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 & 데이”, 재미와 씁쓸함을 함께 느끼다






평범한 노처녀가 우연히 비밀요원과 만나 사건에 휘말리고 이 과정에서 사랑도 얻게 된다는 지극히 뻔한 설정의 <나잇 & 데이 (Knight and Day)>는 그러나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그 배역을 맡아 출연하게 되면서 일약 화제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이 영화에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솔직히 <나잇 & 데이>는 두 배우가 아니었다면 굳이 봐야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코믹 로맨스 액션’ 장르에 충실하다.

부담없이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팝콘 무비의 법칙에 충실하다 못해 진지한 메시지 전달은 커녕 논리적인 개연성조차 제대로 챙길 겨를 없이 마냥 달리기만 하는 작품이 <나잇 & 데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나잇 & 데이>에는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나온다. 두 배우가 얼토당토 않는 각본과 연출의 부실함을 채워주면서 관객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는 말이다.










<나잇 & 데이>에 출연한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를 보면 이 영화야말로 두 배우가 헐리웃과 세계 영화 시장에서 더이상 초일급 배우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50대의 나이에 가까워진 톰 크루즈는 첨단 미용 성형술의 도움을 받아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케이티 홈즈와의 결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소파 위로 올라간 이후 확실히 예전만은 못한 편이다.

물론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초일급 배우라고 해서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특급 프로젝트에만 항상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좋아하던 배우가 생활비나 벌러 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트로픽 썬더>(2008)에서의 이미지 변신이 환영할만 했을지언정 이런 식의 눈에 띄는 하향 곡선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게 만든다. 드디어 실사 영화 연출에 도전장을 내미는 브래드 버드 감독과의 차기작 <미션 임파서블 4>(2011)은 아마도 톰 크루즈의 영화 경력에서 마지막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다.



그나마 톰 크루즈는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불과 몇 년 사이에 제대로 삭아버린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나서고 있는 카메론 디아즈 때문이다.

마음은 여전히 <마스크>(1994) 시절이실테고 <미녀 삼총사 2>(2003)까지만 해도 생동감 넘치는 매력을 과시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먼저 결혼하는 동생을 둔 노처녀가 아니라 거의 과부처럼 보이고 있는 지경이다.

그렇다고 다른 배우들처럼 보톡스 시술 후유증으로 이상하게 부어버린 입술을 들이미는 것 보다야 낫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나름 로맨틱 코믹 액션 영화인 <나잇 & 데이>와 같은 영화에서는 마치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을 대접받은 것처럼 불만스러워 할 수 밖에 없다.

여성 관객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런지 모르겠지만 카메론 디아즈는 비밀 요원과 사랑에 빠지는 ‘귀여운 여인’이 아니라 CIA나 FBI의 베테랑 요원 쯤으로 나와줘야 하는게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나잇 & 데이>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눈요기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개연성이라곤 일절 없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데다가 별다른 고민 없이 써제낀 듯한 마지막 장면의 로맨스 대사들이 헛웃음을 자아내긴 하지만 몇 군데 확실하게 터뜨려주는 코믹함과 액션 장면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미국 내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등지를 오가며 촬영한 근사한 풍경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그저 보는 동안 충분히 즐기고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 깨끗이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애초에 톰 데이 감독에 크리스 터커와 에바 멘데즈의 조합으로 영화가 만들어질뻔 했었다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편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의 캐스팅으로 그나마 이런 정도 규모의 영화가 나올 수 있게 된 것이긴 하겠지만 애초에 패트릭 오닐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자체가 팝콘 영화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톰 크루즈에 대한 오랜 팬심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작품이다. 피터 사스가드와 폴 다노, 비올라 데이비스와 조르디 몰라 등의 출연은 그야말로 재능의 낭비요 알바 뛰러 잠시 출연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정도다.


영진공 신어지

 


 

“콜래트럴(2004)”, LA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

 

“톰 크루즈”가 처음으로 악당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콜래트럴』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반백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고급 수트를 입은 쿨한 살인 청부업자 “톰 크루즈”도, 약간의 결벽증을 가진 성실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만) 있는 택시기사 “제이미 폭스”도 아니다. 그것은, 인구 삼백만이 넘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LA 그 자체이다. “톰 크루즈”의 냉소적인 대사에 의하면 LA는 지하철 역에 사람이 죽어도 6시간이나 방치가 되어서야 발견이 되는 도시다. 옆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르는 비정한 도시고, 총을 맞아 죽어도 여간해선 범인을 잡을 수 없다. 검찰청 건물은 심지어 옆에 있는 철제 쓰레기통을 집어던져도 깨지지 않은 강화유리로 문을 달아놓았고, 거대하게 위로 솟은 건물 사이의 인간은 그저 개미 한 마리 정도로만 보인다. 그러니 살인 청부업자가 유유히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인 건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도시들의 공통된 특성이긴 하지만 LA는 특히나 이민자들이 많은 도시다. 서유럽계 백인들마저 실은 이민자(혹은 침략자)들의 후손이니, 이탈리아계(같은 백인임에도!)나 멕시코 및 중남미계와 아시아인들만을 이민자 혹은 이민자의 후손으로 부르는 것은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서유럽 출신의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0%가 채 안 되는, 그런 도시다. 이제껏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다수의 백인과 끼워주기 식의 (주로 악당 전문) 히스패닉 혹은 이탈리아 계열, 그리고 가뭄에 콩 날 정도로 아시아인을 등장시켰던 건, 그러니까 몽땅 구라인 셈이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서유럽계 백인으로 ‘거의 유일하게’ “톰 크루즈”가 등장하는 것이, 실제 LA의 현실에 가깝다. 특히 한국 관객들을 웃게 만든, 영화 곳곳의 한글 간판들은, 사실은 이제까지 LA를 배경으로 한 백인 감독들의 영화가 인종적 편견에서 의도적/무의도적으로 무시해온, LA의 확실한 구성 요소이다.


정말이지, 이 영화의 LA가 보여주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흑인이거나, 이탈리아 계 혹은 히스패닉계이다. 첫 등장 순간 양아치일 거라고 대부분의 관객의 오해를 받는 패닝 형사는 상징적인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이제껏 범죄물에서 취해온 형식, 그러니까 백인 남녀 커플 주인공과 흑인의 침입자, 다수의 백인 주변인물이라는 구도를, 이 영화는 정확히 반대로 뒤집고 있다. “톰 크루즈”야말로 이 도시에 흘러들어온 낯선 침입자이자 도저히 LA라는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며, 이 영화에서 카메라의 주목을 받는 거의 유일한 서유럽계 백인이다. 그렇기에 그는 택시에 가방을 두고 내리고, 택시기사의 삶에 간섭을 하고(심지어 문병을 간다), 가방을 병실 바닥에 내려놓은 채 움직이는 안이함을 보이며, 직업적 살인 청부업자이면서도 아무리 사고 직후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노트북과 메모리 자료를 사고차량 안에 그대로 놓은 채 자취를 감춘다.


환락과 타락의 도시, 살인과 강도와 각종 범죄와, 토박이보다 뜨내기와 밖에서 유입된 유동인구가 훨씬 많은 도시 LA. 뉴욕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라 하더라도, 뉴욕과 LA에 대한 미국 바깥 사람들의 이미지가 극과 극을 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간 I Love NY을 외치는 수많은 영화들을 봐왔고, 정말 아무 특징 없이 시끄럽기만 한 도시인 LA 영화를 많이 봐왔지만, 조금 더 속살을 드러낸 LA를 그리는 이 영화가 처음인 듯. 영화 내내, “톰 크루즈”는 제이미 폭스에게 다음 목적지를 (당연하지만, 구체적인 거리와 장소의 이름까지) 일러주고 “제이미 폭스”의 택시(와 영화제작진의 카메라)가 그곳을 향해 가면서, 우리는 일반적인 관광안내 엽서가 보여주는 LA의 광경이 아닌, 뒷골목과 좀더 현실적인 장소들로 이루어진 조금 특이한 아이템으로 구성된 LA 관광을 하게 된다.


<콜래트럴 예고편>

그 거대한 과잉인구의 도시에서, 소외되고 고독한 현대인이라는 모티브가 상반된 직업과 배경을 가진 두 남자의 ‘적과의 동침’ 모드의 플롯을 통해 “심리적 대결”이라는 스토리를 취하며 갈등이 증폭된다. 현란한 비주얼과 액션의 ‘보이는 스펙터클’ 대신, 캐릭터 간 대결과 변화라는 ‘보이지 않는 스펙터클’을 취한 이 영화는 그래서, 영화 중간중간 코믹한 지점들마저 웃음과 함께 묘한 무게를 얻으며, 지구 반대편 인구 천만의 도시에 살고 있는 동양인에게도 정서적 동질감을 얻어낸다. 범죄물 중에서도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이런 타입의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인 캐릭터의 확실한 구축과 캐릭터 간 갈등과 변화의 완급과 조절을, “마이클 만”은 매우 능숙하게 다루면서 정확한 포인트를 집어내어 증폭시키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매우 훌륭하다. 톰 크루즈는 충분히 수긍 가는 살인 청부업자이며, 매우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제이미 폭스” 역시 신뢰감을 준다.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악도 매우 좋다. 각본가이기도 했던 “마이클 만” 감독과 그는 LA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재즈’를 설정했고, 이는 한인타운의 피버 클럽 씬을 제외한 영화 전반을 관통한다. “톰 크루즈”의 재즈에 대한 취향은 일종의 조크인 듯. 흑인들의 음악이 어느새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되고, 그 이후엔 흑인들보다 백인들에게 주로 소비되는 사회적 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역시나 외부의 이방인으로서, “LA에서는 아무도 듣지 않을 것 같은” 재즈에 대한 취향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씬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유머러스하기 때문에.


<영화 삽입곡 “Hands Of Time (By Groove Amada with Richie Havens)>


영진공 노바리

<로스트 라이언즈> –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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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2007)의 작가이기도 한 매튜 마이클 카나한이 자기가 써놓은 시나리오를 놓고 ‘근데 이런 걸 누가 영화화하겠다고 하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선댄스의 현인에게나 한번 보내보자’고 했다더군요. 애초에 씌여질 때부터 상업적인 고려라곤 별로 없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만들었다가 대박이 난 영화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잖아요.1) 로버트 레드포드가 <로스트 라이언즈>를 제작하고 직접 감독과 주연까지 하겠다고 나섰을 때에는 쫄딱 망해도 좋으니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겠지만(그는 우리가 아는 한 신념의 영화인들 가운데 한 명이니까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대선을 앞둔 지금 시점이라면 또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즈>의 용기있는 제작 배경에 흠집을 내려는게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의도만 앞세운 듬성듬성한 영화’는 결코 아니란 점을 얘기하는 겁니다. 무미건조한 플롯의 프로파갠다 영화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대박이 났을 시에도 최소한 만듬새에 대한 부분에서 만큼은 흠결을 따질 수 없는 영화란 겁니다. 그런 덕에 관객들은 오직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내용 자체에 대해서만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2)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무척 많고 빠르기까지 한 영화입니다. 자막으로 읽어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화면 보랴 정신없이 지나가는 자막 읽으랴 정신이 없습니다. 미국 정치 드라마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영화 속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의 배경 설명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로스트 라이언즈>는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도가 땅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다가올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계속 정권을 유지하기가 몹시 어려운 지금 시점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거 하나만 알면 영화 속 상황과 대화들을 따라가기에는 그다지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로스트 라이언즈>는 이렇다할 액션이나 스릴러를 제공하지도 않고 말 그대로 제한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인물들 간의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결코 재미있는 영화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화적 재미와 상관없이 그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의 중요성과 시급성 때문에 꼭 봐둬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직접 나서서 <로스트 라이언즈>를 만들게 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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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니멀/흑백 취향이라 그런지 미국 현지 포스터가 참 근사해 보이네요.
포스터만 보면 세 명의 배우들이 마치 ‘나라를 지켜라 3총사’처럼 보입니다만
톰 크루즈의 경우 그 잘생긴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컷이 사용된 국내용 포스터가 영화 내용에 좀 더 유사합니다.
미국에서도 개봉일자가 11월 9일이었군요. 목표한 바를 과연 어느 정도까지
얻어낼 수 있을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좀 더 일찍 했어야 할 일 아니냐는
아쉬움도 들지만 내용 자체가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늦은 것 같다고 안하는 것 보다는 백번 낫습니다.



같은 시각, 영화는 세 개의 다른 장소와 인물들로 시작합니다. 먼저 이라크. 미군들이 새로운 작전 명령을 전달받습니다. 이라크 내의 고지들을 점령해서 좀 더 확실한 군사적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눈발이 흩날리는 산 정상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매복해있던 반군들의 공격에 작전은 실패합니다. 히스패닉계 군인 하나가 헬기에서 떨어지고 그를 구하기 위해 흑인 병사가 자기 몸을 허공으로 던집니다. 눈이 많이 쌓인 산 정상에서 두 병사가 치명상을 입은 채 다가오는 이라크 반군들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됩니다. 작전 본부에서는 전투기를 출격시켜 반군들을 폭격합니다. <로스트 라이언즈>에서 대화 보다 액션에 치중하는 부분이 여깁니다. 물론 두 병사도 대화를 하긴 합니다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이들이 과연 살아남을 것이냐 죽을 것이냐가 관객의 궁금증을 붙잡아 맵니다.

또 한 곳은 워싱턴 D.C.에 있는 재스퍼 어빙 상원의원(톰 크루즈) 집무실입니다. 부시, 라이스, 파웰 등과 찍은 어빙의 사진들이 방 안에 가득하네요. 베트남전 당시 대학 학보사 기자였던 베테랑 언론인 제닌 로스(메릴 스트립)가 방문합니다. 톰 크루즈 특유의 매력적인 웃음과 함께, 10년 전 어빙이 공화당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써주었던 호의적인 일화를 시작으로 한 시간에 걸친 대담이 시작됩니다. 어빙이 정부의 새로운 군사 전략을 설명하며 특종으로 다뤄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라크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모한 군사 전략과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 두 병사가 바로 이 전략의 결과물입니다. 영화의 원제목인 Lions For Lambs는 2차 대전 당시 어느 독일 장교가 영국군을 놓고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멍청한 양들이 지휘하기 때문에 사자들만 떼죽음을 당한다는 거죠. <로스트 라이언즈>에서 어빙 상원위원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수 만 명의 미국인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지금도 여전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공화당의 정치 엘리트들을 대변합니다. 그 외양은 톰 크루즈의 얼굴을 하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하지만 그 알맹이를 똑바로 봐야한다며 영화 미학이고 뭐고 관객 눈 앞에 노골적으로 들이밀고 있는 영화가 <로스트 라이언즈>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 일번지와 이역만리 전쟁터로부터 한참 떨어져있는 대학 캠퍼스의 스티븐 맬리(로버트 레드포드) 교수실입니다. 최근 출석률이 좋지 않은 정치학 전공 학생과 맬리 교수 간의 또 다른 면담이 시작됩니다. 뺀질뺀질하던 그 학생은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중이었고 이라크 전쟁터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두 병사는 맬리 교수의 제자들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즈>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직접적인 언술이 맬리 교수이 입을 통해 펼쳐집니다. 바꾸려면 참여해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건 도피일 뿐이다.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켜서 등돌리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정치 전략가들의 의도다. 그러므로 젊은 유권자들이여, 강의실 토론이건 그 무엇이건 참여하라! 참여하라! 참여하라! 일반적으로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직접 전달하는 건 가장 낮은 수준의 표현 방식으로 간주됩니다. 가르치려 드는 영화는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더더욱 좋지 않습니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그런 고려 사항들을 내팽개친 정치 찌라시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적혀있는 정치 구호에 동의할 수 있다면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할 수가 있습니다. 흥행 리스크와 미학적 비판을 무릅쓴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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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도 영화 이야기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네, 영화 관객으로서 쓰는 글이 아니라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쓰는 겁니다. <로스트 라이언즈>가 목표로 하는 건 다가오는 미 대선입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반 투표라 할 수 있는 대선에 젊은 영화 관객층을 끌어들이려는 겁니다. 이슈를 불러일으켜 더 많은 사회적 담론을 창출하고 참여시키고자 함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스>가 전해주는 메시지와 그 의미는 미국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대선을 불과 40 여 일 밖에 남겨두지 않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지 오래인 노땅 정치인이 3수를 하겠다고 전격 출마 선언을 한 것이 가장 최근의 뉴스입니다. 한마디로 쪽대본에 코미디 정국이 따로 없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0년간 일궈온 변화들 앞에 도돌이표를 찍으려는 쪽과 그 반대편의 구획이 좀 더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부패와 반부패의 대결이 됐든 다른 무엇 간의 대결이 됐든 어느 편이 과거의 것이고 어느 쪽이 미래를 위한 것인지는 이제 덜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현 정부가 그간 잘 했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얘기는 아닙니다. 전쟁 지속이냐 중단이냐를 다투는 미 대선과 우리 대선의 핵심 이슈는 분명히 다른 맥락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즈>로부터 있는 그대로 이끌어올 수 있는 내용은 오직 ‘참여하라’는 한 가지입니다. 다 아는 얘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천 번, 만 번을 반복해도 모자름이 없는 대목입니다. 선거를 통한 참정은 가장 기초적인 참여의 방식이고 참여를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그 만큼 상대방에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막걸리 한 사발과 꽃장식 공약 앞에 표를 내주던 과거의 이력을 반복하게 됩니다. 어느 쪽에 표를 던질 것인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어디로든 반드시 ‘표를 던져야 한다’는 건 변치않은 진리입니다. 나라가 살기 좋아지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별 차이가 없어지고 투표율도 자연히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아닙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그 길을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리더쉽을 필요로 합니다. 리더쉽이 시원치 않으면 그때 다른 방식으로 참여해서 바로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던 길을 반대 방향으로 바꾸게 되면 그땐 정말 힘든 상황이 됩니다. 지금 되돌아 가기엔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이 아깝습니다. 지난 10년 보다 더 이전에 그들이 과연 어떠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려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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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너무 직설적이고 투박한 구성의 영화임에도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영화가 <로스트 라이언즈>입니다. 현 집권 여당인 공화당의 위선을 고발하고 그들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상업화된 언론을 꼬집습니다. 더이상 속아서는 안된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전사자들의 실제 무덤들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정치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특히 젊은 유권자들을 돌이켜 세우고자 합니다. 전장에 고립된 두 명의 병사들, 즉 탁상공론으로만 끝내지 않고 ‘바꾸기 위해 먼저 참여한’ 교수의 제자들이 꼭 죽는 것으로 끝내야만 했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그게 이라크 전을 통해 벌어진 현실, 욕심 많은 양들로 인해 미래의 사자들이 개죽음을 당한 사회적 손실과 안타까움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로스트 라이언즈>가 선전 선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젊은 관객들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맬리 교수와 면담을 마친 학생이 기숙사로 돌아오고 TV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빗댄 듯한 가십 뉴스가 화면을 메우고 있습니다. 결국 어빙 상원의원의 의도대로 새로운 이라크 전략이 ‘성공리에’ 전개되고 있다는 자막 뉴스가 가십 뉴스 화면 밑에 깔려 지나갑니다. 학생의 흔들리는 눈빛을 담으며 영화는 끝납니다. 학생의 변화를 직접 보여주는 것 보다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만일 그 학생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새로운 결심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영화적으로는 통쾌할 수도 있겠지만 <로스트 라이언즈>가 목표한 바는 이루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미 할 얘기는 충분히 전달했으니 남은 부분을 관객의 가슴과 머리 속에 남겨주는 방식입니다. 영화가 의도했던 바를 스크린 속에 박제해버리지 않고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들고나갈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 멜 깁슨이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그 정도로 흥행하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리라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멜 깁슨 자신도 상당히 당황스러워 했을 정도였죠.

2) 만듬새부터가 듬성듬성해서는 특히나 이런 내용의 영화는 대박내기가 어렵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니라 프로파갠다 영화가 애초에 지향했던 사회적인 파장과 공명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방법론을 공격함으로써 내용의 핵심을 가리며 소모전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전술 전략이니 만큼, 그런 여지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ps.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2)에서 언급한 ‘방법론 공격으로 핵심 논의를 빗겨나가기’의 유사 사례가 있어 링크를 걸어둡니다. 오! 로버트, 당신은 어쩌자고 이런 영화를? [오마이뉴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