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터스”, 동기부여가 덜 된 서바이벌 게임

애초에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영화였습니다만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마셰티>(2010)에 조연급 단역으로 출연한 님로드 앤탈 감독이 꽤 인상적인 코미디를 보여주는 바람에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프레데터스>는 님로드 앤탈 감각의 유머 감각이 반영된 작품은 아니더군요.

여기서 잠시 프레데터 시리즈의 연보를 살펴볼까요.


1987년 <프레데터>,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 / 존 맥티어난 감독 /
                             짐 토마스, 존 토마스 각본

1990년 <프레데터 2>, 대니 글로버 주연 / 스티븐 홉킨스 감독 /
                               짐 토마스, 존 토마스 각본

2004년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폴 W.S. 앤더슨 감독/공동 각본

2007년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 콜린 & 그렉 스트로스 감독 /
                                                   셰인 살레르노 각본

2010년 <프레데터스>, 님로드 앤탈 감독 / 알렉스 리트박, 마이클 핀치 각본

1987년의 원작과 1990년의 평범했던 속편으로 사실상 종료되었던 프레데터 캐릭터를 14년만에 다시 소환했던 작품이 바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감독 겸 제작자인 폴 W.S. 앤더슨이었습니다.

각자 다른 시리즈의 외계인 캐릭터였던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를 한 작품에 출연시켜 대결 구도를 가져가겠다는 농담 같은 발상을 – 벰파이어와 늑대인간들도 자주 그러고 있는데 외계인들이라고 왜 만나면 안되는 거냐능 – 놀라운 실천력으로 현실화시켰던 것이죠.

엄청난 혹평에도 불구하고 시도되었던 두 외계인 종족의 만남은 다시 3년 뒤의 속편으로까지 이어졌고 이를 통해 연출 데뷔를 하게된 3D 특수효과 전문가 콜린 & 그렉 스트로스 형제는 최신작 <스카이라인>을 후속작으로 내놓고 있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한 수 위의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에이리언과의 만남 덕분에 부활할 수 있었던 프레데터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일단 이 험상궂은 인간형 전투 외계인 종족을 기억하고 알아봐주는 관객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 리빌딩을 시도한 작품이 <프레데터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애드리안 브로디, 토퍼 그레이스, 로렌스 피쉬번, 앨리스 브라가와 같은 스타캐스팅이 가능했을 것이고 아울러 4천5백만불의 예산도 확보할 수 있었던 거였겠지요. 내용면에서 보면 영화의 시작과 함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사 Troublemaker 의 로고가 보이고 이후로 시종일관 SF답지 않게 고풍스러운 배경 음악이 사용되고 있으며 대니 트레조가 역시나 단역으로 출연해주고 있다는 점 정도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그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외엔 님로드 앤탈 감독에 의해 정성스럽게 복원된 프레데터 캐릭터들과 이들의 사냥 게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지구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레데터들이 사냥 게임을 즐기기 위해 지구를 비롯한 각기 다른 행성에서 숙련된 사냥꾼들을 납치해오고, 이런 황당한 상황에 빠진 지구인들은 프레데터로부터 사냥 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또 누군가는 심지어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자연히 누군가는 죽게 되고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오히려 프레데터를 해치우고 살아남게 되는 장르의 법칙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납치되어 온 지구인들 대부분이 살인 전문가들인 와중에 직업이 의사인 에드윈(토퍼 그레이스)가 끼어있는 점이 나름대로 특색입니다. 지구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이 의사에게 있었기 때문에 함께 불려오게 된 것이라는 사실은 물론 영화 막판에 가서야 드러나게 됩니다.

밑도 끝도 없는 ‘살인 게임’류의 액션 영화이지만 님로드 앤탈 감독의 연출 역량 만큼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눈먼 자들의 도시”, 원작의 무게에 눌려 범작이 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벨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의 제작과 홍보에는 원작의 유명세가 많은 도움이 되었겠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발목을 잡힐 수 밖에 없는, 즉 ‘문학 작품을 영화화’할 때 빠질 수 밖에 없는 흔한 딜레마를 반복합니다.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이도 그 중간 과정에서 인물들의 사고와 감정의 변화를 통해 충분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문학과 달리 영화는 시청각적으로 인지되는 내용들을 우선시하면서 적당한 논리적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그게 아니라면 충분한 감정적 이입이라도 필요하죠)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 때문에 영화가 원작 소설 만큼 성공적이거나 그 이상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대부분 적지 않은 각색을 필요로 합니다. 때로는 에피소드의 생략과 추가, 주요 등장인물의 비중이나 캐릭터의 변화가 필요하고 심지어 결말을 바꿔버려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죠. 그렇게 과감한 각색을 했음에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작품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 또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에 따른 어려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원작은 캐스팅과 펀딩을 용이하게 해줍니다. 일단 판권 계약에 성공하면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배우와 감독들은 생판 모르는 작가의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들이 뛰어다니는 경우에 비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정작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돌입하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문학 작품과 영화 장르 간의 ‘화법 상의 괴리’ 때문에 연출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물론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존 그리샴 등과 같이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쓰는 대중 소설류는 상관 없겠지요) 원작을 그대로 따르자니 영화로 만들어져 보여졌을 때 아무래도 허전한 감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과감하게 뜯어고치자니 원작을 이미 읽은 관객들로부터의 맹비난이 두려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우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한다’는 쪽입니다. 원작이 죽어야 영화가 산다고나 할까요. 원작과 조목조목 비교하며 ‘문학계의 걸작을 영화가 망쳤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처음 접하는 더 많은 관객들을 위해 새로운 걸작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타깝게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원작에 좀 더 충실하기로 하는 길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로서 <눈먼 자들의 도시>는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다면?’이라는 간단한 아이디어와 거기에서 시작된 상상력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는 작품입니다. 문학에서는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도 훌륭한 작품으로 발전될 수 있는 시작점이 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사건의 발생 원인과 인과관계 따위에 대한 좀 더 논리적인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지극히 아름답고 긍정적인 결말은 이런 영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문학 작품과 달리 2시간 분량의 영화는 ‘결말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16부작 TV 미니시리즈라면 좀 다를 수 있겠습니다)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성공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았을 때에도 그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되어 ‘원작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리하여 영화가 미처 다뤄주지 못한 디테일이나 원작과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고 싶다’는 욕구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런 걸작들의 반열에는 오르기 힘든 또 한번의 ‘시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배우이자 작가이기도 한 돈 맥켈러(영화 초반에 차를 훔치다가 자신도 눈이 멀게 되는 인물로 직접 출연도 했더군요)의 각색을 기초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눈 앞에 하얗게 되는 현상과 그 감정적인 상태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극악의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 공동체의 광기와 절망, 그리고 희망을 남미 특유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데에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언제나처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줄리엣 무어와 마크 러팔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등의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훌륭했고 이제는 그다지 스펙타클한 광경도 아닌 것이 되었지만 ‘폐허가 된 대도시의 풍경’들 역시 충분한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역시 눈으로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플롯으로 승부하는 ‘2시간의 문법과 미학’의 장르라는 생각을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객들을 사로잡는 고유의 방법론에서 실패하고 있는 영화가 뒤늦게 나레이션 등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등의 노력은 그저 안타깝게만 보일 따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