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Swing), 상업 댄스음악의 원조를 영화로 만나보자.

부엉이의 입을 틀어 막아도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
“미네르바”를 석방하라.

‘스윙’이라고 하면 보통 춤을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스윙을 하시는 분들은 좋아하는 영화로 화려한 군무가 펼쳐지는 “스윙키즈(Swing Kids, 1993)”를 손꼽곤한다. (이 영화에는 ‘돌아온 배트맨’ 크리스챤 베일과 ‘닥터 하우스’의 닥터 윌슨, 로버트 숀 레오나드가 출연하고 있다.)

사실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에 스윙 댄스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주 대조적인 댄스 장면이 있는 두 영화를 골라보았으니 일단 감상해 보시라.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
“스윙타임 (Swing Time, 1936)”


마돈나와 로지 오도넬
“그들만의 리그 (A League Of Their Own, 1992)”
 

그런데 말이다.  난 스윙 댄스를 출줄 모른다. (내가 출줄 아는 춤이 뭐는 있겠냐만은)
그러다보니 난 스윙이라고 하면 음악을 먼저 떠올리게된다.

물론 스윙의 시작은 댄스가 먼저이다.
스윙의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1920년대의 미국이라 할 것이다.  당시 미국의 이 지역 저 지역에서는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놀며 만들어 낸 댄스 루틴들이 여러 개가 있었고 명칭도 각자 다양하였는데, 이 루틴들을 통칭 ‘스윙’이라고 부르면서 스윙의 역사는 시작이 된다.

그리고 이런 댄스를 추기 위해서는 당연히 음악이 있어야 했는데, 여럿이 모여 함께 맞춰 추는 춤을 악기 서너 개로 받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보니 대규모의 브라스 섹션이 함께 하는 악단이 필요하였고, 이런 형태의 대규모 재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당시의 댄스 음악을 스윙 재즈 또는 빅밴드 재즈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도 많은 무도회와 댄스 음악이 있었지만, 대중들이 만들어 낸 춤을 위해 댄스 음악을 개발하고 본격적으로 상업화한  댄스음악은 스윙이 원조라 할만하다.

지루박도 스윙이다! 지루박을 추고 있는 1938년의 미국 젊은이들

스윙 재즈에 관한 영화라 하면 많은 분들은 아마도 일본 영화 “스윙 걸즈 (Swing Girls, 2004)”를 기억해 내실 것이다.  우에노 주리가 주연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이 작품은 스윙 재즈가 어떤 음악인지 코믹한 내용에 감동을 섞어 아주 잘 소개해 주는 영화이다.


“스윙 걸즈”가 연주하는 “Take The A Train”

헌데 나의 경우, 스윙 재즈에 관한 영화라고 하면 원조인 미국의 작품도 아닌 영국에서 만들어진 “스윙(Swing)”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는 닉 미드(Nick Mead)가 감독하고 휴고 스피어(Hugo Speer)와 R&B 가수 리사 스탠스필드(Lisa Stansfield)가 주연한 1999년 개봉작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건 말 그대로 우연히였다.  오래 전 어느 날 비디오 대여점에 들러 ‘뭐 볼 거 없나’하고 두리번 거리다가 한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VTR 박스를 뽑아 내고보니 이 영화였던 것이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코믹 휴먼드라마에 나는 보는 내내 낄낄거렸고 그렇게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어, 지금도 그 수 많은 영화 중에 스윙 재즈 하면 이 영화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이 영화, 흥행에 성공한 것도 아니고 스윙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작품도 아니지만,
스윙 재즈를 사무치게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뭐 볼 만한 영화 없을까?”라는 고민에 시달리고 계시는 분들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추천해 보는 바이다.

그리고 영화 “스윙(Swing)”의 몇 장면을 준비해 보았으니 즐감들 하시라. ^^


“Ain’t What You Do”


“Ain’t Nobody Here But Us Chickens”


“Mack The Knife!”

* Mack The Knife는 스윙 재즈의 대표곡 중 하나인데, 브레톨드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뮤지컬 작품 “서푼짜리 오페라”에 삽입되어있는 노래이다.  절로 어깨와 다리가 들썩여지는 노래지만 그 내용이 실은, 우리말로 ‘쌍칼’ 쯤이라 불리우는 흉악한 살인범 맥히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진공 이규훈

우린 서로를 너무 몰라



부엉이의 입을 틀어막아도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

“미네르바”를 석방하라.


요즘에 마트 다녀오면 두 번 놀란다.

생필품 이것저것 집어서 계산대 앞에 섰을 때 한 번 놀란다.
영수증 한 번 더 확인한다. 정산이 잘못된 건 아닌데 금액이 왤케 많이 나왔어?

집에 와서 방금 사온 것들을 욕실에, 부엌에, 안방에 가져다 놓으며 다시 놀란다.
내가 대체 뭘 사오긴 한 거야? 이건 뭐 티도 안 나!

궁금하다. 같은 여자인 전여옥 마나님은 내 마음 알까? 나경원 사모님은 이 마음 알까?
모를 거다. 모를 거야. 아실 리가 없지.


새해 첫날 보신각 타종행사 때 현장에 있었다.
사람 바글바글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평생 서울 살면서 한 번도 타종행사 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일부러 갔다. 촛불 든다는 말 듣고.
무지 추운 날씨였다. 그 추운 날 거리에서 힘들게 피켓 들고 소리치는 게 “좋아서” 갔다면 나는 변태다.
“좋아서” 간 게 아니라 “속 터져서” 갔다. “여기 속 터지는 사람 하나 추가요!” 알리려고 말이여.

거리엔 “이명박은 물러나라!” 함성이 계속 됐고
오세훈 시장 나왔을 땐 여기저기서 “닥쳐라!”, “꺼져라!” 외쳤는데
KBS에선 박수 소리 효과음을 덧입혀서 중계했고, 조작 방송이란 비난엔 “방송 기술이었다”고 응수했다.

하여간 그래서 현장에 있던 오세훈 도련님은 이 마음 알까?
모를 거다. 모를 거야. 아 놔, 그게 문제다.
그 마음 모르는 입장에선 새해 첫날 첫 순간, 들뜬 기분으로 화기애애 종이나 치고 가면 되는 자리에
굳이 깃발 들고 나타나 꽥꽥 소리치는 인간들이 사이코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께.

……그래서 저 마나님과, 사모님과, 도련님만 이 마음을 모르냐면,
그게 아니다.

MB 악법 저지한다고 국회 본회의장 점거하고 싸운 민주당.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그랬단다. (한겨레21, 743호)
“우리가 국민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그걸 국민들이 알아주면 그것으로 이기는 것이다.”
……정말 국민들이 알아줄까?
모른다. 모르는 사람 많다. 그러니 또 싸우기만 한다고 욕하고 개그 소재가 된다.

출처: 국민일보

모른다, 몰라.
명박 오빠 정책을 모르는 시장통 할머니는 싸다구를 날리는 대신 품에 안겨 울먹이고
명박 오빠 대선 광고에 출연했던 국밥집 할머니는 아직도 명박 오빠를 지지하고 데모 좀 그만 하라신다.

답답하다.

모르긴 해도, 청와대도 자기들 마음 몰라주는 국민들 때문에 답답했나 보다.
시대에 걸맞는 비전 있는 정책을 내놓으란 비판에
“노가다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며 자기 마음 몰라주는 국민들에게 발끈했다니깐. 아, 뒷골 땡겨…….

모른다, 몰라. 우린 서로를 너무 몰라.
우리, 인간이라는 게 애초에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지만 너무했다.

그런데 말야, 이해고 나발이고 떠나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나라 국민은 혁명으로 민주화를 얻어낸 사람들이라는 거.
그래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

……
며칠 전 탐 크루즈 주연 영화 <작전명 발키리> 시사회에 다녀왔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군인들에게, 재판관들은 가차 없이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때 사형 선고 받은 한 인물이 이런 말을 하더라.
“지금은 너희가 우리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있지만,
몇 달 후엔 너희가 성난 국민들에 의해 거리를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장면에서 남의 나라 얘기 같지 않아 눈물이 다 났다.
아효…….
됐다. 그렇다구연.


영진공 도대체

“예스맨”, 우리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Yes해야 하는가.


부엉이의 입을 틀어막아도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
“미네르바”를 석방하라.


“예스맨”이 생각보단 흥행이 별론가보다. 나는 영화 볼 여건이 좋지 않은 아줌마지만 그래도 짐캐리께서 나오신다는 데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짐 캐리 작품의 경우, 남들이 범작이라 하더라도 나는 늘 기대이상의 만족감을 가져왔다.)

짐캐리의 코메디는 젠체하지 않으면서, 잘난척 하지 않으면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코메디와 철학적 질문이 따로 놀아서 영화의 톤(Tone:어조, 분위기)이 왔다리 갔다리 중구난방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은 질문대로, 코메디는 코메디대로 서로 조화되어 일관된 톤을 유지한다.

이번 예스맨도 나는 정말 좋았다. 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짐캐리는 계속해서 성장하는 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아주 미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 *




1.
우리는 원래부터 예스맨인걸

사람들이 예스맨에 땡겨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누군가 “과속스캔들은 제목이 안티”라고 하던데, 사실 예스맨도 제목이 안티다.
어느 질문에 대해서도 다 예스라고 대답해야 한다니. 그게 뭐 대한민국 살면서 특별한 상황이겠는가. 도저히 이게 코메디의 소재가 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총체적 예스맨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응애응애 하고 태어나서, 겨우 5세 이하일 때만 “시져~ 안대~”를 외쳐보다가,(허긴 요샌 조기교육 열풍으로 5세 이전에도 ‘싫어’와 ‘안돼’를 외칠 자유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학교가선 사랑의 매를 맞으며 일제고사에 yes,
대학다니면서는 높은 등록금에도 yes,
시위 현장에 나가서는 물대포를 맞으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도 yes,
방송법이 날치기 통과되어도 yes,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늘 예스를 외쳐야 하는 비운의 예스맨들이 아니던가.

아니, 그냥 아주 미시적으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봐도 그렇다.
직장인들, 가기싫은 회식도 yes, 생산성 없는 야근도 yes, ‘까라면 까’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Yes라고 말하면 세상살이가 즐거워진다”는 영화의 컨셉을 보면 질리는 게 먼저지, 절대 땡기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No라고 말하면 세상살이가 즐거워진다”는 “노맨(No Man)”이라는 영화가 나오면 누구든지 보러가게 될지도 모른다.

2.
짐 캐리는 누구에게 Yes라고 하는가

하지만, 짐캐리가 억지로 “yes”를 하게 되면서, 누구에게, 어떤 사람들에게 “yes”를 하게 되는지를 보면 “그 예스”와 “이 예스”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 캐리의 yes는 소수자를 향해있다. (영화의 배경이 소수자들의 집합소인 LA라는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그가 첫번째 “Yes”라고 말하게 되는 상대는 노숙자다. 남에게 yes라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할 사람. 그런 소수자에게 yes를 할 수 밖에 없음으로 해서, 차를 태워주고, 핸드폰을 빌려주게 된다. 그 이후, 그가 “yes”라고 말하게 되는 상대들도 거의 대부분 사회의 소수자들이다.

후에 여자친구가 되는 앨리스는 제도권의 금융맨이 상대할 리 없었을 폭주족 히피이며, 옆집 할머니는 성적인 농담이 가미되어 약간 희화화 되긴 했지만 하루종일 말상대 할 사람 없는 독거노인이며, 그가 소액대출을 해주게 되는 이들은 작은 자영업을 하는 신용등급이 낮은 자들이다. 심지어 맘에 없는 휴일 근무 요구에 대해 “yes”라고 말하게 하는 상대인 노먼역시 보스의 외피를 입긴 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면 ‘불쌍한 독거 중년’이다.

그의 yes는 효율과 효용을 떠나 (아놔~ 왜 갑자기 ‘실용’이라는 말이 떠오르냐) 누구에게나, 어떤 질문에나 동등하다. 그래서 효용,효율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절대하지 않을 ‘한국말 배우기’와 휴일을 ‘네브라스카 링컨에서 보내기’에 기꺼에 yes라고 한다. 그래서 그 덕에 틱틱거리는 한국인 노처녀에게도, 자살을 시도하려는 히스패닉에게도 마음을 열고 그들의 삶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마이너들에 대한 편견 없는 yes.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3.
예스맨이 기부천사보다 아름다운 이유

예스맨의 러닝타임 2/3쯤 이르러 칼(짐 캐리)의 행보를 보면, 히피인 여자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노숙자 쉼터에 가서 무료배식 봉사를 하며, 대출 허가 도장을 쾅쾅 찍어대며, 북한과 내통하는 간첩이 아닌 담에는 쓸모도 없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이라는 소수인종과 더 가까운 소통에 성공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짐 캐리의 표정이다.

이때 짐 캐리는 결연하지도 않고, 성스러운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즐겁게 임한다. 그가 하는 yes는 자동에 가까운 yes이기 때문에, 자신의 yes가 소수자들을 돕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생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우월감 또한 찾아볼 수도 없다. 소수자에 대한 ‘yes’를 ‘베푼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위’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숙자인 닉과도, 한국 노처녀 수미와도 그는 대등한 친구의 위치일 뿐 제공자와 수혜자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의 칼은 몇백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사람들 보다 훨씬 더 훌륭해 보인다.

강요된 Yes Man


예스맨의 막바지에 이르면 꼭 No해야하는 일에는 No를 해야한다는 것이 예스맨의 철학이라는 것도 볼 수 있다. 나의 편견이 다른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땐 스스로에게 No Man~ No Man~ 야유를 보내본다. 꼭 No라고 대답해야 할 때인가? 그렇다면 자신있게 No라고 외쳐보련다.


Yes해야 할 때와 No해야 할 때를 알고 외치는 자의 앞뒷옆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영진공 라이

007의 권총들: Walther PPk 와 P99 이야기



그의 정체가 진짜든 가짜든, 그가 뭘 하는 사람이든 간에,
국민의 입을 강제로 막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미네르바”를 석방하라.

-= IMAGE 1 =-


2006년, 말끔한 본드인 ‘피어스 브로스넌’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느닷없이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험상궂은 금발 깡패를 본드라고 들이대는데 성공한 첫 번째 영화가 <카지노 로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지금 봐도 참으로 훌륭한 본드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참신하고 멋있죠. 영화는 본드가 이제 막 살인면허를 취득한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본 본드 영화의 출연진 소개 중에서도 가장 멋진 클립이 등장합니다. 트럼프 카드와 권총과 본드의 액션이 2D와 3D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인트로는 정말 근사하죠. 그리고 이 인트로가 끝나면 정말로 우직하고 무지막지한 본드가 한명 튀어나와서는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합니다.


Casino Royale – 007 Intro – MyVideo
이 훌륭한 인트로!!!

이렇듯 완전히 새로워진 영화의 주인공이나 분위기로 봐서는 감독도 참신한 인물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골든아이>를 만들었던 마틴 캠벨이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 그러고 보면 브로스넌을 처음 본드로 소개했던 <골든아이>도 개봉 당시에 참신한 본드영화라는 칭찬을 들었죠. 주디 덴치를 M으로 소개한 것도 바로 그 영화부터였습니다. 마틴 캠벨은 이름이 좀 평범(캠벨 깡통 수프가 자꾸 생각난다는…)하고 소위 말하는 작가적 작품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 보면 헐리웃 영화계에 암약하는 진짜 실력자 중의 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반이 만든 다른 영화로는 <마스크 오브 조로>와 <버티컬 리미트>가 있는데 모두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꽤나 쓸만한 성과를 올린 영화들이죠. 전부 헐리웃식 영웅의 성장을 다룬 영화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는 아주 성공적인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후속편을 기대하게 되었죠.



마틴 캠벨 감독

그로부터 2년 후, 마침내 두 번째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가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만큼의 참신함을 보여주지 못해서 많은 이들이 실망했죠. 아무래도 감독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마크 포스터. <네버랜드를 찾아서>나 <몬스터스볼>, 최근의 <연을 쫓는 아이>로 작품성은 충분히 인정받은 양반이지만, 아무래도 본드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보기엔 이 양반은 자기 내면과 과거를 되짚어가는 이야기에 능숙한 감독 같아요. 그래서인지 <퀀텀 오브 솔러스>도 지난 번의 연인 베스퍼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http://kr.youtube.com/watch?v=59TSvb6PeMs
화질이 좀 구리다능 …

영화는 인트로부터 베스퍼에 대한 기억 혹은 악몽에 시달리는 본드를 보여줍니다. 근데 그게 좀… 사방에서 본드를 쫒아다니는 거대한 모래 여인이라니… <미이라>의 한 장면 같기도 하죠.. 본편에서도 이 베스퍼의 이야기는 나머지 이야기와 그렇게 딱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크 포스터 감독, 본인도 질렸는지 다시는 007 영화 감독 안한다고 했다고 …

물론 본드는 이번에는 제대로 제이슨 본에게 사사받은 듯 육해공으로 온갖 우직 액션을 보여주며 활약하지만 과거의 연인 베스퍼 이야기에 새로운 본드걸인 까밀(올가 쿠릴렌코)까지 등장하니 이게 서로 엉켜버리고요. 그 결과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에 붙잡혀버린 본드의 답답함을 벗어버리지 못하죠. 그리고 총기 애호가의 관점에서 봤을때도 이 두 번째 본드영화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바로 그 이야기(뭔 이야기? 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질문, 제임스 본드의 권총은 무엇일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당연히 월터 PPk입니다.



소음기를 장착한 상태의 PPk

이 월터 PPk는 총기 개발사에 길이 남을 걸작품입니다.
독일의 칼 월터(독일어로는 카를 발터)사는 1930년대만 해도 그냥 그렇고 그런 쪼마난 호신용 권총을 만들어파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1차 대전 후 독일이 엄청난 경제난을 겪던 시절에 호신용총기 수출로 돈을 좀 만지게 되자 호신용을 뛰어넘어 군용 권총 시장까지도 넘볼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기로 작정하죠. 당시 자동권총들은 주로 싱글액션이거나 안전장치가 부실해서 조작하기가 까다롭고 위험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월터 사에서는 보다 안전한 더블액션 작동방식의, 디코킹과 방아쇠 잠금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레버를 장착한 권총을 개발하기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월터 PP 였습니다.



전설의 시작, 월터 PP. PPk 보다 좀 큽니다

이 권총은 그 당시의 권총들 중에서는 그야말로 군계일학 이었습니다. 레버만 내리면 해머가 원상태로 복귀(디코킹)되면서 동시에 아무리 방아쇠를 당기거나 충격을 주거나 땅바닥에 집어던져도 절대로 발사가 되지 않는 거의 100% 안전한 권총. 하지만 레버만 원래대로 올려놓으면 언제든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가 되는 매우 간편한 권총. 그것이 바로 PP였던 것이죠. 게다가 디자인까지 매우 멋진데다가 구조도 단순해서 제조하기도 쉽고 고장도 잘 안납니다. 이런 권총은 그 이전까지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 총은 개발되자마자 국제 총기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렸고, 독일경찰과 군장교용 권총으로도 채용됩니다. 원래 PP가 경찰용 권총의 약자였으니, 월터는 노리던 목표를 제대로 맞춘 셈입니다.

그 와중에 이 PP를 귀족들의 호신용 권총으로 팔기 위해 조금 더 작게 줄인 모델이 개발됩니다. 바로 그것이 PPk 죠. 여기서 마지막의 K는 독일어로 짧다는 뜻의 단어 kurz의 머릿 글자입니다. 이 꼬마 PP, 그게 바로 007의 손에 쥐어진 권총이었던 것이죠. 자그마치 1962년 숀 코너리가 쪼만한 베레타를 반납하고 월터 PPK를 지급받은 이후, 1997년까지 쭉 그랬습니다.



이것이 PPk, 작은 PP



한창 때는 이런 선물용 권총까지 인기




구조는 초 간단 !!!




최근에는 프레임(아랫부분)은 PP이고 총신과 슬라이드(윗부분)만 PPk를 끼운,

PPk/S 라는 모델이 인기


총 사진 출처는 대부분 http://world.guns.ru/handguns/

그러다가 피어스 브로스넌이 양자경과 함께 등장한 1997년의 007 영화 <투모로우 네버다이>부터 본드는 예전의 작은 호신용 권총 월터 PPK를 버리고 월터 P99를 쓰기 시작합니다. 적어도 <카지노 로열>까지는 그랬죠. 이건 나름 적절한 변화였습니다.


이것이 월터 P99




카지노로얄 출연기념 월터 P99

왜냐하면 PPk는 다 좋은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거든요.
첫째, 장전되는 탄약의 숫자가 적습니다. 딱 7발 들어가죠. 하지만 007의 적들이 쓰는 권총은 기본 13발에서 15발 혹은 17발이 들어가는 전투용 권총들이니 일단 실탄 숫자에서 밀립니다.
둘째, 탄약의 위력도 약합니다. .32 Auto라는 탄약을 주로 쓰는데, 이 총알은 호신용으로야 어떨지 몰라도 적들과의 과격 액션을 즐기는 본드에게는 좀 부족한 면이 있죠. 요즘이야 전투용 권총은 9mm 파라블럼(우리나라 군도 사용하는 나토 공통 제식권총탄약, .32 Auto보다 많이 강합니다.)이나 .45 ACP(미국의 콜트 45에 사용되는 9밀리 파라블럼보다도 좀 더 크고 강한 권총탄약) 정도가 기본이니까요.
이런 면에서 테러가 난무하는 21세기 본드에게는 작고 약한 호신용인 PPk보다는 같은 월터사에서 21세기를 위해 만든 전투용권총 P99가 어울리죠. P99는 전투용권총의 기본규격인 9밀리 파라블럼탄을 16발 장전할 수 있고 플라스틱 몸통을 사용해서 무게도 가벼운 최신형 전투용 권총이거든요.


PPk 에 들어가는 .32 Auto(본드가 쓰는)와 P99에 들어가는 9mm Parabellum의 비교



세 탄약의 위력비교, 참고로 이 그래프의 설명에 따르면 .32 Auto는 그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이고 .380 ACP(나중에 미국에 팔때쯤 추가된 탄)은 전투용 무기로서의 위력을 간신히 발휘하는 탄이라고 평합니다.

출처는 오클라호마 총덕들의 사이트: http://oklahomaconcealedcarry.com/Caliber_Ammo_Selection.html


그리하여, 본드는 <투모로우 네버다이>이후로 어언 18년간이나 P99를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그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갑자기 PPk 로 되돌아 간 겁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분명히 이 영화는 전편에서 몇 분후의 이야기라는 설정이니 전편에서 쓰던 권총을 계속 쓰는 것이 맞는데 말이죠.

아마도 감독의 고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포스터 감독은 의외로 “역시 007은 PPk!” 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고전적인 007 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덕분에 우리는 우락부락한 다니엘 크레이그가 조막만한 권총을 들고 날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건 어떻게 보자면 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자면 상당히 어색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 전체가 그렇죠.




카지노 로열에서는 P99를 쓰던 본드가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쪼마난 PPk를 …




그러면서 기관단총은 9mm 파라블럼을 쓰는 UMP를… 이 뭐임?

결론, 역시 본드 영화에는 좀 더 경쾌한 감독이 어울린다능..
그리고 21세기 본드에게는 역시 P99라능…




역시 이게 어울림

덧붙여, 마틴 캠벨 최고!
하지만 캠벨 수프는 짜서 싫어!!




짠 캠벨수프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