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의 양아치 자본주의

 

경쟁해야 된다며? 자유 경쟁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된다며?

하다못해 초등학생들도 경쟁시켜야 된다고 애들 성적 만천하에 까고, 학교 등급 만천하에 나발부는 생지랄을 떤 게 누구니? 니들 아니니?

그런데 21일날 발표한 부동산 정책 보니깐 건설사는 예외더라? 전매제한 완화하고,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가능케 하고, 분양가 상한제 흔들고, 아파트 후분양제 사실상 없애고, 미분양 아파트는 정부가 매입해 주고. 왜 건설사는 경쟁 안 시키니?

지들이 존나게 만들어서 존나게 비싸게 내놓은 아파트 안 팔린 게 국민 탓이니? 그걸 왜 국민이 책임지니? 건설사는 경쟁 안 해도 경쟁력이 자동빵으로 생기니? 니들이 공구리 노가다 출신이라고 팔이 안으로 굽는 거니? 아니면 니들이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다주택자 협의회라서 집값 떨어지면 골프장 회원권 줄여야 될 거 같아서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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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주인인 국민은 쎄빠지게 경쟁시켜서, 사교육비 팍팍 부어, 존나게 비싼 등록금 쳐내가며, 어렵사리 대학 졸업해도,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 하나 잡을까 말까인데 니들은 니들끼리 빨아주고 핥아주면서 배따지 두드리니? 국민들은 존나게 경쟁시켜 뒤쳐진 놈은 60일을 단식해도 돌아봐 주지도 않으면서, 농가 부채로 자살하는 농민들은 ‘지못미’ 한 번 달아주지 않으면서, 니들끼린 자빠지면 세워주고, 넘어지면 아까징끼 발라주고, 밥 굶으면 목구멍 안으로 밥숟가락 들이밀어 주니?
 
그래서 니들은 탈세하고, 뇌물 받아먹고, 위장전입해도 괜찮고, ‘니들 정책 싫어’라고 소리치는 국민은 ‘법과 원칙’이라고 다 잡아가니? 그 놈의 ‘법과 원칙’은 왜 니들만 비켜가니? 법원이랑 검찰이 니들 똘마니다 이거니?

그리고 니들 양아치니? 자유로운 자본주의 경제가 니들 원칙 아니었니? 재벌들 사면까지 해줬는데 투자 안 한다고 삐졌다며? 그런데 사면해주면 투자해야 하니? 법에 그렇게 나와 있니? 왜 재벌한테 시발시발거리니?

재벌이야 돈 될 일이 없으니까 투자 안 하겠지. 돈이 된다면 투자 안 할 바보가 어딨니? 니들의 임무는 자본한테 투자 안한다고 협박질하는 게 아니라 자본이 투자할 좋은 환경을 만드는 거 아니니? 그런데 니들이 경제 다 망가뜨려 놓고 투자 안 한다고 지랄대면 이게 자본주의니? 사면해주면 투자해야 된다는 법 조항이라도 있니?

법에도 없는 의무를 왜 재벌들한테 씌우니? 정부가 나서서 투자계획, 경제계획 다 세우고 관리감독하는 건 니들이 그렇게 미워하는 공산당 빨갱이들 수법 아니니? 니들 공산당이니? 니들 빨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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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입 돌아간다는 처서에 옵하 야마 확 돌아갈 일이 또 있드라?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대변인, 방송통신 위원장이 KBS 이사장이랑 KBS 후임 사장 유력 후보랑 시내 호텔에서 만났다며? 청와대는 KBS 사장 인선에 아무런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게 엊그제 아니니? 전혀 믿을 수 없는 소리를 그렇게 뻔뻔히 씨부렸으면 들키지는 말아야지? 사람 꼭지 돌아가게 이 무슨 개지랄이니? KBS 사장에 관한 얘긴 없었다고? 그럼 왜 만났니? 그것도 호텔에서? 옛날 니네 당 대변인 말마따나 그냥 불륜으로 만난 거니? 남자들끼리? 유 스핀 미 롸잇 나우?

박지원 의원이 얘기하드라. 니들이 잃어버렸다는 10년. 그 10년 전 니들이 청와대에 앉아 있을 때는 KBS 보도국장이 청와대 공보수석실에 나와 근무했다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미치겠니? KBS가 9시 뉴스 시그널 땡 치자마자 정권 애널 서킹해주던 시절, 맨날 오르가즘에 질질 싸고 좋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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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니들도 대통령 기록물 압수수색한다드라? 비밀로 지정돼 있는 대통령 기록들 몰래 열어본 뒤 청와대에 달려가 보고하고 뼈다귀 하나 얻어 먹을 생각하니 좋니?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했을 때 불어올 파장 따윈 꼬리 살살 흔들고 뼈다귀 받아 먹는 재미에 빠져 요단강 저 너머 바이바이니? 아유 귀여워 디지겄네. 정권의 강아지들.

그런데 니들이 하나 등한시한 게 있는 건 아니? 니들 집권하던 시기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 바로 인터넷.

인터넷에는 모든 기록이 DB화돼 쌓여 있걸랑. 니들의 찬란한 과거 꼴통짓 찾는 일을 10년 전에는 관련 정보에 접근이 용이한 전문가들만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초딩들도 할 수 있다는 얘기야.

더이상 예전처럼 쉽게 속일 순 없을 거라는 거 짐작은 하니? 내 장담하마. 4년 안에 니들을 이 나라에서 왕따 못시키면 내가 이 나라를 뜰란다. Zot 같아서 못살겠다. 정치인 때문에 국민이 Zot 같아서 못 살겠단 말이다.


영진공 철구

**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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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비를 타고”, 고전 뮤지컬이자 멋진 메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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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 차림의 세 남녀, 신나게 춤을 추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해프닝을 배우인 세 남녀의 갈등과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고전 뮤지컬이다. 또한 한편으로, 그 전환기에 있어 이전 영화에서는 결코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사운드’가 어떻게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는가, 그럼에도 그 ‘사운드’ 역시 영화의 다른 요소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기만적인가(즉 트릭으로 관객을 속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메타-영화, 즉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은 당대 최고의 스타 커플인 돈 록우드(진 켈리)와 리나 라먼(진 헤이건) 주연의 새로운 영화 시사회장이다. 돈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최고급 교육을 받았고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는 공연을 해왔으며, 덕분에 어딜 가나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고 급기야 영화사에서도 그를 ‘모셔갔다’고 소회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때 스크린에 흐르는 화면은 돈의 발언과는 정반대되는 광경들이다. 그는 단짝친구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코스모(도널드 오코너)와 어른들의 담배연기가 뿌옇게 날리는 당구장에서 공연을 시작해 그리고 각종 시골의 가난한 무대를 떠돌았던 싸구려 댄서였고, 그가 스타가 된 기회를 잡은 것 역시 기절해서 실려나간 스턴트맨 대신 땜빵 스턴트맨 역할을 처절할 정도로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돌은 일차적으로 관객들에게 아이러니에 기반한 웃음을 안겨주기 위한 코믹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앞으로 다루게 될 내용, 즉 이미지 중심이었던 무성영화에서 사운드가 결합하는 유성영화로 넘어가면서 영화란 것이 어떤 의미를 새로이 갖게 되는가, 아울러 영화 안에서 이미지와 사운드가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는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이미지와 사운드 간 모순은 이후 다시 한번 반복된다. 새 (무성)영화를 촬영하는 촬영장에서 돈 록우드는 캐시(데비 레이놀즈)가 해고당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리나 라먼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돈 록우드와 리나 라먼은 카메라 앞에서 다정한 연인 연기를 펼치면서 실제로는 격렬한 말다툼을 벌인다.

바야흐로 워너사의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가 개봉돼 큰 성공을 거두고, 돈 록우드와 리나 라먼의 새 영화도 급작스럽게 유성영화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목소리가 워낙 깨는 하이톤인 데다 발음도 후지고 상스러운 리나 라먼의 목소리 연기가 문제가 된다. 강력하게 스타파워를 행사하고 있는 데다 안하무인 공주병인 리나 라먼은 돈 록우드와 사랑하는 사이게 된 캐시를 구박하고 쫓아내는 한편, 형편없고 성의없는 목소리 연기로 스튜디오에 막대한 고민을 안겨주면서도 그 해결에 있어서는 별다른 대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완성된 영화의 첫 시사회에서 영화가 그토록 혹평을 받았던 것은 리나 라먼의 형편없는 목소리와 영화 전체의 어설픈 사운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의 스타일이 유성영화에 걸맞지 않은, 사운드만 있을 뿐 무성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즉 사운드라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 그에 걸맞는 새로운 영화문법을 선보이지 못하면서 이미지와 사운드 간 어마어마한 괴리를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사운드 사고가 나면서 영화는 더욱 엉망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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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게 되는 세 사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들은 이미 찍어놓은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하는 한편 리나 라먼의 목소리 대역으로 캐시를 투입하는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 그러니까 무수한 영화의 장르에 있어 코미디든 드라마든 액션 어드벤처든 호러든 시대극이든, 모든 장르들이 무성영화 시절에도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춤과 함께 음악을 기본으로 하는 이 뮤지컬이란 장르만큼은 유성영화의 발명에 힘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실 영화사상 첫 유성영화라 일컬어지는 <재즈싱어>가 음악영화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무성영화 시절에 음악은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스크린 바깥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수적 도구에 불과했지만, 유성영화가 도래하면서야 음악은 비로소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사운드의 일부로서 비로소 영화의 스토리와 플롯 및 캐릭터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영화의 주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캐시가 리나의 목소리를 대신하게 되는 과정에서 또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운드의 제작의 기술 중 ‘동시녹음’, ‘더빙’과 ‘후시녹음’ 기술의 발전상이다. 지금이야 많은 영화들이 커다란 붐마이크를 대동한 붐맨의 활약과 함께 동시녹음으로 영화를 촬영하기 마련이고, 한국의 영화인들은 대체로 동시녹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제대로 만드는 것이란 편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헐리웃에서는 (의외로) 지금도 후시녹음이 적지 않은 비율로 채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뮤지컬을 기본으로 하는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들은 연기하는 배우와 노래 더빙을 해주는 가수-배우의 분리가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한국은 물론 헐리웃에서도 다른 가수에 의한 노래 더빙은 그렇게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부른 것이 여전히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고.) 무성영화 시절, 카메라가 이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마자 카메라 이동과 동선에 관한 무수한 영화기술들이 단기간에 쏟아졌듯, 사운드 역시 일단 유성영화라는 게 가능하다라는 사실이 발견되자마자 다양한 사운드 제작 기술이 우후죽순 발명되며 영화에 적용되었던 것. <사랑은 비를 타고>는 이것을 영화에서 내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마침내 완성된 영화의 시사회 파티날 리나의 목소리가 실은 다른 배우에 의해 더빙된 것이라는 사실이 대중 앞에서 폭로될 때, 이 장면은 파렴치한 리나의 악행을 고발하는 장면일 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을 관객 대중에게 영화 사운드의 기술 트릭이 공개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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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빙 및 후시녹음의 기술이 대중에게 소개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첫 유성영화가 나온지 25년만에 만들어진 <사랑은 비를 타고>는 그 25년간 영화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존재 스스로가 증명하며 사운드의 도래를 예찬하는 영화다. 사실 유성영화의 도래는 수많은 영화감독과 영화배우를 실업자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본질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일부 영화감독들의 격렬한 저항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버스터 키튼 역시 유성영화의 도래와 함께 완전히 퇴출돼버린 감독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랑은 비를 타고>가 보여주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뮤지컬의 세계는, 마치 “거봐, 유성영화는 이런 즐거움을 주잖아.”라며 으시대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사운드와 영화의 힘을 최대한 살리며 아주 아름답게 연출된 이 영화는, 실제로는 노래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노래에 맞춰 스토리가 만들어졌을 만큼 음악과 춤이 먼저였던 영화다. 유성영화 시대에 기득권을 잃고 밀려날 수밖에 없는 목소리 나쁜 스타의 비애가 아주 조금은 드러날 법도 하건만, 리나가 그저 제멋대로의 성격으로 악당 노릇을 하며 희화화만 되는 것도 이 영화가 ‘유성영화 예찬’의 입장을 강하게 견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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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史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즉 비가 오는 거리에서 진 켈리가 우산을 든 채 춤을 추는 장면은 단 4컷으로 씬이 구성되는 동안 유려하고 완숙한 카메라 동선과 앵글을 선보이며 더없이 아름다운 비주얼을 선사한다. 블리치바이패스 같은 기술이 발명되기 훨씬 전인 이 시절, 빗물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스탠리 도넌이 사용한 방법은 (imdb의 trivia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의하면) 무려 물에 우유를 섞는 것이었다고도 하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에 새로 추가된 사운드라는 기술을 예찬하고는 있지만, 그 유성영화라는 것이 그저 사운드가 이미지와 병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변증법적 투쟁을 통해 합으로 나아감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나온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의 모순 장면도 실은 이 ‘합’의 힘을 강조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진공 노바리

ps. 탭댄스 배우고 싶어라 …

“다크 나이트”, 슈퍼 히어로는 필요한 것일까?

 


슈퍼히어로를 보면 나는 언제나 미국을 떠올린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자본주의 자유세계를 위협하는 빨갱이 베트콩이여,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라 일갈하며 그들과 전쟁에 나선 미국.
이런 미국의 영화 속 분신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슈퍼맨이었다.

당시에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당시가 아니라 아직도 많다. 광복절날 시청 앞에서 성조기 흔드는 영감들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는 슈퍼 미국을 신념으로 받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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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미국이 슈퍼맨처럼 순수하게 의로운 목적만을 가지고 그 많은 전쟁을 벌였던 것일까? 단지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베트콩들은 정말 지구의 평화를 파괴하는 악의 무리고,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아프가니스탄, 후세인과 이라크는 정말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우주 몬스터일까?

그러나 미국이 물리치지 못한 베트남은 여지껏 지구를 정복하려는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악의 무리 이라크는 지구 평화를 파괴한다는 대량살상무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라크는 배럴당 석유생산비용이 가장 적다는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슈퍼맨으로 상징되는 슈퍼히어로 미국은 지구의 평화를 지키려는 순수한 의도 따윈 없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자신의 슈퍼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우주 악당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우주 악당들은 사라졌지만 지구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뉴스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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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 정도까지 와버렸다. 부시 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바닥을 치고 있고 사람들은 의심하고 있다. 과연 슈퍼한 히어로라는 존재가 정녕 우리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필요한 것일까?

그래서 <스파이더맨2>가 나온다. 슈퍼 파워를 지니고 있는 피터는 집세도 못 내고 있다.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공립학교 지원금은 줄어들고, 복지예산은 삭감되고, 각종 보조금은 폐지되고, 길거리엔 노숙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피터는 그래서 슈퍼 히어로 미국의 내부를 돌아보는 최초의 히어로였다. <스파이더맨3>에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슈퍼 파워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드러나려나? 하지만 피터는 역시 슈퍼 미국의 피를 물려받은 히어로답게 성조기를 휘날리며 악의 무리 샌드맨을 두드려 팼다. 그리고 자신의 고민을 ‘젊은 시절 잠깐 방황이야말로 슈퍼한 인간의 매력이지’라는 뉘앙스로 포장하며 끝내 히어로 본연의 모습으로 리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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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우리의 질문도 바뀌지 않았다. 과연 슈퍼 히어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이때 우리의 고민을 해결해 줄 흑기사를 자처하며 브루스 웨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다크 나이트>.

어쩌면 고담시와 배트맨으로 상징되는 미국이야말로 현실의 미국과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의료보험이 없어서 손가락이 날아가고 있는데, 정부는 최신 무기로 돈지랄 중이다. 그리고 이 시민들을 지켜야 하는 법은 투페이스 번트처럼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기존 배트맨의 만화 같은 영상을 벗고 고담의 리얼리티를 살려놨다. 현실 같은 고담은 미국의 현실이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려면 물론,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도 있어야 한다. 처음 등장하는 악당은 갱들. 이들의 무기는 돈줄, 바로 현금이다. 배트맨과 경찰은 이 대량살상무기 현금을 찾아내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량살상무기 현금을 찾아내 없애버리는 사람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슈퍼 악당 ‘조커’다.

그렇게 조커는 말한다.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악당을 찾아 없애면 지구의 평화가 올 거라고 생각해? 후세인이 사라졌지만 지구에 평화는 오지 않았어. 그루지아와 러시아는 전쟁을 시작했고, 중국은 티베트를 유혈 진압했으며,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아닌 소수민족이 중국에서 테러를 일으켰어. 끊임없이 우주 악당을 만들어내 자신의 슈퍼함을 과시하는 것으로 지구의 권력을 장악한 네가 까먹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지. 우주 악당이 없다 해도 지구는 평화로운 동네가 아니야. 혼란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 바로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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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구는 평화로운 동네가 아니다. 슈퍼 악당이 있건 없건 간에 혼란은 있기 마련이다. 조커는 지구 정복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슬프지만 혼란이란 그런 거고 우리 사는 삶이 그런 거다. 그런데도 슈퍼 히어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슈퍼 악당을 찾아내 평화를 지키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혼란을 슈퍼 악당이라고 부추기며 전세계에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 그리고 덤으로 배럴당 생산비용이 가장 싼 석유까지 챙겨가는 미국. 그렇다면 과연 누가 슈퍼 히어로고, 누가 슈퍼 악당일까? 과연 슈퍼 히어로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조커는 그래서 배트맨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너의 정체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고담시는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다. 미국이 슈퍼 히어로라는 가면 속 정체를 밝히지 않고 슈퍼 악당을 찾는 전쟁을 계속하는 한 지구촌 역시 혼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그리고 배트맨은 이제 고민해야 한다. 정체를 밝힐 것인가, 말 것인가.

배트맨은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굉장히 상식적인 답을 한다. 이제 혼란을 바로잡는 일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법을 지키는 검사 하비 덴트가 맡아야 된다는 답. 비록 그 법이라는 것이 고담시에서는, 그리고 고담 같은 미국에서는 ‘투페이스 던트’처럼 두 얼굴의 법이지만 그래도 혼란을 바로잡는 일은 슈퍼 파워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법이 맡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답. 자신의 슈퍼 파워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게 도울 뿐, 진정한 슈퍼 히어로는 배트맨이 아니라 ‘법’이여야 한다는 답. 상식을 뛰어넘는 슈퍼한 놈들만 판치는 히어로의 세상에서 만나는 상식적인 답이란 그래서 놀라운 것이다.

“슈퍼 히어로는 과연 필요한 것일까?”

결국 우리의 질문에 대한 배트맨의 답은 이런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배트맨, 스파이더맨, 슈퍼맨처럼 슈퍼 파워를 가진 히어로가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과 일반인의 정서를 담은 이 시대의 법이 바로 슈퍼 히어로가 돼야 한다.”

그래서 <다크나이트>는 슈퍼 히어로 미국을 부정하는 가장 진보한 슈퍼 히어로다.

*

미국은 이처럼 영화가 정치를 앞서간다. 이라크 전이 한창일 때는 남의 집구석 걱정하지 말고 우리 집구석이나 잘 챙기라며 집세를 걱정하는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2>가 나오더니, 맥케인과 오바마의 대선을 앞두고는 미국은 슈퍼 히어로가 되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질문을 던지는 <다크나이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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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이런 것 아닐까? 시대를 앞서 먼저 상상하고 창조하는 이정표의 역할. 게다가 이 영화는 진지하게 각잡고 사색하는 영화가 아니라 남녀노소 단체관람에 무리없는 블록버스터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를 앞서는 영화를 만나기 어렵다. 밤 12시까지 보습학원 보내고 입시학원 보낸다고 인간의 창의력이 늘어나진 않는다. 놀란 감독은 7살 때부터 영화를 찍었고, 문학을 전공했다.


영진공 철구

콘스탄트 가드너 (The Constant Gardener, 2005), “정치 스릴러냐? 러브 스토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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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 랄프 파인즈의 모습은 언듯 톰 클랜시 원작 영화에서의 해리슨 포드를 연상시키지만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그의 실제 캐릭터는 “성난 폭도들에게 머핀 한 조각씩을 권할 법한” 유순한 성격의 하급 외교관일 뿐이다. 화초 기르기가 취미인 그는 다국적 제약/유통 회사들의 반인륜적인 음모로부터 사실상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여행 중 비참하게 살해 당한 이후부터 비로소 사건의 중심부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영국 외무부와 다국적 기업들 간의 결탁을 파헤치는 영웅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때문이다. 이것이 <콘스탄트 가드너>를 정치 스릴러 액션이기 이전에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먼저 기억되게 만드는 이유다.

<시티 오브 갓>에서 입증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역동적인 연출 감각이 유감 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전작에서부터 함께 해온 세자르 샬론의 카메라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릴 만한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영화 속에 가득 담아냈다. 여기에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음악까지 더해지면서 <콘스탄트 가드너>는 시청각적인 풍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다. 배경음악을 자제하고 보다 건조한 영상이 어울릴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콘스탄트 가드너>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감을 잃지 않는 잘 연출된 풍성함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랄프 파인즈의 대표 캐릭터는 여전히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다혈질 러버보이지만 <쉰들러 리스트>의 독일군 장교나 <퀴즈쇼>의 대학교수도 있었고 <스파이더>의 정신분열증 환자와 <레드 드레곤>의 연쇄 살인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춘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콘스탄트 가드너>에서는 좀 더 일상적인 인물로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손쉽게 하여 마침내 영화의 중심적인 정서를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레이첼 와이즈는 단독 주연작은 드물지만 <미아라>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콘스탄틴>과 같은 액션물과 <어바웃 어 보이>와 <엔비> 같은 코미디까지 비중 높은 조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해온 배우인데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그녀의 헌신적인 연기는 이번 수상이 그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콘스탄트 가드너>에는 빌 나이, 피트 포슬스웨이트, 제라드 맥솔비 등 낯익은 영국계 조연들이 함께 출연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름 없는 아프리카의 단역 배우들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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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