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를 보는 슬픔

 

내가 중앙일보를 보기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6개월간 무료라는 말에 혹해 보기 시작했는데 보면 볼수록 가관이란 생각이 든다.
삼성특검이 끝나고 나서 김용철 변호사를 마구 욕해놓은 사설을 봤을 때,
그리고 이전 정권을 가리켜 “아마추어 좌파정권 때문에 국민들이 큰 괴로움을 당했다”는 표현을 했을 때 등등 …
무수한 예가 있지만,
가장 압권은 미국소가 광우병 위험이 없다고 연일 대서특필한 거였다.
 
사실 확률이 낮아서 그렇지 미국소가 위험한 건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 등지에서도 미국소에 대해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그리고 우리가 그네들에 비해 불리한 계약을 맺은 건 분명한데,
미국소가 괜찮다며 입에 거품을 무는 중앙일보를 보면 대체 어느나라 신문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됐다.

얼마 전 아침에 본 기사는 더 가관이었다.
18대 국회가 해야 될 ‘아젠다'(왜 이런 건 꼭 영어로 쓰는지) 중 가장 시급한 게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는 개헌이란다.
큰 제목으로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데 …
 
첫째, 5년 단임제로는 국가 장기비전을 준비 못하고
둘째, 모 아니면 도식 승자독식 게임을 접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란다.
이런 말들에 다 동의하고,
정권에 대한 제대로 된 심판은 중임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중앙일보의 견해에 찬성이다.

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게, 그렇다면 노무현이 임기말에 개헌을 추진했을 때
대체 왜 반대했느냐는 거다.

노무현 역시 비슷한 이유로 개헌을 추진했었는데,
당시엔 조중동은 한목소리로 반대를 표했다.
노무현이 개헌을 하더라도 그건 그 다음 정권부터 적용될 터였는데다,
당시에는 이명박의 집권 가능성이 하늘을 찔렀는데 말이다.

레임덕을 막고 국가 장기비전을 추진하는 게 가능한 것이 중임제의 장점이라면
대운하나 영어몰입교육 등 장기비전의 달인이신 이명박 대통령부터 그 혜택을 보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게다가 올해는 20년만에 돌아오는, 총선과 대선이 엇비슷한 그런 해였기에,
작년이야말로 4년 중임제의 적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중앙일보의 해괴한 작태는 이걸로 다 설명된다.
“중앙일보는 노무현이 하면 뭐든지 반대한다”

신문의 수준은 우리나라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는 거지만
메이져신문이라 일컬어지는 자들의 행태는 정말이지 한숨만 나온다.
난 지금 그런 신문을 보고 있고, 그런 신문이 잘 팔리는 이 세상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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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보수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는 마지못해 이명박을 훈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촛불시위의 열기가 사그라들자 대대적인 반격을 거행하고 있는 거다.

중앙일보를 예로 들어보면
그네들은 처음에는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얘기를 계속 1면에 실었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고 한 교수도 미국 쇠고기를 먹는다는 기사가
1면 톱이라는 건 참 거시기한 일인데,

그게 씨알도 안먹히고, 촛불시위 참가자가 늘어만 가자 갑자기,
이명박이 잘못했다면서 정부 쪽에 화살을 돌린다.
아니 미국 쇠고기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이명박이 잘못한 게 대체 뭐야?

결국 정부는 여론에 밀려 추가협상을 해야 했는데,
그러자 중앙일보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경제를 살리자.”
그 후부터 걔네들은 촛불시위를 과격으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힘과 힘이 맞부딪히면 사소한 충돌은 있기 마련인데
보수단체와 촛불시위자의 싸움에서 군 출신인 보수단체 회원이
욕설을 들어먹고 두들겨 맞았다는 기사를 싣질 않나,
경찰이 두들겨 맞는 사진을 구해서 대문짝만하게 싣질 않나,
하여간 대단했다.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놀러 간다.
가뜩이나 놀이문화가 척박한 이곳에서 뭔가를 한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재미까지 있으니 아이를 데리고 가봄직하지 않는가.
하지만 촛불집회가 폭력으로 ‘변질’되었다는 기사가 계속 나가면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길 꺼려하게 마련이다.

촛불시위자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중앙일보는 피디수첩 번역자의 헛소리를 발판으로
피디수첩이 조작.왜곡되었다는 기사를 큼지막하게 내보내고
촛불집회에 한번도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속았다”고 장탄식을 한다.
그제나 저제나 기다려왔던 이명박 정부는 법질서를 운운하며 강경한 진압을 지시한다.

참으로 대단한 보수가 아닐 수 없다.
무슨 군사작전을 하는 듯 보수언론과 청와대의 손발이 착착 맞아들어가고
거기에 짓눌려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여론은 67%로 높아진 적도 있다.

촛불 하나만 가지고 싸우는 세력과,
언로와 돈, 거기에 권력까지 갖고 있는 세력의 싸움은 이렇듯 일방적이다.
보수야, 니들 차암 잘났다.
계—속 말아먹어라.


영진공 서민

이번 대선, 누구냐? 왜냐?

대통령 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도 나를 비롯한 많은 유권자들이 12명이나 되는 수적으로 풍부한 후보들 중에서 누구를, 왜 선택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개인적으로는 다섯 번째 맞는 대선인데, 이번처럼 누구를 왜 찍어야 하는지 고민되는 선거가 없었다. 오히려 누구를 왜 안 찍어야 하는지는 확실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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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라는 거냐???


영화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서로 소통하여 보다 즐거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우리 영진공인데, 이런 답답한 상황에 대고 한 마디 안 할 수 없는 터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문화일보에서 11월 28일자로 보도한 대선후보 지지도에 대해 인용하도록 한다.


“‘오늘 투표한다면 누구를 찍겠는가’라는 지지도 질문에 이명박 한나라당(39.6%), 이회창 무소속(21.0%),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17.8%), 문국현 창조한국당(7.1%), 권영길 민주노동당(2.5%), 이인제 민주당(0.7%), 심대평 국민중심당(0.4%) 후보 등이다. 이수성•정근모•허경영•전관•금민 후보 등 군소후보들은 통계상 유의미한 지지율이 잡히지 않았고, 5명을 모두 합해 0.4%에 불과했으며, ‘지지후보없음•무응답’은 10.5%이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128010301230290021


여러 가지 위장 사실이 드러나고 그보다 더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이명박 후보는 여전히 선두에 나서있다. 그리고 이회창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뒤를 따르고 있는 형세이니, 이변이 없는 한 이 세 후보 중 하나가 차기 대통령이 될 듯싶다. 그런데 이 중 이명박과 정동영 후보는 그들의 소속 정당이 표방하는 바나 이미지와는 달리 참으로 어정쩡하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12명의 후보 중에서 정치지향점과 이념을 확실히 밝히고 있는 후보는 이회창, 권영길, 금민 후보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이회창 후보는 한국 보수우익의 대표임을 자임하며 나섰고 권영길 후보는 진보대통령을 표방하고 있으며 금민 후보는 사회당의 후보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 한국 우익의 본산임을 자랑스러이 내세우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지난번 버시바워 美 대사와의 면담에서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와 보수우익의 대결”이라는 발언 이후 짐짓 우익이나 보수라는 표현을 삼가며 “중도실용”을 강조하고 있고, 통상 진보로 분류되면서 민주화 세력의 적자 임을 내세우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도 스스로를 진보라 하지 않고 “중도개혁”을 외치고 있다.


*우리만큼 “좌파”, “우파”, “보수”, “진보”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편의에 따라 혼용되는 사회도 드문 편인데, 이 글은 그 개념을 정리해 보자는 글이 아니니 좀 거슬리는 분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한나라당은 줄곧 무능한 좌파정권을 갈아치우자고 주장하고 있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부패한 보수우익세력의 재집권만은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는데, 왜 그 당의 후보들은 애써 “중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는 것은 현재까지의 대선 경주에서 이명박 후보가 줄곧 선두로 나서고 있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할 것이다.


사실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지지의 이유는 한 마디로 가름된다.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지금 시기 한국 경제가 정말로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상태인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교수, 연구원, 기업인, 금융전문가 등 2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견조사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전체의 81%에 달하는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평가했고 ‘나빠졌다’는 의견은 7.5%에 그쳤다”고 하는 반면 (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711/e2007112618112170060.htm)
, 한나라당 등 보수 세력에서는 한국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러 언론 매체는 ‘서민’들이 “IMF 위기 때보다 경기가 더 안 좋다”고 느끼더라고 반복해서 전하고 있다.


현상을 너무 단순화하는 위험을 감수한다면, 현재 한국 경제는 지표 상으로는 나름 잘 굴러가고 있으나 그 과실이 통칭 ‘서민’들이라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제대로 나눠지고 있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해법은 양극화 문제와 분배의 왜곡 현상에 대해 시급히 조치하는 것에서 찾아질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무능한 좌파 정권이 경제를 망쳤다”는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우익의 주장을 수긍한다 하여도, 오히려 작금의 문제는 분배를 통해 해결을 모색하는 전통 좌파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전통 우파의 방식은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택했던 정책이 대표적인데, 기업에 대한 규제철폐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그리고 감세 등의 기업지원을 통해 자본투자의 증가와 경기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장에 돈이 더 돌고 상품이 더 팔리며 고용이 증가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지금 시기의 우리 유권자들에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런 방식을 택하겠다고, 즉 ‘나는 열심히 기업 활동을 지원할 터이니, 국민 여러분들은 더욱 노력하고 자녀들도 인재로 육성하여 기업가들이 늘려놓은 일자리에서 더 많은 몫을 챙길 수 있도록 하시오’라고 말한다면 과연 먹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후보가 후자의 방식을 이야기하여도 정작 스스로는 “강한 지도자”가 “강력한 지도력”으로 “서민”들에게 더 많은 몫을 나눠주리라 믿고 있는 형편인데.


그러니 현재 많은 유권자들이 현 상황에 대해 느끼는 분노와 불만은 보수우익이 외치는 “경제를 망친 무능한 좌파 정권” 이라는 주장에 대한 액면 그대로의 공감이 아니라 “무능한 여당”이 “나와 내 이웃”의 삶을 힘들게 했다는 정서로 요약될 수 있겠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유권자들은 “부패한 보수의 재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소위 개혁세력이라는 쪽의 주장에도 좀처럼 동감하지 않고 있다. “나를 비롯한 내 이웃”의 삶이 경제적으로 나아진다면 웬만한(?) 부패는 참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왜 유권자들이 진보대통령을 자임하며 공평한 분배를 외치는 권영길 후보에게 쏠리질 않고 이명박 후보가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냐고 따지고 들 수도 있겠다. 그 이유를 현재의 지지율이 나타내는 모습에서 유추하자면, 우리 유권자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공평한 분배라는 거대한 과제에 앞서 우선 “나와 내 가족”부터 더 윤택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대선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이명박 후보는 기존 보수세력이 만족하고 인정할만한 오른쪽 정책이나 소신을 시원스럽게 내놓지 않고 정동영 후보는 집권 여당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거부하면서도 그 쪽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구해야 하는 형편이다. 어정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이회창 후보가 “이명박은 우익의 대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출마를 하였고, 소위 범여권도 각자의 길로 나선 것이다.


자, 이런 시금털털한 상황에 나를 비롯한 많은 유권자들의 고민이 놓여진다. 우리 사회의 두 주요 정치세력의 후보를 바라보면서, 개혁과 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혹시 저 후보가 ‘한나라당’스러워지지 않을까 고민할 터이고 보수 우익 성향의 유권자는 저 후보가 ‘열린 우리당’ 비슷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지율이 상위에 있는 한 후보는 아예 무소속이고 말이다.


“누구”인지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왜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유권자들은 “왜?”를 생략한 채 그저 “누구”나 그 “누구”의 이미지를 선택해야 하는 요샛말로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선택은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이 난감하드라도 기왕이면 잘 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남은 기간이 짧긴 하지만 홧김에 욱하지 말고 차분히 살펴서 선택하길 부탁 드리는 바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후보들이 “왜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원하는 답을 작성하여 거기에 가장 근접하는 후보를 골라내는 것도 한 방법일 테고.


잘 뽑자. 그저 ‘감’이나 ‘이미지’로 결정하지 말고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이웃’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누구”를 고르도록 하자.


2007. 11. 30.

 


영진공 편집인 이규훈

구국기도회에서 느낀 네가지 유감

2004년 10월 05일
구국의 소리

1. 한겨레
‘…돌출행동을 벌였으며…행진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10월 4일 시청앞 광장에서 있었던 집회의 풍경을 한겨레는 이렇게 보도했다. 대체로 평화적으로 끝난 그 집회를 과격시위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역력한 대목. 인공기를 불태우는 등의 행위가 왜 ‘돌출행동’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 사회에서 그 정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소화기로 불을 끈 경찰의 행동이 오히려 문제가 있었으며, 민간 사회에 적응이 덜된 재향군인 몇 명의 행동을 전체로 확대시키는 보도 역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을지로 일대에서 극심한 교통정체를 빚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시위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걱정하는 자세, 이게 바로 조선일보가 파업 때마다 써먹는 수법이다. 올 봄의 탄핵 반대 집회 때는 그럼 교통정체가 없었던가?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는 시위에 시민들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교보문고를 비롯한 인근 상점들이 매출이 떨어져 울상을 지었지만, 그럼에도 그때 한겨레는 감격에 겨운 듯 촛불시위 장면을 보도하지 않았던가.

시청 앞 광장은 어느 특정 정파의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 거리에 서서 자신의 주장을 소리높여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집회의 주체에 따라 논조가 바뀌는 한겨레의 보도는 그래서 유감이다.

2. 자발성
이번 집회는 순복음과 금란교회 등 대형 교회들이 주축이 되었다고 한다. 보수단체가 10만명을 모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첫 번째는 작년 3월 1일-두번 다 대형 교회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는 신도들에게 모임 참가를 독려했고, 대절 버스를 동원해 신도들을 실어날랐단다.

난 그 교회 신도들이 평소 얼마나 정치적인 소신이 뚜렷했는지 의문스럽다. 목사가 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버스를 대절하지 않았다면 자발적으로 시청 앞에 나갔을까? 별로 그랬을 것 같지 않다. 버스대절, 사실 이거 문제가 많은 거다. 탄핵반대 집회 때 열린우리당 당원이 버스 한 대를 대절한 걸 가지고 난리 굿을 했던 보수 진영이 한 대도 아니고 수십, 수백대를 동원해 군중들을 실어나를 수가 있는가. 탄핵반대 집회 때 모인 군중들이 다들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에 모인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보수는 자발성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다. 교회 측의 동원력을 빌리지 않았다면, 올 봄의 탄핵 찬성 집회 때처럼 나이드신 분들 몇백명이 인도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었을 거다. 내 주위 사람 중엔 노무현을 김정일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 중 한명이라도 시청 앞에 나갔다는 사실을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젊은 보수는 다 죽었는가? 마음 속으로 정치적 신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한데 모여 세를 과시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과, 아무 생각없는 교회 신도들에게 큰일을 맡길 셈인가. 자발성이 없다는 것, 내가 보수 단체들에게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3. 시각
어제는 다들 출근하는 날이었다. 추석 연휴 때문에 주말까지 쉰 사람들도 모두 다. 회사에 가서 적응도 하고, 밀린 일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그런 날 오후 세시 반에 어떻게 집회를 할 수가 있담? 한가한 거야 알겠지만 그렇게 티내면 ‘보수 애들은 다 실업자’란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탄핵반대 집회 때도 그런 말이 나왔다. 오해를 살까봐 퇴근시간 이후,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모임을 가졌었는데도 모 의원님들께서 “탄핵반대 집회에 나가는 애들은 다 실업자”라고 폭로하지 않았던가. 그 바람에 뜨끔해진 실업자 분들은 모임에 누를 끼칠까봐 집회에 안나가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수 쪽은 왜 하필 월요일 오후 세시 반인가? 교회 예배 때문에 일요일이 안된다면, 최소한 퇴근 후에 달려갈 수 있게 일곱시 정도에 모임을 시작해야 할 게 아닌가.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십만인파의 모습은 구국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더불어 우리나라 실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줬다. 실업자라 하더라도 그렇게 티내지 말았으면 좋았을텐데, 이게 내가 그 모임에 가진 세 번째 유감이다.

4. 부시?
마이클 무어의 발랄한 말에 기대지 않더라도, 부시가 또라이라는 건 세계 모든 사람이 안다. 세계의 패권국을 누가 다스리는가는 우리같은 변방의 나라일수록 더 중요한 법, 부시 덕분에 우리는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노무현의 책임을 부정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지금 테러의 위협에 몸을 떨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부시가 중동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9.11 테러가 발생했을까? 그럼에도 아무 생각없이 사는 미국인 일부는 부시를 지지하며, 이번 대선에서 또 찍겠다고 한다.

미국 애들은 그렇다 쳐도, 부시 때문에 여러 가지로 시달림을 겪은 우리나라만은 부시를 지지하면 안되는 법, 하지만 어제 집회에서는 부시와 함께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하자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아니 왜 박근혜나 최병렬, 정형근이 아니라 부시인가? 무식하기 짝이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싸움과 영어밖에 없는 부시를 연호하는 건, 보수단체 스스로 자신들이 또라이임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안그래도 아는 게 없다고 비판받고 있는 우리나라 보수, 제발 좀 참아달라. 보수가 보수다워야 나라가 바로서지 않겠는가. 다음 집회 때는 꼭 당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시길.

영진공 안전기획부 부장
서민(bbbenj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