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대결 보다는 감동 그리고 고민들

‘두 남자의 뜨거운 대결’이라는 헤드카피와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낯선 제목만으로는 극장에 가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꽤 괜찮다는 평도 접했지만 여태 미루기만 하다가 드디어 감상을 했네요. <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조금 다른 평을 하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원작이나 영화 보다 앞선 TV 시리즈 <갈릴레오> 등에 관한 사전 지식 없이 영화만 본 입장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은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만점짜리 작품입니다. 영화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TV 시리즈도 바로 구해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역시 영화의 감동 만큼은 아니로군요.

원작과 TV 시리즈에는 단편 마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성격의 말단 여형사 우츠미 카오루(시바사키 코우)가 불가사의한 사건을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노부 교수(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의뢰하면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고 범인을 잡아내는 식입니다.

마치 <양들의 침묵>(1991)에서 클라리스 스털링 형사와 한니발 렉터 박사의 관계와 유사한 두 사람 앞에 범인들이 하나씩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식이지요. 원작이나 TV 시리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와 동일한 패턴 내에서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을 감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판은 TV 시리즈와 달리 용의자 X에 해당하는 천재 수학자(직업은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며 유카와 교수의 대학 시절 친구인 이시가미 테츠야(츠츠미 신이치)의 입장 쪽으로 관점을 이동시켜 전개해나가는 작품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기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작품 자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범죄 수사극으로 시작해서 두 남자의 두뇌 싸움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결국은 지독한 순애보인 동시에 삶과 진실에 관한 감동적인 드라마로 끝나고 있으니까요.

용의자 X가 누구이고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처음부터 밝히고 있음에도 범행의 자세한 경위와 용의자 X 이시가미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감춰놓기 때문에 미스테리 스릴러로서의 재미도 결코 포기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용의자 X의 헌신>이 선사하는 최고의 미덕은 진득한 인간적인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감정을 구걸하거나 특정한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성숙함에 있습니다. 이시가미의 삶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가 하나오카 모녀(마츠유키 야스코 & 카나자와 미호)에게서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심지어 그들의 미래에 관해서도 관객 각자가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중 영화의 차원을 넘어선 품격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츠츠미 신이치의 열연은 <용의자 X의 헌신>가 진득한 감정의 영화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용의자 X 이시가미가 어떤 인물로 비춰지느냐에 따라 <용의자 X의 헌신>은 그 내용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게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천재 수학자의 자폐적인 성격을 표현하가다 때로는 싸이코패스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츠츠미 신이치의 섬세한 표정 연기는 정말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이시가미의 오열은 <용의자 X의 헌신>에서 가장 격렬한 액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TV 시리즈에 비해 우츠미 카오루 형사의 비중이 매우 작은 편이지만 유카와 교수는 <갈릴레오>의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충분히 균형잡혀 있습니다. 물론 이처럼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는 다름아닌 TV 시리즈와는 다른 영화판만의 고유한 호흡과 균형추를 잘 잡아낸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TV 시리즈도 연출)의 역량 덕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직접 각본까지 쓴 <아말피 여인의 보수>(2009)는 어떤 작품일런지 궁금하네요.


영진공 신어지

다윈, 진화론이라는 세기의 떡밥을 던지다 – 2부







과학혁명으로 체면을 구긴 종교계가 짱돌을 굴려 내놓은 것이 자연신학이었다. 자연신학이란 쉽게 말해 자연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며 인간들은 자연의 법칙을 연구함으로써 고귀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털끝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이론이다. 즉 과학은 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말이다.




자연신학은 과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종교는 계속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과학혁명 이후에도 과학은 여전히 종교의 앞마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과학을 신을 이해하는 도구로 본 덕분에 기독교는 과학을 장려했다. 수도원 같은 곳에서는 과학에 몰두하는 성직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신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였다. 특히 성경을 장르문학으로 분류시킬 수 있는 지구의 나이와 생물의 발생, 진화에 관한 문제에서 종교는 과학의 발목을 꽈악 붙잡고 있었다. 다른 과학 분야보다 생물학의 발전이 늦어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다윈 이전의 생물학 논란들




다윈 이전의 보수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생물의 기원을 대략 6000년 전에 하나님이 모든 생물들을 각각 별개로 창조하였다고 보았다. 즉 ‘강쥐는 태초에도 개새끼였으며 고냥이는 태초에도 고양이였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산이나 들판, 바다 등과 같은 지질학적, 생물학적 환경은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재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하마와 고래는 같은 조상에서 진화하였다고 밝혀져 있다.


하지만 개별창조이론으로 보면 하마와 고래는 태초에도 하마와 고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식물학, 자연사, 지질학과 같은 분야는 견본 수집 말고는 딱히 연구라고 할만한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학혁명 후 물리학이나 천문학, 화학 등은 빡시게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하며 원리를 정립하는 등 학문의 체계가 잡혀갔고 당연히 그에 따라서 많은 법칙을 밝혀냈다.




하지만 생물학이나 지질학은 할게 없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저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선 그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들을 모으는 오타쿠만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18세기에는 식물채집이 유행이었고 많은 부유한 아마추어 생물 오덕들에 의해 표본들이 수집되었다.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며 역마살이 낀 유럽인들은 세계 구석구석으로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동식물들을 수집했고 이러한 견본들은 런던, 파리, 스웨덴과 같은 중심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지에는 바로바로 그 유명한 분류학의 본좌인 뷔퐁과 린네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표본들을 합리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분류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피똥을 싸는 노력을 기울인다.






나는 누군가 ... 여긴 어딘가 ...




수많은 표본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뜻하지 않게 생물 전체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기리고자 그의 소중한 피조물들을 모았는데 이게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에 냉수를 끼얻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러한 관찰과 증거들을 토대로 발생과 진화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자 지구의 나이에 관해서도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생기게 된다. 새로운 이론이 전제하는 진화는 아주 작고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환경과 복잡한 구조의 생물종들이 완성되려면 졸라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18세기 말에 이르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학자들이 지구가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되었음을 서서히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럼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 발생과 진화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던 지구 나이에 관해 당시 종교계의 눈치를 봐야 했던 생물학 본좌들의 고뇌를 간략하게 되짚어 보자.






생물의 발생과 진화에 관해 고민하다







존 레이 John Ray (1628~1705)




옆집 사는 외국인 강사 이름이 아니다. 존 형님은 17세기 가장 위대한 박물학자이자 생물 분류학의 토대를 마련한 형님이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린네는 어쩌면 편집증 환자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구를 정복이라도 할 기세로 1677년 [조류학], 1686년 [어류의 역사], 1686년 [식물의 역사], 1710년 [곤충의 역사]를 출판하며 생태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종(種)을 분류학의 기본단위로 확립했다는 점이다. 즉, 현대적 의미로 종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이는 존 형님이다.







식물의 역사는  1686년, 1688년, 1704년에 걸쳐 3권을 출간한다.
여기에는1만 8천 가지 이상의 식물들을 각각의 계통, 형태학, 분포, 서식 등을
기준으로 분류했을 뿐만 아니라 약으로의 효용과 새싹의 발아 과정 등
식물의 성장과 관련된 특징들도 기술해 놓았다.






하지만 존 형님은 신앙심이 깊었다. 그는 창조에 대한 성경의 말씀과 자신의 연구에서 오는 괴리감에 힘들어했다. 개별창조이론으로 보기엔 생물은 너무도 다양했다. 예를들어 하나님은 벼룩을 창조할 때 조차 개벼룩, 사람벼룩, 고양이 벼룩 등 아주 세세하게 창조했다는 소리인데 이게 아무리 생각해도 좀 구렸다. 하지만 순정파였던 존 형님은 결국 1691년 [창조에서 신의 지혜 Wisdom of God in the Greation]를 발표하며 창조설을 받아들이고 이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창조에서 신의 지혜]

존 형님은 신을 뿌리칠 수 없었던 로맨티스트였던 거시다! 








칼 린네우스 Carl Linnaeus (1707~1778)




분류학의 본좌답게 편집증적인 성격을 지녔던 린네 형님은 오늘날도 쓰이고 있는 ‘이명식binomial’ 명명 체계를 확립한 사람이다. 그 덕분에 이후 후배 동식물학자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롭게 발견한 종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19세기 들어 종의 관계와 진화법칙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원천이 된다.




이명식binomial이란 생물분류의 기본단위를 종(種, species)으로 하여, 속(屬, Genus)-과(科, Family)-목(目, Order)-강(綱, Class)-문(門, Phylum) 등의 하위 단계로 생물을 분류하고 이를 토대로 생물 각 종의 이름을 그 종이 속하는 속명(屬名)과 그 종 자체의 이름(種名)을 병기하여 2단어로 구성하는 명칭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데, Homo는 속명이고, sapiens는 종명이다. 이 때 속명의 머리문자는 대문자로, 종명의 머리문자는 소문자로 나타낸다.








이명식이 사용되기 전에는 나라마다 지방마다 같은 생물을 지칭하는 이름은


 다양했으며 그 이름 또한 매우 복잡했다.


프랑스 생물학자이자 박물학자였던 Brisson Mathurin Jacques (1723~1806)은


사자를 Felis cauda in flocum definente(꼬리의 끝에 뭉치가 있는 고양이)로,


호랑이를 Felis flava maculis longis nigris variegata(길고 검은 무늬를 가진


황색고양이)로 명명했다. 현재 이명식에 의하면 사자는 Panther leo,


호랑이는 Panthera tigris로 명명한다.


이 얼마나 심플한가!







린네 형님의 히트작 [식물종 Species Plantarum]




린네 형님은 1735년 [자연체계 Systema Naturae]를 출판하지만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준 책은 1753년에 출판된 [식물종 Species Plantarum]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이명식을 언급한다. 그리고 1758년 이 책의 10판 1권에서 이명식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포유류, 영장류, 호모 사피엔스 등의 용어도 정의한다.




린네 형님은 이명식 말고 또 하나 중요한 발걸음을 내딨는데 그건 당시로선 불경스럽게도 생물의 분류에 ‘인간’을 처음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게다가 형님은 대담하게도 인간이 원숭이들과 똑같은 속(屬)에 속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현재 DNA에 따르면 사람은 침팬지로 분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린네 형님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기독교에 대들 정도의 깡은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한 속의 유일한 구성원으로 분류하였고 지금까지 호모Homo 속(屬)에는 인간 단 하나의 종만 있다.







1746년 출판한 자신의 [스베치카의 동물들Fauna Svecica]에서 그는


사람과 원숭이를 다르게 분류해야 할 과학적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위에 언급했듯이 린네 형님은 기독교를 믿었고 따라서 개별창조이론을 믿고 있었다. 그는 현재 지상에 존재하는 종의 수는 태초에 신이 창조했던 종의 수와 같다고 믿었다. 그러나 린네 형님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자료와 증거들을 보며 개별창조이론이 뭔가 구리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말년에는 종들 사이의 구별과 종 내부의 다양성이 모두 시간에 의해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기 시작한다.




영진공 self_fish

“파주”, 복잡한 내러티브 그러나 단 하나의 감정

형부와 처제 사이에 벌어지는 금단의 사랑 이야기 – 지고지순한 쪽이든 살색 향연이 펼쳐지는 쪽이든 – 로만 기대한다면 적잖이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더군다나 두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명확한 결말 – 둘이 행복하게 잘 살게 되는 쪽이든 둘 중에 하나 또는 둘 다 죽어 슬퍼지는 쪽이든 – 을 필요로 하는 관객이라면 매우 황망한 기분을 안고 상영관을 나설 수 밖에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들처럼 박찬욱 감독의 적절하게 홍보되지 못한 이상한 영화로 잘못 알고 보는 것이 아니라 <질투는 나의 힘>(2002)의 박찬옥 감독이 7년만에 내놓은 장편이라는 정도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본다면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의 틀에서 빗겨 나갈 수 밖에 없는 이 한 편의 영화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으리라 – 그런 준비만 되어 있다면 크게 실망할 일은 없으리라는 얘기다. 오히려 다른 영화들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꼼꼼한 연출의 힘을 만끽하길 원한다면 <파주>는 올해 하반기 반드시 봐두어야 할 작품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의 거리 풍경이나 수도권 재개발을 둘러싼 험상궂은 투쟁의 현장 등이 등장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과 맞물리며 구구절절한 대사를 대신한다 – 문어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사용되는 대사들에 비해 차라리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고 할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중식(이선균)과 은모(서우)가 약 8년의 시간에 걸쳐 겪게 되는 사건들은 <파주>를 의외로 매우 복잡한 내러티브의 영화로 여겨지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데, 감독의 의도는 역시 미스테리로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일 보다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화면 곳곳에 촘촘하게 새겨넣는 쪽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파주>는 복잡한 내러티브 속에서 단 하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파주>가 표현하고 있는 그 감정의 실체는 사실 매우 모호한 것이어서 단순히 욕망이라고만 정의할 수도 없고 질투와 불안, 죄의식과 두려움의 감정 따위가 마구 뒤섞인 무엇이다. <파주>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줄거리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식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어느새 은모의 이야기 – 정확히 말하자면 은모의 입장과 감정으로 그 중심을 이동한다. 중식의 입장에서 본다면 <파주>는 마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순교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모의 입장에서 그 사랑은 구원의 손길이기는 커녕 매우 의심스럽기만 한 구속일 따름이다. 은모가 원했던 것은, 죽은 언니의 남편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겨진 보호자 중식과의 결합 – 연인으로서라기 보다는 부모의 죽음 이후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안정적인 생활의 터전으로서 – 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언니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진실이 갓 스물의 은모로서는 절대로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은모는 감당못할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중식을 오해하고, 그 오해를 뒤로 한 채 친구와 함께 50cc 스쿠터에 의지해 다시 한번 자신의 길을 찾아나서지만 그 길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를 암시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파주>는 은모가 감당못할 진실을 결국 알게 될 것인지, 그런 이후에 중식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후의 이야기를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기 보다는 바로 그 시점에 은모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과 감정의 복합성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영화 <파주>의 실체다.

영진공 신어지

미드 속의 한국계 배우들

최근의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를 보다보면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를 느낄 정도로 꽤나 많은 한국계 배우나 한국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계가 연기력이 더 뛰어나서인 건지, 한국이라는 나라의 인지도(?)가 미국 내에서 이전보다 많이 높아져서인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암튼 몇 년 전까지에 비하면 인기 시리즈의 메인 캐릭터 중에 한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재미삼아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서 대략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조연급 이상 고정출연자 위주로 정리를 하였는데, 혹시 여기에 거론되지 않은 한국계나 한국계로 그려지는 캐릭터들이 더 있다면 댓글로 제보하여 주시기 바란다.

먼저 Usual Suspects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 산드라 오 (Sandra Oh)

1971년 7월 20일생 / 캐나다 온타리오 /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남.
現 출연작: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인턴 크리스티나 양 役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에서의 분노의 화이바질이 지금도 인상 깊은 그녀는 아마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중에 가장 성공한 이일 것이다.

캐나다에서 연극과 TV 그리고 영화로 다채로운 배우활동을 펼친 그녀는 캐나다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Genie Awards에서 두 차례 (1994년과 1999년)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였고, 1996년에는 미국의 TV 시리즈 “Arli$$”에 출연하며 미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2005년에 영화 “사이드웨이”의 성공으로 미국 관객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그녀는 그 해에 방영을 시작한 TV 시리즈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 캐스팅된다.

이후 현재까지 6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이 드라마의 성공가도 질주에 톡톡히 일조를 한 그녀의 연기는 미국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으며 2005년부터 5회 연속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2006년에는 골든글로브 TV 시리즈 부문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다.

* 원래는 레지던트 베일리 역을 제안 받았다는데, 본인이 크리스티나 역할을 강력히 요구하였다나 어쨌다나~

** “사이드웨이”의 감독인 알렉산더 페인과 2003년 결혼하였으나 2006년에 이별.

  

[미국의 토크쇼 “지미 키멀쇼”에 출연한 산드라 오.  영상 중간에 부모님들 모습도 보임.]

2. 마가렛 조 (Margaret Cho, 한국이름 조 모란)

1968년 7월 20일생 /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남.
現 출연작: “드롭 데드 디바 (Drop Dead Diva)”, 비서 테리 리 役

그녀의 경력과 삶이 조금만 덜 굴곡졌더라면 아마도 마가렛 조는 미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계 배우겸 코미디언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무대에 홀로 서서 신랄한 풍자와 독설로 주로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모든 사회현상을 조롱하는 걸 장기로 삼는다.)으로 경력을 시작한 그녀는 1994년에 American Comedy Awards에서 최고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상을 수상하는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그녀가 주인공인 TV 시리즈 “All American Girl”이 1994년에 ABC를 통해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리즈로 인해 그녀의 삶과 경력은 굴곡지게 되었다.  아시아인을 지나치게 비하한다는 비난과 너무 미국적이라는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고, 제작사는 그녀가 너무 뚱뚱하고 얼굴이 지나치게 펑퍼짐하다고 압박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 여파로 다이어트에 중독된 그녀는 시리즈가 1시즌으로 종결돼버리는 수난을 겪으며 약물과 알콜중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1999년에 재기한 그녀는 본업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다시 나섰고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그녀의 독설은 더욱 날카롭게 톤을 높였다.  그리고 최근까지 “데일리 쇼” “섹스 앤드 시티” “더 뷰” 등 다수의 인기 TV 프로그램과 “페이스 오프”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2009년에 13편으로 시즌 1을 마무리하고 현재 시즌 2가 제작 중인 “드롭 데드 디바 (Drop Dead Diva)”를 통해 안방극장의 메인 캐릭터로 컴백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보자.
 
* 어머니의 한국 액센트를 흉내내며 웃음의 소재로 삼기도 하고 게이의 권리쟁취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모습에 재미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그녀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이 꽤 많이 존재한다.

**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 매우 적극적인 反 부시 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토크쇼 “더 뷰 (The View)”에 출연한 마가렛 조.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은 여기에서도 여전하다.

3. 존 조 (John Cho, 한국이름 조 요한)

1972년 6월 16일생 / 서울 /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
現 출연작: “플래시포워드 (Flashforward)”, FBI 요원 드미트리 노 役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LA로 이민을 온 존 조는 1996년에 UC버클리를 졸업하고 잠깐 영어 선생님을 하기도 했다 한다.

광고전단의 모델로 연기경력을 시작한 그는 1999년 영화 “아메리칸 파이 (American Pie)”에 출연하여 MILF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연기자로서 주목을 받게 된다. (저 단어의 뜻은 각자 알아서 파악해 보시라 …)

이어 “아메리칸 뷰티” “아메리칸 파이 2” 등에 출연하던 그는 2004년의 영화 “해롤드와 쿠마 (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다.

그 후 TV쪽으로도 활동영역이 대폭 넓어진 그는 “키친 컨피덴셜” “어글리 베티” 등의 TV 시리즈와 2009년 영화 “스타트렉 (Star Trek)”에도 출연하였다.

그리고 현재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TV 시리즈 “플래시포워드”에서 한국계 FBI 요원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 “해롤드와 쿠마” 3편은 당분간 보기 힘들듯 하다.  왜냐하면 쿠마(Kal Penn)가 오바마 행정부의 관직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라능~

** 역시 배우인 케리 히구치와 결혼하여 1남을 둔 그는 캘리포니아 주의 동성결혼금지법에 대한 반대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코미디쇼 “매드 TV”에 출연한 존 조.  함께 나오는 이는 레귤러 멤버인 바비 리.]

여기서 잠깐,
위 동영상에 등장하는 바비 리(Bobby Lee)에 대해서 알아보자.

4. 바비 리 (Bobby Lee)

이 친구의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1972년 9월 17일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출생하였고 한국계이며 본명이 Robert Lee Jr. 라는 정도.

스탠드 업 코미디언으로 경력을 시작한 바비 리가 미국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Fox방송을 통해 14년 동안 방영되다 2009년에 종영한 “매드 TV(MADtv)”에 진출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여기에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고정출연진으로 맹활약하였는데, 초기에는 아시아인을 희화하는 보조역할로 시작하여 최근에는 주요 멤버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매드 TV”는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Saturday Night Live, SNL)”와 유사한 형식의 코미디 쇼인데, 내용은 SNL보다 파격적이고 직설적이어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즈질’이라고 맹비난받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바비 리가 MADtv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패로디한 코너를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그걸 한 번 보도록 하자.

봐서 알겠지만 이게 말하자면 “막장”드라마의 원조라해도 좋을만큼 막 나가는 코너이다.
뭐 어쨌든 이 코너가 은근 인기가 있어서 현재 유툽에는 4부작이 올라와있으니 위 동영상이 재밌다고 느낀 분은 직접 찾아서 감상하시면 되겠다.

참, 혹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웃겨만 주면 장땡인 영화를 즐기는 분이라면 바비 리가 단역으로 출연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Pineapple Express)” 강추다.  이 영화에 한국인 갱단이 나오는데 “다 죽여버려, 씨*놈들 …” 따위의 한국말 대사가 슝슝 날라댕긴다.


자, 그럼 이제부턴 그냥 무순으로 정리해보도록 하자.

5. 제임스 카이슨 리 (James Kyson Lee, 한국이름 이 재혁)

1975년 12월 13일생 / 서울 / 열 살 때 미국으로 이민
現 출연작: “히어로즈 (Heroes)”, 안도 마사하시 役

처음에 히로의 충실한 동료로 시작하여 이제는 능력자의 반열에 올라 선 그.

“히어로즈”가 일본에서도 꽤나 인기인지라 일부 일본 친구들이 왜 굳이 일본인 역에 한국계를 캐스팅했냐고 툴툴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뭐 어쨌든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여 이제는 고정출연자의 자리를 확보한 그는 이전에도 “CSI LV” “West Wing” 등 인기 시리즈에 잠깐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 이 친구 짬짬이 패션모델로도 뛰고 있다능~

6. C.S. 리 (C. S. Lee, Charlie Lee)

1972년 12월 30일생 / 청주 /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
現 출연작: “덱스터 (Dexter)”, 플로리다 경찰 CSI 빈스 마수카 役

살인범을 연쇄살인하는 경찰요원 덱스터의 밉지않은 변태(?) 동료인 청주 출신 챨리 리.

“Sopranos” “Law & Order”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Chuck”에서 나름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덱스터”를 통해 고정출연자로 자리를 잡은 그의 향후 활약을 기대해 보자.

7. 팀 강 (Tim Kang, 한국이름: 강일아)

1973년 3월 16일생 / 샌프란시스코
現 출연작: “멘탈리스트 (Mentalist)”, CBI 요원 킴벌 조 役

UC버클리 학사에다가 하바드 석사 출신인 그.

“Shell” “AT&T” 등 굴지의 기업 광고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2002년부터 “Sopranos” “Law & Order” “Monk” “The Unit” 등의 TV 시리즈와 “Two Weeks Notice” “Forgotten” “Rambo 4”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리고 2008년에 인기 시리즈 “멘탈리스트”에서 과묵하고 진지한 한국계 형사역으로 고정배역을 확보하였다.

8. 다니엘 헤니 (Daniel Phillip Henney)

1979년 11월 28일생 / 카슨 시티
現 출연작: “쓰리 리버즈 (Three Rivers)”, 닥터 데이비드 리 役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능~ ^^

9. 그레이스 박 (Grace Park)

1974년 3월 14일생 / LA 출생, 캐나다에서 성장
現 출연작: “배틀스타 갈락티카 (Battlestar Galactica)”, 중위 샤론 발레리 役

개인적으로 아무 주저 없이 최고의 미드 중 하나로 꼽는 “배틀스타 갈락티카”.
보통의 시리즈와 비교하면 극의 전개가 좀 늘어지는 편이지만, 미드를 좋아하는 분에게 항상 권하는 시리즈이다.

바로 이 시리즈의 2004년 1시즌부터 2009년의 4시즌 종영까지 극의 중심에서 Key 역할을 한 해군 비행사 중위 샤론 “부머” 발레리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그레이스 박이다.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한 이 시리즈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맥심지에도 등장한 그녀는 몇 차례 그 잡지 Hot 100 리스트에 오르기도 하였다.
아래는 인증샷 …


사실 2009년에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무수한 매니아들의 탄식을 뒤로 하고 종영이 되었기에, 그녀를 어떻게 소개해야하나 초큼 고민을 했었는데 …

음화홧!!! 10월에 새로이 시즌 5가 시작하였으므로 고민 끝.

* CSI 라스베가스 9시즌 에피소드 20에서 그레이스 박이 살짝 카메오로 나왔는데, 관심있는 분은 함 찾아보셈 ^.^

** 아래 동영상은 시즌 5의 예고편.

10. 김윤진 (Yunjin Kim)
11. 다니엘 김 (Daniel Dae Kim)

現 출연작: “로스트 (Lost)”, 선권(윤진) 진권(다니엘)

이 두 사람도 역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능~ ^^

12. 로렌스 피쉬번 (Lawrence Fishburne)

1961년 7월 30일생
現 출연작: “CSI 라스베가스 (CSI)”, 요원 레이몬드 랭스턴 役

오잉??? 이 사람이 한국계라고???

놀라실 것 없다.
사실인즉슨, 로렌스 피쉬번이 아니라 그 뭐냐 거시기 최근에 레이몬드 랭스턴의 출생지가 한국의 서울로 밝혀진 것이다.

에, 말하자면, 유머다 … 그냥 넘어가주면 안 될까, 응???

영진공 이규훈

“바스터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천재성의 재확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동시대의 몇 안되는 영화 감독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중 영화에 있어 2시간에 걸친 일관된 내러티브의 틀이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자신의 초기작들을 통해 이를 증명해낸 장본인이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었습니다. 영화 고유의 형식을 찾거나 조금이라도 새로운 영화 문법을 찾기 위한 형식 실험은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이전과 다른 형태의 영화 형식을 선보이는 동시에 대중 영화로서 일반 관객들의 호응까지 모두 얻어내고 있는, 최근 20년 간 가장 성공적인 영화인으로 쿠엔틴 타란티노를 꼽는 데에 주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들의 성공에는 새로운 형식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술적인 면에서 흠 잡을 데가 없는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완전한 난장 영화를 선보이겠다고 해놓고선, 막상 만들어진 <데쓰 프루프>(2007) 를 보면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과 달리 그 꼼꼼하신 성격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70년대의 팝 컬처나 홍콩과 일본의 무협 영화들에서 끌어들인 자양분들을 새로운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충분한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점들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특징 짓는 요소들이 되고 있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쿠엔틴 타란티노 역시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진짜 천재는 아닐런지 모릅니다. 아카데믹한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덕에 기존의 영화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가 자신의 작품들에서 선보여온 새로운 취향의 컨텐츠들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지역적으로나 계층적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와 재현해낸 것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반 관객들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책상 머리 위의 천재 보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같이 – 여전히 모든 관객들과는 아닐지라도 – 영화 관객들의 입맛에 적절히 부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경지로 선도해나가는 재능이 사실은 그 유효성 면에서는 훨씬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라인드 하우스>(2007) 프로젝트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Inglorious Basterds)>은 무엇보다 1940년대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2차 대전 영화라는 점, 그리하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할 때 완전히 새로운 컨텐츠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문제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롭다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생각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스타 캐스팅을 마다하지 않는 대중영화 감독입니다. 데뷔작부터 줄곧 함께 해온 배우들도 있지만 <펄프 픽션>(1994)의 브루스 윌리스나 <킬 빌>(2003 ~ 2004) 시리즈의 우마 서먼과 같이 개봉 초기에 많은 관객들을 상영관으로 모아줄 수 있는 동시에 작품의 완성도에 공헌할 수 있는 스타들을 기꺼이 출연시키곤 했습니다. 관객들의 시선에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요소는 역시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꽃미남 배우에서 그치지 않고 좋은 연기자로 거듭나고자 노력해온 브래드 피트의 이력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새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서로가 윈-윈하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서 한 명의 배우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방식은 <킬 빌>에서의 우마 서먼이 유일했고 나머지 작품 속에서는 수많은 배우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 제 역할을 마친 후에는 뜬금없이 죽어버리곤 해왔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브래드 피트의 역할도 작품 전체를 혼자 이끌어가는 식이 아니라 여러 출연진 가운데 한 명 – 일종의 관찰자이자 감독과 관객들의 대리인이기도 하지만 – 에 불과합니다. 브래드 피트의 몫은 <트로이>(2004)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가 아니라 코엔 형제 감독의 <번 애프터 리딩>(2008)에서의 비중 정도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프러덕션 초기 캐스팅에는 마이클 매드슨과 팀 로스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만, 중간에 판이 커지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배우들이 빠지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유럽계 배우들이 출연하는 다국적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는 최근 헐리웃 영화에도 자주 출연하고 있는 다이앤 크루거를 비롯해서 다니엘 브륄, 틸 슈바이거, 오거스트 딜, 미카엘 파스벤더와 같은 특히 주연급 독일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여기에 멜라니 로랑, 줄리 드레이푸스, 크리스토프 왈츠, 그리고 일라이 로스 감독과 마이크 마이어스까지 배역의 비중에 상관없이 등장해 허구에 불과하긴 하지만 히틀러와 괴벨스를 비롯한 나치의 수뇌부들을 파리 시내의 영화관 안에서 화형에 처해버리는 이 신나는(?)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게릴라 조직 ‘바스터즈’를 전면에 내세웠던 전쟁 영화가 어찌하여 영화관 안에 나치 일당들을 몰아넣고 유태인들의 원혼을 달래는 불놀이 영화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제작자인 와인슈타인 형제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 되겠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 참여한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 깐느 영화제가 남우주연상을 선사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는 유태인 색출 전문가 출신의 나치 경호대장 한스 란다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악역이긴 하지만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는 히틀러나 괴벨스 보다 오히려 비중이 높은 인물로 등장하고 있지요. 한스 란다는 나치의 일당으로 최일선에서 유태인을 잡아들이는데 앞장 섰던 전범이면서도 나치 독일의 패전이 임박하자 연합군 측에 기밀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미국 시민권 등을 얻어 신분을 숨긴 채 목숨을 부지해온 진짜 ‘불명예스러운 바스터즈’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기록에 남겨진 역사적 사실 보다는 나치 독일에 대한 악감정을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상 속의 역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구에 불과하지만 인화성이 높은 350개의 영화 필름을 이용해 극장 안에 모인 나치 수뇌부를 불태움으로써 2차 대전을 끝낸다는 설정이나 연합군의 계획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호의호식하고자 하는 뻔뻔한 인물 한스 란다의 이마에 나치의 상징을 칼로 새겨넣는 마지막 장면은 2차 대전과 나치의 유태인 학살 문제를 바라보는 영화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각(또는 심판하고 싶은 욕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깐느가 크리스토프 왈츠에게 남우주연상을 시상한 것은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저수지의 개들>(1992)에서 팀 로스의 활약을 연상케 하는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해서만이 아니라 영화제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 담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의도에 동조해준다는 의미, 그리하여 이 영화가 전세계 극장에 걸려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봐주기를 바란다는 깐느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후 50년을 넘기면서 전범 국가로서의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는 최근의 독일 입장에서는 동조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프랑스인의 시각을 반영하는 깐느에서라면 충분히 납득을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러닝타임은 152분으로 상당히 긴 편입니다. 영화가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의 분량을 고려했을 때 반드시 이 정도의 긴 러닝 타임이 필요했느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쪽입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2시간 분량으로 줄여보라고 한다면 몇 군데 지나치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씨퀀스를 대폭 줄이거나 또는 완전히 들어내더라도 전체 흐름에는 지장을 주지 않을 부분들을 충분히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만옥이 출연하는 장면도 있었으나 그나마 편집에서 잘려나가는 바람에 일반 관객들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는 – DVD 부록에서 확인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노릇이 되고 만 걸 보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가졌던 원래의 욕심은 152분 보다도 훨씬 더 크고 길었다는 점입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씨퀀스들 – 관객에 따라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길고 긴 대화 장면들 – 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번 영화에서는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 영화의 컨벤션에 매이지 않는 스타일 상의 자유분방함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의 강점이긴 하지만 이번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만큼은 누군가가 자제시켰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함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입니다. 근사한 폭력 미학을 새롭게 설계하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그의 영화에 기반이 되어주는 코믹함을 배제한다면 현재까지 일궈왔던 관객들의 호응도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도 코믹한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그다지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필요한 만큼의 호응을 얻어내고 있지는 못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이제까지 다뤄보지 않았던 새로운 소재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독창성과 자유분방함을 잘 살려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작품인 동시에 그것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았을 때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1940년대 나치 독일과 유럽 유태인의 잔혹사에서 건져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유태계 헐리웃 영화 제작사와 프랑스 영화계를 넘어서 전세계의 일반 관객들에게까지 공감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런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