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리도 구질구질하단 말인가 …



금번 개각과 관련한 인사청문회를 보았다.

나라의 일꾼들에 대한 소중한 검증의 자리를,
하루나 이틀에 걸쳐 후딱 치르는 바람에 무엇 하나 제대로 살펴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확인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어쩌면 그리도 구질구질하냐는 것이다.

“죄송하다”
“부덕의 소치다”
“잘 몰라서 그랬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었다”
“사과하겠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지 않겠나”
“앞으로 잘 하겠다”
등등 …

이런 말들이 과연,
국민과 나라의 안녕을 위해 몸바쳐 일하고자 하는 고위관리 후보자들이,

자신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겨달라고 요청하고 검증받는 자리에서 나올 말들인가.
이건 흡사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관대함을 구할 때 하는 읍소에 다름아니지 않은가.

능력은 검증할 생각도 않고 과거의 일을 들춰 흠집내기에 열중한 검증인들의 탓이 크다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물어보자. 개인의 능력은 대개 어떻게 평가하는 건지를.

적어도 내가 알기로 개인의 능력은 그동안 해온 일을 놓고 평가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리고나서 그걸 기준으로 삼아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잘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비전을 검증하게 된다.

헌데 후보자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의 대부분이 죄송하고 송구할 따름이며 잘 몰라서 그랬던 것들일 때, 과연 그 후보자가 앞으로 얼마나 잘 할 것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고위관리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회개와 갱생의 자리도 아니고 말이다.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묻자. 우리 나라에 정말 인재가 그리도 없는 것인가.

그래서 저렇게나 죄송해야 할 일이 많고 재테크 등에는 범법을 저지를 용의가 있었거나 몰랐거나 하는 사람들을 굳이 저런 자리를 통해 면죄부를 주어서라도 막중한 일을 맡겨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나라에 편법과 무지를 용인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급박한 변괴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나도 알고 있고 그들도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허나,
그들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음에도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그래서 더는 할 말이 없긴 하나,
한 가지 엉뚱한 이유로 아쉬웠던 건 저 많은 후보자들 중 어느 하나도 자신의 행위와 생각에 대해 당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 하나 과거 발언과 행동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루어진 거라고 얘기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임명권자에 충성하는 것이 곧 나라의 발전을 이룩하는 길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신이라도 펼쳐보인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외가 있긴 했다.
선출직이면서 임명직이고 그래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장관자리의 후보자가 “지금 단계에선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람을, 반대하는 사람이 찬성하는 사람을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는데, 재밌게도 그 장관자리가 말하자면 찬성하는 사람들, 반대하는 사람들과 잘 소통하여 원활한 국정에 보탬이 되게 하라는 임무를 띄고 있는 걸 보면 저 발언은 제대로 에러이다.

어쨌든,
국회에서의 검증내용이 어떠하든 임명권자는 그냥 밀어 붙이거나 체면치레 정도로 막아보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더 이상 지적하는 것이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부디,
후보자들 모두 청문회에서 자신의 입으로 하였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잊지말고 가슴에 새겨 국정에 임하기를, 그리고 행여나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나쁜 생각은 모두 버려주기를 바란다.


“This country needs more than a building right now.
It needs
hope
.”


영화 ‘V for Vendetta’ 대사 중에서

영진공 이규훈

 

다크나이트 =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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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크나이트>에 대해 특별히 더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향한 수많은 칭찬들에 대해 대부분 동의하기 때문이죠. 특히 이 영화에서 히스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만화 속의 인물을 “실사화” 한다는 말의 의미를 한 수준 높여놓았습니다. 앞으로 만화원작 영화 주인공을 맡는 배우들, 모두 고민 좀 할 겁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히스 레저가 조커로 이루어낸 것은 대단합니다.

여기서는 히스레저의 연기를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조커가 차지하는 의미를 한번 살펴볼 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조커가 지나친 능력자라고 비판을 합니다. 그렇죠. 조커는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이 어떤 수를 내 놓을지 예측하고 거기에 한방 뒤통수를 때리는 멋진 수를 준비해놓습니다. 조커의 예상대로 되지 않은 일은 그 2척의 페리보트 건 정도에 불과하죠. 게다가 조커의 부하들조차 모두 대단해서 조커의 의도를 언제나 100% 실현합니다. 그러니 이거 비판할 만하지 않습니까?


리모콘이 잠깐 작동 안되기도 …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은, 비록 <다크나이트>가 상당한 사실성을 추구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로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조커만 실수가 없나요? 배트맨도 그렇죠. 아무리 돈과 첨단기술로 처발랐다고 해도 매일같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데 무고한 희생자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혼자서 뛰 댕기다가 한번이라도 범죄자나 경찰들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비덴트는 또 어떻습니까? 얼굴반쪽이 그 꼴이 되어서도 돌아다닌다는 건 말이 되나요? 그렇게 피부가 없으면 금새 감염되어 골로 갈텐데 말이죠. 이 영화가 사실적이라는 건 이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 각각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일 뿐입니다. 이 영화도 역시 수퍼히어로물 맞습니다.

이 영화에는 애초부터 실수란 없어요. 즉 영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의외성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누군가의 의도와 계획이 깔려 있어요. 원래 모든 게 계획대로 되는 이야기는 그게 현실이든 영화든 재미가 없기 마련입니다. 의외성이 없으면 긴장도 없고, 긴장이 없으면 재미도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미와 긴장으로 가득하죠. 도대체 어떻게? 한 캐릭터가 의외성의 역할을 해주고 있거든요. 그게 바로 조커입니다.


그래, 바로 나!!!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조커야 말로 진정 ‘조커’의 존재의미에 충실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커는 애초부터 의외성의 화신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의외성은 트럼프 게임에서 조커 카드가 맡은 역할이기도 하죠. 조커 카드가 등장하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트럼프 게임의 규칙이 일시적으로 뒤흔들립니다. 즉 조커로 인해 게임의 규칙에 의외성이 추가되는거죠. 게다가 이 의외성은 재미와도 직결됩니다. 어떤 이야기가 관객의 기대대로만 흘러갈 때 그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가 됩니다만, 관객의 기대와는 다른 의외의 결말일 때 관객들은 놀라고 비로소 재미를 느낄 준비가 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게 조커죠. 그렇게 보면 이 영화의 조커는 <마스크>의 짐캐리가 맡은 역할과 결국 같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마스크>에서 악당들에게 마스크를 쓴 짐캐리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자기들이 공들여 준비한 은행털이를 순식간에 파토 내버리고, 총을 아무리 쏴도 안 죽는 괴물 아닙니까. 단지 차이가 있다면, <마스크>에서는 악당이 당하니까 관객들은 편하게 웃으며 그걸 즐겼지만,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관객들이 감정이입해놓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대상으로 그 짓을 하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기지 못하고 관객들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내가 바로 조커라고 …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일은, 이 영화속 세계관이 현실과는 엄청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이 누군가의 계획이나 의도로 이루어지는 이 영화에서는 덕분에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은 전부 조커 탓이 되어버립니다. 네, 이 영화에서는 이게 다 조커 때문입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배트맨은 마침내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애꿎은 희생자들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조커만 없었더라면, 하비덴트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조커만 없었더라면 배트맨은 정의의 수호자로 계속 남아있었을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아닙니까?

누군가 그러더군요. 순수한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들이 오염시킨다고요. 원래 촛불집회는 순수했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서 배후조종하는 좌파 탓에 결국 과격해졌다고요. 지금 이 나라가 이 꼴이 된 것도 결국 10년간 곳곳에 뿌리내린 좌파들 탓이고 말이죠.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이 좌파 탓”이라는 주장.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며칠 전에는 심지어 5개 공중파 방송국이 모두 이와 같은 내용을 방송 하던데,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 나라가 정말 빨갱이 나라인 줄 알았을 겁니다. 그 사람들의 논리는 <다크나이트>의 세계관과 딱 맞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조커는 바로 좌파이고 빨갱이들입니다.

이 세계관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런 세계관은 현실을 왜곡하고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배트맨이 진정한 현실세계에서 비슷한 짓을 했다면, 조커가 없었더라도 결국 사고를 쳤을 겁니다. 그 무식한 텀블러로 길거리를 폭주하거나, 심지어는 기관포로 주차된 차들을 박살내며 달리는데 사람이 안 다칠 수 있겠어요? 하비덴트도 그래요. 아무리 청렴 강직한 검사도 고담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권력에 심취하다 보면 언젠가는 타락했을 겁니다. 현실의 ‘모래시계 검사’가 그런 것 처럼요. 꽤나 경력을 쌓은 형사라도 병원에 입원한 자기 어머니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의 복지시스템 밖에 없는 동네라면 경찰이 타락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요. 무엇보다도 범죄조직이라는 게 그렇게 발본색원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죠. 팔코니 조직을 죽이면 다른 조직이 등장했겠죠. 결국 배트맨의 전쟁은 끝없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그 와중에 배트맨은 민폐를 끼치다가 공적이 되는 건 거의 당연한 수순이겠죠. 다시 말해 의외성은 조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의 특성이라고요. 즉, 현실에서는 이 세상 그 자체가 바로 조커입니다.


미안해, 하비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세계관을 믿는 자들에게는 공포와 억압에의 욕구가 생겨난다는 겁니다. <다크나이트>의 세상에서는 배트맨은 바로 자기 곁에 있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경찰청장(청수?), 자기 형제와도 같은 집사(똥과니? 아니면 상드기?), 그리고 경제와 기술 시스템을 담당하는 또 다른 집사(만수? 이거 써놓고 보니 정말 비슷하다는…) 이렇게 믿을 놈이 적다 보니 배트맨의 일들은 애초에 밀실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지요. 게다가 요소요소에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어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연히 가능하다면 모든 인사는 낙하산 시스템이 되겠죠. 배트맨은 시민을 위해 노력하지만 절대 고독에 빠져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민들 속에 바로 그가 싸워야 하는 조커의 하수인들이 암약하고 있거든요. 온순한 시민들은 믿어도 됩니다. 하지만 그 시민이 나에게 반항하는 순간, 배트맨은 의심에 빠집니다. 저 인간이 진정 자기의지로 나를 공격하는 거냐, 아니면 조커의 부하라 나를 공격하는 거냐… 의심스러우면 일단 때려잡고 볼 일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을 보호하고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모두의 뒷조사를 아주 철저하게 해야 하고 사상검증까지 해야겠죠. 이러다 보면 ‘5호 담당제’ 같은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시스템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권력자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와 불신이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마지막 선은 … 차마 .. 그을 수 없었다능 …

그나마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은 선을 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부르스 웨인 뿐만 아니라 그 동료들도 모두 원칙과 상식의 선이 뚜렷하기 때문에 서로를 규제하고 선을 지키죠. 하지만, 스크린 밖의 세상에서는 그런 이상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이 더욱 다크해지는 것이고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