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검사의 역사 (2), 지능과 우생학을 연결시킨 프랜시스 갈톤

동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전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나기 마련이다. 좋은 품종의 종마가 천문학적인 가격을 갖는 이유는 바로 그 말이 좋은 품종의 자손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요크셔테리어의 새끼는 요크셔테리어가 되고, 리트리버의 새끼는 리트리버가 되기 마련이다. 온순한 고양이의 자손은 온순하고, 까탈스러운 고양이의 자손은 역시 까탈스럽다.

동식물이 이러한데 사람인들 다를까? 바보의 자손은 바보이고 천재의 자손은 천재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최초로 이런 생각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려고 시도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프랜시스 갈톤 경(Sir Francis Galton)이었다.
 



보통 이 사진으로 알려져 있는 갈톤 경 (1822-1911)

갈톤은 182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찰스 다윈(C.Darwin)의 사촌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다윈보다도 더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였다. 그는 탐험가로서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최초의 정밀 지도를 제작해서 영국지리학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한 지리학였으며, 탐험의 경험을 기초로 아프리카 여행안내책자와 서바이벌 가이드를 써서 명성을 날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영국각지에 사람을 보내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기압과 날씨를 동시에 측정함으로써 세계최초의 기상도를 만들었으며, 고기압과 저기압이 어떻게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했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의 기상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과학수사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사람들마다 손가락의 지문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해서 런던 경찰청으로 하여금 세계 최초로 ‘지문 수사기법’을 도입하게 한 장본인이다. 지문 연구에서도 얼핏 알 수 있듯이 갈톤의 주된 관심사중 하나는 사람들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차이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인지였다.
 



젊은 시절 갈톤의 모습


그의 사촌 찰스 다윈의 젊은 시절 모습, 나름 꽃미남 …


우리가 아는 찰스 다윈의 노년기 모습 …

갈톤은 당시 영국의 귀족들이 그렇듯, 경마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우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우생학은 영국에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문이다. 영국은 오래 전부터 경마가 발달했는데 경마는 결국 얼마나 훌륭한 경주마를 키워내느냐에 달린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좋은 말을 키워내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 영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좋은 경주마의 후손이 더 좋은 경주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물의 경우 품종에 따라 여러 가지 특성이 유전되듯,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갈톤은 이 예측을 실제로 확인해보고자 했다. 다시 말해 정말 천재는 천재를 낳고 바보는 바보를 낳는지를 알아보려한 것이다.

갈톤은 먼저 개개인의 지적 능력과 신체적 능력을 조사하기 위해서 세계최초로 설문조사지를 개발했다. 간단히 말해서 키와 성격, 취향 그리고 다양한 특성들(몸이 얼마나 날랜지, 숫자 계산을 잘 하는지, 시를 암송하는 능력 등등)에 대한 질문이 씌여진 종이를 대량 인쇄했다. 갈톤 이전에는 이렇게 같은 질문들을 여러장 인쇄해서 사람들에게 뿌린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설문 조사 대상자는 자기가 알고 지내는 친구나 친지, 고용인들이었다. 이들에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자식에 대해서 각각 설문문항에 응답해서 반송해달라는 편지와 함께  설문지를 두 장씩 우편으로 보냈다. 이렇게 180여건의 아버지와 아들 쌍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는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그래프로 그려봤다. 표기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2차원 그래프를 그리고 X축은 아버지 세대의 특성(키, 성격, 취향, 지능)을, Y축은 자녀 세대의 특성을 표기하는 것이었다. 만약 아버지 세대의 특성이 자녀 세대로 유전된다면, 이 그래프는 정확히 45도 각도로 그려져야 했다. 예를 들어, 키 큰 아버지가 똑같이 키 큰 아들을 낳고, 키 작은 아버지가 키 작은 아들을 낳는다고 치자. 그러면 그래프는 아래와 같은 식으로 그려져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위너 아들은 위너, 루저 아들은 루저 …

그럼 조사 결과는 어땠을까? 그게 참 묘했다.

우선 아버지 세대의 특성이 자녀 세대에게 나타나는 경향은 분명했다. 아버지의 키가 클수록 아들의 키도 크고, 아버지의 키가 작을수록 아들의 키도 작았으며, 아버지가 명민하면 아들도 명민했고, 아버지가 멍청하면 아들도 멍청했다. 아버지의 특성과 아들의 특성을 교차한 점들을 하나로 묶어보면 거의 일직선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각도는 45도가 아니었다. 특성에 따라 각도가 다 달랐지만 대략 30-40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즉, 키 큰 아버지가 키 큰 아들을 낳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 아들의 키는 아버지보다는 조금 작은 경향이 있었다. 반대로 키 작은 아버지의 아들은 키가 작기는 해도 아버지 만큼 작지는 않았다. 지능도 마찬가지였다. 멍청이의 아들은 조금 덜 멍청했고, 천재의 아들은 조금은 덜 명민했다. 그러니까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조금 더 평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실제는 위너 아들은 덜 위너, 루저 아들도 덜 루저 …

첫 번째 현상, 즉 아버지 세대의 키가 아들 세대의 키와 관계가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보여주려는 방법은 상관관계(correlation) 분석이라는 통계기법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현상, 세대가 교체될수록 어떤 특성은 점차 평균에 가까워지는 현상은 평균으로의 회귀현상(regression effect)이라고 불린다.

평균으로의 회귀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야구 선수들을 예로 들어보자. 시즌 평균타율이 2할인 선수가 어떤 경기에서 4타수 2안타로 2할 5푼의 타율을 기록했다면, 그는 다음 경기에는 자기 평균 타율보다 낮은 성적, 즉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전 경기에서 자기의 시즌 평균 타율에 비해 낮은 성적을 올린 선수라면 그 다음 경기에는 펄펄 날 가능성이 더 높다.

학업 성적도 비슷한데, 어떤 시험에서 갑자기 평소보다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은 (그가 특별히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새로 발견했거나 갑자기 엄청나게 학습의욕이 높아지지 않은 한) 그 다음 시험에서는 평소보다 오히려 더 낮은 성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들은 모두 평균으로의 회귀 현상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엄청난 노력을 해서 실제 실력이 나아졌다고 확신할 수 없다면, 일시적으로 성적이 좋아졌다고 희희낙락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다음에 찾아올 평균으로의 회귀 현상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갈톤의 연구는 이후 현대 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변인간의 상관관계 분석’과 ‘개인차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우선 현대 심리학 논문의 대부분은 서로 다른 둘 이상의 변인이 얼마나 관계가 깊은지를 분석하는 연구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양육방식이라는 변인이 자녀의 성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컴퓨터 게임을 하는 시간과 학업 성적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와 같은 식이다. 이런 둘 이상의 변인간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확인하는 연구방법은 모두 갈톤이 발견한 상관관계와 회귀법칙에 그 이론적 기초를 두고 있다.

두 번째로 현대 심리학은 개인차에 관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리학의 주요 연구주제인 지능, 성격, 기질, 가치관 등 모두 사람들 간의 차이를 다룬다. 그리고 갈톤은 이런 개인차를 유전으로 설명해보려고 시도한 거의 최초의 학자였다. 그의 연구 뿐만 아니라 이종사촌지간인 다윈과 갈톤이 모두 뛰어난 학자였다는 사실 자체가 증명하듯, 지능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오로지 이것에만 집착하면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지능의 유전, 지능의 우생학에 대한 믿음은 나중에 미국 이민국의 한 꼴통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 덕분에 지능검사는 매우 괴상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했다.

영진공 짱가

<백년해로외전>, 죽음을 변주한 러브스토리

짧은 영화로 긴 여운을 주려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참신함이다.(라고 생각한다.)
짧게는 3분에서 20분 내외의 단편영화가 장르든 이야기의 구성이든 코미디적 요소든
장편(상업) 영화의 고집(스타일)을 따르다 보면 쉽사리 식상한 분위기에 젖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본 단편영화(라고 하기엔 조금 길지만), <백년해로외전>은 무엇보다 감독의 연출력과 영리한 배우들이 빛을 낸 참신하고 재치 넘치는 
품이었다.

영화는 여자친구를 사고로 잃은 한 남자의 그리움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변해 가는지를 천천히 따라간다.
반면 여자친구는 죽은 사람이라 하기엔 너무 밝고 명쾌한 어조로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을 마치 인터뷰에 응하듯 대답한다.

남은 자는 질질 짜지만 떠난 자는 쿨하다. 둘의 자세가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에서 가슴 깊이 저릿한 슬픔이 전해진다. 사고가 일어났던 바로 그 시멘트 바닥 위에 몸이 구겨진 채로
누워있는 여자친구의 환영과 나란히 누워 “뭐 해줄까 응? 뭐 해줄까?” 떼를 쓰는 남자는 베개
대신 등에 멘 가방을 그녀의 머리 아래 놓아준다.

죽음이 곧 완전한 이별을 의미하는 건 아닐 거라던 감독의 심정은 영화 속 두 연인이 생사를 오가며 마주치고 또 대화하는 장면들에 고스란히 담겼다. <백년해로외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죽음’을 다루지만 분명한건 슬프고도 유쾌한 러브스토리이면서 청춘담인 동시에 잘 만들어진 감동의 단편 영화라는 거다. 

감독이 희망하듯 이 영화가 장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면, 제 1의 서포터가 되고 싶을만큼 반하기에 충분했다. 


강진아 감독의 <백년해로외전>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됐다. 바로 지난 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단편영화 상영회 ‘금요단편극장’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작품 정보는 인디스토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www.indiestory.com


영진공 애플

“셜록 홈즈”, 죄송합니다만 동명이인이십니다.

<셜록 홈즈>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셜록 홈즈>에 관한 키워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코난 도일의 원작 캐릭터인 명탐정 셜록 홈즈의 영화화, 돌아온 악동 배우를 넘어서 요즘 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순 없다 싶을 정도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마돈나 남편의 지위를 졸업(?)하고 돌아온 가이 리치 감독의 복귀작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왓슨 박사 역으로 참여한 주드 로나 셜록 홈즈의 연인이자 팜므 파탈로 출연하고 있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매력에 관해 조금 곁들이면 되었을 작품이죠. 하지만 그 결과물이 기대했던 것 만큼 재미있지가 못하니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쑥 들어가 버리는군요.

오래 전부터 사전 공개되었던 한 장의 스틸컷(위 사진)은 <셜록 홈즈>가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기 보다는 가이 리치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의한 캐릭터의 변형 또는 재창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감독의 전작 <스내치>(2002) 를 연상시키는 도박 싸움판에 셜록 홈즈로 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웃통을 벗고 서 있는 이 사진은 명석한 두뇌로 사건의 열쇠를 찾아내는 학구적인 이미지의 셜록 홈즈는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선언문과도 같았죠. 남은 것은 추리와 액션의 배합 비율 정도였다고 할까요.

역시나 <셜록 홈즈>를 통해 재탄생한 셜록 홈즈의 모습은 지금까지 알려졌던 영국 신사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 새로운 셜록 홈즈는 사건이 없으면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는 히키코모리 성향에 엉뚱한 실험과 검증에 열을 올리며 이웃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하고 – 그런 사실에 대해 아랑곳하지도 않죠 – 또한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이며 룸메이트이기도 한 왓슨 박사의 약혼을 훼방하는 집착증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말 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이라기 보다는 살짝 궁상맞기까지 한 괴짜 캐릭터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국 남자들의 속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새로운 셜록 홈즈에 대한 캐릭터 묘사는 썩 재미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좋은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지면서 빠른 적응을 돕고 있습니다.

가이 리치 감독이 원작에 충실한 셜록 홈즈 영화를 만들 것이라 기대했던 경우가 아니라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의 새로운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는 만족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레이첼 맥아담스와의 러브 라인은 내러티브 전개에 밀접하게 연계가 되면서 생뚱맞은 느낌이 없이 작품 전체를 꽤 풍성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각본의 구성부터 가이 리치에게 맡겨서 완전히 새로운 영국 산업혁명기의 코믹 탐정물로 만들어버렸다면 어땠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야말로 이름만 셜록 홈즈인 막돼먹은 깡패 탐정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확실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셜록 홈즈>가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가 되어버린 건 이 새로운 셜록 홈즈가 감당해야 하는 범죄의 성격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고리타분한 전개 방식입니다. 블럭버스터 영화들은 왜 하나 같이 블럭버스터급의 음모를 상대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믿거나 말거나 막판 뒷풀이 설명은 왜 꼭 집어넣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내러티브에 비해 비주얼은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 편인데 문제는 관객 입장에서 그닥 대단한 볼거리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당시 건설 중이었던 타워브릿지와 템즈강 주변의 런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 외에도 ‘KBS에 단 한 대 밖에 없다는 초고속 카메라’를 빌려다 세 장면 정도의 슬로우 모션 장면을 넣었는데 나름대로 가이 리치 감독 영화의 인증 마크가 되어주고는 있습니다만 역시나 작품 전체와 밀접하지는 않은 보너스 컷에 불과합니다 – 그 중 세 명의 템즈강변의 폭파 장면은 그나마 괜찮았어요.

<셜록 홈즈>는 처음부터 영국이 낳은 최고 명탐정의 이야기를 21세기 액션 영웅 버전으로 리뉴얼하면서 최소한 두 편 이상의 시리즈물로 이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자로 결정되고 좋은 배우들까지 가세하면서 많은 기대감 속에 프로젝트의 몸집을 크게 불릴 수 있었던 모양이예요. 하지만 그 결과물을 보면 속편에 대한 기대감에 잠 못 이룰 일은 없을 것이 확실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확인 결과 2011년 예정으로 가이 리치 감독이 속편을 만들 예정인 것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만들어진 영화만 놓고 봤을 때에는 이것의 속편이 과연 만들어질 수는 있을런지, 그리고 가이 리치 감독이 계속 연출을 맡을 수 있을런지도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이 리치 감독은 좀 더 분방한 작품에서 장점이 드러나는 편이라 생각되는데 이 셜록 홈즈 리뉴얼 및 프렌차이즈 프로젝트와는 그다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아요.

가운데 인물이 감독 Guy Ritchie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 홈즈를 연기한다는 것은 영국식 액센트로 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아주 인상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 정도면 무난했다는 평을 해줄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연기 천재에 가까운 배우이고 최근 <트로픽 썬더>(2008)에서도 자신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 바가 있었죠. 올해 드디어 속편이 개봉되는 <아이언 맨>(2008) 역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기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고요.

하지만 <셜록 홈즈>는 아무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작품 전체가 좋았더라면 모두의 바램대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전성 시대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축이 될 수 있었을텐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음에도 그다지 매력적인 인상을 남겨주지는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셜록 홈즈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진공 신어지

반동 제로에 도전한다, 크리스 수퍼 V 시스템

군에서 사격을 해본 분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총은 발사할 때 위로 튀어오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발일때는 물론이고 연발로 쏘면 총구가 아예 하늘로 향하는 일도 생깁니다.


왜 총은 사격할 때 위로 튀려고 할까요
? 이유는 간단합니다. 총알이 발사될 때 생기는 반작용의 힘의 축과 그 총을 지지하는 힘의 축이 어긋나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은 글록 사진을 가지고 재현해본 두 힘이 작동하는 모습입니다.

초록색 화살표의 길이가 길수록, 빨간색 화살표의 힘들이 셀수록,
회전력(파란원)은 커지죠

보통 총구는 총의 맨 윗부분에 있고 그 총을 쥔 손의 손목은 그보다는 아래에 있습니다. 어떤 물체에 서로 반대가 되는 두 힘이 어긋나게 가해지면 중간에 낀 그 물체에는 회전력이 생기게 되죠. 그 회전력이 바로 총을 위로 튀게 만드는 힘의 주원인입니다.

이 회전력을 최소화 시킬수록 첫 번째 탄을 쏜 다음에 2번째 탄을 표적에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걸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걸 줄일수 있을까요?


첫째, 두 힘이 작을 수록 회전력은 약해집니다
.
위력이 약한 탄을 쏘는 총은 당연히 위로 튀는 힘도 약해집니다. 반대로 위력이 강한 탄을 쓸수록 위로 튀는 경향은 커지죠. 그래서 무조건 강한 총탄을 쏘는 총이 장땡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근데
<아이리스>에서 킬러로 나오는 탑 군은 자그마치 .50구경 매그넘 데저트이글을 쓰더군요…-_-;;;

이 탄약은 지금까지 나온 양산형 자동권총탄 중에서 가장 강력한 탄 중의 하나인데 … 총알도 비싸고 총도 비싸다는 점도 문제지만, 이렇게 강력한 탄을 쓰는 권총은 반동도 그만큼 커서 전투용으로는 젬병입니다.

사실 하는 짓 전부 킬러라기 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운 듯

어차피 일반적인 군용 권총탄인 9밀리 파라블럼탄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얻을 수 있는데 뭐하러 50구경을 쓰냐고요 실제로 저 데저트 이글은 사격장에서 반동 자체를 즐기려는 사격애호가나 큰 총으로 폼 재고 싶어하는 찌질이들이나 쓰는 물건입니다. 결코 프로의 선택은 될 수가 없죠. 진짜 잘 훈련된 프로라면 .22구경 권총으로도 할 거 다 합니다.

둘째, 두 축의 거리가 짧을수록 회전력은 약해집니다.

그래서 권총을 잡을 때 위로 올려잡으라고 하는 겁니다. 똑같은 글록권총이라도 아래로 엉거주춤하게 잡고 쏘면 더 많이 튀겠죠. 아이리스 포스터의 소연씨가 그렇게 잡고 있었습니다. 보통 불량한 그립(bad grip)이라고 하죠.

헐리웃 영화에도 이런 불량한 그립은 종종 나옵니다
.
예를 들어, <맨 온 파이어>의 덴젤 워싱턴도 이렇게 불량하게 글록을 쥐었던 적이 있군요.

알콜중독에서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라는 설정에 맞춰서인지,
불량 그립을 보여주는 크리시
(덴젤 워싱턴)




아래로 잡아서 두 축간의 거리(연두색 화살표)가 더 길어진 상태

<페이스오프>의 존트라볼타도 마찬가지. 손과 총의 뒷부분 사이에 틈이 저렇게 보이면 안됩니다. 물론 급하게 총을 쥐거나 하면 저렇게 되기 쉽고, 초보자일수록 저런 실수를 하기 쉽죠.


총 잘못 쥐었네. 트라볼타 군!


이렇게 빈틈이 있으면 안된다규!


실제로 사격경기용 권총들은 총구와 손목의 축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 아래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안 그래도 사격경기용 총은 탄약의 위력도 약한데, 저렇게 잘 설계되어 있으면 당연히 위로 튀려는 반동은 더 약해지고 그러면 사격의 정확도가 높아집니다.



손목의 축과 총열의 축이 거의 근접한 사격경기용 총과 자세


그러면 경기용 총만 아니라 전투용 권총도 저렇게 설계하면 좋지 않겠냐고요?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 전투용 권총은 탄 자체가 크고 세기 때문에 저 간격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슬라이드(노리쇠)가 후퇴할 통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손잡이는 그보다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죠.

물론 같은 자동권총이라도 설계에 따라서 간격이 넓은 경우도 있고 좁은 경우도 있습니다
. 글록이나 콜트45 같은 권총은 두 축간 간격이 좁은 권총의 대표격입니다. 당연히 반동을 통제하기도 더 쉽죠. 반면에 스미스웨슨의 전통적인 자동권총이나 지그(SIG)의 권총들은 좀 간격이 넓습니다. 그래서 반동이 더 크다는 평을 듣곤 합니다. 베레타나 CZ 같은 총은 그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도 어떤 설계자들은 총을 좀 ‘잘’ 설계해서 이 간격을 최대로 줄여보려 했습니다.


핀랜드의 발명가 얄리 티마리
(Jali Timari) 라는 사람이 만든 야티매틱 이라는 기관단총이 그 중 하나죠.


이 총은 노리쇠가 총구와 일직선으로 후퇴하는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위로 후퇴합니다.
그래서 총 전체가 총구와는 삐딱하게 어긋나 있습니다. 뭔가 잘못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죠. 어쨌든 이렇게 하니 총구의 축이 거의 손목의 축과 비슷한 높이까지 내려갈 수 있었죠.그래서 2킬로그램을 좀 넘는, 가벼운 총임에도 불구하고 반동은 상당히 낮은 총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총은 핀랜드의 무기수출법의 규제도 있고 구조가 특이해서 고장날 가능성도 높지 않겠냐는 우려도 벗어나지 못해서 결국 어영부영하다 사라지고 맙니다
. 그리고 동영상을 보시면 반동도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고




야티 매틱(Jati-matic),

동영상은 여기로  http://www.youtube.com/watch?v=w_fOJ9rYx-8


그래도 이 야티매틱은 그냥 사라지지는 않고 몇몇 영화와 만화에 등장했습니다
.
무엇보다 실베스터스탤론이 주연한 엣날 영화 <코브라>에 등장했죠. 위에는 거대한 레이저 포인터를 장착하고선 마치 첨단 무기인 것처럼 등장하는데 사실 그냥 가볍고 (크기에 비해서는) 위로 튀려는 반동이 약한 SMG일 뿐.





스탤론이 들고 있는 야티매틱.

영화 자체는 정말 짜증날 정도로 단순무식한 세계관
(그래도 스탤론이 이 영화로 브리짓 닐슨과 만났다능 …)

그 외에 <크라잉프리맨> 이라는 19금 일본 만화에도 등장했고 (사실 이 총을 처음 본게 이 만화였음. 음란폭력만화의 새 기준을 세운…)  허영만 님의 <망치>에도 등장하는 활약을 보여주었죠.



, 크라잉프리맨… <대남>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했던



이후에도 몇몇 발명가들은 이 두 축선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마침내 이 두 축간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버리는데 성공한 설계가 나왔거든요. 바로 이 글의 주인공 크리스 수퍼 V 시스템입니다.


이 방식은 손목의 축과 총알이 나가는 총구의 축이 일직선입니다
.



총 같지 않은 총. 크리스 수퍼 V 시스템의 첫번째 시제품


그럼 슬라이드는 어디로 후퇴하냐고요
?
이 총의 슬라이드는 뒤가 아니라 아래로 후퇴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총의 반동은 위가 아니라 오히려 아래쪽을 향하게 되죠
.
조금이라도 남았을 위로 튀는 힘을 아예 상쇄시켜버리려는 설계입니다. 이러면 연발로 쏴도 총구가 위로 튀려는 반동은 거의 0가 되겠죠.

그 덕분에 총의 모양은 도저히 총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 되었지만
모양이 이러면 아무리 반동이 0라고 해도 실전에서 써먹기가 힘들어집니다. 원래 총의 모양이 그냥 나온게 아니라 그런 모양이 가장 쓰기 좋기 때문이죠. 저런 모양의 총은 조준하기부터 아주 애매하잖아요.




이렇게 쏘는 수 밖에



그래서 크리스 수퍼
V 는 껍데기를 좀더 총 모양 스럽게 고쳐봅니다.바로 아래 사진처럼.

이름하여
TDI 벡터(Vector)가 나온 것이죠. 명칭을 정리하자면, 크리스 수퍼 V는 이 작동시스템의 이름이고 이 시스템을 사용한 총의 이름이 TDI 벡터입니다. 앞의 TDI는 이 총을 만드는 회사 이름.




TDI 벡터



내부 작동 구조를 설명한 그림



묘한 구조치고는비교적 단순한 분해조립

동영상은 여기    http://www.youtube.com/watch?v=pnKd6iXHTQg


사진을 보시면 총구의 축과 총을 잡을 손목의 축이 일치함을 알 수 있죠.
이러면 앞서와 마찬가지로 총이 위로 튀려는 반동은 거의 0가 되면서도 총을 조작하거나 조준하기도 쉽습니다.

이 총은
.45구경 탄을 쓰는 기관단총(SMG)입니다. 45구경은 권총탄 중에서는 센 축에 드는데, 이런 설계는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사격을 해본 사람들의 말로는 .45구경탄을 쓰는 이 정도 크기의 SMG 중에서는 가장 안정된 사격이 가능하다고들 하더군요.
(여기서 반동 제로라는 말은 과장입니다. 아무래도 총알이 발사될때의 반작용에 따른 반동은 없을 수가 없죠. 단지 총의 반동 중에서 위로 튀려는 반동 만을 0에 가깝게 줄인다는 뜻입니다)




한손으로도 잘 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저렇게 들고 있는게 더 힘들 듯


그러나 문제는 과연
.45구경탄 정도의 위력을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설계변경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겠죠.

지금도 .45구경탄을 쓰는 수많은 SMG 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UMP 같은 총이라면 굳이 저런 모양을 하지 않아도 훈련만 잘 받으면 적절히 반동을 통제하면서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고요(사실 동영상을 보시면 이 벡터도 반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 뭐 …)
 


UMP가 더 단순하고, 조작하기 편하고,

그렇다고 크게 반동이 센 것도 아니고



결국 개발자의 거창한 의도와는 달리 이 크리스 수퍼
V는 실전에서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작사에서는 어떻게든 총좀 팔아보려고 홍보에 열심입니다.

총덕들을 위한 다큐 <퓨쳐웨폰>에도 등장하고(위의 동영상이 그거임), 잡지 표지로도 나오고, 게임이나 영화에도 등장시키려 노력중이죠. 최근에 장안의 화제가 된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2>에도 이 총이 나옵니다.

뜬금없이 미국을 침공한 러시아군 중에 이 총을 가진 애들이 있다는아니 어쩌다가. 이건 데저트이글을 든 북한 킬러만큼이나 황당하지만, 뭐 게임회사에 로비를 많이 했던가, 아니면 게임 개발자들이 이 총을 좋아해서겠죠.


buzz kill!!


어쨌든 반동
0에 도전한 정신은 높이 살만 합니다만, 뭐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죠.



그래서
, 실전보다는 앞으로도 영화나 게임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총. 크리스 수퍼 V (혹은 TDI 벡터) 였습니다.

영진공 짱가

‘제노바’, 낯선 거리에 비춰진 내면의 풍경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008년 작품입니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두 딸과 아버지가 시카고를 떠나 이탈리아 제노바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박찬옥 감독의 <파주>(2009) 와 무척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확실한 기승전결과 끝맺음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고, 그 방법으로 주변 풍경에 인물들의 감정을 투영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노바>와 <파주>는 여러모로 다른 영화입니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배우도 다르고 로케이션도 다릅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점적으로 드러내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그 방식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너무 유사합니다. 이것을 두고 대중적인 흥행 영화를 지향하지 않는 대안적인 영화들의 전세계적인 공통 지향점이라 할 수 있는 걸까요?

스토리텔링에 의존하지 않고 특정한 메시지를 주장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등장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형상화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이런 영화들은 확실히 일반적인 감상 습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전히 새로운 내용이나 강력한 내러티브의 힘에 풍부한 감정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영화 – 최근에는 <용의자 X의 헌신>(2008) 이 그랬습니다 – 가 관객으로서는 이상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감정 없이 뻔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거나 그나마도 어디서 본 듯한 줄거리를 답습하는 영화들 – 한마디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범작들 – 에 비하면 이렇게 복잡한 인간 감정의 미로를 탐험해나가는 영화가 백번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파주>의 내러티브가 약간이나마 미스테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던 반면 <제노바>는 특별히 이렇다할 비밀조차도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블루>(1993)가 그랬듯이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고의 원인은 다름아닌 둘째 딸 메리(펄라 하니-자딘)의 장난 때문이었고 가족 모두와 사고를 일으킨 메리 본인까지 그 잘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노바>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와 가족의 부재를 끌어안고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이들의 험난한 투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겨진 세 가족의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형상화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복잡한 미로와 같은 제노바의 거리 풍경인데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탐험해온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매우 빠른 편집을 통해 붕괴의 위험 선상에서 힘겨워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풍경을 매우 사실적인 톤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둘째 딸 메리는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던 나머지 환상을 보게 되고 첫째 딸 켈리(윌라 홀랜드)는 내적인 고통과 부담감에 떠밀린 듯 탈선을 하기 시작하는데 아버지 조(콜린 퍼스)로서는 엄마 잃은 두 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무력하기만 합니다. 뭔가 커다란 사건이 이들 가족에게 터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러닝 타임을 지배하지만 나름의 큰 위기 상황을 넘기면서 결국 무사히 여름 방학 기간을 마치고 두 딸이 학교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제노바>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서로 반목하던 가족들이 다시 하나로 뭉치게 되는 가족 드라마의 전형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시종일관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던 그 상황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영화가 준비해둔 내러티브 상의 극적인 장치라는 것이 그다지 효과적인 편은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등장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의 결들을 따라가는 것이 <제노바>를 감상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