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2호]북핵과 자아중심성

구국의 소리
2006년 10월 26일

자아중심성(egocentrism)이란, 자기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다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기와 관계된 것으로 착각하게 되죠.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청소년기에 가장 심해진다고 하는데 사실 청소년기만 자아중심성의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낯선 상황에 직면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때면 언제나 자아중심성이 발동하지요.

새 직장, 새 교실에 가면 왠지 모든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고, 내가 한 실수에 대해서 다들 수군거리는 거 같고, 내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다들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식입니다.

근데, 요즘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자아중심성을 얘기할 수 있겠더군요.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개발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비난, 혹은 햇볕정책 때문에 그동안 북한을 제어할 수 있었다는 옹호, 모두 사실은 자아중심적인 사고가 아닐까요.

이번 뉴스위크 한국판은 당연히 김정일과 북한핵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안습인 것은 이 이슈에 대해서 한국의 입장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거…
(아, 하나 있군요. 반기문 신임 유엔총장님과의 인터뷰)

이번 뉴스위크 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북한과 북한의 핵문제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과 북한의 문제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를 무시해서? 미국 잡지라 미국의 입장만 중시해서? 그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햇볕정책을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요?

북한이 소비하는 연료 70%와 국제교역의 50%를 담당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입니다. 나머지 국제교역량의 대다수는 역시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이 담당했죠. 그러고 보면, 중국은 정말 김정일에게 열 받을 만 합니다. 그렇게 지원해줬건만 핵개발 하지 말라는 말을 개무시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미국이 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전쟁은 국제적으로는 대한민국과 북한의 전쟁이 아닙니다.
미군, 유엔군과 북한군의 전쟁이죠. 거기에 덧붙여주자면 중국이 낄 수 있겠구요.
우리나라는 휴전협정의 당사국도 아닙니다.

그러니 북한이 언제나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과 직접 상대하려는 것도 당연하지요.
적어도 북한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는 미국에게 달려있습니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대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는 건 김대중 전대통령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뭐였나구요?
유감스럽게도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없습니다.

마치 <007 어나더 데이> 에서 북한과 휴전선과 주한미군은 나오지만 한국군은 안나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걔네들이 아무 생각이 없어서 한국군 역할을 안 넣은 게 아닙니다. 실제로 이 분단 상황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눈에 띌만한 역할을 한 적이 없습니다. 바로 우리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 말이죠. 그러다가 615 공동성명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이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햇볕정책이 그거죠.

햇볕정책이 북한의 붕괴를 막았다고요?
외국 가서 그렇게 한번 물어보세요. 누가 동의할지 궁금합니다.
아마 동의해주기 보다는 주제파악좀 하라는 반응이 있겠죠.
우리나라가 최근 몇년 지원해준 식량과 석유와 금강산 관광자금이 북한의 생사를 가름할 만큼 큰 비중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그건 자아중심적인 착각입니다.
(지금까지 식량지원은 우리나라 보다 중국이 훨씬 더 많이 했고, 경제지원에서는 일본도 우리보다 많았습니다. 최근 단일 국가로 우리나라의 비중이 비교적 높아졌지만 유럽연합이나 국제식량기구 등은 우리나라보다 더 이전부터 북한에 여러가지 지원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부시 집권 이후 미국과 미국주도의 국제식량기구의 지원비중이 줄어들면서 우리나라의 비중이 높아졌지요. 아래의 통일부 자료를 못믿는 다는 분들도 있겠죠. 뭐 매일 북한으로 몰래 트럭이 올라간다는 말도 떠도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근데 그런 유언비어를 믿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세요. 미국이 바봅니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미국 몰래 북한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미국을 바보로 아는 거고, 그런 바보 미국에게 이 나라의 안보를 맏기겠다는 생각도 바보생각이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http://www.nk-infobank.com/research/nk_paper_sub.asp?CODE=9559&CATE_CODE=63&tabl_type=&page=1

햇볕정책은 그저 지금까지 우리의 생사와 직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던 이 분단 상황에 대해서 우리 나름의 역할을 만들고 이 상황에 미치는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키워보려던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물론 지금 상황만으로 보자면 그 결과는 별로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만, 이걸 가지고 대국민 사과 운운 하는 그 양반들은 정말로 자아중심성에 빠진 우물안 개구리들입니다.

거지에게 몇푼 적선해 놓고 생색내고 싶어 안달하는 졸부들이죠.

요즘 들어 자주 구국의 소리로 마실 나오는
국립과학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

[영진공 62호]정지영 사태의 본질

언론중재위원회
2006년 10월 25일

몇 년 전, 모 아나운서가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라는 괴소문에 시달렸다. 그 아나운서는 줄기차게 친자감별을 주장했는데-희한하게도 남편이란 작자는 계속 검사에 불응했다-나중에 검사를 해보니 남편의 아들이 맞았고, 완전히는 아니지만 명예는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괴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무고하다고 믿었기에 그녀는 시종일관 당당할 수 있었던 것.

마시멜로 이야기의 번역 파문이 일었을 때, 출판사는 ‘이중번역’이란 신조어를 만들면서 정지영 아나운서를 감싸기 바빴다. “정지영 씨 모르게 한 일이다, 정말 죄송하다” 이래가면서. 그럼에도 사람들은 채택이 되었든 안되었든 정씨가 번역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궁금해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정씨가 번역한 원고를 내보이면 되는 것. 원고만 있다면 정지영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고, ‘이중번역’을 의뢰한 출판사가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 한다. 그리고 정씨는 자신에게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을 찾아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하지만 정씨는 시종일관 침묵했고, 일주일의 칩거가 끝난 뒤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발표했다.

“처음부터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저의 잘못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겪으면서 저도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바보는 아님에도 난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번역을 했다는 걸까, 안했다는 걸까? 그녀가 정말로 번역을 했다면 번역료로 받은 8천만원을 ‘사회에 환원’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건대 난 정지영이 거의 번역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녀의 번역본이 존재한다면, 그녀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다 해도 출판사에서 먼저 그걸 공개했으리라. 이메일이든 원고든 출판사에서 원본을 보관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신조어까지 만들며 정지영을 감쌌던 출판사에서는 ‘이중번역’ 사실은 인정했지만 정씨에게서 마땅히 받았어야 할 원고는 끝내 제시하지 못했다. 정씨가 시간을 끄는 건, 출판사에서 정씨를 위해 번역본을 새로 쓰고 있어서 그러는 걸까?

정씨를 옹호하는 네티즌들은 이 사태를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돈을 돌려주고 방송도 그만두었으니 그만하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화형시키는 게 마녀사냥이었다면, 사기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사람에게 “진실을 밝히라”고 하는 건 ‘미녀사냥’은 될지언정 마녀사냥은 아니다. 그들은 또 원 번역자가 계약을 위반하고 사실을 공표한 걸 원망하지만, 4차례의 사인회를 하고, “하루에 100쪽을 번역했다”고 떠들어댄 정씨의 경솔함이야말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이다 (그 말에 열이 받은 전문번역가 권남희는 지난달 말 ‘번역하는 아나운서’라는 칼럼을 국민일보에 실었고, 그 이후 파문이 확산되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원인은 뭘까. 바로 우리의 후진적인 독서풍토다. 유명 아나운서가 번역을 했다는 이유로 책이 팔리고, 지지도도 안높은 노무현이 탄핵 때 <칼의 노래>를 읽는다니 죄다 그 책을 읽고, 삼순이에 나왔다는 이유로 <모모>가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러니 출판사가 유명인 마케팅을 하고, 베스트셀러에 자사의 책을 올리기 위해 사재기 공세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아는 한 저자는 책이 나올 때마다 자신이 직접 교봉에 가서 사재기를 한다. 이름이 두글자다). 스스로 책을 고르기보단 책과 별반 상관도 없는 유명인에게 계속 휘둘린다면, 제2 제3의 정지영 사태가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그때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훨씬 더 정교한 방법으로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독서풍토개선위, 언론 플레이를 공격하라!
서민(bbbenji@freechal.com)

[영진공 62호]빨갱이들의 댓글…

구국의 소리
2006년 10월 25일

요즘 언론이나 한나라당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뭐 어쩌자는 건지..
자승자박에 빠져서 정신 못차리는 것 같군요.

햇볓정책 덕분에 북한정권이 붕괴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들 하는데
일단 핵은 김대중 정부 이전에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고(황장엽이 그랬다며요)
햇볓정책이 아니었으면 북한이 붕괴될거라는 착각도 웃기고
(그보다는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죠)
만약에라도 북한이 붕괴되면 그땐 정말 생 난리가 날거라는 걸 모르는 건지…
북한 붕괴되면 IMF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경제적 혼란이 벌어지는 게 당연한데
작전권환수 이후 국군의 업그레이드 비용에도 불평을 날리는 양반들이
북한붕괴에 따르는 비용은 감수할 용의가 있는 모양이죠?

혹시라도 북한붕괴하면 지금 북한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2등 시민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고,
그러다 보면 생각지 못한 사회문제들이 벌어질겁니다.
아, 북한사람들은 부지런한 대한민국 노동자들이랑은 전혀 달라요.
(처음 일 시켜보면 속터진다는 게 공통적인 얘기. 물론 나중에는 어느정도 서로 맞추지만)
분명히 특히 외국인 노동자 착취하는 양반들과 붙으면 별의별 일 많이 벌어지겠죠.

생각해보면 제일 골때리는 건,
노무현을 즐겨 욕하는 인간들이 가장 노무현 덕을 많이 본 자들이라는 점.

부동산 값 올라서 덕본 졸부들,
노무현 까대기로 재미 본 언론들,
남북한 긴장완화 덕분에 투자 받아서 돈 잘 버는 대기업들,
창피하거나 미안하거나 한 마음이 전혀 없나보죠?

이 나라의 진짜 빨갱이가 누군지 알려드릴까요?

오늘 본 어떤 기사의 지저분한 댓글 중에서 하나 골라서
그 글쓴이가 쓴 다른 글들을 봤더니 아래와 같더군요.

이런 댓글 쓰는 사람의 공통점은 사투리나 맞춤법 어긋나는 문장이 많다는 건데
그건 또 어째서인지…
저학력임을 혹은 학교에서 공부 안하고 딴짓 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동료들끼리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인지

어쨌거나, 만약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빨갱이’ 라는 단어의 뜻이

흑색선전과 악질적인 선동을 일삼고
나라의 안보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

라면, 이 정의에 가장 가까운 이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에이, 이 빨갱이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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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 님이 기사에 등록하신 리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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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자주 구국의 소리로 마실 나오는
국립과학연구소장
짱가(jjanga@yonsei.ac.kr)

[영진공 61호]조선아, 니네는 몇 달러 수준이니?

구국의 소리
2006년 10월 24일

식당에 가서 조중동 중 하나가 놓인 걸 보면 입맛이 싹 가신다. 얘네들이 또 뭐라고 헛소리를 했나 하고 들춰보면 역시나다. 이런 신문을 비판한답시고 몇 년 전까지 매일같이 빨간줄을 쳐가면서 읽어내려갔던 자신이 신기하다. 음식의 청결도를 측정한다면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과 같은 꼴 아닌가.

청와대가 사회적 일자리를 80만개 창출한다고 했나보다. 사회적 일자리란 치매노인 돌보기 등 봉사정신을 필요로 하는 그런 자리를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난 제리미 리프킨이 쓴 <노동의 종말>을 떠올렸다. 리프킨은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어가는 현실을 장황하게 기술하고는 지금 시민단체가 하는 소위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고용이 점차 줄어가는 건 우리나라라고 다를 바 없는데,청와대의 대안은 그러니까 완벽한 대안은 될 수 없을지언정, 논의 주제로 올릴 만한 가치는 있는 거다. 거기에 대해 조중동 중 하나는 사설로 열나 욕을 한다.

“사회적 일자리 80만개를 만든들 삼성의 일자리 8만개에 비할 수 있느냐….니 자식이나 그런 일을 시켜라.”

사설 전체에서 비비 꼬인 심경이 드러나지 않는가. 읽다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 박정훈 경제부장

조선일보라고 확실히 기억되는데, 경제부장인가 하는 사람이 쓴 칼럼을 읽다 하늘을 보고 탄식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일인당 GDP가 2만불에 육박하자 불안했는지 초를 치는 내용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흥, 2만불 이게 니네가 잘해서 된건 줄 알아? 환율이 내려가서 된 거잖아!”

노무현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2만불을 부르짖었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조선일보 역시 2만불만 넘으면 3, 4만불은 금방이라고, 우리는 왜 여태 2만불이 못되냐고 안타까워했던 것 같은데, 방법이 어떻든지간에 2만불만 넘으면 되는 거 아닌가? 조선일보가 찬양한 김영삼 정부가 1만불을 넘긴 것도 따지고보면 환율 덕이 아니던가? (그때 환율은 지금보다 더 낮았다)

“니네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김대중 정부 때 구조조정을 한 덕이다.”

내가 가장 놀란 대목이 여기였다. DJ 정부 때 조선일보는 한번도 우리 경제를 칭찬한 적이 없다. 언제나 우리가 곧 망할 것처럼 기사를 써댔다. IMF를 극복하지 못했다느니, IMF보다 더한 위기가 온다고 몇 번이나 얘기를 했던가. 그런데 노무현을 까기 위해 김대중을 찬양하다니, 어지간히 급했나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끝을 맺는다.

“2만불 되면 뭐해? 노사관계 등 사회적 수준이 여전히 후진국인데.”

그렇다면 한가지 물어보자. 조선일보 니네는 2만불에 걸맞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니?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다 알 거다. 조선일보는 일인당 GDP가 2불인 나라에서도 쓰레기 신문이라는 걸. 우리의 사회적 수준이 후진국인 이유는 노사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서가 아니라, 조선일보 같은 신문이 일등신문을 자처하며 잘 팔리고 있어서다.

잠시 구국의 소리로 마실나온
국립과학연구부소장
서민(bbbenji@freechal.com)

[영진공 61호]포르노를 허가하라!

구국의 소리
2006년 10월 16일

처음엔 믿지 않았다. 500명이 나와서 섹스를 하는 포르노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포르노에 출연할 500명을 모으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일본이라지만 영세한 업계 사정상, 포르노 배우 500명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메이저 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 500명을 데리고 영화를 찍겠다는 기획을 했다고 쳐도, 설마 일반 사람들이 몇 푼 받겠다며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 얼굴 봐가며 섹스를 하겠는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기 전까지. -.-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500명이란다..

경악이었다. 정말 500명이 모여서 한꺼번에 떡을 쳐댔다. (화면을 보면 섹스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저들은 지금 떡을 치는구나’라는 비속어가 입 밖으로 신음소리마냥 새어 나올 뿐이다.) 앞에서 지휘자가 구령하면, 줄 맞춰서 서있던 남성들이 자기 파트너의 여성의 가슴을 애무하고, 지휘자가 깃발 한번 올리면, 앞치기를 하고, 뒷치기를 하고, 여성상위를 해댔다. 놀라운 장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 아니라면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는 과감한 기획! 일본이 아니라면 모일 수 없는 엄청난 인파!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군대의 제식훈련에서처럼, 일사분란하게 떡을 치는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장엄한 스펙타클함에 어이가 막혀 웃음부터 나왔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그 스팩타클한 영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뜬금없는 이야기겠지만, 하나 묻자. 당신은 포르노를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포르노 상영을 허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1. 포르노 영화의 상영을 허가해야 하는가?

20세 이상의 성인 중, 95%가 포르노를 관람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봤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포르노 상영을 허가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채 40%가 되지 않는다. 놀랄 일은 아니다. 클릭 몇 번으로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다운 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털 보이는 장면에 대한 가위질이 만연한 환경에서 이 정도의 이중적인 사회적 잣대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계속 가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지만 반대 이론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누구나 다 보는 포르노, 구태여 모든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느냐라는 의견은 일리가 있다. 또 몰래 카메라, 미성년자 포르노와 같은 범죄적 포르노가 몰래 나도는 상황에서 차라리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자는 의견도 타당성을 갖는다. 외국에 서버를 둔 한국의 포르노 업체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현재는 단속으로 많이 닫혔지만) 지금처럼 포르노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외화낭비라는 이야기도 – 조금 억지 논리가 섞여있기는 하지만 – 포르노 상영을 허가해야 한다는 근거로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비디오 방 몰래 카메라.. 이런 거 볼때마다 뜨끔할 분도 계시리라 설마 내가 나온 것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포르노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만들어지는 것은 법이 너무 약하기 때문인걸까?


2. 포르노 상영에 대한 논쟁

사실, 포르노를 허가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논쟁은 진부한 논쟁거리다. 예술적 창작 행위인 에로스 (혹은 에로티카)를 법으로, 그리고 권력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허가론자들의 주장이다. 포르노의 폭력성과 여성비하적인 메시지는 사회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하도 오랫동안 이어진 논쟁이어서, 주장과 반대로 이어지는 그 스토리를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꿰고 있을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 예술적 가치를 존중하는 찬성론자와 포르노의 유해함을 강조하는 반대론자의 주장은 서로 대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쪽이 예술을 떠들면, 다른 쪽은 포르노의 유해함을 주장하는 식이다. 오랫동안 치고 받고 싸워왔지만, 서로 자기 말만 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3. 포르노가 정말 사람에게 유해한가?

포르노가 유해하다고 믿는 것은, 포르노가 사람에게 악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포르노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포르노에서 봤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다는 사회학습 차원의 모방 (modeling)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포르노를 통해 억압된 성적 욕구를 해소시켜, 오히려 반사회적 성행위가 줄어들게 된다는 정화(catharsis)이론이다. 마지막 이론은 포르노를 보는 일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는 무 효과이론(null theory)이다.

모방 이론과 정화이론은 모두 근거가 있다. 사람들에게 포르노를 보여주고 실험한 결과 “보다 폭력적인 성적 판타지”를 가지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며,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포르노를 자주 노출시키다 보면 “성적 충동이 무디어지게 된다.”라는 정화이론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결과를 얻기 위해 미국에서는 60년대, 이름도 무지하게 긴 “폭력의 원인 및 예방에 대한 자문위원회”와 “외설물과 포르노에 대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200만 달러를 쏟아 붇는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두 가지 이론 모두가 어느 정도 인정되는 결과가 나와, 예산낭비라는 비난에 휩싸이게 되었지만.

세 번째 이론은 내가 동의하는 이론이다. 여배우의 이름과 프로필까지 꿰고 다니는 매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 이상으로 봤다. 구워놓은 DVD만 계란 한판이다. (괜찮은 것들만 모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봤지만, 남들 보다 폭력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게 되지도 않았고, 더더군다나 정화되지도 않았다. 영향을 끼쳤다면, 기껏해야 휴지 소비량을 증가시킨 정도랄까? -.-;

모방 이론과 정화 이론의 근거가 되는 실험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포르노를 본 대학생들이 보다 더 폭력적인 성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수 십 개고, 포르노의 합법화 이후 성범죄가 오히려 줄었다는 스웨덴 정부의 공식 보고서도 있다.

결론은 그거다. 포르노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는 것. 혹은 아무런 기능도 없다는 것. 다시 말해, 포르노는 인간에게 나쁜 영향과 좋은 영향을 모두 미치지만, 그 결과의 합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포르노가 정말 유해한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를 일으킬 수 있는 페이스의 남자 배우가 출연하는 이런 포르노는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해할 수 있다. -.-

4. 포르노는 예술인건가?

포르노가 예술인가? 질문 자체가 코미디다. 사람들의 90% 이상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바꾸자. “예술(에로스)과 외설(포르노)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기준에 맞춰 포르노가 예술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 아. 갑자기 어려워진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 이건 포르노의 합법화 보다 더 흔한 논쟁거리이지만, 깊게 들어가면 복잡하기 짝이 없는 논쟁의 주제가 된다. 혹자는 “꼴리면 외설이며, 안 꼴리면 예술이다.”라는 말을 한다. 명답이지만, 정답일리 없다. 꼴리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오이와 가지만 봐도 꼴리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미스코리아 단체 누드를 봐도 안 꼴리는 남성이 있다. 게다가 발가락만 봐도 꼴려야 한다고 믿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팬티만 입고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문화권도 있다. 꼴리는 기준은 정말 “지 꼴리는 대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술과 외설을 논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미 수 백 번은 돌고 돈 논쟁일뿐더러, 명확한 답도 없는 논쟁이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낼 수 있다. 그것은 “예술과 외설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기준”이 아직 나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런 기준이 마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외설과 예술의 대착점인 고대 그리스의 신 에로스 ( 그림 : 에로스와 푸쉬케)

5.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성과 상업성이다.

사실, 포르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성과 상업성이다. 내가 아는 일본어 중에 “키라이~”라는 단어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본 AV (Adult Video)에서 배운 단어다. 한국말로 하면 “싫어요~” 정도가 되는데.. 어떤 장면에서 나오는 단어일지는 대강 짐작하시리라. 비위도 약하고, 폭력도 좋아하지 않아 나름대로 건전한 것만 보는 편인데도, 키라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혀 버린 것은 그만큼 포르노가 폭력성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강간과 폭력이 일상화되고, 그 속에서 성적인 만족을 얻는 포르노 영화의 문제점은 누구나 동의하는 것이다.

상업성 문제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인간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점은 인간을 화폐단위로 평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는 점에서 경계해야하는 논리임에 분명하다. 포르노는 이런 인간의 상품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르노가 돈을 벌 목적으로 인간의 몸을 팔아 만드는 영화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로 줄기차게 포르노를 탄압해 왔음에도 줄기차게 버티며,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가의 고된 예술 혼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자본가의 장삿속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섹스 산업은 돈이 많이 남는다. ( 성인용품은 빼고. -.-)


6. 포르노에만 죄가 있는 것인가?

상업성과 폭력성에 대한 비난에서 포르노가 자유로울 수 없다고는 하지만, 상업성과 폭력성을 팔아먹는 영화가 오직 포르노만일리는 없다. 많은 영화가 폭력을 팔아 장사를 하며, 인간의 몸을 상품화해서 돈을 번다. 어디 영화뿐이겠는가? TV 드라마나 CF는 말 할 것도 없고, 소설과 연극도 그러할뿐더러, 심지어는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에서조차 폭력과 상업성은 일상화된 요소일 따름이다.

참고 1 : 마광수 교수님의 섹스스토리
참고 2 :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노에만 폭력과 상업성의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은 무언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물론 포르노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다른 영상물 보다 훨씬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금지하면 금지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기에, 오히려 “미성년자와의 섹스”나 “몰래 카메라”와 같은 포르노가 더욱 힘차게 생산되어지게 된다. 금단의 열매는 언제나 달콤한 법이니까.

수 많은 가위질 끝에 개봉된 감각의 제국.. 무삭제판을 보며.. 포르노와 영화의 구분히 모호해졌었더랬다.

4. 포르노를 허가하라.

포르노가 교육적인 영상물이거나 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생필품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해악이 있으며, 비판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런 문제가 포르노의 상영을 반대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포르노에 대한 과도한 금지는 다른 매체에 비해 형평성이 맞지 않으며, (포르노에 자체적인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포르노 자체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악 영향을 미친다는 것 역시 증명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암묵적으로 유통되는 포르노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여들여 적절한 비판과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점차 음습해지는 포르노의 퀄리티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비법일 수 있다. 게다가 포르노의 순기능에 대한 여러 연구와 보고서가 말하듯이,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사회의 성범죄 감소와 불법 성행위의 감소에 큰 도움이 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포르노 상영을 허가 하는 일은 이중적인 성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솔직하고 건강한 성문화를 지향하는 사회로 가는 작은 발 디딤이 되는 일이라 믿는다.


5. 500명이 나오는 포르노

포르노 상영과 제작은 다른 문제다. 상영을 허가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작까지 가능해지려면, 아마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보기 힘들 듯하다. 아님 말고.. -.- ( 늙어서 힘 다 빠진 상황에서 한국 포르노가 제작되면 무엇 하겠는가? 어차피 봐도 지금 같은 재미가 없을 텐데. 고로 제작을 허가하라는 주장은 후손의 몫으로 남겨두련다. 후손들이여 꼭 쟁취하여 그대들의 대에서는 즐거운 세상을 이룩하시길. )

설령 우리나라에서 포르노 제작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500명이 나오는 포르노가 제작될 수 있으려면 아마도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많이 까졌다고 생각하는 내 입에서도 500명이 나오는 포르노를 보며 “미친.. ”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 정도였으니, 아마 이런 영화 찍겠다며 달려드는 사람들이 500명이 되려면 대한민국이 몇 번 뒤집어 져야 할 것이다. (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해 마시라. )

500명이 나오는 포르노의 마지막 장면.. 다 끝나고 누워있다. -.-

사회마다 받아들이는 포르노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500명이 모여서 단체로 떡을 쳐도 용서가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포르노가 허용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일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왕과 왕비가 나와 일본 황궁에서 섹스를 하는 비디오가 제작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더 흥행할 듯), 일본에서 그런 걸 만들었다가는 만든 사람들 밤길 조심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관습적으로 허용하는 기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포르노 상영이 가능하도록 법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상식을 벗어나는 폭력적인 포르노는 상영될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포르노가 제작될 리도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런 영상물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아예 보지도 못하게 해 놓고 뒤에서 훔쳐보는 것보다, 보여주고 앞에서 비판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포르노의 악영향에 대한 걱정과 혹은 반사회적인 포르노에 대한 근심은 그저 기우가 되지 않을까?

잠시 구국의 소리로 마실 나온
성역사연구회 과장
짬지(http://zzamziblo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