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트 가드너”, 생명 위에 군림하려는 제약회사의 탐욕








*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 출연: 랄프 파인즈, 레이첼 와이즈, 위베르 쿤드 

이 영화 (원제: Constant Gardener, 2005)는 인권 운동가인 케사(“레이첼 와이즈”)와 외교관 저스틴(“랄프 파인즈”)을 통해 케냐라는 빈국의 현실과 이를 이용해 먹는 제약회사의 비도덕적 임상실험을 다큐멘터리적인 자세를 취하며 관객들에게 고발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쓰리비’ 라는 제약회사는 겉으로는 케냐의 빈민들에게 약을 무상 제공하며 선행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뒤로는 신약 개발의 효능을 위한 불법적 임상실험을 자행한다. 이런 제약회사의 비도덕적 모습은 불행하게도 영화 속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3대가 놀고 먹다 지치게 만들어줄 신약 개발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물가가 낮고 규정이 느슨한 빈국으로 임상실험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인도 역시 이러한 요건에 잘 맞는 나라 중 하나로 최근 많은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는 2차 대전 종전 후 뉘렌베르크 재판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실시했던 나치의 과학자들을 처벌하였다. 이 재판을 기초로 한 뉘렌베르크 강령은 이후 임상실험에 관한 국제적 법령이 되었다. 이 법령의 핵심은 의사는 지원자에게 실험에 따른 모든 부작용에 대해 이해시킨 뒤 자발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령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에서 임상실험에 참여한 지원자들의 대부분은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가난한 빈민으로 임상 실험 내용을 이해시키기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영어로만 쓰여 있는 임상 실험 동의서도 있었다. 게다가 치료비용을 마련할 수 없는 빈민들은 실험을 통해서라도 치료의 희망을 얻고자 실험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동의를 하는 경우도 많아 이런 경우 의사의 도덕적 판단에 의존해야만 한다.

임상실험의 위험은 무엇보다 실험 전까지 행해졌던 모든 치료가 중단되고 신약의 효능을 위해 2~3개월 동안 세척기간이라 하여 일체의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이나마 차도가 있던 치료를 중단하게 만든다. 게다가 실험 지원자 중에는 플라시보약(가짜약)을 투여 받기도 한다.

세계화라는 강대국들의 허울 좋은 깃발 아래 빈익빈 부익부는 가히 ‘세계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세계화의 물결은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의료분야에서도 이렇게 비극을 만들어내었다.

사람의 목숨이 수익이라는 물질적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는 이 씁쓸한 현실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은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이들 뿐일 것이다.

 한미 FTA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협상내용에 의약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제약회사의 신약에 대한 특허권 보호를 위해 값싼 복제약의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미국이 자국 제약회사의 이익증대를 위해 요구한 것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불러오고 약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

 

“시티 오브 갓”,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주연: 마테우스 나크터가엘, 세우 호르헤, 알렉산드레 로드리게즈,
        레안드로 피르미노 다 호라, 필리페 하겐센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2005년 개봉작 『시티 오브 갓』.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당 영화는 출중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극찬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삐까뻔쩍한 전적을 자랑하고 있으며 영화적 재미에 있어서도 높은 내공을 보여준다.

빈부 격차가 심각한 동네 중 한 곳인 브라질은 인신 매매, 살인, 마약 밀매 등 범죄율이 굉장히 높다. 특히 빈민촌을 중심으로 마약 밀매를 통해 형성되어 있는 갱들은 공권력 조차 손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 영화는 이런 브라질의 현실을 60, 70년대 ‘시티 오브 갓’이라는 빈민촌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양아치들의 흥망사를 실화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

가이리치스러운 이야기 구성과 역동적인 화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유머는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게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조차 망설임 없이 살인을 자행하는 그들의 일상화된 폭력이 실화라는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오면서 마냥 웃으며 보기에는 거꾸로 입은 빤스 마냥 너무도 마음이 불편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중요치 않다. 브라질의 빈민가는 여전히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있으며 그 속의 아이들은 폭력과 살인과 마약에 그대로 노출되어 범죄와 함께 성장하고 누군가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빈민가 갱들을 소탕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러나 빈민가를 차단하고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지만 오히려 갱단과 경찰의 총격전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총에 맞아 사망하거나 엉뚱한 사람을 체포, 사살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등 시민(정확히 빈민가 사람들)의 피해가 늘어가면서 이로 인한 빈민들의 반발은 커져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난은 이미 개인의 문제를 넘어섰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고착화되고 대물림 되는 가난은 한 개인의 힘으로 벗어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은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절망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주 자주 그 선택은 폭력을 수반한다.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을 모두의 비용으로 감싸 안고 같이 가야 하는 건, 단지 그들의 절망을 끊고 희망을 심어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행복으로 가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영진공 self_fish

콘스탄트 가드너 (The Constant Gardener, 2005), “정치 스릴러냐? 러브 스토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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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 랄프 파인즈의 모습은 언듯 톰 클랜시 원작 영화에서의 해리슨 포드를 연상시키지만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그의 실제 캐릭터는 “성난 폭도들에게 머핀 한 조각씩을 권할 법한” 유순한 성격의 하급 외교관일 뿐이다. 화초 기르기가 취미인 그는 다국적 제약/유통 회사들의 반인륜적인 음모로부터 사실상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여행 중 비참하게 살해 당한 이후부터 비로소 사건의 중심부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영국 외무부와 다국적 기업들 간의 결탁을 파헤치는 영웅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때문이다. 이것이 <콘스탄트 가드너>를 정치 스릴러 액션이기 이전에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먼저 기억되게 만드는 이유다.

<시티 오브 갓>에서 입증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역동적인 연출 감각이 유감 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전작에서부터 함께 해온 세자르 샬론의 카메라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릴 만한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영화 속에 가득 담아냈다. 여기에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음악까지 더해지면서 <콘스탄트 가드너>는 시청각적인 풍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다. 배경음악을 자제하고 보다 건조한 영상이 어울릴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콘스탄트 가드너>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감을 잃지 않는 잘 연출된 풍성함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랄프 파인즈의 대표 캐릭터는 여전히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다혈질 러버보이지만 <쉰들러 리스트>의 독일군 장교나 <퀴즈쇼>의 대학교수도 있었고 <스파이더>의 정신분열증 환자와 <레드 드레곤>의 연쇄 살인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춘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콘스탄트 가드너>에서는 좀 더 일상적인 인물로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손쉽게 하여 마침내 영화의 중심적인 정서를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레이첼 와이즈는 단독 주연작은 드물지만 <미아라>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콘스탄틴>과 같은 액션물과 <어바웃 어 보이>와 <엔비> 같은 코미디까지 비중 높은 조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해온 배우인데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그녀의 헌신적인 연기는 이번 수상이 그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콘스탄트 가드너>에는 빌 나이, 피트 포슬스웨이트, 제라드 맥솔비 등 낯익은 영국계 조연들이 함께 출연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름 없는 아프리카의 단역 배우들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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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