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구걸하는 시대



희망은 근원적인 거였다.

국민학교 입학 전 내 희망은 산타의 흰수염을 잡아채면서 실재하는 신화를 구경하는 것이었고 입학후 내 희망은 5층짜리 건물에 1층 만화가게를 세 주어 공짜로 실컷 만화를 보는 것이었고 중학교부터는 온통 프리섹스의 희망이 마음 가득 했었다.

고등학교 들어 대학생만 되면 중학교의 그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지. 사실 희망은 될 턱이 없는 거잖아. 근데 왠걸? 그게 반쯤은 되더라고. 고마워 오렌지족. 주는 게 쿨하다고 생각한 20세기 마지막 유흥의 끝을 붙잡고 세상이 영원할 줄 알았어.

그리고 사회에 버려져서는 조금 더 많은 돈, 조금 더 넓은 집, 조금 더 안락한 일, 조금 더 재밌는 삶이 희망인 거 같았어.

그렇게 30대를 보내고 나니 이제 30대가 몇일 뒤면 끝나는 나이가 되었네.

나이를, 먹으니 희망은 나에게서 자식에게로 넘어가더라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희망이 내 의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곳에서 웅크리고 있더란 거지.

아이의 학업 아이의 행복 아이의 재능 아이의 가치관 아이의 능력 그리고 미래.

문제는 미래,

공부야 팔자고, 행복이야 내가 열심히 살면 되고 배울 것이고, 재능이야 타고난 것이니 지 알아서 할 것이고, 가치관이야 부모인성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 안심되고, 능력이야 내가 뒷바라지는 할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미래는 내가 담보가 안된다.

이명박, FTA 이런 거 아니더라도 세상이 이젠 20세기만큼 기회가 안주어질 것 같아.

자본이 이념을 삼키고, 정의를 묵살하고, 주권을 통제하고, 권리를 목조르며 오직 더 큰 자본에게만 종속되는 세상.

독재의 시대만 해도,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20세기만해도,

정권을 바꾸면, 군부를 타도하면, 21세기가 되면 바뀔줄 알았는데

이젠 희망이 없어 보인다.

나라가 아니라 세계가 자본에 종속되는 보니 희망 같은 게 보일턱이 있나.

살아남아 악착같이 기득권이 되려고 누구 못베고 살듯한데

내 애한테 잔인한 자본의 속성과 비굴함을 알려줘야 하는데

이제 40줄에 들어서면 애비 이빨빠진 늙은이 눈치 챌텐데

뭐라 희망을 말할 게 없다.



영진공 그럴껄



미국이라는 동화는 이제 없다


아, 미국.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던 그 나라.
그 나라엔 초콜릿이 산처럼 쌓여있고, 코카콜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으며, 석유가 화산처럼 분출하고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겐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고 언제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팝송이 있고 마음 내키면 아무데서나 뽀뽀할 수 있다 했다. 오죽하면 포르노까지 세계 최고라 하지 않았던가.

그랬었다.
그렇게 그 나라는 낙원이었다.
그 나라에선 흑인, 백인, 아시아인, 중남미인, 러시아인 할 것 없이 다 어울려 잘 산다 했다. 차별 없이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Land of Opportunity라 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난 아사 직전의 어느 소녀는 미국에 와서 엄청난 돈과 명성을 얻었다. 러시아 벽촌에서 살던 어느 아이도 미국에 와서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과 명성을 얻었다. 아시아에서 온 어느 소년도 미국에서 큰 돈을 벌고 상상할 수 없이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단다.

그런데 그 동화는 이제 없다.
젖과 꿀이 끊이지 않고 흐를 것 같던 그 땅이 이젠 더 이상 낙원이 아닌 것이다.

그 곳에 사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은 한 끼 밥을 벌기 위해 고달피 땀을 빼야 하고 하루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다른 이들과 부대껴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부유한 이들도,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자기들끼리 고고하고 우아하게 살아지질 않는다.

글쎄, 저 위 아주 까마득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수들의 삶은 어떨지 몰라도.

그런데 도대체 왜 언제부터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던 미국이 이렇게 돼 버렸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거기도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다.

다만 화려한 앞 모습 뒤에 애초부터 함께 있던 어두운 부분이 가리워지기도 하고 또 보는 이들이 애써 보려 하지도 않았기에 그 곳이 마치 낙원처럼 또 동화의 나라처럼 보였던 것뿐이다.

그 나라와 그리고 거기에서 유복하게 사는 이들이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 내어 그걸 가지고 부와 행복을 누렸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의 것을, 혹은 스스로 제공케 하고 혹은 뺏어오고 혹은 더 많이 가지고 하여 그렇게 멋져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멋져 보이는 꺼풀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니 거기도 별 다를 것 없이 사람끼리 부대끼고 부딪치고 그러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냥 그런 세상이다.

오랫동안 가리워져 보이지 않던 꺼풀 속의 그 모습이 이제 더 이상 숨겨지지 못하고 있는 대로 내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동화 속의 나라는 저 멀리 별 나라에 원래부터 있었다고 애써 믿고 살던 그들이 더는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동화 속의 나라는 저 혼자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걸 떠받치는 다른 쪽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동화 속의 나라에서는 각 개인의 범위를 침범치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내가 잘 나서 나를 챙기면 되고 다른 이들은 스스로 자기를 챙기면 된다고, 그러다 보면 모든 게 다 잘 되는 거라 하였다.

그런데 결국 내가 잘 나서 더 많이 챙기고 더 행복한 이면에는 잘 나지 못해서 덜 가져가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남 보다 더 많은 걸 가져가려면 다른 이들과 부대껴야 하고 부딪혀야 한다. 우아하고 품위있는 선자(善者)에게 남이 스스로 부(富)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우악스럽거나 교활하게 부나 명성을 추구하는 이에게 비슷한 부류가 아니라면 스스로 존경과 사랑을 보내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면 저 멀리 구름 위에 있으면 안 되고 원하는 게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남들도 원하기에 그걸 더 가지려면 서로 부딪혀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나누기도 해야 한다.

다 가질 수는 없다.
어느 하나를 가지려면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에게 뭔가 주어야 한다.
한 동네에서 왕자인 사람이 다른 동네에서는 조직폭력배 수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다.
그게 자본주의 미국이 사는 모습이다.

이제 미국에 더 이상 동화 속 해피엔딩은 없다. 자신들에게 없는 해피엔딩을 남과 함께 나눌 여유나 의도는 더더구나 없다. 있다고 해도 그건 해피엔딩이라기 보단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 사건들일 뿐이다.

영화 “21그램”에서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 분)는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달갑지않은 현실을 꼼짝 없이 받아들이며 오늘 하루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저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아간다.

영진공 이규훈

한미 FTA 날치기 처리를 규탄합니다!




2011년 11월 22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한미 FTA 체결 비준 행위가,

반대자들이 성토하듯 나라를 망치는 매국 역적질인 건지, 

찬성자들의 주장대로 국제 경제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는,

짧은 시간 내에 판명되지 않겠지만,

집권 여당 이외의 모든 정당 정파와,
많은 국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타협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협정안에 그 어떤 의견 반영이나 개선도 하지 않은채,

국가간 조약을 비공개로 날치기 처리하고,
관련 국내 법안을 토론과정마저 없이 한꺼번에 몰아서,
물리력을 동원하여 처리한 사실은,

그 어떤 변명도 허락되지 않는,
국가 주권자에게 가해진 패악이고 모독입니다.

영진공은 이번 사태를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며,
이런 태를 초래한 입법대리인들 스스로 빠른 시일 내에 시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2011. 11. 23.

영진공 일동


 

“콘스탄트 가드너”, 생명 위에 군림하려는 제약회사의 탐욕








*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 출연: 랄프 파인즈, 레이첼 와이즈, 위베르 쿤드 

이 영화 (원제: Constant Gardener, 2005)는 인권 운동가인 케사(“레이첼 와이즈”)와 외교관 저스틴(“랄프 파인즈”)을 통해 케냐라는 빈국의 현실과 이를 이용해 먹는 제약회사의 비도덕적 임상실험을 다큐멘터리적인 자세를 취하며 관객들에게 고발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쓰리비’ 라는 제약회사는 겉으로는 케냐의 빈민들에게 약을 무상 제공하며 선행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뒤로는 신약 개발의 효능을 위한 불법적 임상실험을 자행한다. 이런 제약회사의 비도덕적 모습은 불행하게도 영화 속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3대가 놀고 먹다 지치게 만들어줄 신약 개발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물가가 낮고 규정이 느슨한 빈국으로 임상실험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인도 역시 이러한 요건에 잘 맞는 나라 중 하나로 최근 많은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는 2차 대전 종전 후 뉘렌베르크 재판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실시했던 나치의 과학자들을 처벌하였다. 이 재판을 기초로 한 뉘렌베르크 강령은 이후 임상실험에 관한 국제적 법령이 되었다. 이 법령의 핵심은 의사는 지원자에게 실험에 따른 모든 부작용에 대해 이해시킨 뒤 자발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령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에서 임상실험에 참여한 지원자들의 대부분은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가난한 빈민으로 임상 실험 내용을 이해시키기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영어로만 쓰여 있는 임상 실험 동의서도 있었다. 게다가 치료비용을 마련할 수 없는 빈민들은 실험을 통해서라도 치료의 희망을 얻고자 실험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동의를 하는 경우도 많아 이런 경우 의사의 도덕적 판단에 의존해야만 한다.

임상실험의 위험은 무엇보다 실험 전까지 행해졌던 모든 치료가 중단되고 신약의 효능을 위해 2~3개월 동안 세척기간이라 하여 일체의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이나마 차도가 있던 치료를 중단하게 만든다. 게다가 실험 지원자 중에는 플라시보약(가짜약)을 투여 받기도 한다.

세계화라는 강대국들의 허울 좋은 깃발 아래 빈익빈 부익부는 가히 ‘세계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세계화의 물결은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의료분야에서도 이렇게 비극을 만들어내었다.

사람의 목숨이 수익이라는 물질적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는 이 씁쓸한 현실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은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이들 뿐일 것이다.

 한미 FTA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협상내용에 의약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제약회사의 신약에 대한 특허권 보호를 위해 값싼 복제약의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미국이 자국 제약회사의 이익증대를 위해 요구한 것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불러오고 약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영진공 self_fish

 

[영진공 61호]우석훈 –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산업인력관리공단
2006년 10월 18일

대학 신입생이 되었던 9X년의 봄, 선배들이 쌀개방 반대 시위를 나가자고 했다. 당시만 해도 레드 콤플렉스가 만만찮았던 나, 쌀개방 반대라니 나가긴 나가는데 우루과이 라운드니 뭐니, 당최 못 알아먹을 말들뿐. 하여간 영문도 자세한 내막도 모른 채 그저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거부감 팍팍 느껴지는 시위에서 쭈뼛거리면서 거부감 팍팍 느껴지는 방식으로 구호 따라 외치고 하다가 막간에 데모 나가자던 그 선배에게 좀 쉬운 말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내가 물었다.

– 그러니까 우리가 데모하는 건 결국 쌀개방을 막을 순 없지만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하라는 압력인 셈이네요?
– (졸라 떨떠름하게) 그, 그, 그렇지…
– 그럼 애초부터 그렇게 설명하면서 데모 나가자고 하면 좋았잖아요. 농민들 다 죽는다 어쩐다, 절대 하면 안 될 것처럼 전단도 써놓고, 사실은 쌀시장은 결국 개방될 거라면서요.

이후 나는 데모에 나가지 않았지 않았고, 그 선배도 다른 선배도 내겐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나 나나 얼마나 웃긴지. 나는 스스로 알아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그저 운동권 선배들만 탓하고 있었다. 그 선배는 NL 특유의 살뜰히 후배 챙기는 척하며 꼬시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저, 내가 어느 자리에 왜 서 있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알량한 자존심만 있었을 뿐, 호기심과 그를 채우기 위한 노력같은 걸 할 생각을 못하는 전형적인 ‘게으른 구경꾼’이었다.

링크

경제에 대해선 기본조차 없는 ‘교양없는 인간’이라 한미 FTA, 한-칠레 협정, 우루과이 라운드, WTO 등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 그냥 이제껏 속편하고 극단적으로 단순한 내 입장은 이거였다. “자유무역 안 하고 살 순 없지만 선진국과 ‘형식만 동등한’ 조건이라면 실질적으론 이쪽이 심하게 밑지는 장사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여기 농민들, 하층 임노동자들이 질 것이다.” 스크린쿼타를 유지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런 기본원칙과 반세계화에 대한 책 몇 페이지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짬뽕해서 이해했다. 너무 단순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입장에선 틀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게다가 미국이야말로 보호무역 비율이 만만치 않게 높다는 소린 어디서 또 들었단 말이지. 미국 섬유산업이 관세가 30%라지, 아마?

여러 블로그에서 ‘쉽고 알차게’ 한미 FTA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고 극찬을 해서 이 책을 찍어두었다가, 저자의 블로그 글들에 (새삼) 반해버려서 신뢰를 갖고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결론. 한미 FTA에 대해 알고싶은 경제치들을 위한 최고의 책이다. 항간의 ‘쉽다’는 얘기는, 다른 어렵고 심도높은 책들에 비해 쉽다는 것이지, 담고있는 내용 자체가 경제치들이 손사래를 칠만한 대상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결코 쉽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다만, 꼭 알아두어야 하는 실질적인 내용들을 저자가 최대한 쉽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풀어썼다는 점에서, 쉽게 읽히고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게다가 이 책은 현재 진행중인 한미 FTA의 문제점에 대해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현재 가장 기본적인 경제학적 툴의 모습, 경제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에 관해 명료하고도 간결한 예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같은 경제치들에게 필독서로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예를 들면 각 선진국이 택하고 있는 경제발전 모형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들, 한국의 미래가 이제껏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지금의 한미 FTA의 어떤 문제점 때문에 어떤 문제를 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경제치들이 대강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쉽고 간결한 근거들 위에 설명되어 있다. “무조건 개방은 안 된다”도 아니고, 디립다 협박만 늘어놓는 방식도 아니다. 지금의 이 협상방식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정확히 어떤 점이 어떻게 위험한지, 중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찬찬히 쉽고 친근한 어조로 아주 실용적이고 일상생활에서 시작하는 조근조근한 논리와 함께 펼치고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경제학이 어려운 학문이라는 건 여전해 보이지만, 그 경제학도 실은 사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논리 위에 서 있다는 걸 발견한 건 과외의 수확. [맨큐의 경제학]을 보다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전력이 있는 “심한 경제치”인 나로서는, 이 책이 여러 모로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책장도 어찌나 쉽고 빨리빨리 넘어가는지, 스스로가 신기했을 정도. 앞으로 이 책을 두 번 정도만 더 읽으면, 좀더 어려운 다른 책들도 좀 쉽게 읽게 될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조금 생겼다.

미국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있고, 수출, 그 중에서도 대미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란 곳에서, 이런 식의 큰 협상은 내가 경제에 관심을 갖고있건 아니건, 물적 토대를 뿌리부터 뒤흔들며 나의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에까지 어느 순간 영향력을 끼치게 돼 있다. 안타까운 점은 요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경제니 정치니 하는 게 “겁나먼 왕국”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 뭐 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웃거려 봐도 이 무식하고 게으른 인간이 아무래도 쌩기초도 없는지라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사실, 참 미안스러운 만큼 고마운 책이다. 아무래도 내가 무식한 건 결국 게을러서인데, 그런 게으름뱅이조차 이렇게 쉽게 뭐가 문제고 뭐가 중요한지 관심을 가지게 해줄 만큼 쉬운 책을 써준다는 것. 이건 사실 밥상을 차려놓는 것도 모자라 아예 밥을 끓여 죽을 만들어서 입 앞에 떠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삼키느냐 거부하느냐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지만, 아직은 ‘무식한 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한’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분들이 쉽고 재미있는 책들을 계속 좀 써주셨으면 한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