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스카이폴”, 밀덕 눈에 비친 007의 무기들



 

 


 


 



 


 


이번에 개봉한 23(+1+1)번째 007 영화, 007 영화 50주년 기념작이기도 <스카이폴>은 고전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20세기에 탄생한 스파이 영화 007 시리즈를 21세기에 맞게 업그레이드 하면서도 이전 007 영화의 전통을 되살린다는 목적에 충실하죠.


 


영화에서 본드가 “내 취미는 부활이여” 라고 웅얼거리는 장면이나, M이 데니슨의 율리시즈를 읊는 장면은 모두 이러한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제임스본드 리부트 3부작의 최종편으로서 적절한 마무리를 짓습니다.


 


“고전의 현대적 재구성”이라는 모토는 영화에 등장하는 장비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악당에 맞서는 본드의 마지막 무기가 고전적인 수평쌍대 라이플과 2차대전 전에 만들어진 PPk 라는 것도, 그가 선택한 차가 65년작 007 영화 <썬더볼>에 등장했던 바로 그 애스턴 마틴 DB5 (번호판도 같음) 라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죠.


 


 


 



숀 코너리와 애스턴 마틴 DB5 번호판 BMT 216A


 


 



바로 그 번호판의 애스턴 마틴 DB 5


 


 



 


 


퀀텀 오브 솔러스 까지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는 애스턴 마틴 DB9 을 타고 다녔죠. 하지만 사실 DB5 가 슬쩍 등장하긴 했습니다. <카지노 로얄>에서 초반 악당에게 카드게임으로 딴 자동차가 DB5 였죠.


 


 


 



요거 번호판은 다르지만… 한바퀴 돌고 제자리에 오자 벙찐 악당 애인


 


 


 


그런 의미에서 <스카이폴>에 등장한 총기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제임스본드의 주무장은 고색창연한 PPk/s 2차 대전 전에 월터 사에서 개발한 현대권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총입니다. 제임스본드 영화에서는 62년작 <닥터 노> 에서부터 007의 무장으로 채용되어왔죠.


 


사용탄은 .380 ACP (9밀리 쇼트, 혹은 9mm kurz라고도 하는) 탄창에는 9발이 장전됩니다. 제임스 본드는 <어나더 데이>에서부터 월터 P99로 무장을 바꾸었으나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부터 다시 PPk 로 회귀했습니다. 전에는 마크 포스터 감독이 그렇게 선택한 거라 생각했는데, 스카이폴을 보니 아마도 이온 프로덕션에서 애초에 이렇게 나갈 계획이었던 듯 …


 


 


 



Walther PPk/s


 


 



21세기에 요런 쪼만한 권총으로 적에게 맞서라니.. 너무한 거 아님?


 


 


 


그래도 그냥 PPk/s 를 주는 건 뭐 좀 심했다 싶었는지 제임스 본드의 손금을 읽어서 안전장치 해제를 하는 첨단(?) PPk/s 를 줍니다.


 


 



애계 … 이게 다여?


 


 



덕분에 본드는 추운 겨울에도 맨손으로 총을 쏴야 하는…ㅋㅋ


물론 영화에서는 이 안전장치가 딱 한번은 제 구실을 하죠.


 


 


 


그리고 이에 맞서는 상대 킬러 패트리스는 완전자동 버젼의 글록을 씁니다. 본드가 쪼마난 PPk 로 따콩 따콩 하는 동안 글록에 드럼탄창을 장전하고 시원하게 쏴 갈기죠.


 


 



이건 한참 도망가다 기차 지붕 위에서. 이때는 30발 짜리 다연발탄창 …


 


 



요것이 완전자동 버젼 글록에 C-mag 드럼탄창을 장착한 모습.


요것은 아마 80연발쯤 될 듯.


 


 


 


근데 영화에서는 드럼이 하나짜리였는지 둘이였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는.. 드럼 하나짜리 다연발 탄창도 있습니다. 아래는 콜트 45 용이지만 9mm 글록 용도 있을 듯.


 


 



드럼탄창을 다 갈긴 다음에는 30연발짜리 다연발 탄창을 쓰고


 


 



 


그 다음에는 일반 탄창을 쓰더군요.


 


 


 


당연하죠. 드럼탄창은 장탄수는 많아도 하나 이상 들고 다니긴 거추장스럽고 기민하게 움직이려면 30연발 탄창을 쓰는게 적절. 그러니까 차로 다닐 때는 드럼탄창을 휴대하고 오토바이 타거나 맨 몸으로 뛰어 다녀야 하는 시점에는 다연발 탄창을 휴대하는 거죠.


 


그 외에도 글록은 여기저기서 사용됩니다.


 


 


 



 


Glock 17, 9mm Para, 17발 장전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할 때도


 


 



말로리(랄프 파인즈)가 반격하는 총도 글록.


 


 


이유는 뭐, 요즘 가장 많이 보급된 가장 무난한 총이니까요.


 


그리고 이브(나오미 해리스)는 부무장은 역시 본드와 같은 PPk/s를 소총은 올림픽 암스 사에서 M-16을 아주 짧게 변형한 모델인 K23B를 씁니다.


 


 


 


 



 


아마 이 총의 총신 길이가 10인치가 안될텐데. 그럼 이건 뭐 그냥 난사용 무기…


 


 


 



근데 거기에 광학조준기를 장착해서


 


 



이 거리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향해 저격을…


애초에 누구 하나라도 맞춘게 대단한 거임


 


 


그리고 마지막 악당들과의 대 결전을 벌일 때 본드가 손에 쥔 것은 ‘앤더슨 휠러’ 라는 영국 수제 사냥총 회사에서 만든 수평쌍대 라이플로 사용탄은 자그마치 .500 니트로 익스프레스.


 


이런 수제 사냥총은 가격이 어마어마 합니다. 기본이 수백만원, 비싼 거는 수천만원이 넘죠. 이런 총을 보유한 집은 보통 집이 아닙니다. 지방 토호, 유지 쯤은 되어야 한다는 … 그리고 사용탄도 흑색화약 시절에 기원을 둔 전통있는 탄으로(어쨌든 이 영화는 전통 빼면 시체) 탄 위력 자체는 2차 대전 중 M1 소총에 사용된 30-06 탄과 비슷하다는군요.


 


하지만 탄두가 12.7 밀리로 굵기 때문에(참고로 M-2 중기관총에 쓰는 50구경탄이 12.7mm) 근거리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듯 … (처음에는 니트로 익스프레스라고 해서 .600 이나 .700 을 떠올리고 엄청난 위력이라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님)


 


 


 



 


 


 


어쨌든 이 총을 등장시킴으로써 영화는 제임스본드가 <카지노 로열>에서 베스퍼가 추정했던 것 처럼 노동자 계층 출신 고아가 아니라 더 귀한 집 자식임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뭐 관객들은 이 총 아니더라도 충분히 제임스본드의 집안 내력을 추정할 수 있을테지만요.


 


 


 



Anderson Wheeler Double Rifle chambered in .500 Nitro Express.


 


 


 



시원하게 두방!!


 


 


 


그리고 나중에는 악당들이 들고 온 HK 416을 들고 싸웁니다. 독일의 총기회사 Heckler & Koch 사에서 M-16을 가스피스톤 작동식으로 변형한 모델이죠. 요즘 주목을 받고는 있으나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는…


 


 


 


 



 


HK 416, 5.56 NATO, 30발 장전


 


 



 


 


 


그 외에 상하이 장면에서 등장한 저격소총은 실총 족보에는 없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뭐 자칼의 날에 등장하는 총처럼 휴대성과 총이라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수제작한 모델이라고 보면 될 듯 …


 


 



 


 



모양은 AI 사의 저격총 변형 같은데,


탄창으로 보이는 부품이 두개라는 게 이상함.


하나는 소총탄창, 다른 하나는 SMG 탄창처럼 보임 …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물과 무관한 물건


 


 


 


아, 영화에서는 본드에게 월터 P99 를 쥐어줄 생각도 했던 모양입니다.


본드가 P99 를 쓰는 장면도 있긴 하다더군요. 아마 실바의 아지트에서 였던 것 같은데. 실제로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니 중간에 싹 편집한 듯.


 


 




 


끝.


 


 


스카이폴 등장 총에 관한 사진은 모두 IMFDB 에서 참고했습니다. http://www.imfdb.org/wiki/Skyfall

 


 


영진공 짱가


 


 


 


 


 


 


 


 


 


 


 


 


 


 


 


 


 


 


 


 


 


 


 


 


 


 


 


 


 

“007 스카이폴”, 비정규직은 뭘해도 고달프다

 

 


 


 


 



 


 


007, 더블오세븐, 이름은 제임스 본드. 다 아시겠지만 이 친구 비정규직이다.


 


영국 해군 소속으로 국방성에 파견나갔다가 MI-6 비밀정보원(실은 살인청부업자)으로 근무 중인 일종의 별정직(실은 계약직) 공무원이다. 사실 이 친구 본업인 살인청부업으로써 보다는, MI6 공식 홍보대사로 더 혁혁한 공을 세우고있다.



이 친구의 근무기관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MI6는 경량 공냉식 반자동/자동 소총으로 1960년대에 처음 도입되어 여전히 미군의 주력 소총으로 사용되고 있는 … 아 참, 이건 M16이구나.


 


MI-6는 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6의 줄임말로 원래 명칭은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 즉 비밀정보국으로서 미국의 CIA와 같다고 보면 되겠다. 이 기관의 역사는 만 102년이 될 정도로 길고도 긴데, 더 이상 군조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MI-6라 불리는 건 2차대전때의 활약(?)에 대한 상징성이 워낙 커서이다. 그리고 MI-5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는 내국관련정보 업무를 하며 그냥 미국의 FBI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아무튼 MI-5와 MI-6가 저지른, 그리고 저지르고 있는 온갖 악행과 정치공작들은 영국 드라마 “Spooks”(10시즌 드라마, 2002~2011)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속살을 엿볼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닥터 하우스는 실은 MI-6 공작요원으로서 조직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액센트마저 바꿔 미국으로 잠입해 8년여동안 의사라는 신분으로 스파이 생활을 해오다가 최근에 다시 종적을 감춰 분쟁지역 어디 쯤에 잠입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제임스 본드는 이런 정치공작, 테러, 살인을 주업무로 하는 조직을 마치 세계정복을 꾀하는 악당들로부터 “자유세계”를 구해내는 정의로운 집단으로 묘사하는 선무공작에 동원되어 약 50년의 세월동안 참으로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그 공적이 돈이나 지위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여전히 현장근무자이다. 엔간하면 이제 MI-6 위원장 자리나 하다못해 차장이라도 시켜줄만 한데, 그는 여전히 계급마저도 중령, 아니 대령인가?



게다가 지난 50년의 세월동안 007이 조직내에서 자리를 좀 잡을라치면 여지없이 기존 인력은 해고되고 지체없이 대체인력이 투입되어왔다. 그러니까 이번이 벌써 일곱번째 대체인력 투입인 셈이다.


 


 


차기 007??? 차기 M???




 


역시나 스파이 세계에서도 비정규직은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고 고달프기 그지 없다는 걸 007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할터인데,


 


이번의 스카이폴(Skyfall) 작전은 제임스 본드가 비정규직을 벗어 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인 셈이었지만, 그마저도 허무하게 끝이 나고 조직은 계약직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채 그를 다시 현장으로 내보내고야 만다.


 


한 가지 이번 작전이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유세계”를 위협하는 악당의 정체인데, 이전의 악당들은 “세계정복”을 모토로 막대한 자금력과 어마무시한 신무기를 동원하여 들이댔던 것에 반해, 이번의 악당은 …… 실은 前 MI-6 요원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는 스포로 안쳐도 되겠죠?!)


 


이 악당은 이전에 MI-6의 열악한 재정과 예산부족을 타개하고자 미국내에서 마약자금을 탈취하는 공작에 투입되었지만 어설픈 일처리로 인해 텍사스에서 연쇄살인사건을 일으키게 되었고, 조직의 외면으로 숨을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처리되었던 인물이다.


 


 


미국 공작시의 자료 사진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전의 악당들에 대해서는 그 많은 돈과 무기를 가지고 그냥 세계를 정복하면 될 걸 왜 그리도 007을 잡기 위해 그나마 잘 잡지도 못하면서 온갖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이번의 악당은 그 좋은 머리와 충성스런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왜 그리도 쓰잘데기 없는 개고생을 하는 건지 이해가 잘 되었다. 그런데 함정은 그 개고생이 구경거리로는 영 별로라는 거 ……


 


여하튼 비정규직 007이 당하는 설움은 이번 공작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이전의 악당들에 맞설 때는 세계경제가 호황이었던 시절인지라, 오징어먹물 자동차라든가 라이터총이라든가 압정발사기라든가 등의 “최신”무기들을 지급받아서 싸울 수 있었지만, 이번 미션에서는 달랑 송신기(라디오) 하나 제공받는데 그친다.


 


물론 이렇게 된데에는 007의 책임도 크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여 하다못해 스마트폰도 잘 활용 못하는 능력미달자로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인한 IT 교육미비, 체력단련활동 미지원으로 인한 저질체력 유발 등 조직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고 하겠다.


 


하긴 경제불황이라는 핑계로 변변한 무기도 확보하지 못하고, 현장 지원 인력도 부족하여 사무실 근무자가 필드에 나가고, 전체 보안시스템을 달랑 해커 한 명이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니 뭐라 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조직을 이런 지경에까지 몰아넣은 무능부실 CEO, M


 


 


그런데 이번 미션에서 여실히 볼 수 있듯이, 이제는 “비밀무기”라든가 비밀공작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너무 보잘것 없어졌다. 워낙 세상의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매우 다양하게 얽혀져 버린데다가 정보화시대가 고강도로 진행되어 누가 친구인지, 누가 적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시스템이 온통 IT화 되어있어서 그 잘난 비밀무기라고 해봤자 해킹 한 번이면 무력화되는 판이니.


 


그러다보니 결국 이번 나쁜 놈과 우리 편의 대결은 쌩 아날로그로 벌어지게 된 것인데, 이게 그나마 우리의 늙다리 제임스 본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인지라 다행히(?)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어언 50년 묵은 비정규직 스파이 007.


 


이 친구가 이전의 선무공작에서처럼 혁혁한 공을 다시 세우려면 이제는 우주로 나가서 프로메테우스를 처치하든지, 아니면 그 “수 많았던 추억 속에서 흠뻑 젖은” 본드 걸과의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내든지,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는 좀체로 그는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뒤의 악당 꼬봉은 웃고 있는 걸 보니 정규직임이 분명하다!


 


 


 


영진공 이규훈


 


 


 


 


 


   


 


 


  


 


 


 


 


 


 


 


 


 


 


 


 


 


 


 


 


 


 


 


 


 


 


 


 


 

007의 권총들: Walther PPk 와 P99 이야기



그의 정체가 진짜든 가짜든, 그가 뭘 하는 사람이든 간에,
국민의 입을 강제로 막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미네르바”를 석방하라.

-= IMAGE 1 =-


2006년, 말끔한 본드인 ‘피어스 브로스넌’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느닷없이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험상궂은 금발 깡패를 본드라고 들이대는데 성공한 첫 번째 영화가 <카지노 로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지금 봐도 참으로 훌륭한 본드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참신하고 멋있죠. 영화는 본드가 이제 막 살인면허를 취득한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본 본드 영화의 출연진 소개 중에서도 가장 멋진 클립이 등장합니다. 트럼프 카드와 권총과 본드의 액션이 2D와 3D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인트로는 정말 근사하죠. 그리고 이 인트로가 끝나면 정말로 우직하고 무지막지한 본드가 한명 튀어나와서는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합니다.


Casino Royale – 007 Intro – MyVideo
이 훌륭한 인트로!!!

이렇듯 완전히 새로워진 영화의 주인공이나 분위기로 봐서는 감독도 참신한 인물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골든아이>를 만들었던 마틴 캠벨이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 그러고 보면 브로스넌을 처음 본드로 소개했던 <골든아이>도 개봉 당시에 참신한 본드영화라는 칭찬을 들었죠. 주디 덴치를 M으로 소개한 것도 바로 그 영화부터였습니다. 마틴 캠벨은 이름이 좀 평범(캠벨 깡통 수프가 자꾸 생각난다는…)하고 소위 말하는 작가적 작품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 보면 헐리웃 영화계에 암약하는 진짜 실력자 중의 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반이 만든 다른 영화로는 <마스크 오브 조로>와 <버티컬 리미트>가 있는데 모두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꽤나 쓸만한 성과를 올린 영화들이죠. 전부 헐리웃식 영웅의 성장을 다룬 영화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는 아주 성공적인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후속편을 기대하게 되었죠.



마틴 캠벨 감독

그로부터 2년 후, 마침내 두 번째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가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만큼의 참신함을 보여주지 못해서 많은 이들이 실망했죠. 아무래도 감독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마크 포스터. <네버랜드를 찾아서>나 <몬스터스볼>, 최근의 <연을 쫓는 아이>로 작품성은 충분히 인정받은 양반이지만, 아무래도 본드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보기엔 이 양반은 자기 내면과 과거를 되짚어가는 이야기에 능숙한 감독 같아요. 그래서인지 <퀀텀 오브 솔러스>도 지난 번의 연인 베스퍼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http://kr.youtube.com/watch?v=59TSvb6PeMs
화질이 좀 구리다능 …

영화는 인트로부터 베스퍼에 대한 기억 혹은 악몽에 시달리는 본드를 보여줍니다. 근데 그게 좀… 사방에서 본드를 쫒아다니는 거대한 모래 여인이라니… <미이라>의 한 장면 같기도 하죠.. 본편에서도 이 베스퍼의 이야기는 나머지 이야기와 그렇게 딱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크 포스터 감독, 본인도 질렸는지 다시는 007 영화 감독 안한다고 했다고 …

물론 본드는 이번에는 제대로 제이슨 본에게 사사받은 듯 육해공으로 온갖 우직 액션을 보여주며 활약하지만 과거의 연인 베스퍼 이야기에 새로운 본드걸인 까밀(올가 쿠릴렌코)까지 등장하니 이게 서로 엉켜버리고요. 그 결과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에 붙잡혀버린 본드의 답답함을 벗어버리지 못하죠. 그리고 총기 애호가의 관점에서 봤을때도 이 두 번째 본드영화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바로 그 이야기(뭔 이야기? 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질문, 제임스 본드의 권총은 무엇일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당연히 월터 PPk입니다.



소음기를 장착한 상태의 PPk

이 월터 PPk는 총기 개발사에 길이 남을 걸작품입니다.
독일의 칼 월터(독일어로는 카를 발터)사는 1930년대만 해도 그냥 그렇고 그런 쪼마난 호신용 권총을 만들어파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1차 대전 후 독일이 엄청난 경제난을 겪던 시절에 호신용총기 수출로 돈을 좀 만지게 되자 호신용을 뛰어넘어 군용 권총 시장까지도 넘볼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기로 작정하죠. 당시 자동권총들은 주로 싱글액션이거나 안전장치가 부실해서 조작하기가 까다롭고 위험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월터 사에서는 보다 안전한 더블액션 작동방식의, 디코킹과 방아쇠 잠금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레버를 장착한 권총을 개발하기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월터 PP 였습니다.



전설의 시작, 월터 PP. PPk 보다 좀 큽니다

이 권총은 그 당시의 권총들 중에서는 그야말로 군계일학 이었습니다. 레버만 내리면 해머가 원상태로 복귀(디코킹)되면서 동시에 아무리 방아쇠를 당기거나 충격을 주거나 땅바닥에 집어던져도 절대로 발사가 되지 않는 거의 100% 안전한 권총. 하지만 레버만 원래대로 올려놓으면 언제든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가 되는 매우 간편한 권총. 그것이 바로 PP였던 것이죠. 게다가 디자인까지 매우 멋진데다가 구조도 단순해서 제조하기도 쉽고 고장도 잘 안납니다. 이런 권총은 그 이전까지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 총은 개발되자마자 국제 총기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렸고, 독일경찰과 군장교용 권총으로도 채용됩니다. 원래 PP가 경찰용 권총의 약자였으니, 월터는 노리던 목표를 제대로 맞춘 셈입니다.

그 와중에 이 PP를 귀족들의 호신용 권총으로 팔기 위해 조금 더 작게 줄인 모델이 개발됩니다. 바로 그것이 PPk 죠. 여기서 마지막의 K는 독일어로 짧다는 뜻의 단어 kurz의 머릿 글자입니다. 이 꼬마 PP, 그게 바로 007의 손에 쥐어진 권총이었던 것이죠. 자그마치 1962년 숀 코너리가 쪼만한 베레타를 반납하고 월터 PPK를 지급받은 이후, 1997년까지 쭉 그랬습니다.



이것이 PPk, 작은 PP



한창 때는 이런 선물용 권총까지 인기




구조는 초 간단 !!!




최근에는 프레임(아랫부분)은 PP이고 총신과 슬라이드(윗부분)만 PPk를 끼운,

PPk/S 라는 모델이 인기


총 사진 출처는 대부분 http://world.guns.ru/handguns/

그러다가 피어스 브로스넌이 양자경과 함께 등장한 1997년의 007 영화 <투모로우 네버다이>부터 본드는 예전의 작은 호신용 권총 월터 PPK를 버리고 월터 P99를 쓰기 시작합니다. 적어도 <카지노 로열>까지는 그랬죠. 이건 나름 적절한 변화였습니다.


이것이 월터 P99




카지노로얄 출연기념 월터 P99

왜냐하면 PPk는 다 좋은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거든요.
첫째, 장전되는 탄약의 숫자가 적습니다. 딱 7발 들어가죠. 하지만 007의 적들이 쓰는 권총은 기본 13발에서 15발 혹은 17발이 들어가는 전투용 권총들이니 일단 실탄 숫자에서 밀립니다.
둘째, 탄약의 위력도 약합니다. .32 Auto라는 탄약을 주로 쓰는데, 이 총알은 호신용으로야 어떨지 몰라도 적들과의 과격 액션을 즐기는 본드에게는 좀 부족한 면이 있죠. 요즘이야 전투용 권총은 9mm 파라블럼(우리나라 군도 사용하는 나토 공통 제식권총탄약, .32 Auto보다 많이 강합니다.)이나 .45 ACP(미국의 콜트 45에 사용되는 9밀리 파라블럼보다도 좀 더 크고 강한 권총탄약) 정도가 기본이니까요.
이런 면에서 테러가 난무하는 21세기 본드에게는 작고 약한 호신용인 PPk보다는 같은 월터사에서 21세기를 위해 만든 전투용권총 P99가 어울리죠. P99는 전투용권총의 기본규격인 9밀리 파라블럼탄을 16발 장전할 수 있고 플라스틱 몸통을 사용해서 무게도 가벼운 최신형 전투용 권총이거든요.


PPk 에 들어가는 .32 Auto(본드가 쓰는)와 P99에 들어가는 9mm Parabellum의 비교



세 탄약의 위력비교, 참고로 이 그래프의 설명에 따르면 .32 Auto는 그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이고 .380 ACP(나중에 미국에 팔때쯤 추가된 탄)은 전투용 무기로서의 위력을 간신히 발휘하는 탄이라고 평합니다.

출처는 오클라호마 총덕들의 사이트: http://oklahomaconcealedcarry.com/Caliber_Ammo_Selection.html


그리하여, 본드는 <투모로우 네버다이>이후로 어언 18년간이나 P99를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그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갑자기 PPk 로 되돌아 간 겁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분명히 이 영화는 전편에서 몇 분후의 이야기라는 설정이니 전편에서 쓰던 권총을 계속 쓰는 것이 맞는데 말이죠.

아마도 감독의 고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포스터 감독은 의외로 “역시 007은 PPk!” 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고전적인 007 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덕분에 우리는 우락부락한 다니엘 크레이그가 조막만한 권총을 들고 날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건 어떻게 보자면 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자면 상당히 어색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 전체가 그렇죠.




카지노 로열에서는 P99를 쓰던 본드가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는 쪼마난 PPk를 …




그러면서 기관단총은 9mm 파라블럼을 쓰는 UMP를… 이 뭐임?

결론, 역시 본드 영화에는 좀 더 경쾌한 감독이 어울린다능..
그리고 21세기 본드에게는 역시 P99라능…




역시 이게 어울림

덧붙여, 마틴 캠벨 최고!
하지만 캠벨 수프는 짜서 싫어!!




짠 캠벨수프



영진공 짱가


초보, 중수, 고수는 총잡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발달심리학자 J.R.Harris는 사람은 성장하면서 개성을 드러내는 과정이 마치 모래시계 모양이라고 한다.

나는 사회화는 일종의 모래시계 같은 모양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인으로 시작해서 집단의 압력에 의해 한데 묶여서 보다 비슷해진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집단의 압력은 점차 약해지고 개인차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독특해지는데 왜냐하면 자신들의 특이함을 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과 달라져도 별로 심한 벌을 받지 않는다 (Nurture Assumption, Ch.15)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릴적에는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진 존재였다가, 학교에 입학하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면 서로서로 비슷비슷해지고, 회사에 가서도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비슷비슷한 상태를 유지하다 점차 승진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예전에 억눌러왔던 개성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거다.

그럴듯한 얘기다.

그런데 이런 모래시계 모양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림 그리기를 생각해보자.
그림의 초보자들은 정말 제멋대로 그림을 그린다.
이 규제받지 않은 상태의 그림들 중에는 후앙 미로 같은 대가의 그림과 별 차이없는 개성과 창의성이 보이는 그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초보다운 어설픈 그림들이다. 그러다가 그림교육을 받으면 그림 그리는 방식들이 서로 비슷해진다. 이게 중급자 단계다. 이때도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가끔 드러나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림만 보고는 어느 그림이 누구 건지 잘 분간이 안된다. 제대로 교육을 할수록 그림간의 차이는 적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면, 그래서 그림 속에 자기의 마음을 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 이제 그림속에 그린 이의 개성이 녹아들게 된다. 이게 고수의 상태다.
이건 글도 마찬가지고,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어디서나 초보는 제멋대로고, 중수는 획일화되어 있고, 고수는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제멋대로가 된다. 초보의 제멋대로는 미숙하기 때문이지만, 고수의 제멋대로는 기술을 통해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액션영화는 이런 초보와 중수, 고수의 차이를 드러내는게 매우 중요한 장르다.
총을 쥐고 겨누는 방식을 예로 들어보자. “스티븐시갈”이 총을 들고 약실을 확인하고 표적을 겨냥하는 방식은 조금씩 남들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그럴 듯 하다. 그의 포즈는 전형적이지는 않지만, 어설픈 초짜 경찰이 덜덜떨며 총을 겨눌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거다.
 

실제 특수부대원들에게서도 이런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 20-30년간 FBI에서 가르치는 권총사격 자세는 계속 바뀌어 왔다. 그냥 카우보이처럼 무조건 뽑아서 쏘라고 가르친 적도 있고, 급해도 신중하게 가늠자와 가늠쇠를 정렬한 다음에 쏘라고 가르친 적도 있다(요즘은 후자란다). 쏠때도 방아쇠 울에 손가락을 걸라고 가르친 적도 있고, 그게 균형을 깨트리니까 그냥 손잡이만 마주잡고 쏘라고 가르친적도 있다. 그런데 FBI의 고참 수사관은 오래 전부터 훈련을 받은 사람이므로 이런 훈련방식의 변천과정이 그대로 몸에 배게 된다. 즉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기만의 쏘는 방식을 체화하는 거다. 반면에 FBI 훈련소를 이제 막 마친 중수급의 신참 수사관은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총을 쥘 것이므로 동기단위로 똑같은 포즈가 될 것이다. 이런 신참 수사관들도 관록이 붙으면 자기 체형과 경험에 맞는 자기만의 자세가 저절로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대로 된 액션영화를 표방한, 『쉬리』에는 정말 여러 가지 애석함이 넘쳐난다. 스토리도 빈틈이 많고, 현장요원과 분석요원의 구분도 없는 첩보기관이라는 설정도 허술하고, 특수폭탄이 필요한 이유같은 개연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런 애석함 중에는 이 특수요원들의 자세도 포함된다. 어떻게 된게 북한군 특수부대나 OP 요원들이나 총을 쥐고 겨누는 자세가 아주 똑같다. 그것도 고참 신참 구분이 없다. 어떻게 남한과 북한에서 똑같은 사격자세를 가르치겠는가, 그리고 “최민식” 같은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요원과 “한석규”의 자세가 같겠는가…. 뭐 나름대로 영화 촬영 전에 총기관련 훈련을 받은 결과라지만, 그래서 홍콩영화처럼 양손으로 쌍권총 난사하는 말같지 않은 장면을 없앴다고 자찬을 하더라만, 제대로 된 액션연출이 되려면 그것만으로는 2% 부족한 거다.
 

『쉬리』만 그런게 아니다. 사실 그 이후에 나온 총기를 다루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초보수준의 자세(이건 아예 훈련도 안시킨 거다)이거나 중수 수준의 자세에 머무른다. 거기엔 다양성도 없고 개성도 없다. 그냥 총을 쏘는거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총을 다루는 기본만 가르치고(쏠 일이 없을때는 반드시 방아쇠에서 손가락 뗀다 같은…) 나머지는 제각각 알아서 하게 하는게 더 그럴듯한 연출이 될 수도 있다. 개성을 드러내려면 실제 포즈의 미묘한 차이를 과장해도 되니까 말이다. 꼭 양손으로 총을 쥐어야 실감이 나는게 아니다. 고수쯤 되면 한손으로 총을 쏠수도 있지 않겠나.

대표적인 총 뺏아야 되는 포즈, 해머코킹 한 상태에서 방아쇠에 손가락 걸고 폼 잡기... 대략 오발사고 내고 싶어서 환장한 자세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에서도 출연진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당시 사격자세의 기본을 충분히 숙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게 획일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미묘하게 다른 차이까지 보여주곤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총잡는 기본뿐만이 아니라, 그 기본의 다양한 패턴에까지 통달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 영화에서 초보와 중수 그리고 고수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액션연출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영진공 짱가

007 카지노로얄, <상벌위원회>, <영진공 66호>

상벌위원회
2007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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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바바라 바흐가 주연으로 나온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이하 스파이)’를 보고나서 007의 광팬이 되어 버렸다. 엄마를 졸라서 산 이안 플레밍의 원작을 다 읽었고, 비디오라는
게 생긴 고등학교 시절엔 틈나는대로 007의 전작들을 빌려봤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스파이’로 인해 높아진 내 눈엔 낙후된
기술로 만들어진 전작들이 지루하게만 느껴졌으니까. ‘살인면허’인가 하는 영화에선 007의 구두에서 칼이 나오는데, 그 당시엔
그게 최첨단 무기였었나보다.

그 이후부터 난 극장에서 개봉하는 007만 꼭 챙겨 봤는데, 그것 역시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평화를 지키던 로져 무어가 은퇴한 게 한 가지 이유고, 내 감수성이 무뎌진 게 두 번째 이유 쯤 될 것이며,
<용형호제>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007에 비해 볼거리가 더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한 이유리라.
그래도 한때 광팬이었던 의리 때문에 나오는 영화는 꼬박꼬박 봐줬지만, 진부한 스토리를 최첨단 기술로 만회하려는 게 영 눈에
거슬렸다. 바로 전에 만들어진 <다이 어나더 데이>는 그 결정판으로, 세상에, 버튼을 누르면 눈에 전혀 보이지 않게
되는 자동차가 출현한다. 자동차의 많은 부품들이 안보이게 되는 건 그렇다 쳐도, 왜 운전자까지 안보이게 되는 걸까?

007 제작진들도 팬들의 불만을 알아챘는지, 이번엔 확 바뀐 스타일의 007을 들고 나왔다. 이름하여 ‘카지노 로얄’.
기존의 제임스 본드와는 확연히 다른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로 나오고, 최첨단 무기 대신 손으로 싸우는 액션이 주를 이룬단다.
치, 그나마 첨단무기도 안나오면 무슨 재미로 보냐? 제사를 마치고 난 뒤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밤 11시 반, 홀연히 극장으로
갈 때만 해도 별반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는 재미있었다. 소피 마르소가 본드 걸로 나올 때 절벽으로
추락하는 헬리콥터를 집어탄 뒤 조종을 해서 다시 날아오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선 그렇게 말이 안되는 씬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스토리도 제법 말이 됐다. 007 역시 완벽하기보단 인간적으로 그려져 더 공감이 갔고, 다니엘 크레이그도 제법
멋있었다. 영화관 밖에서 어떤 여자관객이 한 말, “지명도가 없어서 후져 보였는데, 갈수록 멋있더라.”

그런데 왜 이 영화의 평점이 그리 높지 않은 걸까? 그건 아마도 관객들이 포커를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영화 제목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카지노로얄은 포커 장면의 비중이 높다. 그러니 포커 룰을 모르면 많은 부분을 건너뛰어야 하고, 포커를 쳐봤다 해도
영화에 나오는 식의 룰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놀아본 적이 있는 난 온갖 다양한 포커를 다 쳐봤고, 영화에서 나오는
방식으로도 쳐본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시종 즐거웠던 건 다 그 덕분, 역시 사람은, 젊을 땐 좀 놀기도 해야지
않을까?

상벌위원회 부국장
서민(bbbenj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