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그리고 문제적 인간 프린스


 

 


 


 


 



 


 


 


팀 버튼의 배트맨은 현대적 의미의 히어로 무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슈퍼맨이 있었죠. 슈퍼맨은 1979년 리차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 더 무비”에서 인간적(?) 혹은 크립톤 행성인과 지구인 사이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긴 하지만, 그러나 슈퍼맨은 슈퍼맨스럽게도 그 모든 고민을 초인적으로 헤쳐나갑니다. 그런데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러질 않습니다. 그는 분노와 복수와 불안감이 마구 뒤섞인 감정 상태를 간직한채 끝까지 찜찜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 찜찜함은 사실 팀 버튼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찜찜함은 오히려 동화적 상상력이 되어주죠. 조커와 맞서는 배트맨의 유치하리만치 치사한 공격, 죽은 척하다가 공격한다던가, 한 방에 죽일 수 있지만 비행기를 맞춰 더 아프게 만든다던지.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에서 있었다면 바로 공분을 샀을 겁니다. 그런데,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런 짓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그 까닭은 영화 속 장면들의 꾸밈새가 진지한 극영화이기보다는 환상과 전투를 오가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또 하나, 음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화 “비틀 주스”에서부터 지금까지도 단짝인 스코어의 마법사 대니 앨프먼이 있습니다.


 


대니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록 밴드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었죠. 미국 출신이지만 주로 유럽서 활동을 했었고요. “Oingo Boingo”의 기타리스트 겸 리드 보컬이었던 대니는 함께 밴드를 하던 형이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나름 유럽서 성공을 거두고 있던 밴드를 걍 때려치고 형과 함께 돌아옵니다.


 


그에게 영화음악을 처음 부탁한 감독이 팀 버튼입니다. “비틀 주스”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배배꼬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 “가위손”의 아련함도 모두 팀 버튼과 대니 앨프먼의 합작입니다.


 


대니 앨프먼 음악의 특징은 무규칙적으로 오르고 내리는 정서의 변화입니다. 확실히 그는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었고, 록 밴드 출신답게 이를 클래식적인 방식의 배치보다 “꼴리는대로” 마구 끌어다 붙이길 잘 하죠. 바로 이 무규칙성이 대니의 음악을 동화적이라 부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대니 앨프먼의 음악이 배트맨의 동화적이면서도 껄끄럽고, 우유부단하면서도 폭력적인 모습을 잘 뒷받침합니다. 박진감 넘치는 곡조에서 급작스런 현악 일색의 부드러운 곡조로 떨어지는 모습은 기-승-전-결을 따지는 클래식 작곡가들에겐 쉬이 상상할 수 없는 지점이죠. 그런데 대니보다 팀 버튼 버전 배트맨을 귀로 규정해주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 이는 바로 “프린스”예요.


 


 


 



 


 


 


프린스는 1980년대 마이클 잭슨과 맞짱 뜰 수 있는 유일한 아티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이 최고의 기타리스트였고, 송라이터, 프로듀서, 싱어, 댄서 였죠. 완벽하게 계산된 무대 매너는 1980년대 마이클 잭슨과 그 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죠. 배트맨은 스코어에서도 왈츠에서 광기 넘치는 타악, 웅장한 배트맨 테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프린스는 이보다 한 발 더 나갑니다.


 


프린스가 이 음악을 원해서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습니다. 워너 브로스 뮤직과 프린스의 사이는 나쁘기로 유명했고, 음반사는 그런 프린스를 고깝게 봐서 계약 이행을 내세워 앨범 발매를 종용하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무시무시한 창작욕을 자랑하는 프린스답게 이 앨범 역시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만든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음악이 후진 건 아니죠. 클럽튠에 가까운 댄스 음악 ‘Partyman’과 ‘Batdance’ 그리고 가성을 사용한 감미로운 알앤비 발라드 ‘Scandalous’, 시나 이스턴을 데려와 팝 발라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듀엣 곡 ‘The Arms of Orion’, 가성으로 중성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Vicki Waiting’까지.


 


킴 베이싱거 누님이 맡은 비키 베일의 이미지를 끈적하게 만들어놓는 ‘Vicki Waiting’의 그루브감은 확실히 프린스의 전매특허죠. 그러고보니 킴 누님과 염문도 있었네요. 전반적으로 1980년대 록 음악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훵키 비트와 효과음이 경쾌한 멋진 앨범입니다.


 


 





프린스의 대표곡, “When Doves Cry” 

 


 


157cm의 단신인 프린스는 재즈 보컬리스트인 어머니와 재즈 피아니스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무렵 별거하던 아버지의 새 애인을 집에서 마주하는 경험을 하는 등 그닥 좋은 환경 출신은 아니었다네요. 물론 엄마, 아빠를 오가며 다양한 음악을 들었고, 자신의 밴드에 대해 평가를 부탁하는 등 음악에 대한 욕심은 부모 모두에게서 받았고, 또 부모를 이용하기도 했죠.


 


여튼 소속사 워너와 계약 문제로 끝장 법정 싸움이 불거지자 자기 뺨에 “Slave”라고 문신을 새기기도 했던 거 보면 보통의 인물은 아니죠. 남성과 여성의 심볼을 합친 자신만의 문양을 만들고, 그 문양을 이용한 기타를 연주하는 이 양반은 확실히 문제적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배트맨의 양면성을 그대로 대변하죠.


 


프린스의 음악도 그래요. 흔히 훵크 가수로 분류하지만, 프린스의 음악에는 록의 요소가 짙죠. 고교 시절 첫 밴드에서 그는 지미 헨드릭스가 환생한 듯한 연주를 들려줬다고 하네요. 댄스와 퍼포먼스의 대가로 마이클 잭슨과 쌍벽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프린스의 퍼포먼스는 거의 레이디 가가를 방불케 합니다. 누군가 레이디 가가의 등장을 보고 “여자 프린스”라고 했는데,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세대에겐 프린스가 1980년대에 레이디 가가처럼 기행을 일삼았던 남자 가수였다고 해야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그런 프린스가 만든 영화 “Batman” 사운드 트랙은 영화를 떠나 음반 그 자체로도 높이 평가할만한 명반입니다. 대니 앨프먼의 스코어 못지 않게 영화에 이 음반 수록곡들이 슬금슬금 등장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딱 잡아줍니다. 조커가 돈 뿌릴 때 흘러나오는 ‘Partyman’은 아주 대표적이죠.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Batdance’도 정말 매력적이고요. ‘Lemon Crush’는 록, 훵크, 소울이 뒤죽박죽 믹스된 정말 프린스다운 명곡입니다. 비키 베일 역을 맡은 킴 누님에게 딱 맞는 분위기의 곡이었죠. 그런데, 영화에서 비키 누님은 이런 끈적한 분위기를 낼 듯 하다가 맙니다. 그걸 프린스가 아쉬워 했을까요? 킴 누님에게 딱 맞는 곡을 만들어 영화에 넣었네요.


 


그럼 ‘Batdance’ 들으시면서 포스팅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Prince – Batdance (Batman Soundtrack) 작성자: Leroidukitch

 


 


 


영진공 헤비죠


 


 


 


 


 


 


 


 


 


 


 


 


 


 


 


 


 


 


 


 


 


 


 


 


 


 


 


 


 


 


 


 


 


 


 

[그 영화 그 노래] Immigrant Song


 

 


 


 



일본에서 발매된 Immigrant Song 싱글 표지


실은 이 노래는 “이민의 노래”라기 보다는 “침공의 노래”라는 거 …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헤비메탈 밴드의 갑 오브 갑,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그들의 작품은 꾸준히 여기저기 많은 영화에 삽입되고 있다.


“Over the hills and far away”, “Stairway to heaven”, “Dazed and confused”, “Whole lotta love” 등을 여러 영화를 통해 자주 들을 수 있는데, “Immigrant Song”도 그 중 하나이다.


 


일단 노래를 라이브로 들어보자.


 


 




 


 


이 노래는 “스쿨 오브 락”, “슈렉 3”,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에서 들을 수 있는데,


 


1970년에 레드 제플린이 아이슬란드 공연을 하다가 그 곳에서 바이킹을 모티브로 작곡하여 처음 발표된 노래로,


 


가사는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이 유럽 서쪽의 신천지를 개척(또는 침략)하러 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Ah, ah,
We come from the land of the ice and snow,
From the midnight sun where the hot springs flow.
The hammer of the gods will drive our ships to new lands,
To fight the horde, singing and crying: Valhalla, I am coming!


 


 


아아하, 하아,


얼음과 눈의 나라에서 우린 왔다네,


더운 샘물이 흐르는 백야의 땅에서 왔지,


신의 망치가 우리의 배를 신천지로 인도하시네,


유목민들과 싸우며 노래하고 울부짖네: 발할라여, 내가 간다!


 


 


On we sweep with threshing oar, Our only goal will be the western shore.


 


가열차게 노를 저어라, 우리의 유일한 목표인 서쪽 해안을 향해,


 


 


Ah, ah,
We come from the land of the ice and snow,
From the midnight sun where the hot springs blow.
How soft your fields so green, can whisper tales of gore,
Of how we calmed the tides of war. We are your overlords.


 


아아하, 하아,


얼음과 눈의 나라에서 우린 왔다네,


더운 샘물이 솟구치는 백야의 땅에서 왔지,


너희들의 풍요로운 푸른 초원에 피의 이야기를 속삭일 거야,


거친 바다를 잠재우며 우리가 왔네, 너희는 우리를 당할 수 없어,



On we sweep with threshing oar, Our only goal will be the western shore.


 


가열차게 노를 저어라, 우리의 유일한 목표인 서쪽 해안을 향해,



So now you’d better stop and rebuild all your ruins,
For peace and trust can win the day despite of all your losing.


 


 


자, 이제 저항을 멈추고 폐허를 재건하라,


너희 패배자들에게 평화와 신뢰를 선사할 터이니,


 


 


 


의도적인 hiss 노이즈에 이어지는 로버트 플랜트의 날카로운 외침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Whole Lotta Love”와 함께 초기 레드 제플린의 사운드를 대표하는 곡으로 꼽히고 있는데,


 


특히나 가사 중에 나오는 “The Hammer of The Gods”라는 구절은 레드 제플린의 사운드를 표현할 때 많이 쓰여지고 있다. 신의 망치질과 같은 사운드라고 …


 


 


 


내 얘기하는 거임???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Karen O, Trent Renzor, Atticus Ross가 힘을 합쳐 이 노래를 멋지게 커버하고 있는데,


 


이 버전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영진공 이규훈


 


  


 


 


 


 


 


 


 


 


 


 


 


 


 


 


 


 


 


 


 


 


 


 


 


 

[그 영화 그 노래] “A Love Idea”,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1978년 당시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그룹 Dire Straits.


데뷔곡 “Sultans of Swing”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챠트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기타리스트, 마크 노플러 (Mark Knopfler).


1949년 스코틀랜드 출생인 그는 특유의 멜랑콜리한 기타 연주와 중얼대는 보컬로 전 세계 음악팬들의 많은 사랑을 꾸준히 받고있다.


 


 


 



 


 




 


 


 


마크는 그룹과 솔로 활동 이외에도 의외로 꽤나 많은 영화음악을 작업하곤 했는데,


 [마크 노플러의 사운드트랙 목록 보기]


 


그 중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 중 하나가,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Last Exit to Brooklyn).


 


이 영화는 1989년 개봉작으로 감독은 울리 에델, 그리고 주인공인 트랄라라 역은 제니퍼 제이슨 리가 맡았다. 혼돈과 폭력에 물들어있던 1950년대 미국 브룩클린을 무대로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비정한 사회를 묘사했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마크 노플러는 영화음악 전곡을 작곡하였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 중 가이 플레쳐가 연주한 “A Love Idea”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애청곡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곡을 들어보도록 하자.


 


 


 




 


 




 


 


 


마크 노플러의 영화음악 중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곡을 하나 더 소개하며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 곡은 1984년 개봉작 “칼의 고백” (Cal)에 삽입되어있는 “The Long Road”.


 


 


 




 


 


 


 


 


영진공 이규훈


 


 


 


 


 


 


 


 


 


 


 


 


 


 


 


 


 


 


 


 


 


 


 


 


 


 


 


 


 


 


 


 


 


 


 


 

“바보들의 행진” OST 다시 듣기 (2)



 바보들의 행진
영화음악 『바보들의 행진』에 실린 송창식의 곡은 이후 그의 행보를 모두 점쳐볼 수 있게한다. 특히 그가 작곡한 두 곡, “왜 불러”와 “고래사냥”은 이미 트로트와 포크의 만남에 싸이키델릭-록의 반주까지 고려한 모습이다. 싸이키델릭으로 만든 고래 소리가 들어있어 콜렉터들의 표적이 되었다는 영화음악 버전 “고래사냥”이 실려있는데, 막상 들어보니 그 고래 소리가 나에겐 별반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행진곡 풍의 곡에서 하몬드 올갠과 슬라이드 기타가 역동적인 자리(중심은 물론 아니지만)로 위치지웠다는 것은 신선하고 중요한 지점으로 들린다.

“고래사냥”은 기본적으로 마칭 드럼(꽹과리 소리를 흉내냈다고 해도 좋다)-행진곡 풍의 작곡에 촛점이 있다. 그러나 그는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슬라이드 기타로 흥을 돋군다. 흥 돋구기는 트로트를 대놓고 차용한 “왜 불러”의 가창법에서 더 절정이다. 후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의 하나가 되는 트로트이면서도 송창식의 것으로 귀결되는 이 ‘흥'(을 돋구는 창법)과 기발함이 이미 이때부터 충분히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되는 점이 있다. 송창식의 이러한 시도들이 1970년대 초반에 들어 앞서 나간다는 가수들이라면 한번씩 머리 속에 그려보거나 (거칠게)시도했다는 데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 있는 신화 – 신중현은 논외로 치더라도 키브라더스(윤항기)는 산타나의 음악을 리메이크하면서, 한대수(두 번째 음반)는 자작곡에 농악과 타령을 집어넣었다. 포크와 록의 만남은 1974,5년 봇물터지듯 여기 저기서 시도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르면 젊은 음악인들 사이에 장르를 넘어선 다양한 실험이 여기저기서 마구 시도될 만큼 무르익었었다는 얘기다.

또한 『바보들의 행진』음반에는 임희숙, He5, 김세환, 이장희, 투 코리언스의 노래가 더해진다. 조합만 봐도1970년대 초반 새로운 음악으로 등장한 쏘울, 록, 포크가 하나로 모인 느낌이지 않은가? 특히 주목할 이는 포크 계열이라고 하나, 특유의 반항적 이미지와 록을 대담하게 수용했던 이장희(그리고 그의 곡 “한잔의 추억(음반에는 ‘한장’으로 오기되어 있다)”을 부른 더욱 위악스런 목소리로 부른 김도향과 손창철 – 투 코리언스)의 가세이다.

포크 음악인에서 막 새로운 음악으로 전진하는 송창식과 그 보다 앞서 록을 받아들였던 이장희가 한 음반에서 만나는 장면은 1970년대 중반 청년 문화/대중음악이 하나의 모습을 완성해가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음반 전체를 넘실대는 음악은 (이미 단속과 규제의 대상이 된 저항적 포크는 많이 탈색되었지만) 록, 소울, 포크가 휘감겨 들어와 판을 차리고 아예 그 이전 대중음악 판 자체를 뒤집어 버릴 듯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미국 음악의 여러 요소가 파편적이지만 직접적으로 젊은 세대를 자극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기존의 주류였던 트로트마저 품어서 새롭게 주물럭 거릴 수 있을 만큼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고 또 다른 색깔마저 찾은 것이다.

3. 그래서 더 답답한
『별들의 고향』에 이어, 『바보들의 행진』은 단순히 잘 나가던 음악인들의 편집 음반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시도들이 하나의 움직임으로 모이고 마무리 단계로 나가고 있음을 슬금슬금 드러낸 것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정권은 더욱 미친듯이 이들을 찍어누르고 마침내 질식사 시키긴 하지만.

사실 이 음반은 폭발하지 않는다. 영화 만큼이나 넘치는 음악을 자신 안에서 고사시킨다. 이 기운은 그렇게 그 해(1975년)를 다 넘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청년문화로 칭송되던 음악은 대마 연기와 함께 그렇게 금지곡으로, 활동 금지로, 미국행(추방에 가까운 이민)으로 사라진다. 새로운 기운에 찔끔해서 부랴부랴 눌러 죽이기 바빴던 박정희와 그 밑의 똘마니 새끼들은 자기 색을 찾기 시작한 젊은 음악밭을 락스로 싹 행구고 그래도 남은 애들은 뿌리까지 파 내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박정희가 좋아했던 그 5음계(요나누끼 음계)로 작곡된 “새마을 운동가”와 트로트로 채워놨다. 젊은 음악이 피어오리기 전, 딱 10년 전 음악으로 타임머신을 돌려버린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TV 속에는 트로트 가수만 나왔다. 그 때 난 그게 한국 대중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날 즈음엔 그와 전혀 다른 그리고 완성되어가던 다른 음악이 있었음을 전혀 알수 없었다. 그저 외삼촌이 들려주는 음악들이 신기하고 좋아 보였을 뿐.

『바보들의 행진』 O.S.T.나 1970년대 초반의 한국 가요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유입인)힙합을 제외한 한국 대중음악은 이 때 이미 다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록 밴드 중에는 라틴 록이나 레게를 지향하는 밴드들이 있었고, 포크 진영에도 고급스런 발라드를 지향하던 이들이 있었다. 아마 이들이 모두 박정희 덕분에 압사 당했기에 1980년대 조용필 신화는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조용필 자신도 대마초의 피해자였지만 꾸준히 살아남았던 반면, 대부분은 정권의 짓밟힘에 트로트로 근근히 유지하거나 아예 음악을 꺽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이들이 모두 계속 음악을 했다면 ……? 조용필급 뮤지션, 혹은 그 이상으로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음악인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까? 재즈나 록이 한국 대중음악의 영원한 음지식물로 남지 않았을런지도.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은 여전히 지랄맞고 짜증난다. 차라리 이런 음반들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답답함이 생기지나 않았을텐데.

4. 지금은 뭐 다르나
임희숙이 부른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쏘울과 스탠다드 팝이 섞인 듯한 저 멋진 노래를 거미에게 부르라고 하면 밑도 끝도 없는 한국식 알앤비 아닌가하는. 물론 30년 전 연주이니 악기 소리는 꽤 낡았지만, 그것도 사운드만 지금 가요 세션 악기 소리로 바꿔주면(연주 패턴은 그대로 놔둬도) 그냥 알앤비(R`n B 얘기하는게 아니다 그냥 알앤비!!!)다.

그 뿐인가. 김세환이나 He5의 곡도 사운드와 목소리만 바꾸면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빛이 될 듯 떠들던 인디 씬의 록/포크 성향의 누구 누구가 떠오른다.

오히려 송창식이나 이장희의 통속적이고 실험적인 곡들은 지금도 신기할 만큼 신선하지 않은가? “한잔의 추억”을 봄여름가을겨울이 다시 불렀을 때 원곡에서 무엇이 그리 바뀌었던가? 김종진도 어디선가 얘기한 것처럼, 그저 그 기억으로 그렇게 부르자 음악이 되더라.

그렇다. 이게 한국 가요의 현실이다. 뭐 외국은 다르냐고? 다를 거 하나도 없다. 블루스는 비비킹에서 에릭 클랩튼으로 존 메이어로 자니 랭 손을 통해 지금도 꾸준히 그렇게 연주된다. 메탈리카가 롤링스톤즈를 서포트하고 AC/DC가 여전히 무대에서 그 음악을 짱짱거린다. 걔들도 늘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걔들은 30년 전 음악도 여전히 듣고 있고 가치를 찾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고 나면 새로운 음악이, 어제 음악을 유치하다고 비웃으며 나타난다. 근데 그 새로운 음악도 어제 음악도 실은 똑같은 놈들이다. 어디서 미국, 영국, 일본 노래의 화려한 효과들만 베껴다가 똑같은 곡에 덮어 씌운다.

Soul 뮤지션이 R`n B 뮤지션(그/그녀는 또한 Rock`n Roll 뮤지션이며 Blues 뮤지션이다)이고 그가 Hip-Hop 뮤지션과 연결되어 있음을 걔들은 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하나 하나가 다 잘나서 지 혼자 깨달은 부처들이다. New Wave와 Synth Pop이 클럽에서 House로 또 그 MC와 DJ 손을 통해 Acid로 Electonica로 이어지는 것을 걔들은 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애시드로 핌프록으로 재림하신 예수들이다.

30년이 훨씬 넘어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음악을 마치 새로운 무엇이 계속 나오는 냥 그렇게 살았다. 정권이 찍어 누르지 않으면 자본이 이어가면서 …… 오히려 우리의 음악은 겉 모양새만 화려해졌지 알맹이는 과거만도 못해지는 거 아니었을까? 돈도 안되는데 힘들게 음악하는 사라들에게 왜 더 음악 잘하지 못하냐고 욕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러나 난 묻고 싶다. 비틀즈에 꾸준히 감동하는 당신들, 귀 비우고 찬찬히 당신과 우리가 해온 것들을 다시 살펴 보라고. 도대체 뭐가 얼마 만큼 진보했는지. 아니, 최소한 솔직하긴 했는지.


영진공 헤비죠



 

“브래스드 오프”, 오렌지주스 협주곡의 기억


마치 어딘가 간질간질하긴 한데 정확히 어디가 물린 건지 모르겠어서 그 주변만 긁다가 마침내 ‘결정적 그 부분’을 찾아내고 시원하게 긁을 때처럼 ……

며칠 전 우연히 귀에 들려온 예전 어느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이 그랬다. 그 옛날 내가 어렸을 때나 그 프로그램이 문을 닫을 때도 시그널 뮤직은 계속 그 곡의 그 연주 버전이다. 따다다단 따다다단, 의 약간 빠른 박자로 시작하는.

그러나. 진정으로 내게 당장 다시 듣고픈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 음악은 이 곡과 비슷하되 이 곡이 아니다. 그리고 … 미치도록 가려운 느낌의 얼마 뒤, 드디어 생각해냈다. 『브래스드 오프』.

그랬다, 내 깊은 기억과 애정 속에 박혀버린 곡은, 어릴 적부터 무의식 중에 무수히 반복적으로 들어온 토요명화 시그널송의 버전이 아니라, 대학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에 극장에서 본 영화에 나오는 브라스 버전이다. 영화 『브래스드 오프』에서 연주되는 아랑훼즈 협주곡 2악장.


 
『트레인스포팅』이 인기를 끌고서, “이완 맥그리거”를 마치 단독 주인공인 양 전면에 내세운 광고로 비로소 개봉될 수 있었던 바로 그 영화. 나도 그를 보기 위해 극장엘 갔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수많은 주인공들 – 밴드 전원이 주인공이었다 – 중 한 명일 뿐이어서 약간의 배반감도 느꼈지만 이 영화의 음악은 좋았다. 테입으로 OST를 샀고 한동안 잘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때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이 영화와 제대로 교감하지도 못했던 것같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소위 대처리즘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대처의 단호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그 일환으로 영국에서 일어난 연달은 광산 폐쇄, 극심한 실업, 노동자들의 절망 … 같은 걸 알기엔 나는 그때 너무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몇 년 후, 전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풀 몬티』가 나왔고, 이 영화가 유일하게 성공하지 못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아마도, 영국의 광산노동자의 아픔이 묻어있는 영화가 한국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어필하기 시작한 건 『빌리 엘리어트』 때부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때 한국은 IMF를 겪고난 후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의외로 나처럼 이 영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같다. 아랑훼즈 협주곡 2악장을 연주하는 바로 그 장면이 심지어 자막도 있는 동영상 파일로 올라와 있다. 플레이를 해보니 세상에, 이건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장면이 아닌가.

외골수 지휘자 피터 포슬스웨이트가 단원들에게 ‘오렌지주스 협주곡’이라 소개하는 이 곡, 경영진의 한 명으로 실사 조사를 위해 파견온 여주인공이 같이 연주를 하기 위해 오디션을 받으며 협연하면서 음악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이들의 연습장면은 어느새 이 광산노동자들의 필사적인 꿈과 기대와 희망과 절망과 눈물과 웃음을 좌우할 경영진과 노조 간 마라톤 협상의 장면, 협상 결과를 취재하며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들과 경영진의 장면으로 바뀐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이 연주하고 있는 바로 그 음악에 스스로 푹 빠져있는 지휘자와 악대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역시나 내게 아랑훼즈 협주곡은, 탄광 노동자들이 절망과 꿈과 희망과 삶의 모든 것을 각각의 브라스 악기에 걸고 연주한 『브래스드 오프』의 영화음악 버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장면과 피터 포슬스웨이트의 병실 밖에서 연주한 대니 보이 장면 – 절망에 악기를 팔아먹은 “이완 맥그리거”는 휘파람으로 자신의 파트 연주를 대신한다 – 이, 심지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연주되는 결선 연주 장면과 음악보다도 더욱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영진공 노바리