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시민”, 복수극도 아니고 정치극도 아니고 넌 뭐냐???


영화 “모범시민”의 원제는 “Law Abiding Citizen”, 즉 준법 시민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석이 ‘모범’이든 ‘준법’이든 그게 그거 아니냐고 볼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법을 지키며 사는 소박한 시민들의 권리가 되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법의 틈새를 이용해 심판을 모면하는 범죄자들과 법을 이득과 출세의 도구로 삼는 집행자들을 처단하는 내용으로 전개되기에 ‘준법’이 더 어울리는 제목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공간적 배경이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헌법이 작성된 그 곳, 허나 20세기 초에는 부패의 상징으로도 불리던 도시 필라델피아인 점도 이 영화가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애쓰는 걸로 보인다.  


예고편을 보았을 때는 거대한 액션신이 연신 터져나오는 치밀하고 후련한 복수극이라고 잔뜩 기대를 하였지만 … 실제 영화는 그것과는 무척 거리가 멀고도 멀다.

영화의 주인공 클라이드는 미국 사법집행시스템의 변질과 불합리성에 맞서 싸우고자 10년을 준비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는 사실 미국의 사법체계에 대해서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체계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고자 그리 한 것이다.

스스로가 변론에서도 얘기하듯 그는 자신을 “준법 시민(Law Abiding Citizen)”이라고 알고 있고, 또 그가 자신에게는 변질된 사법집행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지방검사 닉에 대해서 품은 회한도 결국은 왜 기존의 시스템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고 제멋대로 재단하여 뒤틀었는가라는 정도일 뿐이다.

그래서 클라이드는 닉에게 … 왜 있는 그대로 법정에서 다투지 않았는가 … 그랬다면 그 결과가 비록 바람직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 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클라이드는 자신의 행위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잘못된 사법집행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함이라고 줄곧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아젠다를 전파하기 위해 시위나 정치참여 또는 숭고한 희생을 택한 것이 아니라 … 당한 대로 갚아주리라, 그러면 너희들이 배우리라 … 라는 폭력과 살인이 동반되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그 대상이 부패한 권력이나 질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대 범죄집단도 아닌,
자신에게 직접 피해를 입힌 범죄자와  – 그 죄질은 몇 번 죽어도 동정 받지 못할 추악한 것이다 – 조력자 그리고 그 범죄를 처벌하는 시늉을 한 법집행자로 한정되어지면서 좀체로 다른 대상으로 그 방식을 적용시키기 곤란해진다.

결국 클라이드의 행위는 그가 내세우는 아젠다와는 맞지 않게 개인적인 복수극으로 귀결되어버리고 말며, 그가 벌이는 복수극이 나름의 정당성을 잃고 복수의 대상이 직접 당사자를 넘어서 시스템 집행의 상층부로 확대되려는 순간에 그는 제지를 당하고 영화는 서둘러 마무리된다.

“불합리한 세상을 향한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라는 문구로 홍보되고있는 이 영화.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주인공의 복수는 불합리한 세상을 향하지 못하고 복수마저도 “통쾌”하지를 않다.

추악하고 간교한 거대 범죄자에 맞서는 평범한 시민의 복수극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동화되고 몰입하여, 마침내 악인이 피흘리며 쓰러질 때 자신도 모르게 희열을 맛보게 된다. 현실에서 그리할 수는 없지만 영화라는 대리 경험을 통해 통쾌함 또는 후련함을 느끼는 것이다.

뒤틀리고 부패한 시스템에 대해 폭로하고 경고하는 정치 영화 또한 많다. 이런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왜 그리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는지를 누군가는 짧게 누군가는 깊고 길게 고민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도저도 아니다. 범법자가 심판을 받아도 그게 최종 목적이 아니기에 관객은 후련함을 느끼기 힘들고, 그렇다고 미국 사법현실에 존재하는 커다란 문제점을 까발려 타격하는 것도 아니니 … 그냥 어정쩡한 거다.

그렇다고 감독의 목을 조르면 안되지 ...

하나 더 짚어보자면, 무려 10년을 철저히 준비해 온 암살전문 전략가의 전술과 실행과정이 어찌 그리 허술한 건지,

뭐 이해는 간다. 주인공이 복수와 아젠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으니 여타의 액션영화들처럼 아무렇게나 거리낌 없이 때려 부수거나 쓰러뜨릴 수가 없어서 호쾌한 액션신이 나올 구석이 없을게다. 그래도 10년을 준비한 전문가의 행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엉성하다.

영진공 이규훈

“라이 투 미”, 우리는 언제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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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거짓말을 해보라니까 …


<라이 투 미>는 올해부터 선정성과 보수성향으로 유명한 Fox에서 시작한 TV시리즈 물이다. 참고로 2009년 신작 미국 드라마 중 18세에서 49세사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칼 라이트만 박사(팀 로스)가 회장인 라이트만 그룹이 미연방수사국과 제휴를 맺고 주요 범죄사건 수사에 참여해서 증인들의 증언의 신빙성을 감별해준다. 이들이 알 수 있는 건 증언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저 사람의 감정이 뭔지 정도지만 그걸 상황맥락에 적절히 결합시키면 범죄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식의 구성이다.

근데 최근에 이런 드라마가 많다. 요즘 트랜드가 ‘독심술’인가? 범죄와 심리학을 가볍게 결합한 드라마로 내가 즐겨보는 시리즈가 <멘탈리스트>인데, 그나마 패트릭 제인은 명민한 마술사라는 설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대놓고 심리학 그 중에서도 신체언어(body language) 라는 전문분야를 연결시켰으니 말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팀 로스가 연기하는 ‘칼 라이트만’ 박사는 이 FACS를 만든 심리학자 폴 에크만 교수를 모델로 만든 허구의 인물이다. 모델로 했다는 티를 내기 위해선지 실제 폴 에크만이 채식주의자인데 칼 라이트만도 채식주의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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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인공들, 가운데가 칼 라이트만(팀 로스)


칼 라이트만의 실제 모델인 폴 에크만 박사

어쨌거나, 이 드라마는 실제 존재하는 행동과학기술인 FACS(Facial Action Coding System 표정신호분석시스템)과 이 시스템의 이론적 기반인 신체언어 이론을 기초로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예전에 쓴 글(http://kr.blog.yahoo.com/psy_jjanga/1454898)에서 인용한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의 차이 같은 것이 이 시스템에서 말하는 표정신호들이다.

이쪽 분야 전문가들이 쓴 책에 따르면 이런 신체언어나 표정은 다양한 채널로 드러난다. 즉 마음은 몸을 통해 표현되는 거다. 너무 많은 곳으로 새나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일부분은 통제할 수 있지만 전체를 통제할 수가 없다. 아무리 몸의 메시지를 잠그려고 해도 어딘가에서는 계속 나불대고 있다는 거다. 고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표정이나 신체언어를 해석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는 진짜 웃음, 다른 하나는 가짜 웃음이다.

이 시스템은 인간의 얼굴표정을 32개의 행동단위(Action Unit)로 나누고 이 행동단위들 조합하여 심리를 해석하는 방식이라는데 직접 본 적은 없다. 비싼 저작권료를 내야 볼 수 있을 거다. 게다가 분량이 자그마치 1천 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건 책만 있으면 되는 시스템이 아니란 얘기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건데, 그럼 뭐하러 AU를 나누고 분석까지 하냐고? 얼굴표정보고 마음속 읽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꽤 있다. 점쟁이들은 대부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 눈치 빠른 사람들(대부분은 여성이다)도 체계적이진 않지만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FACS는 이런 감에 의지한 마음 읽기를 객관적으로 체계화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당신 어떻게 저 인간이 거짓말했다는 걸 알았소?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점쟁이나 눈치쟁이는 “그냥 감으로!” 혹은 “신령님이 알려주셨어!” 라고 대답하겠지만, FACS를 쓰는 사람은 “매뉴얼 342페이지의 거짓말할 때에 해당하는 AU 조합을 발견했거든” 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면 이건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되는 거다. 누가 봐도 그 매뉴얼에서 그 표정과 해석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이런 게 수백 페이지라는 …

실은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니고 … 이 드라마는 엄한데서 시청자를 웃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추측컨대 표정 신체언어 해석과정은 엄청 지루하고 고단한 작업일 거다. 천 페이지짜리 책을 뒤져가며 저 표정 어디에 있었지? 이러는 일을 반복하는 거니 보는 재미도 별로 없을 거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여기에 조미료를 쳤다. 그 복잡한 FACS 분석과정에 유명인 사진을 인용한 거다.

그 중에는 오바마가 맥케인을 칭찬할 때 쓴 제스쳐 같은 것도 있다. 거기서 오바마는 맥케인이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말하면서 중지를 세워서 콧잔등을 긁는다. 신체언어 해석법에 따르면 그런 행동은 억지로 거짓 칭찬을 할 때 나타나는 거다. 이거는 최근에 뉴스에도 인용되었다. 하지만 이것 뿐 만이 아니다.


모두 거짓말 중인 모습

예를 들어, 라이트만 박사가 “적대감을 숨긴 얼굴을 올려봐!” 라고 하면 콘돌리자 라이스의 면상이 화면에 뜬다. “거짓말을 숨기는 미소를 올려봐!” 하면 사라 페일린과 럼즈펠드의 얼굴이 뜬다. 물론 아들 부시 얼굴도 종종 뜨고, 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코가 빨개진 빌 클린턴의 얼굴도 뜬다.

이런 걸 보면서 든 생각은 “비록 폭스가 꼴통채널이지만 드라마 팔기 위해서 깔 수 있는 건 다 까는구나.” 였다. 그리고 연이어 드는 생각,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이런 거 했다면 어땠을까?

전여옥, 나경원, 이동관, 이대통령 등등의 얼굴이 거짓말을 하는 표정,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 경멸을 숨긴 표정, 기괴하고 특이한 사례 등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만약 DJ나 노통의 얼굴도 같이 곁들이면 허용될 수 있을까? 아마 절대로 아닐 거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그런 걸 한다면 정말 재미는 있을 거다.

아아 … 갑자기 기다려진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드라마를 볼 수 있을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전문적 지식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드라마 제작풍토가 먼저 만들어져야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표현에 있어 그 어떤 제약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꼭 필요하겠지.

그날은 언제 올까?

영진공 짱가

아이폰, 결론은 소프트웨어!!!

드디어 아이폰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언젠가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올 것이라 기대하며 공짜폰(?)으로 질렀던 SKY 매직키패드 폰을 잠시 내려다봤다. 매직키패드 폰, 이름 그대로 참
매직스러운 폰이었다.

슬라이드되는 하단 LCD에 표시되는 현란한 키패드는 실내에선 그럴싸했지만, 밝은 햇빛이 쏟아지는 실외에선
전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순식간에 LCD가 꺼지는 바람에 타이핑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혼란스런 인터페이스는 덤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동안 이런 걸 썼다니, 젠장!


나는 매직키패드 폰의 주소록을
백업하기가 무섭게 아무 미련없이 책상 한구석에 내던져 버렸다. 툭, 털썩, 배터리가 분리되며 책상 밑 쓰레기통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미 내 눈은 아이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출시와 동시에 주변에 전화번호가 바뀐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다들 아이폰을 지른 거다. 휴대폰의 실용성이나 편리성보다는 심미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조차 아이폰을 지르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겉모습만으로도 뽀대 만빵이니까.

그래서인지 아이폰 앱의 판매량은 순식간에 일취월장했다. 거래처인 모 회사 사장님께선, 자기네가 판매중인 앱이 아이폰 출시와 동시에 한국 앱스토어에서만 하루만에 수천 달러 매출을 올렸다고 귀띔해 줬다, 세상에나.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심대하다. 삼성이나 LG는 겉으론 여전히 태연한 척 하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을 거다.
그래도 대기업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자본도 있고, 기술도 있고, 인력도 충분하다.하지만 MP3, MP4, PMP,
전자사전을 만들던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아무 대책도 없다.

MP3? 아이폰 하나면 되잖아. MP4나 PMP?
글쎄, 아이폰에서 재생 가능한 동영상 포맷은 MP4 하나뿐이지만, 팟벗이나 다음 팟인코더로 변환해 보면 그만이잖아. 쿼드코어
CPU로는 30분짜리 하나 인코딩하는 데 5분이면 충분하고 말야. 전자사전? 앱스토어에 올라온 전자사전이 몇 개더라? 이미 수십
개는 되는 걸로 아는데?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 사업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아이폰 액세서리를 만드는 걸로 방향을 전환하는 거다. 아, 하나 더 있다. 우왕좌왕하다가 그냥 망하는 거. 아마 대부분의 회사는 그렇게 되리라.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폰은 전능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바로 지금 – 21세기 초엽의 이 시점에서 – 가장 쓸만한 휴대용 기기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바로 엊그제 술집에 갈 때는 다음 지도를 열어서 현재 위치와 술집 위치를 비교해 가며 길을 찾았다. 화장실에선 네이버 코믹을
보고, 지하철에선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본다. 병원에 갔을 땐 트위터를 하면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보낸다. 음, 그래, 그리고
가끔 전화도 해야지. 문자도 보내고 말이야.

언론에선 아이폰의 매끈한 외관과
멀티터치 화면, 화려한 인터페이스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다. 잡스가 애플을 뛰쳐나간
뒤 오만가지 삽질을 하며 만들었던 넥스트스텝이 MacOS X으로 꽃을 피웠다면, 아이폰 OS는 화룡정점이다. 여기에 잘 정비된
(무료) 객체지향 개발환경과 20년 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이 덧붙여져서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1988년에 나온 NeXTSTEP OS

당시 경쟁상대이던 BeOS

불행히도 너무나 불행히도, 이미 화강암 수준으로 머리가 굳어진 윗분들께선 1) 멋진 디자인 2) 죽여주는 GUI 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기즈모도에서 조롱이나 당하는 옴니아 II같은 괴상한 물건이 나올 수밖에. 나이와 지위만을 내세워 세상에 맞서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밤을 패며 고생했을 삼성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UI 기획자들에게는 참으로 맥빠지는 결과일 것이다.


어쨌든 노키아나 삼성, LG나 모토롤라 같은 대기업들이 한두 번의 실패로 전의가 꺾일 리 만무하다.
그들은 차세대 휴대폰 –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아이폰에 대항할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허나 핵심은 이거다. 소프트웨어!
스마트폰의 심장이자 두뇌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즉 OS와 개발 툴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는 많지 않다. 삼성이나 LG는 오랫동안 윈도우 모바일에만 의지해 왔다. 노키아의 심비안 OS는 여전히 터치 UI에
최적화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윈도우 모바일은 사실상 퇴출 직전이다. MS가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 계획을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제조업체는 시큰둥하다. 대안으로 나온 안드로이드 OS는 공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은
안드로이드와 크롬 OS 둘을 동시에 진행시키며 저울질을 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전문가들은 안드로이드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떡칠하고 있다. 별 수 없다. 그 외엔 딱히 밀어줄 것도 없으니까.

심장과 두뇌를 다른 회사에 떠맡긴 게 실수란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삼성이나 LG는 뒤늦게나마 독자 OS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너무 늦긴 했지만.

하지만 상황이 아주 비관적이진 않다. 애플도 사람이 만든 회사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예상대로 파죽지세의 성장을 거듭할 수도 있고, 삼성이나 LG의 독자 OS가 의외의 대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뤄져 있으니까.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이렇게 단언한다.

아이폰 이전과 이후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진공 DJ Han

한나라당은 국민을 금붕어로 보고 있는가

금붕어가 좁은 어항에서도 불편없이 지내는 이유는 기억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기억력이 의외로 길다는 학설이 나오고는 있지만, 붕어는 어항의 한쪽 면에 다다라 돌아서고는 금세 좁아서 돌아섰다는 사실을 까먹는다고 한다.

2003년 말 최병렬 대표 시절에 한나라당은 당시 열린우리당과 같이 수도이전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몇몇 의원이 단식 투쟁까지 하며 반대했지만 한나라당은 무시했다. 선거가 눈 앞이었던 시절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시간이 좀 흐른 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통과시켰던 수도이전 특별법을 수도분할이라며 반대했다. 급기야 위헌 소송을 냈다. 자신들이 국회에서 한 일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얘기였는데 그들은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위헌 판결을 받아냈다. 당분간 선거가 없는 시절이었다.  

출처: 중앙일보 2004년 6월 18일

그 위헌 판결 때문에 수도이전 특별법은 축소되어 세종시 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후보는 대선 전 이 법에 따라 세종시 이전을 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다. 선거가 끝나고 이명박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는 다시 세종시 이전을 지키지 않겠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은 수도이전 특별법을 선거 전에 찬성했다 선거 후에 반대해 세종시로 바꾸고, 선거 전에 세종시 이전을 지키겠다고 했다가 선거 후에 세종시를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국민을 금붕어로 알고 있는듯하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걸 다 까먹는 그런 존재로 말이다. 

부시 재임 말기 금융위기가 터지자 부시는 공적자금 투입을 요청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반대했는데, 그걸 주도한 건 부시의 소속당인 공화당이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 자유를 주장하는 공화당의 입장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보수당이라면 못해도 이런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에겐 그런게 없다. 한나라당은 사실 모든 것이 집중된 금싸리기 서울을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게다. 한나라당의 이해관계는 금싸라기 서울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하는 정당이 가져서는 안되는 천박한 욕망이라 대놓고 얘기했다가는 표가 떨어질터이니 선거 때마다 말을 바꾼다. 그렇게 사기 비스무리하게 하여도 우리 국민은 금붕어 기억력이라 금방 까먹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인걸까.

그러나 슬프게도 어쩌면 한나라당은 국민을 정확히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금붕어 취급하는데도 우리 국민은 한나라당을 가장 많이 지지하니 말이다.

영진공 철구

 

“더 문”, 미스테리라기 보다는 윤리적 문제 의식을 다룬 영화

<더 문>은 제목처럼 달을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입니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만나는 샘 록웰의 단독 주연작이지요. 스틸 컷들을 대충 보면서 스릴러물이거나 경우에 따라 공포 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세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막연하게 SF 공포영화류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문>은 SF이기는 하지만 스펙타클한 미스테리 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의 휴먼 드라마에 좀 더 가깝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탄소 에너지 시대를 끝마치고 달 표면에서 청정 에너지원을 채굴해서 사용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라는 나레이션이 깔립니다. 그래서 <문라이트 마일>(2007) 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배경만 달 표면일 뿐 <더 문>에서는 국제 분쟁의 조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2주 후에는 3년 간의 근무 기간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 가족들과 다시 만날 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 샘 벨(샘 록웰)의 몹시 외롭지만 평화로운 달에서의 일상이 펼쳐질 따름입니다.

* 고강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더 문>에서의 분쟁 – 드라마를 구성하기 위한 갈등의 배치 – 은 다름아닌 샘 벨과 샘 벨 간에 발생합니다. 이게 뭔 소린고 하니 3년 간의 근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던 외로운 달 나라 우주인 샘 벨이 사실은 복제인간이었던 것이죠. 작업 중 사고로 인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샘 벨이 의식불명에 빠지자 새로운 3년을 시작하게 될 또 다른 복제인간 샘 벨을 시스템이 깨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새로운 샘 벨이 회사의 지시를 무시한 채 사고를 당한 다른 샘 벨을 구출해오면서 시작됩니다. 새로운 샘 벨이 회사의 지시를 따라 구조대의 도착을 얌전히 기다리기만 했다면 샘 벨(들)은 영원히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을테지요. 그리고 지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와 어린 딸이 오래 전 과거의 기억에 불과하다는 사실도요.

갑자기 두 사람이 된 샘 벨은 서로가 진짜임을 주장하며 다투게 됩니다. 하지만 샘 벨과 샘 벨 간의 갈등이란 결국 자신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에서 오는 충격과 함께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온 회사의 비윤리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하여 <더 문>은 놀랍게도 리들리 스콧 감독의 클래식 <블레이드 러너>(1982)와 정서적으로 같은 연장선 상에 놓인 작품이 되고 맙니다. 물론 액션 씨퀀스의 스케일이나 존재론에 대한 고민의 깊이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분명하긴 하지만요.

<더 문>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사용량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이 중요한 작업에 어찌하여 단 한 명의 작업 인원만 파견해놓고 있느냐는 부분입니다. 최소한 기지 하나에 7 ~ 8명의 팀 조직은 갖다놔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나 싶은데 영화는 샘 벨과 샘 벨 간의 갈등과 해법을 위해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관객이라면 누구나 샘 벨이 근무하고 있는 달 기지의 이름 “SARANG – 사랑”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하며 즐거워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데이빗 보위의 아들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감독 던칸 존스가 자신의 장편 데뷔작 <더 문>을 만들 당시 여자친구가 한국인(당시 런던필름스쿨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이사강)이었다고 하는군요.

감독의 말로는 미래의 달 에너지 채굴 사업을 하는 회사가 미국과 한국의 합자회사라는 설정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건 삼성이 첼시 유니폼의 스폰서를 하는 등 영국 내에서 우리나라 기업과 제품들의 입지가 엄청 좋아진 최근의 경향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엔 중국어(한자)가 좀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영어권 사람들에겐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샘 록웰의 대표작은 아직까지는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컨페션>(2003)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샘 록웰이 출연한 SF 영화라고 하면 역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 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죠.

어쨌든 <더 문>은 그야말로 샘 록웰 혼자 고군분투하는 1인 영화라고까지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케빈 스페이시가 친구 같은 컴퓨터 거티의 목소리로 출연했고 샘 벨의 아내나 다른 등장 인물들이 간간히 모습을 비추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씨퀀스에는 역시 샘 록웰이 연기하는 병든 샘 벨과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된 팔팔한 샘 벨로 채워집니다.

혹시 샘 록웰이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더 문>은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요.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 제작비가 올라갔을 것이다, 입니다. 워낙 잘 하시는 데다가 인기도 많은 배우들이 많으니 샘 록웰이 아니었더라도 <더 문>은 좋은 영화로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한다는 거죠. 브래드 피트 주연의 <더 문>으로 한번 더 보고 싶어 하는 건 과연 저 혼자 뿐일까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