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과 바스키아 … 예술가의 짧은 생


 

최진실의 자살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이가 비단 나 뿐은 아닐 거다. 90년대 CF 한편으로 스타덤에 올라 대한민국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톱스타이자 언제나 옆집 언니 같았던 그녀. 최근 출연한 드라마의 연속 히트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숨기고 싶었을 폭력과 외도로 얼룩진 결혼생활과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얽힌 사연들은 최근까지도 매스컴의 단골 메뉴였다. 대중의 대단한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꼭 그만큼의 루머와 악의적인 덧글을 얻어야 했던 그녀는 예상처럼 수년간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우울증을 견뎠다. 그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괴로우랴 싶었거늘.. 두 아이의 엄마로 웬만한 일은 씩씩하게 버텨내길 바랐거늘.. 그녀는 대중의 마음을 저버리고 그렇게 떠났다.

“유명해 진다는 건 분명 근사한 일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알아보고, TV와 신문이 예사로 자신의 얼굴을 싣고, 영화배우나 가수와 연인이 되고, 쉽사리 큰 돈을 벌고…말 그대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 얼마나 낭만적인가”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중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 거리 곳곳과 지하철역사에 그림을 그렸고, 엔디워홀의 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20세기 말 미국 미술계에서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은 ‘검은 피카소’ 장 미셸 바스키아. 하지만 그는 27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세상을 등진 또 한 명의 불운한 예술가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Jean-Michel Basquiat, "The Dingoes At The Park"




이미 20대 초반에 몇 만 달러를 호가하는 작품을 그린 위풍당당한 화가. 그라피티(Graffiti)라고 불리는 스프레이 낙서화로 일약 미술계를 장악한 이 젊은 화가는 두려울 게 없었다. 미국 화단에 나타난 최초의 흑인이자, 클럽 DJ를 즐겼고, 양성애자이기도 한 그에게 80년대 초 새로운 재능의 출연을 기다리던 미국의 화랑가는 열광했다.



당시 젊은 부자들은 투자의 일종으로 미술품을 사들였다. 그들은 바스키아가 더욱 유명해지도록 힘썼다. 그의 몸값이 올라야 그림값 또한 오르기 때문이다. 바스키아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게 되고, 스타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흑인이라는 손가락질과 비평가들의 냉담한 혹평에 혼란스러워한다. 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겨우 20살, 갓 소년 티를 벗은 청년이던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코카인과 헤로인을 선택한다. 그리고 1888년 약물 과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elf Portrait as a Heel

배우 최진실과 바스키아의 생은 언뜻 비슷하다. 원하는 대로 유명해졌지만,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무섭고 아찔한 성공의 이면들. 하늘이 내려준 재능에 힘입어 화려한 삶을 살게 되지만, 그 끝은 고통의 낭터러지였을 그들의 삶에 어떤 말로 이해를 또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생의 시간을 어쩌면 훨씬 길고 힘겹게 느꼈을 예술가들에게 짧은 생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면 부디 하늘에서는 마음껏 꿈을 펼치고 환히 웃으며 살아가길 빈다.


영진공 애플

증권가 정보지(찌라시)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이유


 

최근 한나라당에서 “최진실법”을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더군요.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사실부터 적시하고 보죠.

사이버 명예훼손죄나 (온오프라인을 포괄하는) 모욕죄는 이미 있습니다.
특히 사이버 공간관련해서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 아래와 같이 명시되어 있죠. 이 내용은 법제처 홈페이지에서 누구든 검색할 수 있습니다.

제70조 (벌칙)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전문개정 2008.6.13]

이 법은 2004년에 제정된 것이며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내용이 명시된 것은 2007년부터입니다. 마지막 표시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법령은 올해 6월에 마지막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최진실법”은 없던 법의 제정이 아니라 이 사이버 명예훼손법의 조항을 개정하겠다는 뜻입니다. 개정의 주요 내용은 3항의 친고죄 항목을 없애겠다는 것이죠.
즉, 뭔 일 생기면 무조건 수사하고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건데, 놀랍게도 이미 경찰은 그렇게 하겠다고 나섰군요. 이 나라, 법치국가 맞습니까?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81005090202767&p=yonhap

이번 최진실씨 사건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원인을 인터넷 악플러 몇명과 증권사 모씨에게만
돌리는 것은 너무도 간편하지만 참으로 무모한 짓입니다.
그렇다면 뭐를 문제 혹은 원인으로 봐야 할까요?

저는 우선 “연예인은 공인이다” 라는 명제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심지어 연예인들까지도 자기들이 공인이네 뭐네 하는데…
공인은 공공의 이익에 직결되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정치가들, (정책결정권을 가진) 고위 공무원들, 언론사 간부들, 우리나라 같은 재벌 국가에서는 재벌 총수들 같은 사람이 공인이죠.

공인의 삶에 대해서는 대중이 간섭하거나 강요할 권리가 어느 정도 인정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뭔짓을 하는지가 우리 삶에 직결되니까요.
예를 들어, 그들이 뇌물을 받고 정책결정을 하면 우리 삶에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들이 퇴직후에 특정 회사의 임원이 되는 것 역시 그 작자들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테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이 신문사 기자들과 술먹고 여기자의 가슴을 주물러대며 여주인인 줄 알았다고 주절대고서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공익에 직결됩니다. 법적 문제를 떠나서 일단 특정 신문사 사람들과 같이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보도의 편파성을 유발할 테니 말이죠.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사안이 바로 공인이 왜 공익과 직결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14062.html

하지만 연예인은 그냥 유명인일 뿐입니다.
그네들이 뭔짓을 하든, 그네들이 바람을 피우던 이혼을 하던 죽네사네 싸움질을 하던 반말을 찍찍 하던 욕을 하던 마약을 먹던, 그건 우리가 밥먹고 출퇴근하고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그네들의 삶일 뿐입니다.
따라서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수다를 떨 수는 있어도 감놔라 배놔라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거꾸로입니다.
진짜 공인들이 뭔짓을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도 않고, 알려져도 별로 관심도 없고, 간섭이나 비난은 커녕 심지어는 두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명인에 불과한 사인들인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의 관심과 비평과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죠. 소위 말하는 ‘국민정서 법’에 따라서 말이죠.
게다가 더 골때리는 일은 진짜 공인에 대한 평가마저도 연예인에 대한 평가를 닮아간다는 겁니다. 그의 공적인 정책결정의 내용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소한 언행이나 소위 말하는 ‘인간적인 면’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죠.

이런 게 정말 잘못된 거고 ‘개탄할 일’ 인 겁니다.

이 나라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국민정서가 아니라 공익입니다.
실체도 없는 국민정서에 매달리는 동안 공익이 위협받고 있다구요.

이번 사건에 마음속에 약간이라도 찔리는 사람들 있을겁니다.
최진실이 하룻밤새 읽은 악플이 3천개였다고 하니, 중복악플을 감안하면 그것만으로도 최소한 2천명 정도는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죠.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떳떳하다고 주장할 겁니다. 왜? 자기는 국민정서를 대신해서 악플을 날렸을 뿐이라거나, 나도 어디서 들었을 뿐이라거나 … 모두 헛변명입니다. 그럴 에너지를 진짜 공인을 감시하고 평가하는데 쓰세요.

그리고 둘째로 증권가 찌라시가 확산된 통로가 인터넷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인터넷이나 리플 탓을 하는 것은,
자동차사고의 원인으로 자동차나 고속도로를 탓하는 셈이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찌라시를 수사한다고 없앨 수 있냐는 겁니다.

찌라시가 돌아다니는 이유는
사람들이 찌라시를 필요로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찌라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제도권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간신문이 증권가 정보지를 인용했다가 삭제하기도 ...

신문방송에서 하는 보도에 진짜 정보들이 결핍될 때,
그래서 신문방송이 찌라시 수준이 될 때,
찌라시와 유언비어가 언론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미 땡전뉴스 시대에 다들 겪어본 일 아닙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그 찌라시의 내용을 기성언론이 확대재생산했죠.
이런 짓은 예전부터 비일비재했습니다.
몇몇 예를 보여드리죠. 이게 신문입니까, 찌라시입니까?
http://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entertainment/200702/20070210/72j16007.htm

네티즌들은 이런 기사를 일컬어 ‘ABC놀이’라고 합니다.
기사가 아니라 놀이죠.
이런 걸 쓸려면 실명을 직접 언급하던가, 자신이 없으면 아예 기사를 쓰지 말아야죠.
최소한 언론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요?
미국이나 유럽에도 가십들은 늘 넘쳐나고 파파라치들이 난장을 부립니다만,
최저급의 타블로이드라 해도 ABC놀이는 안합니다.
기사화 할때는 애초에 실명을 쓰죠.

사실 이번 사건관련 루머도 저는 리플이 아니라 포털의 신문기사를 통해서 처음 봤습니다. 소위 말하는 카더라 통신이었죠. 내말이 아니라 그냥 요즘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카더라는 말로 소문 뒤에 비겁하게 숨어서 빌붙어 먹는 보도 말입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6&articleid=2008092411270995947&newssetid=83

심지어 사망기사에도 이렇게 뒤에 물음표를 곁들여주는 센스로 카더라 통신을 반복하는 이 저질 기사들..-_-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2&articleid=2008100208464575819&newssetid=82

결론적으로 굳이 이번 사건의 원인을 따지자면,
연예인은 공인 취급하면서 정작 공인은 연예인 취급을 하는 우리 대중문화와
지금처럼 무뇌아처럼 소위 관계자의 지도편달에 따라 움직이면서
인터넷이나 찌라시를 기웃거리며 선정적 내용을 확대 재생산이나 해대는
자칭 기성 언론이 가장 큰 원인제공자입니다.

적어도 기성언론에서는 누군가 이에 대해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어디서도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군요.

뭐 부끄러운 줄 알 정도의 인간들이면 저러고 있지도 않겠지만 …


영진공 짱가

안녕, 최진실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재수할 때였다. 학원 종합반에서 한동안 내 옆에 앉았던 여자아이는 외모도 성격도 참하고 단아한 아이였다. 그때 난 그 비싼 종합반을 등록한 주제에 수업 시간엔 주로 공상을 하거나 시를 쓰거나 했다. 그리고 쓰는 시를 족족 그 아이에게 읽어봐달라며 내밀곤 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손바닥만한 노란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주었다.

“이게 뭐야? 시?”
“노래.”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날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읽고 있는데 마음이 막 아팠다. 이런 노래가 있었구나.

“좋지?”
“응.”

멜로디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찾아듣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노랫말에 어떤 멜로디가 붙었을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걸 노래로 듣게 되면 무척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노래는 내게 멜로디 없는 노랫말이었다. 그냥, 시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날 나는 결국 우연히 노래를 듣게 되었다. 어떤 멜로디가 붙었든 분명 실망할 거라 생각해온 것과 달리, 그때부터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자신에겐 길고 긴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남은 이들에겐 갑자기, 문득, 홀연히, 그들이 떠나는 것. 어제까지 노래하던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이, 웃으며 얘기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하고, 그럴 리 없다고 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부디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자고 있길 바란다.


– 그리고, 최진실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영진공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