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우강호”, 사랑은 강호의 악연을 넘어





서극 감독의 영화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에서 얻은 실망감은 왠지 한 주 뒤에 개봉한 오우삼 감독의 <검우강호>로 – 엄밀히 말하자면 오우삼 감독은 제작자에 가까웠던 것 같고 실질적인 연출은 대만 출신의 수 차오핑 감독이 도맡은 듯 – 반드시 상쇄시켜줘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관람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의도했던 대로 결과는 꽤 성공적이네요. 무협 영화에 관해 특별히 축적된 이력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고 또 기대했던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부분들 역시 많았습니다. 장르의 특성상 와이어에 의존하게 되는 무협 액션에 특별히 거부감을 느끼거나 광동어로 연기하는 정우성의 모습에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경우만 아니라면 누가 보더라도 크게 흠잡을데 없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인정할만 합니다.




<적인걸>이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기술적으로 80년대 홍콩 영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액션과 함께 이제는 보기만 해도 신물이 나오려고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결합 때문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텐데요, 일단 <검우강호>는 주제와 내용 면에서 최근 중국 블럭버스터들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는 점이 마음에 들더군요. 그 대신 고전적인 무협에 멜러적인 요소를 버무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와호장룡>(2000)을 연상케 하기도 했습니다.

너를 산 채로 묻어 저 위의 다리를 지날 때마다 널 생각하겠다는 잔뜩 뒤틀려버린 사랑과 서로 칼을 겨눌 수 밖에 없었던 악연을 끝내 극복해내는 진심어린 사랑을 직접적으로 비교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더군요. 나아가 <검우강호>는 탐욕과 배신,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복수혈전의 연속선상에서 벗어나기 힘든 운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운명을 극복하고 평범한 삶의 행복을 되찾고자 하는 개인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제 곧 50세의 나이가 되시는 양자경 누님이 <예스 마담>으로 처음 알려진 것이 80년대 중반이었으니 바야흐로 25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멋진 쿵푸 액션을 보여주고 계신 거네요. 이제는 슬슬 예스 마님 역을 해주셔야 할 시기에 우리의 한류 배우 정우성과 부부의 연으로 맺어지는 역할을 맡으셨으니 – 아마도 해외 배급을 위한 선택이었던 듯하고 양자경이 직접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 이걸 말이 안된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격려의 박수를 쳐드리고 싶더군요.

재미있는 사실은 <적인걸>과 <검우강호>에는 공통적으로 얼굴 성형이라는 요소가 중요한 설정으로 들어가 있는데요, <적인걸>의 성형이 비과학적인 변신술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검우강호>에서의 성형은 나름대로 고대 의학 기술의 쾌거임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이 다르더군요. 영화 속에서 양자경은 정우성과 멜러의 합을 맞추는 데에 있어서 물론 분장을 잘하고 나온 덕도 있었겠지만 성형 수술을 통해 한 차례 개조된 얼굴이라는 설정의 덕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검우강호>에서 정우성은 영화의 절반 이상 어리버리한 연기를 하다가 – 이 역시 설정의 덕을 보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역시나 고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쾌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세우(양자경)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분노하는 부분에서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는 아니지만 필요한 때에는 제대로 터뜨려주곤 하는 정우성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들과 대립각을 이루게 되는 흑석파의 고수들의 면면도 각자의 개성만 넘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허황되지 않는 캐릭터들이어서 보기가 좋더군요. 특히 냉소적인 표정과 자세로 일관하는 여문락의 캐릭터 연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흑석파의 두목으로 출연한 왕학기는 어디에서 낯을 익힌 배우이신가 찾아봤더니 <8인 : 최후의 결사단>(2009)의 마님이셨더군요. 흑석파 두목은 자칫 의도와는 달리 희화화되기 쉬운 캐릭터였는데 왕학기의 연기 내공이 잘 커버해준 것 같습니다.

영화 전반적으로도 고전 무협의 상상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잘 소화해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진공 신어지







 

게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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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기술을 과학과 의약품에 낭비할 셈인가?!


확실히, 21세기에 기성세대가 보는 대중문화의 주적은 컴퓨터 게임이다. 거의 모든 청소년문제, 사회문제의 원흉으로 게임이 지목되더니 마침내 정부에서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이용 규제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다중사용자온라인게임(MMOG)에 국한된 조치라지만 만약 이 법이 시행된다면 또 하나의 세계 최초를 달성하게 된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는 과정엔 학부모 단체의 압력이나 게임업계의 막연한 대응도 한 몫을 했고, 실제 사회 현상도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많은 사건들에 게임이 이래저래 엮여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죄다 게임 탓이라고 하는 건 부당하다. 컴퓨터게임에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오락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가치들이 담겨있다. 그게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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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갈켜줄께 …

첫째,
컴퓨터 게임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짜릿하고 경제적인 놀이다.

컴퓨터 게임처럼 안전한 놀이가 또 있던가? 물론 게임을 너무 오래하면 혈전이 혈관을 막아서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약간 높아진다. 하지만 그래봤자 여객기의 비즈니스좌석에 오래 앉아 있다가 같은 증상으로 죽을 확률보다 높지 않다.

컴퓨터 게임과 다른 놀이들을 비교해보라.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종목은 공에 맞아서 안경이 부러지거나(내가 두 번 그랬다), 팔꿈치에 맞아 입술을 꿰매거나(버락 오바마가 최근에 그랬다), 발이나 손 부상을 입거나(축구하다 다친 엄지발톱은 두 달째 퍼렇다), 심지어 밖으로 튀어나간 공으로 인해서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몇번 그런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다).

게다가 격렬한 운동 중에 심장이 멎는 경우도 가끔 있다. 자전거나 킥보드 같은 탈것들은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거나 교통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꽤 높다. 등산은? 2007년에만 등산 중 사망자가 112명, 부상자는 2923명 이었다. 10대와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사고사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개의 사고는 집 밖으로 기어나갔을 때 터진다.


사람잡는 스포츠, 등산 / 애들 잡는 도구, 킥보드


(컴퓨터 게임을 안하고) 농구를 하다가 입술이 찢어져 병원 가는 오바마

하지만 컴퓨터게임은 방안에 틀어박혀서 키보드나 게임패드만 두들긴다. 다칠 일이 없다. 그렇게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게임은 무지무지 짜릿하다.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면 당신이 언제 루프기동을 하며 적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칠 기회가 있겠나? 브라질 빈민가를 뛰어다니며 총격전을 펼칠 일은? 던전을 탐험하며 거대한 몬스터와 혈투를 벌일 가능성은? 빈사상태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장엄하게 목숨을 잃을 기회는? (그리고는 언제든 다시 부활할 기회는?) 모두 컴퓨터 게임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은 인류 역사상 최초다. 원래 짜릿함과 위험함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짜릿한 놀이는 그만큼 위험해야 했고, 위험하지 않으면 짜릿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컴퓨터게임은 좋은 것만 쏙 빼다가 당신 앞에 대령한다. 게다가 비용도 가장 적게 든다. 컴퓨터게임에는 축구화도, 공도, 운동복도 필요 없다. 그저 듀얼코어 이상의 PC와 키보드와 마우스와 고속통신망 만 있으면 된다.





현실? 바보들이나 거기서 놀라고 그래!!

둘째,
컴퓨터 게임은 지혜를 알려준다.

게임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 바보가 하면 더 바보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놀이를 통해서 학습을 시켜왔다. 학습의 기본은 반복 숙달이고 시행착오다.

“Practice makes perfect!”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게임 속에서는 그 두 가지가 일상이다. <갤러그>를 생각해보라. 당신은 똥파리들의 이동경로와 그것들이 뿌리는 폭탄의 궤적을 습득하기 위해서 수십, 수백번을 반복 플레이했을 것이다. 지루한 반복 끝에 마침내 당신 머릿속에는 <갤러그>의 구조가 그대로 들어서고 당신은 그 게임을 마스터한다.

사실 노인들의 지혜도 반복에서 나왔다. 농경시대에는 단지 춘하추동의 순환을 한번 더 경험했다는 것이 바로 지혜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실생활에서는 반복 경험의 기회에 한계가 있다. 춘하추동의 반복경험도 많아봤자 100회 이내다. 일부 카사노바를 제외하고는 연애 경험이 100회를 넘기진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게임은 거의 무제한으로 반복이 가능하다. 그것도 안전하게.





가상역사게임, 문명

미군은 요즘 컴퓨터 게임을 신병훈련에 활용한다. 가장 싸고 안전하게 실전에 필요한 훈련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첨단장비 개발업체에서는 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장비의 설계를 보완한다. 교육학자들은 인간이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실험해볼 기회가 많을수록 좋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제 게임 속에서는 가능하다. 게다가 게임 속 세계는 갈수록 세상의 진리를 담아간다.

폭력성으로 유명한 ‘GTA (Grand Theft Auto)’를 해본 나는 그 속에 담긴 범죄사회학적 고찰의 깊이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게임은 한 인간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어갈 수밖에 없는지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겠더라.

최근 타임머신 게임으로 유명한 <문명>은 인류 문명 발전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다. 왜 독재로는 어느 수준이상 발전할 수 없는지, 왜 교육을 제대로 시키면 시민들이 반항적이 되는지를 깨닫는데 이만한 교보재가 더 있을까.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어릴 적에 <심시티>나 <문명>을 좀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마, 가지고 있다.


미군의 모병게임, 아메리카’s 아미



범죄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GTA 시리즈

셋째,
컴퓨터 게임은 사회생활의 훈련장이다.

온라인 게임들을 생각해보라.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마우스 클릭과 단축키를 쓰는 기술 뿐일까? 아니다. 모든 멀티플레이 게임의 기본은 전략적 사고, 상대방의 수 읽기다.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고 그보다 한발 앞서는 것이다. 예측과 대응이 정확할수록 당신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수 읽기를 하려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조망수용(perspective taking)’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다. 그리고 이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모든 사회생활의 근간이다. 매너나 규칙의 가치도 멀티플레이 게임을 해봐야 이해한다. 한 놈이 반칙을 하면 게임 전체가 어그러지니까. 스포츠맨쉽이 그래서 나오는 거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속담도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일’은 혼자서 하는 공부다. 그리고 ‘놀이’는 여럿이 같이 노는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디지털 세대의 바둑이자 체스, 스타크래프트

고문관이 왜 탄생하나? 멀티플레이 게임을 안했기 때문이다. 그걸 안했으니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치가 없고, 앞뒤가 꽉 막히게 되는 거다. 예전에는 동네 골목이나 공터에서 멀티플레이 게임을 했지만 지금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그것을 배운다. 그러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원칙들을 배운다.

사실 애들이 보고 배울까 무서운 세상은 게임이 아니라 게임 밖의 우리 사회다. 나는 국회에서 이종격투기를 벌이는 국회의원이나, 수 조 원을 탈세하고 사면받아 나온 주제에 국민들에게 뭘 고쳐야 한다고 주절대는 인간을 보느니 차라리 게임을 하는 게 더 낫다는 입장이다. 컴퓨터 게임 속에서는 최소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규칙이 적용되니까.

넷째,
컴퓨터 게임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첨단 IT 기술이다.

컴퓨터의 발전은 이미 불필요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글을 쓰는 워드프로세서는 셀러론 컴퓨터에서도 충분히 작동한다. 파워포인트도 웹서핑도 그 정도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듀얼코어나 쿼드코어 PC를 원한다. 최첨단 게임을 하기 위해서이다. 컴퓨터 게임이야말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상용화된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다.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컴퓨터 게임을 잘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수준 낮은 다른 기술은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니까. 초딩이나 중딩들이 어떻게 컴퓨터를 그리도 잘 쓰는지 아직도 모르시겠나? 걔네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배우고, 게임을 통해서 IT를 마스터한다.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배우는 거의 유일한 기술이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사실 이 사이버 공간의 근본 정신은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 구현된다. 반면에 어른들은 게임을 모르니 컴퓨터와 인터넷이 어렵기만 한거다. 기껏해야 XX양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 인터넷에 달려드는 수준의 인간들이 게임을 어찌 이해하겠나.


다시 한번, 첨단기술을 게임에 쓰지않으면 어디에 쓰겠나?

마지막으로,
세상은 점점 컴퓨터 게임과 구분할 수 없게 되어간다.

스마트폰의 증강현실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어디까지가 사이버공간이고 어디까지가 현실공간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게임도 마찬가지다. 임요환을 보라. 게임속의 황제는 실제로도 영웅이 된다. 게임을 통해서 배운 원리는 실제로도 적용가능하다. 그러니 게임만 하다가 실생활에 적응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갈수록 무의미해진다.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라. 주인공은 실생활에서는 젬병이다. 이 친구는 자기 애인을 마치 게임의 스탯찍듯 대하다가 찌질이 취급만 당한다. 그런데 그 찌질이가 세계최대의 SNS를 만들어서 억만장자가 된다. 그가 성공한 비결은 실제 세상을 게임처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은 수량화할 수 있으며 몇몇 조건을 바꿔서 조작이 가능하다. 이런 게임의 논리를 대인관계에 적용하기, SNS의 기본이 그것 아닌가.


현실세계는 게임과 다르다고? 그럼 난 뭐야?

요약하면,
컴퓨터 게임은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술과 예술과 지식의 종합체이다.

장담하건대, 앞으로 5년 내에 자기 자녀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걱정이 아니라 게임을 하지 않아서 걱정인 부모가 등장할 거다. 게임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고, 세상은 점점 게임을 닮아가게 될 테니까. 게임을 안한다는 건 미래에 적응하기를 포기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게임만 잘하면 된다는 건 아니다. 게임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에겐 게임 말고는 다른 중요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삶의 균형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고,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도 변함없을 것이다.

올해에는 새 컴퓨터를 구입해서 <문명>과 <콜옵: 블랙옵스>를 최고해상도로 즐길 꿈에 부푼 인간이 하는 말이니 분명히 편파적인 해석이 담겨있겠으나, 적어도 모든 주장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영진공 짱가

 

“투 더 스타 (To The Stars)”, 정신이 우주로 날아가버린 작가의 불온한 결말


 

지음: L.론 허버드
엮음: 최준영
펴냄: 소담출판사

당 작품은 지구와 계외행성 사이를 오가며 광물을 파는 우주선 하늘의 사냥개호에 강제로 탑승하게 된 기술 검사관 알랜 코다인의 노예생활기(?)를 그리고 있다. 앞서 소개했던 [영원한 전쟁]에서와 같이 ‘시간지연효과’를 비극의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원한 전쟁]에서 광속 이동 후 엄청나게 시간이 흘러버린 지구시간으로 인해 결국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는 군인들 처럼 우주선 하늘의 사냥개 호는 누구도 떠날 수 없는 저주받은 유령선과 같이 그려진다.

미스테리한 조슬린 선장, 승무원들과의 갈등 등 여러 인간군상의 이야기와 더불어 왜 이런 항해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독자를 끌어가고 있다. 1950년도에 발표한 작품으로 구닥다리 느낌도 없진 않고 그래서인지 작품도 평이하게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작품의 감상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책의 띠지에는 커다랗게 아인슈타인도 깜짝 놀란 작품이라는 왠지 오바스러운 문구가 떡하니 적혀있는데 머리글에는 한 술 더 떠서 작가 론 허버드가 1930년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제대로 알고 있는 나라에 몇 안되는 사람이며 당 작품이 시간지연이론을 도입한 선구적인 과학소설이라는 둥 그다지 믿기지 않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L.론 허버드 1911~1986


시간지연효과를 설명하는 건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이론이니 이 작품이 발표된 1950년까지 45년간 어느 작가도 이 소재를 요 작품만큼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시간지연효과에 대해 하드SF에서와 같은 치밀한 과학적 고찰이 아닌 그저 시간이 느려진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적용하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아인슈타인이 놀랐을 리는 만무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당연히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란 주장도 당시의 이름난 물리학자들만 떠올리더라도 더더욱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자화자찬의 황당함을 넘어 작품의 결말에 다다르면 더욱 난감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드레그해서 보세요)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러 하늘의 사냥개호 선장 조슬린의 편지를 통해 진실이 드러난다. 하늘의 사냥개호가 사람들을 납치하여 강제로 승선시키고 시간지연효과에 따른 비극을 감수하면서 계외행성으로의 무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언젠가 닥쳐올 멸망으로부터 인류의 씨앗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 우주선은 시간지연효과를 이용한 일종의 노아의 방주였던 것이다. 선장 조슬린의 모든 처신과 그가 저지른 행위들은 결국 인류를 위한 자기희생이었으며 더 나아가 대의를 위해선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 이런 살떨리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는 이 책의 작가 론 허버드의 특이한 이력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는 소설가, 여행가, 사진작가, 시나리오 작가, 모험가등 다재다능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수의 SF소설도 발표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이력은 그가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시자란 점이다.


 





비록 영화는 희대의 쉣무비 반열에 올라섰지만 소설은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배틀필드 어스]의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존 트라볼타 역시
사이언스톨로지의 신자이다.


1953년에 창시한 사이언톨로지교Scientology는 베스트셀러가 된 허버드의 자기계발서 [다이아네틱스: 정신 건강의 현대 과학](1950)에서 발전해 나왔다.




이 책은 사이언톨로지교의 성서와도 같다고 한다.
놀랍게도 국내에 한글판이 출간되어 있다.


사이언톨로지교는 그가 1950년대 미국에서 세운 운동으로 과학기술을 통한 정신치료, 영혼 윤회 등을 믿고 있다.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조 설화부터 안드로메다 은하의 취향이 물씬 풍기니 한번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자. 눈 앞에 한편의 스페이스오페라가 펼쳐질 것이다.

약 7,500만 년 전 은하연방을 다스렸던 제누(Xenu)라는 외계인이 수십 억에 달하는 국민들에게 공무원을 찾아가 세금 환금 심사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이들은 알코올 주사를 맞고 우주선에 실려 지구로 보내졌다. 외계인들은 그들은 화산 옆에 쌓아 올린 뒤 수소 폭탄으로 화산을 폭발시켜 테탄(thetan)이라는 영혼만 남게된다. 영혼은 진공지대로 빨려 들어가서는 극장으로 전송되었다. 영혼은 그곳에서 36일 동안 온갖 헛된 교리와 종교를 주입시키며 자신이 누군지 잊게 만드는 3D영화를 보아야 했다. 이 영혼이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이 영혼들이 과거에 당한 세뇌와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두려움, 폭력, 중독 등의 각종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사이언톨로지교는 신자들에게 E-미터(E-meter)라는 장치를 장착시킨 후 유도심문을 통해 그들을 심사하여 건강을 점차적으로 회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참고 및 발췌:
아서 골드워그 저, 이경아 역, [이즘과 올로지], 랜덤하우스, 2007.


신자들은 다단계 회사처럼 등급이 있으며 높은 등급에 오를수록 지식의 차원이 높아진다고 한다. 물론 높은 등급에 오르기 위해선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 특히 할리우드의 많은 스타들이 이 사이언톨로지교의 신도인 것으로 유명한데 존 트라볼타, 톰 크루즈, 진 헥크만, 래리 킹, 더스틴 호프만, 윌 스미스, 제니퍼 로페즈 등이 있다.

 



교인들을 모아서 사이언톨로지판 긴급조치 19호를 찍었어도 멋졌을 것 같다.


1953년에 사이언톨로지를 창시했으니 이 소설을 발표한 1950년 당시에는 그러한 망상들이 이미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론 허버드의 다른 작품들은 어떠한지, 그가 사이언톨로지교를 창시하는데 있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당 작품만 놓고 보아도 결론은 참으로 불온하기 짝이없다.

등장하는 조슬린 선장이 우주선에 탈 사람들을 납치하고 도망가는 이들은 가차없이 죽이며 약을 주입해 꼭두각시로 만들면서도 인류를 위한 일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정당화하는 결론은 현재 사이언톨로지교에서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자기들만의 교리와 그에 따른 정당성을 내세우며 신도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종교를 그만두려는 이들에게는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 모습말이다.

작품 속 조슬린 선장과 하늘의 사냥개호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사이언스톨로지교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이들은 가면을 쓴다.
교단 측에서 데모에 참여한 이들을 불법으로 사진채증을 한 뒤,
 협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진공 self_fish

안드로이드는 백일몽을 꾸는가? (1/2)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열린 CES는 대성황이었던 모양이다. 삼성, LG, 소니, MS 등등 어지간한 IT 기업은 다 참가했으니까. 아, 애플 빼고.

직접 CES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기자는 물론, 멀리서 기사를 보며 입맛만 다시는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기업들이 내놓는 신제품에 집중되어 있다. 매끈하고, 상큼하고, 유려하고, 섹시한 S라인을 가진 타블렛이나 스마트폰의 사진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침을 질질 흘린다. 이야, 저거 죽여주는데? 매장에 나오기만 하면 당장 질러 주마!

그런데 CES에 전시된 쭉쭉빵빵 하드웨어에 넋이 나간 사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뉴스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아마존에서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시장에 뛰어든다는 발표였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아마존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구글 앱스토어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심사 과정이 있으며, 구글 앱스토어와는 달리 PC에서도 앱을 구매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초기 등록비는 99달러라지만 첫 해에는 면제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발자에겐 애플리케이션 판매가의 70% 또는 정가의 20% 중 큰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애플 앱스토어와 거의 유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형태야 어쨌건간에 통신사는 물론 제조사들도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운영에 뛰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SKT, KT가 경쟁적으로 앱스토어를 열었고, 삼성전자도 영국에서 앱스토어를 런칭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아마존이 발 담근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야?

음, 글쎄, 하지만 달라질 게 있을 것이다. 분명히.

현재 구글 앱스토어의 초기 등록비는 25달러로 애플의 연간 등록비 99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앱을 등록할 때도 번거로운 심사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자유 방임주의,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카오스가 도래했다. 쓰레기 같은 앱들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장이 열린 것이다. 못 믿겠다고? 그렇다면 구글 앱스토어를 열고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Hello World]와 [Test] 앱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건 뭐, 아타리 쇼크 ( http://mirror.enha.kr/wiki/아타리%20쇼크 ) 직전의 게임 시장과 비견해도 좋을 정도로 개판이다. 작년 말에 구글 앱스토어의 앱 숫자가 비공식적으로 10만 개를 넘었다며 요란을 떨었지만 실속 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아, 물론 애플 앱스토어에도 쓰레기는 많다. 하지만 최소한 거기엔 [Hello World]나 [Test]는 없다. 애플에서 앱을 등록하기 전에 최소한의 품질 검토 과정을 거쳐서, 자격이 안 되는 앱은 등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있지만, 거기 대해선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너무 복잡해지니까).

문제는 또 있다. 아이폰은 번거로운 탈옥 과정을 거쳐야만 크랙 앱을 설치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는 그런 거 필요 없다. 크랙 앱을 다운받아 집어넣기만 하면 끝이다. 이 때문에 크랙 앱만 유통시키는 블랙 마켓 앱스토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물론 개발자들 역시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구글 측에 공식 앱스토어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앱 정보를 충실하게 꾸밀 수 있게 해야 한다, 크랙 앱 설치를 어렵게 해야 한다, 쓰레기같은 앱들을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우리들의 구글은 그 모든 목소리를 상콤하게 무시하고 있다. 왜? 어째서? 뭣 때문에?

여기서 잠깐 구글의 정체성을 알아 보자. 음, 구글이 뭐 하는 회사지? 세계 제일의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가진 인터넷 회사?
아니, 천만의 말씀. 구글은 광고 플랫폼 회사다.

구글의 주요 수익원은 검색 엔진에 기반한 검색 광고를 대형 포탈 사이트에 납품하는 것이다. 이뿐이라면 오버츄어와 별 다를 것도 없겠지만, 구글에게 애드센스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애드센스의 등장은 전세계 블로거와 소규모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붙이기만 하면 딸라가 쏟아진다고? 이거야말로 빛이요, 소금이요, 진리일지어니 소리 높여 외쳐라, 할렐루야! 반야바라밀! 아리가또, 땡스!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 덕분에 애드센스는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애드센스가 안 붙어 있는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TV나 신문, 잡지가 가지고 있던 광고 시장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구글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현재 구글이 올리고 있는 천문학적인 수익 대부분은 광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MS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먹고 사는 것과는 대조된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구글의 모바일 광고 시장 개척을 위한 첨병이다.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쓸 수 있게 공개한 건, 구글 경영진이 12월 말에 빨간 옷을 입고 남의 집 굴뚝이나 넘나드는 변태 영감탱이처럼 자비롭고 선량해서가 아니다.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하면, 개발자들이 안드로이드 앱 개발에 달려들 테고 – 그리하여 자신들이 인수한 애드몹을 비롯한 각종 모바일 광고로 도배된 앱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것이 구글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 구도에서 구글이 원하는 앱은 유료 앱이 아니다. 광고를 붙인 – 그것도 구글의 광고를 붙인 무료 앱이다. 그래서 구글은 앱스토어의 품질 관리를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개발자들에게 공짜 전략을 채택할 것을 은연중에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요? 애플은 앱 판매비의 30%를 뜯어간다고요? 뭐 그런 도둑놈들이 다 있어! 걱정 마세요. 우리 구글 앱스토어는 개발자 분들에게 수익을 100% 그대로 되돌려 드린답니다. 에…… 근데 버는 게 없어서 품질 검토 같은 건 해 드릴 수 없네요. 개발자 지원도 기대하진 마세요. 예? 그래선 제대로 된 앱을 만들 수 없다고요? 에이, 왜 그러세요, 아마추어 같이 …… 대충 만들어서 공짜로 뿌리면 되죠. 공짜면 다들 미친듯이 달라붙는 거 아시잖아요? 뭐라고요? 그럼 돈은 어떻게 버냐고요? 그야 물론 우리 구글 광고를 붙이면 되죠! (오, 예!)

공짜 앞에 장사 없다. 인터넷 업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금언, 구글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이 믿음에 무게를 실어 주는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아이폰에서 대히트를 친 게임, 앵그리 버드가 안드로이드에선 광고를 탑재한 무료판으로 배포된 것이다. 앵그리버드는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 등장하기 무섭게 5백만 번 이상 다운로드되었고, 제작사인 로비오에게 월 100만 달러씩 수익을 안겨다 줄 거란 전망이 나왔다. 1년이면 1,200만 달러로 아이폰에서의 판매수익 800만 달러를 능가한다는 계산이다. 이거 죽이는데?

그런데 …… 잘 나갈락말락할까 하는 이 판국에 갑자기 아마존이 끼어든 것이다.

아마존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는 수익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품질의 유료 앱이 등장해서 팔리지 않으면 아마존은 땡전 한 푼 벌지 못한다. 즉, 아마존은 유료 앱을 활성화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 전략은, 모바일 광고로 돈을 벌려는 구글의 공짜 전략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SKT나 KT, 삼성전자 등 여러 통신사나 제조사들이 운영하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도 구글 앱스토어와 충돌하는 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굉장히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구글은 당연히 이것들을 한데 묶어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경쟁이나 위협이 되기엔 너무 보잘 것 없는 상대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마존은 다르다. 컨텐츠 유통 쪽에선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삭한 노하우를 쌓아올린 데다가,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에선 구글과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만찮은 기업이다.

더군다나 구글의 공짜 전략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먹혀들고 있지 않다. 광고로 돈을 버는 건 앵그리버드 제작사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 절대 다수의 개발자들은 구글 앱스토어 운영 정책에 크든 적든 불만을 품은 게 현실이다. 만일 아마존 앱스토어가 성공리에 자리잡는다면, 그리고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들리면, 이들은 즉시 구글 앱스토어를 떠나 아마존에 합류할 것이다.

이럴 경우 구글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되지 않는다.
1) 앱스토어 운영 정책을 애플이나 아마존처럼 바꾸던가,
2) 안드로이드의 개방성을 포기하고 다른 앱스토어를 모두 쫓아내 버리던가,
3) 아니면 팔짱 끼고 방관하며 도도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하다가 쪼그라드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애초에 구상했던 그림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구글 애드몹 광고를 덕지덕지 붙인 공짜 앱의 쓰나미가 세상을 덮치고, 아마존 앱스토어는 비실대다가 죽어버리고, 애플 아이폰은 일체형 배터리를 추앙하고 유료 앱을 돈 주고 사서 쓰는 한 줌 변태들이나 좋아하는 스마트폰으로 전락해버리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마존이 실패하더라도 안드로이드의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끝판왕’이라 부르는 존재, MS가 칼을 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칼이 아니라 다마스쿠스 강으로 정련된 반월도처럼 날카로운 칼을 말이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영진공 DJ Han

 

“레드”, 오락 영화의 황금율이란 이런 것





영원한 다이하드 사나이, 브루스 윌리스를 전면에 내세운 <레드>는 주연급 캐스팅의 연령대에 잘 어울리는 은퇴한 CIA 요원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된 RED라는 단어 자체가 – 공식적으로 정말 사용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Retired but Extremely Dangerous라는 뜻이더군요.

물론 현장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고 있던 이들을 극히 위험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죠. 은퇴한 CIA 요원들을 갑자기 살해하려고 달려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왜 죽이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달려나가는 – 미국 전역을 돌아다닙니다 – 전형적인 액션 영화의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레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형적인 줄거리이지만 그것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연출의 몫이죠. <레드>는 무엇보다 코미디 영화의 기조를 시종일관 유지합니다. 코미디가 중심이 되면 허풍스러운 전개나 액션도 너그럽게 봐줄 수가 있게 되고 심각함에 몸을 긴장시키기 보다는 안락의자에 편히 기대어 누운 듯이 편안하게 감상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레드>는 코믹함을 기반으로 과장된 액션과 중년의 로맨스를 조화롭게 버무린 데다가 화려한 스타 캐스팅까지 더해지면서 오락 영화로서는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요즘은 확실히 압도적으로 우세한 능력을 보여주는 액션 캐릭터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런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아닌 맷 데이먼 주연의 제이슨 본 3부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에 사실적인 긴장감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입니다.

<레드>의 주인공 프랭크 모스(브루스 윌리스)와 그의 옛 동료들 역시 CIA로 부터 ‘RED’ 인증을 받을 만큼 압도적인 능력의 소유자들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화의 분위기가 보는 이들을 긴장시키는 서스펜스나 스릴러에 있지 않고 잔뜩 이완된 분위기의 성인용 코미디가 주조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반면에 일단 이 영화가 자기 취향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관객은 상당한 호평과 함께 반복된 관람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장르적 쾌감의 수위가 상당한 편이라 하겠습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칼 어반과 좁은 사무실에서의 열혈 액션을 보여주는 브루스 윌리스의 노익장도 멋지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신 헬렌 미렌의 ‘파티 드레스 입은 채로 중화기’ 액션 역시 너무나 근사했습니다만 <레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헬렌 미렌과 짝을 이룬 브라이언 콕스의 로맨스 그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레드>는 프랭크 모스를 중심으로 불의한 시스템과 맞서 싸우는 동시에 새로운 인생과 사랑을 지켜낸다는 줄거리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제 막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프랭크와 사라(메리-루이스 파커) 커플 보다 이반(브라이언 콕스)과 빅토리아(헬렌 미렌)의 오랜 세월 끝에 되찾는 사랑이 좀 더 보기 좋았습니다.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였던 이반은 빅토리아와의 사랑으로 인해 조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처지였지만 영화 속의 사건을 계기로 옛사랑을 다시 찾게 되는 인물인데요, 굉장히 많은 작품들 속에서 대체로 악역만 도맡아 해왔던 브라이언 콕스의 코믹 연기였기에 더욱 호감이 갔던 것 같습니다.




위험에 빠진 전직 CIA 요원 프랭크와 평범한 노처녀 사라의 로맨틱 액션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레드>는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나잇 & 데이>(2010)와 매우 유사한 컨셉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요,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한다면 단연 <레드>의 압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드>는 결과적으로 프랭크와 사라의 로맨스 비중이 적게 다뤄질 수 밖에 없었을 만큼 앞에서 언급한 이반과 빅토리아의 또 다른 로맨스가 있는가 하면 존 말코비치와 모건 프리먼의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훌륭한 조연 연기까지 포진해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브루스 윌리스와 몸싸움까지 하게 되는 현직 CIA 요원 윌리엄(칼 어반)이나 최종적으로 ‘악의 축’ 역할을 하게 되는 군수회사의 CEO 알렉산더(리차드 드레이퍼스)마저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한참 재미있게 달리다가도 결국 끝나고 나면 허전한 장르 영화로서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만하면 영화적 포만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칼 어반과 브라이언 콕스는 모두 제이슨 본 3부작에 출연했던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레드>는 드디어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제이슨 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잘 유지해온 브루스 윌리스의 독특한 액션 캐릭터를 활용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독거노인 프랭크 모스의 집 안 모습은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 형사이기 이전에 브루스 윌리스의 첫 출세작이 되었던 TV 시리즈 <블루문 특급>(Moonlighting, 1985)에서 침대 하나와 큰 여행 가방이 전부였던 데이빗 에디슨의 아파트를 연상케 합니다.

절대무공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코미디와 로맨스가 조합된 독특한 브루스 윌리스만의 이미지는 지금도 여전히 관객들에게 편안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