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락(The Rock)”, 소품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




영화에는 여러 가지 소품이 등장합니다. 소품은 영화 전체의 맥락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눈 좋은 관객들도 그걸 알아차립니다. 사실 소품으로 분위기를 내는 건 영화만의 일은 아닙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 이 양반은 주인공이 뭘 입고 뭘 신고 뭘 만들어먹는지를 꼼꼼히 서술해 놓고 있죠. 입는 옷이나 가방의 브랜드까지도 써놓습니다. 저 같이 그런 거에 무딘 사람도 그걸 읽으면 이 사람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기술방식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놓습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뉴욕이나 LA도 하나의 거대한 소품이죠.(다이하드3 에서)

그러니까 영화에 뭐가 등장하는지, 주인공이 뭘 입고 어디서 뭘 먹고 무슨 차를 타는지는 매우 중요한 연출 요소입니다. 액션 영화에서는 총도 바로 그런 중요한 소품 중에 하나죠.

『미션임파서블3』에서도 총이 한 시퀀스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간신히 오웬 데비언을 붙잡아서 호송하던 이단 헌트 일행은 체서피크만의 긴 다리 위에서 데비언 일파가 조종하는 무인기(UAV)의 습격을 받습니다. 무인기에서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차는 뒤집어지고 아수라장이 벌어진 와중에 오웬데비언은 호송차에서 빠져나와 유유히 헬기에 올라타려 하지요.

그걸 본 이단 헌트는 뒤집어진 자동차에서 총(독일군 제식소총인 G36이죠)이 담긴 가방을 간신히 꺼내는데 열어보니 이 총이 분해된 상태네요 …

이런 무인기 '글로벌 호크' 쯤 되면 그 정도 공습도 가능하겠죠 ...

사실 정밀 저격총도 아니고 G36같은 일반적인 소총을 분해해서 넣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PSG1 같은 2만불 짜리 저격총도 전용 가방에 통짜 그대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이 G36 소총은 개머리판까지 접어지기 때문에 공간절약을 위해서라는 핑계도 안먹히죠.

근데 뭐하러 IMF 애들은 총을 분해해서 넣고 다닌 걸까요? 오로지 아찔아찔함을 연출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도 일 초가 급박한 상황에 총까지 세 토막 나 있으니 관객들은 더 조마조마합니다. 빨리 조립해야 하는 주인공의 입장에 감정이입 하는 거죠.

갈길이 바쁜데 별게 다 걸리적 거리네 ...

조립 다 했다!!!


영화 『더 록』(The Rock)을 살펴보자면,
저는 이 영화의 매력은 거의 소품 덕이라고 봅니다. 광고감독 출신인 “마이클 베이”의 현란하고 속도감있는 연출도 나쁘진 않았지만, “숀 코너리”와 “에드 해리스”라는 두 중량급 배우가 만드는 무게감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참 어설픈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을 겁니다.

이 영화, 스토리도 빈틈이 많고, 중간에 액션도 적고(의외로 이 영화에 액션장면이 적어요), 감옥 내부 묘사도 상당히 엉성하거든요.


숀 코네리와 에드 해리스, 이 둘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소품 입니다.마이클 베이는 이런 배우 소품이 없으면 참 얄팍해지더라는....

여튼 이 영화에서 허멜 장군 역의 “에드 해리스”는 미국을 위해 죽어간 자기 부하들이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군상층부의 반성을 요구하기 위해 신경가스를 탈취해서 미국에 테러위협을 가합니다. 그는 알카트래즈 섬을 점령하고 관광객들을 인질로 삼은 뒤, 전사한 부하들의 명예회복과 응분의 보상금을 주지 않으면 인구밀집지역에 신경가스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협박하죠.

그래서 감옥에서 수십년 썩은 노친네 “숀 코너리”와 화학자 FBI요원 “니콜라스 케이지”가 특파되고 …… 결국 이들의 활약으로 미사일은 하나하나 제거되는 와중에 허멜은 자신의 협박 앞에 묵묵부답인 미국방성의 반응에 당황하지만, 미사일을 정말 쏴야 한다는 부하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래서 결국 부하들은 하극상을 일으키는데, 부하들의 반란을 예감한 허멜은 미리 Colt .45를 허리춤 뒤에 감춥니다. 그리고 돈에 눈이 먼 부하들이 허멜에게 신경가스 미사일을 발사하라고 베레타 M92FS 를 겨눌 때, 그들의 미간에다 콜트 .45를 겨누죠.

니들이 감히 하극상을 일으켜?

왜 해리스는 남들이 다 새 권총으로 바꿀 때 여전히 구닥다리 콜트를 계속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냥 구닥다리도 아닙니다. 빤질빤질한게 예전 지급품을 계속 쓴다기 보다는 새로 하나 따로 장만한 모양새죠.

그 당시에는 이미 군의 제식권총은 베레타 M92F 로 바뀐 다음입니다. 그럼 그는 신형제식 권총이 지급된 다음에 일부러 예전에 쓰던 콜트45를 다시 구입해서 들고다녔다는 얘깁니다. 총알보급도 받기 귀찮은(베레타는 9mm 탄을 쓰고 콜트는 .45 구경탄을 씁니다. 권총이 바뀐 이후 군대 내에서 45구경탄은 사실상 쓸데가 없어졌으니 그만큼 보급도 희귀해지겠죠) 총을 계속 쓰고 있다는 거죠. 뭐 총알보급이야 부관이 좀 고생하면 되고, 하니까 그저 장군의 사치심이 발현된걸까요? 왜 그랬을까요?

이 장면은 총기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냥 “어, 둘이 쓰는 권총이 다르네?” 혹은 “역시 멋진 주인공은 권총도 뭔가 다르군~” 정도로 넘어갔을 문제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장면은 총기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스토리와 이미지를 결정짓는 역할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에 등장하는 사소한 총기류에 대해서도 “많이 알수록 많이 보게 된다”는 경험의 규칙은 예외 없이 들어맞는 것이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많이 앎으로서 영화를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고, 엉터리와 진짜를 구분함으로써 뭐가 진품인지 감별할 수 있는 기준을 하나 더 제공하고 싶거든요. 관객들의 눈이 높아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영화의 총기 고증은 맨날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베레타 ...



베레타는 15연발 탄창과, 각종 안전장치를 장비한데다, 우아한 곡선미까지 가지고 있어 멋과 기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칭찬받던 총입니다. 적어도 80년대 당시에는 이 총 참 멋졌습니다. 하지만, 이 총은 미국제가 아닙니다. 이탈리아제죠. 더구나 베레타가 사용하는 9mm탄이 뭡니까. 바로 미국의 적이었던 독일군이 루거 권총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파라블럼탄이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콜트 .45는 비록 7발밖에 장전할 수 없고, 안전장치도 부실해서 잘못 다루면 위험한 구닥다리죠. 그러나 이 콜트는 1911년부터 미군제식 권총으로 채용된 이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터에서 변함없이 60여년간 미군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미군의 역사와 전통을 의미하는 총이죠.

콜트 45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해리스가 든 콜트와 부하들이 든 베레타는 단순한 권총이 아니라 두 집단이 가진 철학을 반영하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멜 장군은 비록 인질범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그 바탕에는 미군 본연의 정신에서 벗어나버린 미군에게 반성을 촉구하려는 충성심이 있었다는 거죠. 즉, 허멜은 여전히 미국 군인입니다.

반면에 그의 부하들은 허멜이 내세운 막대한 보상금 때문에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미군의 정신 따위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단지 돈을 벌수 있으니까 뭐든 하는 것이죠.

장군님 돈 줘여 ....


이런 배치를 하려면 소품 담당자가 총기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총기와 군장 관련 고증 수준이 이전의 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면 초반부에는 주인공들의 군복 색이 제각각입니다. 누런 옷, 국방색 옷 … 철모도 없는 자가 부지기수고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군인들의 복장이 통일되고 제대로 갖추어집니다. 이건 전쟁 초반에 보급품도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미군과 유엔의 지원을 받아 제모습을 갖춰가던 남한군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소품 배치죠. 물론 총들도 거의 무리없이 사용되었구요.


군복 뿐만 아니라 자세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숙련도 차이가 보입니다

이렇게 소품활용의 수준이 높아진 배후에는 “김세랑”이라는 군장전문가가 영화의 고증을 담당했던 덕이 큽니다. 처음에는 ‘6.25때 군복이 다 거기서 거기지 …’ 라는 태도를 보이던 영화스탭들에게 당시의 군복이 시기별로 어떻게 달랐는지를 직접 보여주며(그는 온갖 진품 군복을 소장하고 있죠) 설득해서 그런 차이를 만들어냈던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에 제작비 투입할때, 스크립트 닥터와 고증 전문가에게 돈 좀 더 쓰시라는 겁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먹히는 영화가 만들어지니까요.

영진공 짱가

[문화와 총] – 1장: 2차대전 중 일본군의 안습 무기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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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비슷한 질문 먼저 해보죠.
총이 먼저일까요. 총알이 먼저일까요? 닭과 달걀 질문과 마찬가지로(진화론에 따르자면 달걀이 먼저겠죠) 이 총과 총알 질문에도 대답이 있습니다. 언제나 총알이 먼저입니다. 총기를 개발하는 과정은 일단 적절한 위력을 가진 탄약을 만들거나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단 총알을 정해놓고, 그 다음에 그 총알을 가장 효과적으로 쏠 수 있는 총을 만드는 거죠. 총은 총알을 쏘아 보내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총은 바뀌어도 총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탄을 통일하는 건 여러 가지로 좋습니다. 무엇보다 보급이 편하죠. 그래서 각 군은 될 수 있는 대로 탄의 규격을 줄이고 표준화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로 어떤 규격의 탄들이 사용될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국가인 미국과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죠.

먼저, 2차 대전 중 미군 보병들이 사용한 탄약 규격은 크게 넷입니다.
(물론, 대형 기관포탄이나 호신용 소형권총탄까지 포함하면 더 복잡합니다만, 여기서는 그저 보병들이 전쟁터에서 사용한 탄으로 국한시킨겁니다)

첫 번째, 권총과 기관단총에 사용하는 .45 ACP 탄.
제식권총인 콜트 M1911과 기관단총인 M2 톰슨, M3 그리스건이 이 탄을 씁니다.


불멸의 콜트 M1911 …


톰슨 기관단총

두 번째, 소총과 경기관총에 사용하는 30-06 탄.
유명한 M1 개런드 소총과 BAR이라는 경기관총, 30구경 중기관총에 이 탄을 씁니다.


M1 개런드 소총, 우리나라 제식소총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에무왕 이라고 불리던…


BAR (브라우닝 자동소총Browning Automatic Rifle의 약자) 역시 우리 군도 쓴 적 있습니다.
아직도 무기창고에 꽤 있다고…


캘리버 30 기관총. 제식 명칭은 M1917 이라고 하죠.

세 번째, 중기관총에서 사용하는 50구경 브라우닝기관총(BMG)탄.
아직도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 바로 이 탄의 주인이죠.
보통 우리 군에서는 MG50 이라고 부르는… (이건 정식 명칭 아닙니다)


MG50, 아니죠~  M2 HB 맞습니다~

네 번째, 소총탄과 권총탄의 중간급인 30구경 카빈탄.
우리나라에서 예비군들이 얼마전까지 썼던 M1, M2 카빈이 바로 이 총알을 씁니다.


이게 M1 카빈, M2 카빈도 있는데 그건 완전자동사격이 됩니다. M1은 반자동사격만 가능


맨 오른쪽이 카빈탄, 나머지는 당시의 일반 소총탄

독일군은 더 간단해요. 세 가지입니다. 그나마 전쟁후반에 사용된 세 번째를 빼면 이들은 딱 두 가지 탄만으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첫 번째, 권총과 기관단총에 사용하는 9mm 파라블럼탄
제식권총들인 P08 루거, P38 월터 권총과 MP40 같은 기관단총이 이 탄을 쓰죠.


P08 루거 권총


MP40 기관단총

두 번째, 소총과 다목적기관총에 사용하는 7.92mm 마우저탄
독일군의 제식소총인 마우저 소총Kar98K, 세계최초의 다목적 기관총인 MG34, MG42 모두 이 탄을 씁니다. 이쪽은 다목적기관총으로 모든 기관총을 통일했기 때문에 미국처럼 50구경 중기관총 같은 게 없습니다.



MG 34 기관총, 삼각대에 얹으면 중기관총처럼, 그냥 양각대만 쓰면 경기관총 처럼 쓸 수 있다는..
그래서 다목적기관총GPMG


MG42 기관총. 역시 다목적이란게 뭔지 보여주는 전시

세 번째, 전쟁 말기에 등장한 7.92mm Kurz 탄
세계최초의 돌격소총인 STG43에 사용된 탄입니다. 연발사격에 적절한 반동과 위력을 위해 소총탄보다는 약하고 권총탄보다 센 탄을 목표로 만들어졌죠. 미국의 카빈탄과 비슷하지만, 이쪽은 소총탄에 더 가까워서 위력이 더 좋습니다. 이 총탄은 AK47과 M16 같은 현대 돌격소총탄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이게 세계최초의 돌격소총 STG44, MP43 이라고도 불리우고… 여튼 AK47과 M16의 원조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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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이 아래에 나올 6.5미리 아리사카, 하나 건너 세번째가 30구경 카빈탄,
바로 그 옆 4번째가 7.92미리 Kurz탄, 그 옆 5번째가 AK47용의 AK47 탄,
오른쪽에서 3번째는 M16 용의 5.56미리 레밍턴탄

자….그렇다면, 일본이 2차 대전 중에 사용한 탄약의 규격은 모두 몇 개 였을까요?
자그마치 7종입니다. 국내 유일의 총기전문지 <플래툰>지 2005년 6월호에 그 일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권총에 사용하는 8mm 남부 탄
남부 1식, 14식 등의 권총들과 100식 기관단총에 사용된 탄입니다.
위력은 .38ACP탄 정도로 미/유럽 쪽이었다면 그냥 호신용 탄에 해당합니다.


남부 14식 권총


100식 기관단총


왼쪽 두개가 남부 탄, 오른쪽 두개는 독일에서 쓰던 9mm 파라블럼탄.
크기는 비슷해도 난부 탄 쪽이 위력은 훨씬 약했다고 합니다
.

두 번째, 38식 제식소총에 사용하는 6.5mm 아리사카탄
해방직후 우리나라도 공여 받아 사용했던 38식 소총에 사용된 탄입니다.


38식 소총

세 번째, 11식 경기관총과 96식 경기관총에 사용하는 6.5mm 아리사카G 탄
모양도 구경도 위의 6.5mm 아리사카탄과 같습니다만, 약간 화약량을 줄인 탄입니다.
38식 소총에 쓸 수는 있지만 위력이 약해집니다.


11식 기관총

네 번째, 호치키스 기관총의 일본명칭인 호식 기관총에 사용하는 6.5mm 호치키스 탄
구경은 위의 6.5mm 아리사카탄과 같지만 모양이 좀 다릅니다. 프랑스제 총탄이니까요. 구경은 같아도 38식 소총이나 11식 기관총엔 못쓰고 호식 기관총에만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서는 호식 기관총의 탄약이 위에 말한 6.5미리 아리사카탄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일본제식탄의 종류는 7종이 아니라 6종으로 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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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키스 경기관총

다섯 번째, 신형 제식소총인 99식 소총,99식 경기관총에 사용하는 7.7mm 아리사카 탄
38식 소총탄이 위력이 약하다고 해서 약간 탄의 크기를 키운 탄입니다.
원래는 이 99식 소총으로 38식 소총을 대체할 계획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죠.
총 만들기도 허덕거리는 와중에 총에다 천황 하사품이라는 의미의 국화꽃 문양까지 새기느라…-_-;;; 생산량이 부족했습니다.


99식 소총


99식 경기관총, 체코제 BREN 기관총을 거의 그대로 카피한 총.

여섯 번째, 영국에서 수입한 루이스 기관총의 일본명칭 루식 기관총에 사용하는 7.7mm 탄
영국제(영국군 제식탄인 .303 브리티쉬)라서 탄 전체 모양이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이걸 따로 해군형 7.7mm라고 이름붙였다는데, 당연히 92식이나 99식에 사용할 수도 없죠.


영국제 루이스 기관총, 일본 해군에서 썼다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등장해서 낯익은 총



일곱 번째, 92식 중기관총에 사용하는 7.7mm 세미림드 탄
위의 루식 기관총탄을 흉내낸 92식 중기관총용 탄입니다. 기본은 7.7미리 아리사카탄인데 303브리티쉬를 흉내내어 탄피 아랫부분의 림이 더 튀어나왔습니다. 구경은 같아도 탄피모양이 달라 99식 엔 못씁니다. 장전은 될지 몰라도 탄피를 뽑지 못하게 되죠.



이게 7.7미리 세미 림드


7.7미리 아리사카. 뭐가 달라보이나요? 탄피 밑둥이 약간(아주 약간)다릅니다.

93식 기관총 이야기도 써놨었는데, 다른 자료를 보니 제가 어디서 잘못 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지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8종이라 썼었는데, 7종으로 줄었습니다.
……………………………….

어쩌면 이보다 더 많았을 지도 모릅니다만, 적어도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렇습니다.
쓰는 저도 헷갈립니다.

이렇게 다양한 탄약을 운용한 결과, 일본은 안 그래도 부족한 공업생산력으로 탄약보급에 벅찬 와중에 총마다 다른 탄약을 보급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등장한 탄 규격 중에는 겉보기에는 똑같은데, 속에 채워 넣은 화약량만 다른 탄까지 있어요. 6.5mm 아리사카G 탄이 그렇죠. 보통 약장탄이라고 부르는 건데, 기관총에 사용하는 탄들이 주로 이런 약장탄이 많았습니다. 6.5mm 계에는 호치키스 기관총용 탄까지 있었으니 같은 구경의 제식탄이 자그마치 3종입니다. 7.7mm 계에도 똑같이 3종이 혼용. 안 그래도 종류가 많아서 헷갈려 죽겠는데, 구경이나 모양이 같으면서 용도는 다른 탄까지 있으니 돌아버릴 지경이었겠죠. 도대체 왜 그들은 이런 미친 짓을 했을까요?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부터 미친 짓이지만…) 플래툰 2005년 6월호에 따르면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일단 첫 번째 이유는 기술부족입니다. 원래는 일본군도 탄의 규격을 통일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소총탄을 기관총에 넣고 쏘니까 잘 작동이 안 되는 겁니다. 기관총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서 소총탄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 결국 규격은 소총탄과 같은데 (기관총이 감당할 수 있도록) 위력만 낮춘 탄을 쓴 겁니다. 겉보기는 같으면서 위력만 다른, 보급담당자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탄이 등장한 겁니다. 이런 경우, 기관총용 약장탄을 소총에 넣고 쏘면 그럭저럭 위력은 약하지만 문제없이 총알이 날아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소총탄을 기관총에 넣고 쏘면 조만간 기관총이 고장나죠. 아예 구경이나 모양이 다르면 장전 자체가 안 되니까 문제가 없는데, 이건 모양은 같으니 멀쩡하게 장전은 되는데 정작 쏘면 문제가 되니… 보급뿐만 아니라 사용할 때도 주의할 점이 많아진 겁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 이 총알이 기관총용인지 소총용인지까지 신경써야 한다면, 정말 미칠 노릇이었겠죠. 괜히 일본군이 총검돌격을 했던 게 아닐 겁니다. 총알 분류하다가 살짝 돌아버렸는지도.

하지만 꼭 그래야 했느냐면, 그런 선택만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총알이 아니라 기관총을 고치는 겁니다. 미국이나 독일도 했는데 왜 일본이라고 못하겠어요. 러시아 같은 경우는 자동화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림이 튀어나온 탄을 지금까지도 기관총용으로 잘만 쓰고 있습니다. 근데 일본은 총알을 고쳤죠. 아예 총알을 고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면, 기관총 설계에 더 집중해서 같은 총탄으로 소총에도 쓰고 기관총에도 쓸 수 있는 탄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그것이 일본 문화 자체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다음 글에서는 그 문화차이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