의 설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두현이 장성기를 보고 처음 하는 말이 그거죠. 전설의 카사노바라면서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치는 대사를 보면 다 이런 식입니다. 그 사람이 왜 전설의 카사노바인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몰라요. 하지만 뭔가 있다는 식입니다.

정우성처럼 생긴 사람이 그랬다면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겠죠. 하지만 장성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류승룡입니다. 류승룡의 외모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남자답게 생겼다. 딱 거기서 끝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그런 외모를 가진 장성기가 여자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게 만드는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그 철벽같은 독설녀 정인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마력의 정체는?

제가 여자들에게 인기없는(-.-) 솔로남들에게 이 영화를 강추하는 이유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이 영화가 아주 교과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의 영원불멸의 난제인, 도대체 여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해답을 내려 주고 있지요.

어차피 남자는 연애할 때 변해야 합니다. 이왕에 변하려면 확실하게 변해서 목표를 쟁취해야죠.

1. 주변 조사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말하는 두현에게 장성기가 처음으로 요구하는 것은 그녀에 대해 모든것을 적어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죠. 다시 말해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장성기처럼 손톱에 반달을 보고 변비까지 알아맞추는 초능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물어보면 돼요. 중요한 정보를 그녀가 알아서 줄줄 말해줍니다. 밑줄까지 쫙쫙 쳐가면서. 그리고, 아무리 문학에 관심이 없어도 알랭 드 보통 정도는 알아둡시다.

2. 예상되는 행동을 하지 말것

산골 한 구석에 사시는 할머니들도 이름은 알고 계시는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이 말했습니다. 나는 수비수들이 예상하는 대로 움직인 적이 한 번도 엄따! 영화속의 장성기의 행동이 그렇습니다. 뻔한 짓을 절대로 하지 않죠. 뭔가 말하려다가 갑자기 나가버리고, 칭찬을 할 때도 정색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슬쩍슬쩍 던지고, 이거 작업거는거 아니예요. 어차피 정인씨는 나 안좋아 할거니까. 그래서 정인씨가 편해요. 갑자기 사랑고백을 하는가 싶더니 노래 가사라고 한발 훅 빼버리고.

우리가 보았던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무수한 악역 중에 가장 공포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악당으로 기억하는 한니발 렉터가 더이상 무섭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게 되어버린 건? 바로 한니발 라이징에서 그의 과거를 전부 까발려 버린 이후부터입니다. 아무리 공포스러운 과거라고 해도 그것을 모를 때만큼 공포스럽지는 않습니다.

이 녀석이 이 타이밍에 나한테 고백을 하겠구나, 하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고백은 대부분 존 망합니다. 영화속에서 정인이 소녀처럼 설레이는 표정을 딱 세 번 보여주는데요, 지진 속에서 두현이 고백했을 때! 회전목마에 올라탄 그녀에게 장성기가 벼락같이 달려들어서 샹송 가사를 읊어댈 때!! 그리고 돌아서서 간 줄 알았던 장성기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안아버릴 때!!!

3. 너 때문에 내가 변했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이 연애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대사 하나 날려줍니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어요.” 제발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듣기 좋은 말 한마디만 해보라고 하던 헬렌 헌트는 이 고백에 완전 넘어가죠.

장성기도 마찬가지. 정인이 라디오 방송으로 잔뜩 씹어댔던 고깃집 간판을 방송 이후로 바꿔서 보여줍니다. 양떼 목장도 마찬가지. 당신이 무려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말해주지요. 사랑고백은? 샌드 아트로 잔재주를 부리긴 하지만 요점은 이겁니다. 바로 당신이 나를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었소. 보기와는 다르게 스스로를 쓸모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정인에게 당신이야말로 아주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죠. 이혼하던 마지막 날, 정인이 두현 곁에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하는 것도 바로 찌질하면 찌질한대로 남편이 변화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4. 여운을 남겨라

이거야말로 작업의 화룡점정. 예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서태지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삼단 날아옆차기를 해도 나훈아의 뒷모습을 이기지 못한다고. 일은 다 벌어졌습니다. 정인을 꼬드기려는 장성기의 작업은 막바지에 이르러 사랑고백까지 해버렸고, 정인은 흔들려 버렸고, 밤은 늦었고, 집은 비었고. 길 건너편에선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화가 사랑과 전쟁 삘의 촌스러운 막장 치정극으로 넘어가기 딱 한 발  전에서 장성기는 전설의 카사노바다운 신의 한수를 날립니다.

물러나는 거죠. 다만 그냥 물러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이 노래를 읖조리면서 자신의 뒷모습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들죠. 이때 나오는 노래가 바로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입니다. 노래실력은 형편 없지만 선곡은 기가 막혔습니다. 전설의 카사노바가 함락 직전의 여자를 눈앞에 두고 자기가 원하는 것은 매일매일 그대와 함께하는 것이라면서 물러나다니요. 이 장면이야말로 장성기가 스스로 진지하고도 대책없이 사랑에 뽈링 인 러부 해버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작업의 정석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요, 음악 얘기 좀 하겠습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OST 앨범에는 영화 곳곳, 적재적소에서 귀를 간지럽히던 음악들이 실려 있습니다 – 간지럽히다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것이, 이 영화는 정말 대사가 많고 명료합니다. 주인공들이 다 할말이 많은 사람들인데다가 자기 상태를 주절주절 말로 다 떠들어대기 때문에 음악이 영화 속에서 많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죠. 그냥 배경에 머무르는 소품 느낌이 강합니다.

원래는 발매 계획도 없었다고 하죠. 영화가 장기 흥행에 접어들고 나서야 관객들의 요청으로 정규 ost 앨범이 나왔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제작비가 부족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굳이 음악으로 표현하기보단 대사의 감칠맛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대부분 소품이고 아주 경제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샹송처럼 들리는 노래들도 프랑스산이 아닙니다. 국산 샹송이지요. 정인과 두현이 함께 틀어놓고 춤을 추던 장면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사실 이 영화의 감독인 민규동 감독이 작사했습니다. 민규동 감독이 프랑스 제8대학 영화학과에서 석사를 취득했다고 하죠? 프랑스말 잘 할테고. 노래를 부른 사람은 “비비드”라는 걸그룹의 리더 박성희씨라고 하네요.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답니다.

개그콘서트에서 정여사의 등장음악으로 쓰이기도 해서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이 음악과 함께 작업의 정석 정리를 마무리 하렵니다.

“이터널 선샤인” (2004), 네가 내 곁에 있든 없든 난 괜찮아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사랑과,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만류인력의 법칙에 따라 땅껍질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한번이 되었든 수십번이 되었든 어떤 모양이든지간에 사랑을 하고 만들고, 그 기억을 가슴 한켠에 붙박이장처럼 붙여 들여놓고 살기 마련이다.

결점투성이인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나누고 보듬는 일 또한 실수와 오발의 연속이며 유치한 이기심과 알량한 속셈의 퍼레이드다. 누구라고 그 혐의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동화같은 사랑이야기는 사람들이 원해서 만들어 지는 것. 화면 안의 해피엔딩-영원히 행복했답니다-은 악성 변비환자의 내일 아침 쾌변처럼 이상향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눈꺼풀에 씌워져있던 얇디 얇던 콩깍지는 햇빛에 직격당한 흡혈귀의 피부처럼 재가 되 버려 바람에 날려 흩어지기 마련이고 진실을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라만 봐도 밤잠을 설치고 심박수를 무한대로 끌어올리던 사람의 사소한 단점들이 100원짜리 망치게임의 두더지 대가리처럼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순간 꿈같던 사랑은 구질구질한 현실로 돌변하고 대부분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은 그렇게 끝나버린다.

전혀 남남이던 사람을 순식간에 내 반쪽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얄팍한 감정의 반대편은 이렇게 냉정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을 조작한다. 유치한 짓거리지만 인간은 그렇게 한다. 내가 쪽팔렸던 부분, 내가 싫었던 부분을 싸그리 들어내 봉투 속에 꼭꼭 눌러담아 폐기 처분하고 좋은 기억, 아름다운 기억들만 붙박이 장속에 예쁘게 정리해 넣어 두고 가장 사랑스럽게 나온 사진을 커다랗게 찍어내 철퍼덕 붙여 자기를 속이고 남들을 속인다. 내 사랑은 아름다웠네, 내 사랑은 달콤하고 짜릿했네라고.

니체가 말한 망각의 축복은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폐기 처분하는 편리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들은 “정말 그랬던 것”으로 바뀌고 아예 그것이 진실이라고 스스로 믿어버림으로서, 애틋하고 아름다운 한편의 [추억 : 사랑편]은 완성된다.
사랑은 어쩌면, 뿌연 생크림이 잔뜩 얹어진 커피처럼 망각으로 덮인 기억 속에서만 달콤한 것일지도.



조엘도 언젠가 자신만의 기억을 만들어냈을 거다.
 

기억을 제거하는 따위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그녀가 남긴 필름들을 잘라내고 이어붙여 가슴떨리게 만들던 그녀의 모습과 귓가에 속삭이던 설레이는 단어들과 예쁜 기억들만으로 만든 추억편을 완성했을 거다.

너무 많은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미처 정리를 못했을 뿐. 그는 혼자 힘으로 꾸역꾸역 지근지근 정리하고 골라내고 지워내서 예쁜 이야기책을 완성했을 거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이야기책을 혼자 몇번이고 반복해 읽다보면 또, 그는 예정된 실패는 까맣게 잊게 되었을 것이고(잊기를 원했으므로) 스스로 골라내 꼭꼭 담아 버린 것들을 완전히 잊어먹었을 때, 사랑했던 시간보다 몇배의 아픔을 견뎌내던 시간들을 완전히 망각했을 때.

그는 클레멘타인을 생각나게 하는 또다른 누군가(기억이 전부 지워지지 않았다면 다시 클레멘타인이 되지는 않았을거다)에게 더듬거리며 손을 내밀었을 것이고 비슷한 지점의 그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았을 것이고

“당신 … 내가 다시 지겨워지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을 거에요. 아마도.”

그렇게 막연한 희망으로 또 가슴이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유치해도 인간은 그렇게 한다.

영진공 거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